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히 들여다보면 언행의 대부분이 외부에서 주어진 것의 되새김 아닐까. 요즘 무척 행복하다. 대학 때 ‘인생의 자유’를 생각했는데 지금 그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강연은 원래 하지 않았고, 외부 기고도 중단한지 오래다. 하루 종일 나와 대면하고 나와 논다.
나를 되찾는 것은 화장발을 지우고 생얼로 대면하는 것과 같다. 덕지덕지 오염된 것들을 거둬내니 상쾌하다. 하루하루 작은 깨달음들도 소중하다. 배고프지 않다. 나아감보다 물러섬의 보폭이 크면 이른 나이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나이가 들어 물러섬의 소중함을 안다.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는 에필로그만 이해해도 인생을 수 십 년 앞당길 수 있다. 그의 말을 빌려 내 생각을 전한다.
“젊은 시절의 삶이 조금도 지혜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친 다음, 나는 먹을 만큼만 밥을 벌고 남은 시간에 나 자신을 위한 새김질을 누리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필요 없는 돈을 벌지 않는 대신 혼자 앉아서 생각하는 자유의 시간을 벌기 시작했다.”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여태까지의 모든 작품을 능가하는 최고의 작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 걸작을 써야 한다는 오만과 자학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스스로 얻게 되는 홀가분한 자유, 그것은 나이가 터득한 비겁하고도 현실적인 지혜였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때부터 도를 닦았다. 도를 쉽게 설명하면 ‘올바로 살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누구나 가능하고, 도를 닦으면 비즈니스 내공도 높아진다. 경영과 도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다. 한 가지 것에 십 수 년 이상 몰두하면 누구나 도통하게 된다. 경영도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비즈니스를 벗하다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깨달음이 있기 마련이다. 불교에서 단초를 찾았다.
불교에서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한 심우도(尋牛圖)라는 선종화가 있다. 쉽게 설명하면 그림에 소가 등장하면서 깨달음에 대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우도는 본래 도교의 팔우도(八牛圖)에서 유래된 것으로 12세기 중엽 중국 송나라 때 확암선사가 십우도(十牛圖)를 그렸다고 한다.
첫 번째 경영의 도는 심우도의 8번째 그림인 ‘인우구망(人牛具忘)’에 해당된다. 이 그림은 소를 잊은 다음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첫 단계의 도는 경영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자신의 본질과 자아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오랜 세월 경영에 대해서 몸담았다고 자부한다면 적어도 자신의 본질에 대해서 꿰뚫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경영의 도는 심우도의 10번째 그림인 ‘입전수수(入廛垂手)’에 해당된다. 이 그림은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자루를 의미한다. 최고의 경영지도(經營之道)란 ‘삶의 본질을 깨달은 바탕 위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이웃들에게 베풀며 함께 나누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팔우도를 접하고 도를 연구하며 고매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인우구망’ 그림은 안개가 자욱한 심산에서 도인이 가부좌 자세로 득도의 경지를 그리고 있다. 나중에 십우도의 마지막 그림을 보고 무너졌다. ‘입전수수’는 득도한 도인이 심산을 떠나 세상으로 나와 한 손은 지팡이를 쥐고 다른 한 손은 추임새를 하며 저자거리의 남녀노소에게 자신이 깨달은 것을 나누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나눔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았다.
지난 주 필자가 주관한 강연회에서 안철수 박사의 말에 안도한다. “강연 도중 ‘여러분이 생각하는 기업가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답은 단순한 비즈니스맨(企業家)이 아닌,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는 자, 한발 나아가 사회의 보탬이 되는 사람(起業家)이다.” 여러분의 기업은 어떤지요?
한국CEO연구소 김경태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