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악의 경기 침체로 일자리 창출이 힘들어지자 급기야 잡셰어링(job sharing.일자리 나누기)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지만 고용 전망은 불안하다.
정부는 대규모 사회인프라(SOC) 구축과 인턴제 등을 통해 일자리 만들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과 민간 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희석되면서 일찌감치 한계에 도달한 모습이다.
다급한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 안되면 지킨다'는 목표 아래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에 대한 인센티브가 미흡한데다 자칫하면 신규 채용의 문마저 좁아져 청년층 구직난이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고용 대책 '카드' 바닥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 카드를 내놓았다는 것은 사실상 고용 대책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작년 송년 다과회에서 "일자리 창출이 안되면 나누고, 지키기에 들어가야 한다. 그마저도 안되면 직업훈련이라도 강화해서 국민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갈 곳이라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제 정부 정책은 고용 창출 단계는 이미 지났고 나누기, 지키기에 힘을 쓰는 단계로 전환했다고 볼 수 있다.
당초 정부는 올해 경제운용계획에서 3% 경제성장에 10만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이를 사실상 포기한 셈이다.
정부가 이처럼 일자리 창출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재정 지출을 늘려 SOC 사업과 인턴제를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민간 부문에서는 실직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부 지출을 통한 고용보다 민간 부문의 실직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중소기업과 공공 부문 청년 인턴제로 2만5천명을 취업시키고 고용 유지금 상향 조정, 근로시간 단축 등 일자리 나누기에 대해 인건비 등 정부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당장 문을 닫게 생긴 기업들엔 통하지 않고 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손으로 둑의 구멍을 막아 나라를 구한 소년의 얘기처럼 고용 대란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구멍이 자꾸 커져 이제는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잡셰어링, 적용 힘들듯
잡셰어링은 노사가 협의해 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해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더 만드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추산에 의하면 직원 1000명인 대기업이 임금을 동결하면 직접적으로 30여 명이 고용되고 소비 증가에 따라 17.8명, 투자 증가에 따라 3.2명이 더 고용될 수 있다.
실제 1990년대 독일은 통일 후유증으로 극심한 경기 침체에 빠지자 노사 대타협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를 실시해 54만개 일자리를 창출했고, 폴크스바겐은 2년 동안 직원의 노동 시간을 줄이고 임금 10%를 삭감해 일자리 2만개를 지켰다.
이에 영감을 얻은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를 한국에도 적용하려고 적극적인 재정 및 세제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고 기업을 유지했을 경우 고용유지 지원금을 중소기업의 경우 기존 임금의 3분의 2에서 4분의 3으로 확대하고 대기업은 임금의 2분의 1에서 3분의 2로 늘리기로 했다.
주 40시간 근무제 조기 도입으로 근로자 수가 늘어난 중소기업에 대해 1인당 분기별 180만 원 지원하던 것을 240만 원으로 늘리고, 청년 미취업자를 인턴으로 채용한 중소기업에는 임금 50%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법인세 감면과 세무조사 유예, 정부 조달계약시 가산점 부여 등도 검토되고 있다. 임금을 삭감한 기업의 근로자에게는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동수 재정부 제1차관은 지난 16일 노동부, 중기청, 지경부 등의 1급 간부들을 긴급 소집해 일자리 나누기를 하는 기업에 전폭적인 재정 및 세제 지원 방안을 강구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일자리 나누기에 대해 독일처럼 노사간 대타협이 어려운데다 이미 대규모 감세를 실시해 정부의 재정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관련 기업에 충분한 세제 지원을 하기 힘든 상태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단 재정 뿐 아니라 세제 지원 방안까지 모두 검토해보라고 했다"면서 "하지만 노동부 주장처럼 일자리를 나누는 기업에 법인세, 소득세 감면까지 해주기에는 정부의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상황이 악화되는 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빠르다"면서 "기업들도 일시적인 휴업 등으로 고용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작년 12월에 이미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는 것은 상황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얘기다"고 우려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주로 건설이나 금융 부문에서 일자리가 줄었는데 자동차 하청업체에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그 충격이 커질 것"이라면서 "정부의 일자리 대책이 취업자 숫자를 일부 늘릴 수 있겠지만 감소 추세를 바꾸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