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퇴임 1년, 삼성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꿨다”

2009-04-22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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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22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퇴임을 선언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러나 71년 동안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삼성그룹에게 지난 1년은 71년보다도 긴 시간이었다.

그룹 총수의 퇴진과 법적 분쟁, 주요 인사들의 퇴진, 불확실한 경영승계 일정, IMF 이후 10년만의 경제위기로 인해 삼성그룹은 지난 1년 사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소수 결정구조에서 다수 합의체로


이 회장 퇴임 당시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의 중추 역할을 해왔던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역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실상 그룹의 경영을 조율하고 컨트롤해온 이들의 퇴진으로 삼성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이들의 빈자리가상당 부분 메워졌다. 매주 수요일 진행되는 사장단협의회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을 중심으로 각 계열사 CEO들이 주축이다. 이들은 그룹과 각 계열사의 경영 방향을 모색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 소수 경영진에 의해 그룹 경영이 결정되던 방식에서 다수 사장단들이 조율을 통해 경영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삼성은 예년에 비해 현장 중심의 경영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

다만 최근 삼성그룹이 중장기적인 경영 로드맵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점이다. 과거 책임 있는 그룹 총수의 결단에 따라 구성원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목표를 향해 뛰었지만 현재는 그룹경영을 책임질 수 있는 리더십이 부재하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이병철 선대 회장은 정부와 국민들의 반대에도 도쿄선언을 통해 한국을 반도체 강국을 만들었다. 이 전회장도 프랑크푸르트 선언 등을 통해 위기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를 제시했다”며 “현재 삼성은 그룹 전체 경영을 책임질 인물이 없어 과거와는 달리 특별한 경영 대안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리’의 삼성...‘효율’과 ‘스피드’의 삼성으로

지난 1년 동안 삼성은 조직·인력·사옥 등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지난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던 이건희 전 회장의 메시지가 15년 만에 실행된 한해였다.

삼성은 지난 1월 정기인사를 통해 전체 임원 가운데 20% 가량을 퇴진시켰다. 삼성전자의 스타 CEO였던 이기태 부회장과 황창규 사장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들의 빈자리는 최지성 사장과 윤부근 사장, 신종균 부사장 등 신진인사들이 대신했다. 이윤우 부회장은 이들을 조율하며 삼성전자의 단독 CEO로 이름을 올렸다.

대단위 조직개편도 시행됐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DMC부문과 DS부문으로 나뉘어 사실상 독립 경영을 하고 있다. 본사 직원 1400명 중 1200명도 현장에 배치했다. 과거 ‘관리’의 삼성이라 불리던 그룹 경영 스타일이 ‘현장’과 ‘효율’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옥 이전도 마무리됐다. 이로서 삼성은 태평로 시대를 마감하고 서초 시대를 열었다. A·B·C 3개동으로 구성된 삼성 서초 타운은 제조업 중심 계열사가 대부분 모였다.

자율복장제와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한 것도 특징이다. 과거 ‘젊고 세련된 유학파의 최고경영자(CEO)’ 스타일로 인식돼온 ‘삼성맨’의 이미지가 친근하고 자유스러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또한 직원 개개인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할 수 있게 해 업무 효율도 오르고, 사기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삼성의 한 중간간부는 “최근 1년 동안 근무지는 물론 조직구성과 그룹문화, 외부환경까지 모든 것이 변화됐다”며 “아직 적응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한번 힘내보자는 의지를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하늘 기자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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