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인연은 있다. 금융권의 대표적인 인연은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과 강정원 국민은행장이라는 것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많지 않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 1983년 미국계 뱅커스트러스트 한국지점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시작된다. 강 행장은 리스크관리 부문에서 일하고 황 회장이 영업 부문을 담당하면서 영역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7년여에 걸쳐 같은 조직에서 일했다.
민태성 금융부 차장 |
황 회장이 1989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국제금융팀장으로 이동하면서 같은 조직에서의 경쟁 관계는 일단 끝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각자 주요 은행의 수장으로 다시 맞붙는다. 2004년 황 회장은 우리금융회장 공모에 나서고 같은 해 11월 강 행장은 국민은행장으로 선임된다.
황 회장과 강 행장의 경쟁은 지난해 KB금융지주 회장 선정을 앞두고 절정에 달한다. 경쟁관계에 있던 황 회장이 KB금융 회장으로 선임된 것이다.
이후에도 '검투사'로 표현되는 황 회장과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신중론자' 강 행장의 업무 스타일이 대조를 이루면서 금융권에서는 KB금융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기도 했다.
최근 두 사람의 경쟁구도에 대형 변수가 터졌다. 금융당국이 황 회장에 대해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강도높은 제재 의사를 밝힌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황 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적절한 평가 없이 위험한 파생상품에 투자해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며 '직무정지 상당'의 제재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다음달 초 열리는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금융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될지 여부는 지켜봐야겠지만 황 회장의 명성에 치명타를 입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황 회장의 금융계 생명은 끝났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징계가 확정되더라도 황 회장의 남은 임기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황 회장의 레임덕 현상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문제는 이같은 결과가 KB금융지주는 물론 국민은행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위기가 끝나가고 본격적으로 경기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황 회장의 공격적 경영 스타일이 빛을 발할 때가 온 것이다.
황 회장의 입지가 좁아지고 '입김'이 약해진다는 것은 멀리 보면 KB금융과 국민은행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할 수 밖에 없다.
백아절현(伯牙絶鉉)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백아(伯牙)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 주는 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말이다.
그동안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백아절현을 기대한다는 것은 분명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공생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대의를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 절실할 때가 있다. KB금융에게는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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