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57년 진나라 진효문왕이 왕위에 오른 지 3일 만에 급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막후 실세였던 여불위는 13세에 불과했던 태자 정(政)을 왕으로 옹립하고 본인은 승상에 오른다. 태자 정의 모친인 조희는 여색이 강한 여인이었다.
여불위와 연인관계였지만, 신하 노애(盧毐)와 2명의 아들을 낳아 몰래 키웠다. 정왕이 왕위에 오른지 9년 후인 22세 때 노애가 후계를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만다. 노애는 능지처참의 형을 받았고, 노애-조희 사이에 난 2명의 이복왕자들도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기원전 221년 천하를 통일한 정왕은 스스로 진시황(秦始皇)이라 칭하고 권세를 누렸지만, 사후 이복동생을 비롯한 수많은 원혼들이 괴롭힐 것을 두려워해 지하능 주위에 수은 해자를 만들고 수만여개의 병마용을 만들어 지키도록 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 형제간 분쟁 끊이지 않는 한국 기업들
중국을 비롯한 고금의 역사에서 왕위 찬탈을 둘러싼 음모와 살해,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오늘날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의 갈등이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는 이제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흔한 일이 됐다.
그러나 기업 경영권 분쟁이 유독 대한민국의 재벌가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재벌가 형제 분쟁의 대표적 사례는 현대그룹이었다. 정주영 고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1990년대 후반부터 2남 정몽구 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이 치열한 다툼을 벌였고 급기야 그룹이 쪼개지는 결말을 맞았다.
한화그룹의 경우 1992년 분가 과정에서 문제가 터졌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계열사 경영에서 밀려난 데 반발해 형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한 것. 1995년 모친 강태영 여사의 권유로 형제는 3년 6개월 만에 화해했다.
두산그룹은 2005년 3남이던 당시 박용오 전 두산 명예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의 계열분리를 주장하다 형제들 사이에서 완전히 축출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 상장 기업은 오너일가 소유 아닌 국민의 기업
이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간 분쟁은 그동안 모범적인 형제경영 기업이 다툼에 휘말렸다는데서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는 그동안 65세가 넘으면 동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65세 룰’이 지켜져 왔다. 그러나 경영권 이양 1년을 앞두고 박삼구 전 회장 측은 ‘경영 능력이 부족한 동생에게까지 경영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속내였고, 이를 눈치 챈 동생 박찬구 회장 측이 지분을 늘려 경영권 확보를 시도했던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간 동반 퇴진 및 박찬법 회장의 전문경영인체제 발표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이 어떤 반격카드를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 그룹의 미래가 어떤 형태로든 영향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재벌기업들 사이에 경영권과 재산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정신적 후진성’이다. 경영자 집단으로서 한국 재계 오너일가의 정신적 성숙도가 낮은 데 따른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상장돼 대주주 일가의 지분이 얼마 되지 않으면서도 ‘내 기업’이라는 소유 의식이 팽배한 점, 선진국 기업들처럼 ‘소유와 경영 분리’ 개념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재계의 현실이다.
형제간 분쟁은 기업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최대 악재가 되고 있다. 전 세계의 기업들이 불황 터널을 지나고 있는 오늘날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비롯, 형제 분쟁에 휘말린 기업들이나 앙금이 쌓여 있는 기업들이 하루 빨리 묵은 불화의 잔재를 털고 화해의 재출발에 나서야 한다.
오늘날 우리 대기업들은 더 이상 오너일가의 기업이 아닌 ‘국민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박정규 이사 겸 편집국장 sky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