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요지] 권영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영국에서 금융자본이 발달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빅토리아시대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지금도 런던의 옛 증권거래소에 가보면 ‘my word is the pact. (내 말이 곧 조약이다)’라는 말이 써있다.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은 영미권 국가들이다.
빅토리아시대 후기에 이르러 경제공황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그 밑바탕에는 금융자본이 역할을 했다. 역사는 오늘날의 역사가 과거에 있는 팩트를 주관적으로 판단하면서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재벌에게 은행을 소유하도록 해야 한다.
금산분리 완화를 통한 시너지 효과는 분명 있다. 그러나 이는 재벌 오너를 위한 시너지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 이후 삼성증권 전산센터를 통해 조사하니 삼성의 수많은 차명계좌들이 나왔다. 이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은행자본은 위험 회피의 성격이고, 산업자본은 위험 감수형 특성을 갖고 있다. 피감시자인 산업자본이 감시자인 은행을 소유하겠다는 말은 시험보는 학생이 선생님을 나가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례로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금융산업에 접목시켜서 글로벌 금융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삼성생명은 수익성과 건전성면에서 취약함을 보이고 있다.
이는 그룹 안에서 그룹의 이해를 우선으로 경영하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1987년 영국의 푸르덴셜 개방이후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이 됐다. 삼성생명이 글로벌 생명보험사가 되지 않으면서 은행 소유하면 글로벌 생보사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기업의 글로벌화는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경영관행과 마인드의 글로벌화가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수준의 사후감독이 뒤떨어진다. 정치적, 구조적 문제가 많지만, 실질적인 것은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현재의 거미줄과 같은 지배구조를 지주회사구조로 단순하게 바꾼다는 것은 찬성이다. 그러나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도입 등 지배구조 개선에도 대기업 집단 대주주의 독단적인 경영행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면서 사전 감독을 완전히 풀어버리는 것은 엄마가 빨래하러 간 사이 어린아이가 칼 집어먹는 것과 같다. 댐에 구멍이 작게 난 것은 평상시에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홍수가 나고 댐이 터지는 것은 작은 구멍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브레이크가 없는 정책들로 가득차 있으며 정책 당국의 집행과정은 브레이크 없는 벤츠와 같다.
이보람 기자 boram@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