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경기회복론에 찬물을 끼얹는 경제지표와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올 들어 미국의 주택 관련 지표는 호전됐지만 우려를 낳던 주택 차압 건수가 사상 최대치로 늘어났고 증가세가 예상됐던 소매판매 실적도 감소세를 나타냈다.
경기후퇴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줄을 이었다. 국제 신용평가업체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미국 금융시스템이 정상화되려면 최대 4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고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임스 울펜슨 전 세계은행 총재도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암울한 美 경제지표 =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부동산정보업체 리얼티트랙은 지난달 미국에서 압류 신청을 받은 주택이 지난해 같은달보다 32% 늘어난 34만2038채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2005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두 달 연속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374가구 가운데 1가구꼴로 압류 신청을 받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4월 기준 8.9%에 이르는 실업률이 꺾이지 않는 한 주택 차압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날 미 상무부가 발표한 4월 소매판매도 전월 대비 0.4% 감소했다. 월가에서는 0.2%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을 제외할 경우 감소폭은 0.5%로 늘어난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은 3월 2% 줄었지만 4월에는 0.2% 증가세로 돌아섰다.
마켓워치는 소매판매 감소는 미국 가계가 여전히 소비에 나서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경기가 생각보다 빨리 호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집값 하락 등으로 가계의 자산가치가 크게 줄었고 실업률이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어 가계의 소비지출이 제약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악 지났지만 침체 지속 = 불황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S&P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앞으로 3~4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P는 "미국 금융권의 위기가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며 "위기가 2013년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같은 전망은 미국 정부가 최근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 평가(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발표한 것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일부 은행들이 자본 확충에 나서면 금융권이 활로를 되찾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장기 침체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14일 대만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세계 경제가 향후 10년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장기 불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루그먼은 "2030년 세계 경제에 대해서는 매우 낙관한다"면서도 "향후 10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앞서 그는 민간수요 부진과 높은 실업률을 감안하면 증시의 최근 랠리는 '브이(V)'자형 경기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제임스 울펜슨 전 세계은행 총재도 세계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이날 상하이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세계 경기가 'V자'형 혹은 'U자'형, 'L자'형 성장을 하게 될 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나는 'L자'형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 금융권의 손실 규모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추정치인 3조6000억 달러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울펜슨은 "중국 정부가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례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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