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 |
미국의 간판 IT(정보기술)기업 애플의 주주들은 누구보다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최근 건강이 악화돼 지난 1월부터 병가 중인 잡스는 다음달 복귀할 예정이다.
잡스를 바라보는 주주들의 마음은 꼭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 심정같다. 이들은 잡스의 기침 소리 한번에도 마음이 철렁한다. 그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지난해 6월 이후 애플 주가는 그의 건강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요동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잡스가 유난히 수척해진 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애플 주가는 하룻새 4 달러 이상 빠졌고 6주 후 뉴욕타임스(NYT)가 그의 건강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하자 주가는 다시 2.7% 치솟았다. 또 올 1월 잡스가 병가를 냈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주가는 5 달러 가까이 추락했다. 장 마감 즈음 낙폭을 만회하기는 했지만 장중 한 때 증발했던 시가총액만 40억 달러에 달했다.
물론 잡스가 뛰어난 경영 수완을 가진 리더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CEO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순식간에 수십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좌지우지할 만큼 CEO가 기업에서 신성불가침한 존재여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은 6월호에서 CEO가 기업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고정관념을 꼬집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스타 CEO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며 새로운 개념의 리더십을 소개했다.
지난 25년간 미국 기업들은 스타 CEO들의 천국이 됐다.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1979년 부도 직전에 몰렸던 크라이슬러를 극적으로 회생시킨 리 아이아코카,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버크셔헤서웨이의 워렌 버핏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해당 기업을 업계 1위로 이끈 일등공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성공신화에 매혹된 투자자들은 주식을 사들였고 주주들은 고액 연봉과 성과급으로 CEO의 수고를 보상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CEO 일인지배체제의 개념은 1930년대 체스터 버나드의 고전 '경영자의 기능'을 통해 확산됐다. 버나드는 기업의 성패는 조직의 리더인 CEO의 능력에 따라 판가름난다는 이른바 '사장학'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조직 구성원들의 감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물질적 보상보다 조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CEO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실제 CEO의 능력이 기업의 성패를 가른 사례는 많다. 가까운 예로 잭 웰치는 뛰어난 카리스마와 공격적 경영철학으로 GE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재탄생시킨 반면 제프 스킬링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회계부정사건을 일으키며 엔론을 파산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애틀랜틱은 CEO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경영은 최근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슈퍼 CEO보다는 '리더답지 않은 리더'가 오히려 기업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조용한 CEO'들의 성공 사례는 짐 콜린스가 지난 2001년 출간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다룬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11명의 CEO'에 잘 나타나 있다. 일례로 1971년부터 20년간 킴벌리클라크를 이끈 다윈 스미스는 겸손하면서도 의지가 강했던 인물로 소비재 종이 제품에 역량을 집중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를 업계 최고로 탈바꿈했다.
콜린스는 "강한 카리스마로 명령을 내리는 CEO보다는 일선에 나서지 않은 채 조용하게 조직을 이끄는 CEO가 성공적인 기업을 탄생시킨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중간 간부들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리차드 핵크만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는 "기업 구성원들의 능력을 최대로 배양시키는 이들은 중간층의 팀 리더들"이라며 "이들은 팀원들에게 목표치를 할당하되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 있어서는 최대한 자율성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팀 구성원들이 6명 이하일 때 가장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애틀랜틱은 아울러 CEO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기업 경영진과 컨설팅업체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조장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CEO를 평가하는 컨설팅업체가 자신들의 고객이기도 한 CEO의 가치를 높여 고액의 연봉을 받게 하면 컨설팅업체는 해당 기업을 고객으로 붙잡아 둘 수 있다는 것이다.
CEO가 기업의 이익 창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앨리슨 맥케이 오하이오 주립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2007년 발표한 'CEO의 영향력'이라는 논문에서 1972년 167개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이익의 요소별 영향력을 조사한 논문을 재수치화한 결과 CEO의 영향력은 4.5~12.0%에 불과했다. 이는 업계나 기업구조의 영향력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치다.
그러나 애틀랜틱은 CEO가 없다면 기업은 방향을 잃고 추락할 수도 있다며 지금과 같은 경기후퇴기에는 CEO의 영향력에 집착하기보다는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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