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에 배럴당 3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국제 유가가 몇 달 만에 70달러대를 돌파하면서 산업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12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7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10일 70달러를 넘었고 11일에는 두바이유 현물 가격도 전날보다 배럴당 1.71달러 뛴 70.95달러선에 형성됐다.
그러나 고유가 추세가 올 하반기로 이어지면 실물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항공·여행업계 고유가에 '촉각' = 유가가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항공업계는 최근 유가 움직임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환율이 안정돼 있고 지금까지 평균 유가가 애초 사업계획을 세울 때 잡았던 예상치에 미치지 않아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1달러 오를 때마다 수백억 원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사업계획을 달러당 환율 1천200원대, 배럴당 유가 60~70달러에 맞춰 세웠다.
여행업계에서도 최근의 가파른 유가 상승이 아직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최성수기인 7~8월까지는 국제선 유류할증료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율안정으로 모처럼 살아나려는 여행 수요가 고유가로 인해 경기가 위축되면 다시 움츠러들까 봐 걱정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제조업체들도 다시 긴장 모드 = 철강업계는 석탄을 원료로 하고 있어 유가 상승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권에서는 벗어나 있다.
그러나 연료 협상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 때문에 가격 흐름을 면밀히 보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유연탄 협상은 연간 단위로 이뤄지는 데 최근 협상을 마무리해 고유가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철강 수요가 많은 다른 업계가 유가 상승에 영향을 받으면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업계도 원유를 직접 원자재로 사용하지는 않기 때문에 유가 상승에 따른 부담은 적지만 다른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 때문에 유가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냉장고, 세탁기 등 크기가 큰 제품을 수출할 때 물류비가 오를 수 있는 부분은 부담이지만 환율과 유가를 종합적으로 따져볼 때 아직은 견딜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는 원자재 수입 물량이 많아 유가가 오르면 운송비 지출이 늘어난다.
CJ제일제당은 연간 10억 달러가량의 곡물을 수입하는 데, 수입 원가의 4~5%가량을 유류 비용이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원가, 생산, 판매 등 전 부문에서 영향을 주는 유가 추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유가는 차량 유지비 부담을 늘려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결국 수요감소를 낳는다. 또 고유가에 따른 제조원가 인상은 차량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해 다시 구매에 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현대기아차는 이에 따라 에너지 태스크포스를 운영하며 유가동향에 대응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내심 `반색' = 국제유가가 급등하면 원유를 수입하는 정유업종은 역설적으로 반짝 호황을 누리는 업종으로 주목을 받는다.
매출원가(원유가격) 부담이 늘어나지만, 제품가격도 덩달아 오르면서 '재미'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측에 힘입어 상장 정유업체인 SK에너지의 경우 이달 들어 11일까지 주가가 6.6% 상승했다.
그러나 정유업계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경유 같은 주요 석유제품가격의 상승률이 원유가 상승폭을 확실하게 웃돌지 못해 이익을 결정하는 핵심인 마진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SK에너지 관계자는 "경유는 지난해 한때 배럴당 30달러까지 정제마진이 올랐으나 지금은 10달러 미만 수준"이라며 증시가 '과민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업계의 이 같은 '푸념'과 달리, 2분기가 정제마진의 저점이 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NH투자증권은 분석 보고서에서 "정유사들의 가동률 조정과 2분기 각국 정유사의 설비 보수가 집중되면서 생산량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유사의 수익지표인 정제마진이 현 수준에서 등락하며 저점을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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