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값이 2만~3만원으로 떨어져 강아지만도 못하다는 소식 들었나. 미국 쇠고기가 들어 온 이후로 우리 몸값이 30% 가까이 내렸다느만. 업자들이 떼거지로 과천정부청사로 몰려 가 대책을 세워 달라고 떼를 쓸 모양이더군. 그렇다고 우리 팔자가 펴는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눈총이 따갑구먼. 이제 힘이 부치고 뉘집 냉장고로 갈지 모르는 신세지만 2세들이 걱정이구먼...” 정초 우시장에서 만난 충청도 소와 경기도 소의 탄식을 들어 보자.
충우(忠牛), 겨울 한 철 외양간에서 쉴 때를 빼놓고는 논밭으로 일년 내내 일한 기억 뿐이 네. 해동하여 봄철이면 밭갈이에 바쁘기 시작하지. 틈틈이 시오리길 5일장으로 등에 수레 메고 짐 나르는 것도 일과 중의 하나지. 모내기 앞두고는 목등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온종일 논빼미에서 살다시피 하지. 여름이면 뒷동산이나 개울가 둔덕의 땡볕에서 하품만 하지. 해가 뉘엿뉘엿 할 때쯤 풀섶으로, 시냇가로 다니며 배를 불리지. 어쩌다 임자 눈을 피해 논둑 콩잎을 슬쩍 한 입 하면 별미지. 가을 추수철엔 볏단 나르기도 심심찮은 일거리지. 요즈음은 내 몫을 딸딸이가 도맡아줘 제법 한가한 편이지. 그럭저럭 몇 년 정붙이고 사는가 싶더니 막내아들 학자금 때문에 이곳까지 실려왔지.
경우(京牛), 어려서부터 외양간에 갇혀있어 맑은 공기나 햇볕은 별로 본 적이 없지. 시냇가에서 물 마시는 재미도 느껴보질 못 했지. 그저 하루 세 끼 먹고 자고 할 뿐이었지. 먹이는 남부럽지않게 그런대로 잘 먹은 편이지. 작년 여름에는 소뼈를 갈아서 만든 여물을 먹고 광우병에 걸린 소가 수입된다고 온 나라가 야단법석을 떨더구먼. 소탈을 쓴 인간들이 얼마나 설쳐대던지 마치 우리가 성난 것처럼 극성을 떨어 민망했지. 나중에 안 일이지만 누군가가 다 꾸면 낸 사실이라는구먼. 하여튼 밤낮으로 시끄럽고 민구스러워서 미칠 지경이었지. 또 아파트공사 소리에 편하게 잠든 적이 없었고 새로 만든 도로에는 차들이 어찌 많이 오가는지 죽을 맛이었지. 육중하게 살이 찐 녀석부터 무더기로 팔려나가는 틈에 얹혀 온 셈이지.
충우, 건너편에서 아까부터 빤히 쳐다보는 녀석은 뒤태가 그들먹하니 머리쪽으로 날씬하게 쭉 빠져 새끼를 잘 낳게 생겼구먼. 그 옆에 녀석은 목. 어깨부분이 듬직하고 얼굴이 길쭉하니 힘깨나 쓰게 생겼구먼. 원래 목에 살이 많으면 고집이 세고 심술이 있어 상대하기가 껄끄럽지. 목젖이 얇으면 먹성이 신통찮아 갈먹는 법이지.
충우, 우리의 희생으로 인간들의 삶과 먹을거리가 풍성해 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네. 새해에는 기업을 하는 사람이나, 종사하는 사람이나 하나같이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인 우리를 닮는다면 나라살림도 윤택해 지고 물가도 실업도 해결되지않겠나.
경우, 경제를 살린답시고 부동산이 어쩌고 찔끔찔끔 대책을 내놓고 여론을 떠 보기로 일관하더니 아마 올 해는 4대 강을 살린다고 상반기에 몽땅 돈을 풀 모양이야. 여름께부터는 자연히 좋아지지않겠나. 포기하지말고 정부를 믿어봐야 할 텐데. 또 젊은 이는 물론 나이 든 이 모두가 한 마음으로 도전과 극복의 지혜를 발휘해야 되지않겠나. 괴테는 80이 넘어 ‘파우스트’를 완성했고 미국의 유명한 여류화가 모지스는 76세에 붓을 잡았다잖나. 그 속에 경제회생의 길이 있지않겠나. 우리의 해라니 덕담으로 ‘희망가’(문병란)나 함께 부르세나.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 튼다/ 절망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희망의 스승/ 시련없이 성취는 오지않고/ 단련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길 멈추지 말라/ 인생 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