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일선 영업점의 계약직 직원들에게 계약 연장을 미끼로 과도한 상품 가입 실적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계약직 직원들은 고객을 상대로 상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은행들은 실적을 늘리기 위해 편법 행위도 서슴치 않고 있다.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일선 영업점에서 정규직은 물론 계약직 직원들에게도 청약저축과 신용카드, 방카슈랑스 등 상품 가입 실적을 강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계약직 직원들은 영업점장이나 팀장급 책임자들이 매기는 고과 점수에 따라 계약 연장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실적 쌓기에 동원되고 있다.
외환은행 A지점의 3개월차 계약직 K씨는 "매월 신용카드 10건, 방카슈랑스 4건의 실적이 배당된다"며 "카드는 단골 고객들을 상대로 판매하고 있지만 방카슈랑스 판매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국민은행 B지점에서 일하는 J씨는 "신용카드 17건을 달성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상품 가입과 관련한 부탁을 할 때마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비애를 느낀다"고 말했다.
일선 영업점의 상담창구와 빠른창구가 이원화된 후 입출금 업무를 담당하는 빠른창구의 계약직 직원들은 상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됐지만 실적을 채우기 위해 편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하나은행 D지점 빠른창구에서 일하는 P씨는 "청약저축 가입 의사가 있는 고객의 경우 상품 설명을 한 후 신청서를 작성하게 한다"며 "오후 늦게 신청서를 작성한 고객에게 접수확인 전화를 하고 자동이체 비밀번호를 확보한 후 신청서를 넘기면 실적으로 체크된다"고 설명했다.
계약직 직원들은 상품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고객들에게 주방용품 등 경품을 제공하고 있다. 또 타인의 명의를 빌려 상품에 가입한 후 자기 돈으로 납입하는 이른바 '자폭'까지 횡행하고 있다.
농협의 한 계약직 직원은 "극심한 고용 불안 속에서 일자리를 유지하려다보니 계약 연장 권한을 쥐고 있는 지점장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김길영 금융노조 부위원장은 "일부 은행의 영업점에서 계약직 직원들에게 실적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는 정당하지 않은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가 주요 과제로 부각되고 있어 계약직 직원들에게 상품 판매를 강요하는 행위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문제가 드러난 영업점에 대해서는 시정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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