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대로 떨어지는 등 외환시장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최근 환율 급등을 불러온 구조적인 요인들이 해결되지 않아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3월 위기설에 동유럽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국내 금융기관들의 신용도가 크게 하락해 외화 차입 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동유럽 수출액 감소에 따른 실물경제 부문의 어려움도 결국 금융기관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은행들은 국내 금융기관의 동유럽 투자 규모가 미미한데다 대외 변수이기 때문에 별도의 대응 방안은 마련하지 않고 있지만 갑작스레 들이닥친 악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금융권과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 금융기관들의 신용도를 보강해주고 신속하게 자금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외화차입 어려움 가중될 듯 = 최원근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시장팀장은 "환율이 다소 안정됐지만 동유럽발 위기가 지속되고 있어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며 "동유럽 위기가 같은 이머징 마켓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신용도를 끌어내리고 있어 외자 차입 여건이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팀장은 "서유럽 금융기관들이 동유럽에 투자한 돈이 생산 부문보다는 주로 소비 쪽으로 흘러들어간 만큼 심각한 내수 위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나라의 동유럽 수출 비중이 7%에 달해 실물 쪽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실물경제가 어려워지면 결국 금융기관들도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며 "이번 악재로 국내 금융기관들은 유동성 부족과 수익성 악화 등 이중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최근 유럽의 자금 사정이 전반적으로 안 좋다"며 "국내에 들어와 있는 유럽 자금이 앞으로 많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되며 실제로 그런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권 실장은 "외화 차입시 적용되는 가산금리(스프레드)가 상당히 오를 것으로 보여 국내 금융기관들이 외화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표한형 현대증권 연구원은 "동유럽에 투자된 외자 중 95% 가량이 서유럽 자금으로 최근 서유럽 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를 동시에 확보하려다 보니 환율이 오르고 있는 것"이라며 "당분간 시장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은행권 "피해 적지만 속수무책" = 우리은행 관계자는 "러시아에 법인이 있기는 하지만 롯데백화점에 입주해 있으며 외화채권 영업은 하지 않고 있다"며 "외화송금 업무만 보고 있어 동유럽 경제위기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도 "동유럽 관련 펀드는 거의 판매하지 않았다"며 "현지 법인도 없다"고 전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외화차입 잔액 850억달러 가운데 서유럽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한 금액은 25%에 해당하는 210억달러 가량이며 국내 은행들이 동유럽 금융기관에 투자한 금액은 18억달러 가량에 불과하다.
그러나 올 들어 외자 차입 여건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동유럽발 악재로 다시 최악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외 변수 때문에 생긴 어려움이기 때문에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올해 내실을 다지면서 지난해 어려움을 만회하려고 했는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모두 헛 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 정부 유동성 지원 서둘러야 = 최원근 팀장은 "서유럽 사정도 안 좋은데다 미국도 실물경제 쪽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어 잠시 사그러드는 것처럼 보였던 금융위기의 불씨가 다시 타오를 수도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나서 국내 금융기관의 신용도를 보강하고 자본확충펀드 등을 활용해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같은 조치들을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하게 진행해 우리의 위기 극복 의지를 대외적으로 나타내야 한다"며 "국내 금융기관의 경우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측면이 있지만 단기 자본이라도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순우 실장은 "금융기관으로서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면서도 "어떻게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힘쓰는 한편, 단기물을 장기물로 전환하고 보유 중인 해외자산 매각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김유경 이미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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