전 세계가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화두에 골몰하고 있다.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으며 과거 성장 방식의 한계를 절감한 탓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지구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 세계 각국은 녹색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가 주목받고 있다. '생체모방'이라는 의미의 바이오미미크리는 생물체의 특성을 산업 전반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혁신적인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기에 선진국에서는 이미 바이오미미크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바이오미미크리를 올해의 유망한 아이디어로 꼽기도 했다.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바이오미미크리산업의 현황과 전망 등에 대해 짚어본다.
일본 고속열차 신칸센의 기관차(①)는 물총새의 부리 모양을 본떠 소음 문제를 해결했다. 벤츠의 생체공학 콘셉트카(②)는 거북복의 골격을 응용해 단단하고 가벼운 차체를 실현했다. 두바이에 건설될 예정인 다이내믹타워(③)는 나무를 형상화한 것으로 각층이 독립적으로 회전하며 전기를 생산하도록 설계됐다. |
일본 자동차 메이커 닛산은 도쿄대와 함께 주행 중에 스스로 충돌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개발하고 있다. 떼 지어 날아다니면서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 꿀벌에서 영감을 얻었다.
태양열 발전 판넬도 광합성하는 식물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파라솔이나 텐트 자체를 판넬로 삼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도 한창이다. 인류의 자연 모방 욕구를 반영하는 바이오미미크리는 이처럼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부문은 디자인 쪽이다. 생체모방을 통해 매력적인 외관을 뽐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효율성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탄환 열차(Bullet Train)'라고 불리는 일본 신칸센 기관차는 물총새의 부리 모양을 닮았다. 초기 모델이 터널을 드나들 때마다 굉음을 내자 연구진은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물총새가 눈에 들어왔다. 빠른 속도로 물 속으로 뛰어드는 물총새는 잔물결만 일으킬 뿐 물 한방울 튀기지 않았던 것이다. 연구진은 곧 기관차의 전면 디자인을 물총새의 부리 모양으로 수정했다. 예상대로 소음은 물론 공기저항이 크게 줄었고 속도를 더 내면서도 에너지 손실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자동차업계도 공기저항과 맞서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선보인 생체공학 콘셉트카는 거북복(Boxfish)의 골격을 모델로 삼아 육각형으로 설계됐다. 이를 통해 벤츠는 유선형의 몸체를 유지하고 무게 중심을 낮출 수 있었다. 몸집이 큰 거북복의 만만치 않은 수영 실력을 눈여겨 본 결과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는 각 층이 독립적으로 회전하는 80층 높이(약 420m)의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다이내믹타워'라고 명명된 이 건물의 외관은 아래층은 나무 밑둥을, 위층은 나뭇가지와 잎을 연상시킨다.
설계자인 이탈리아 건축가 데이비드 피셔는 "건물 각층에 79개의 풍력 발전 터빈을 달아 전기를 자체 생산할 것"이라며 "다이내믹타워는 자체 발전이 가능한 사상 최초의 건물로 주변 건물에도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녹색 발전소'"라고 강조했다.
혹등고래(humpback whale) 지느러미 모양을 응용한 풍력 발전 터빈(웨일파워)도 독특한 외관만큼 막강한 성능을 자랑한다. 프랭크 피시 미국 웨스트체스트대 교수는 혹등고래의 지느러미에 있는 요철 모양의 돌기가 양력을 높이고 저항을 줄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풍력 발전 터빈에 적용하자 소음은 줄고 바람의 세기와 무관하게 일정한 발전량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1997년 '바이오미미크리:자연을 통해 이룬 혁신(Biomimicry:Innovation Inspired by Nature)'이라는 저서로 '바이오미미크리' 개념을 처음 도입한 재닌 베뉴스(Janine Benyus) 길드연구소 소장은 "자연이 38억년 동안 진화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이오미미크리는 무궁무진한 혁신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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