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인생 “어느 여류 화가의‘비상’”

2008-10-16 10:41
  • 글자크기 설정

하늘에 있는 별과 땅에 있는 국화가 만났을때

<윤정원씨의 화폭 속에 담긴 특별한 자유>

가을의 꽃 코스모스가 한창 피던 10월 어느날, 구리시에 특별한 젊은 여류 화가가 있다는 지인의 소개로 시청 인근에 있는 화실을 찾았다. 그곳에 10평 내외의 작은 공간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작업에 열중하는 화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실례합니다. 안녕하세요? 라며 짧은 인사말을 던지자 화가는 그제서야 인기척에 놀란 듯 고개를 들며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나의 눈은 벽면에 기대어 있는 그림 한폭이 시선에 끌렸다. 

“의아해할만큼 다소 생소한 작품인데 그림이 좀 특이해 보이네요. 무슨 뜻이 담겨 있나요? 라며 질문을 하면서 가슴 한켠에는 내심 스스로가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살짝 얼굴이 화근거렸다. 한 가지 주제를 붙들고 자신의 영혼과 사투를 벌이며 결과물을 그림속에 녹여내는 화가의 본능 앞에 혹여 조금이라도 결레가 아닐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리라...

“예! 조금 어려워 보이시죠? 저의 작품을 처음 대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똑같은 질문을 하시더군요. 저의 작품에 대해 굳이 코멘트를 달자면 저는 움직이는 것, 움직이지 않는 모든 자연을 테마로 그림을 그려요. 예컨대 기자님께서 보시고 있는 것은 2009년 2월 예정인 개인전에 출품할 작품으로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땅에 있는 국화를 형상화시켜서 표현한 것 이예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있어 하늘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의 세계와는 다른 무엇이잖아요. 아무리 우주과학 기술이 발달됐다 해도 무거운 몸뚱아리에 불과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의 대상이며 신적인 영역으로도 인식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하늘하고 땅을 잇는 유일한 동물이 저는 새라고 생각하는데, 상징적인 의미로 새의 힘을 빌어 하늘의 별과 땅의 꽃인 국화가 만나서 인간의 꿈을 위안 시켜요. 그것이 저의 작품세계라 말할 수 있어요”. 

   
 
하늘의 별과 땅의 국화를 소재로 형상화한 작품 옆에 선 윤정원 동양화가

그랬다. 신의 무한한 상상속에서 빚어진 자연은 분명 인간에게 있어 동경의 대상이었다.
가고 싶어도 갈수 없는 하늘이 있고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는 공간이 있다.

밤하늘의 별, 노을이 질 무렵의 구름, 부유하는 듯한 풀잎들! 이런 수 많은 자연을 감싸고있는 가장 큰 자연 ‘하늘’....그리고 그곳에서의 비상, 이것이 윤정원씨(여, 31세)작품의 주된 소재이다. 윤 화가는 이런 자연에 대해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색으로 거침없이 도발하는 화가다. 

윤 화가는 서울예술고등학교 재학시절 서예와 동양의 사군자들 그리며 본격적인 화가의 인생여정을 시작했고, 지난 2001년, 이화여대 미술학부 한국화를 졸업하고, 2004년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그녀만의 독특한 주제를 통해 매년 개인전과 공모전, 그룹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착실하게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수순을 밟아왔다. 그리고 그의 열정으로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화랑가에서 성장이 기대되는 여류 화가로 떠오르게 됐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을 바라보며 철학적 심오한 상상을 통해 어느 순간에 영감이 떠오르는 장면을 화폭에 담는 일이 그녀에겐 평생의 직업이 된 셈이다.

자연에 포로가 되어 그림속에 한편의 소설을 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꿈을 먹고 산다고들 하지요. 내일을 위해 오늘이 있듯이...
저에게도 꿈이 있어요! 그런데 저의 꿈은 그냥 그림 그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것이 제가 살아야할 이유이며 저의 운명이거든요. 보세요! 하늘은 무궁무진한 다양한 색들이 조화를 이루며 숨 쉬고 때로는 새빨간 태양빛을 머금은 무거운 빛깔이 되기도 하는데 어느날은 비온 뒤의 맑고 투명한 공기가 되어 무지개를 만들고 마치 한폭의 한복자락처럼 얇고 고운 빛깔이 되어 비춰주기도 하죠”.
 
“또한 하늘은 가느다란 풀잎, 이슬방울과 같은 작은 모습으로 인간의 삶속에 응축되어 생명력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요. 이처럼 모든 자연을 감싸고 있는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인가 그 시작도 끝도 없는 곳을 향하는 새의 모습처럼 인간도 가벼운 몸이 되어 비상하고픈 욕망이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하지요.
저는 비록 그림이라는 가상속이지만 환상을 현실로 옮겨오는 꿈을 꾸어요.
즉, 그 세계를 마음으로 상상하고 한편의 소설을 쓰듯 그림으로 표현하는 운명적인 만남을 하고 있는 셈이죠”.

화가의 말이 계속되는 동안 조금전에 받았던 명함을 다시 들었다.
그곳에 ‘비상’ 이라는 한자어가 있었다. 처음 받을 당시 잠시 머뭇거리다 궁금했던 것이 이제사 풀렸다. 다름 아닌 ‘비상’ 은 그녀만의 캐릭터였다.
그녀의 모든 그림은 비상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전달하려는 메신저였던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려는 듯 자연속에서 흔적과 본질이 교차하는 일순간, 비상이 되어지고 끝없는 상상의 공간인 화폭에 고운 빛깔로 깊고 풍부한 하늘이 거짓말처럼 만들어진다.

윤 화가는 작품활동을 하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 것 없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 마디로 평범 그 자체라는 편견의 시선이란다.

이에대해 윤 화가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때로는 동심으로 돌아가 놀이동산에서 자연을 노래하고 대학에서는 강의를 하며 학생들과 마음껏 토론하고 때로는 그속에서  삶의 의미를 채워나간다”고 했다. 주위에서 말하는 편견의 시선은 단지 출세지향주의를 우선적 관점으로 보는 사회적 풍토와 무관치 않기 때문에 논리 자체가 자신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록 우리나라 환경이 예술인에게는 다소 척박하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위해 열정을 쏟는다면 분명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람들은 화가도 직업인데 기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서 상업적인 화풍을 그리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윤 화가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단호히 거부했다.
“언젠가 인터넷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동서남북’ 이라는 다소 생소한 록 그룹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멤버 구성을 보면 국내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여했고 활동기간에는 딱 한 장의 앨범만을 발표하고 즉시 해체했는데 록 메니아들 사이에서는 당시 발표했던 앨범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히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들은 실험적인 음악을 위해 잠시 모였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당장의 경제적 가치보다 메니아들이 인정하고 대중들의 뇌리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실험적인 작품에 도전하고 싶어요. 굳이 지금의 현실을 본다면 저는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떳떳한 그림을 그릴거고 제가 추구하는 주제에서 보다 나은 삶의 지혜를 얻는 것에 만족해요. 무엇보다 저에게는 젊음이 있고 나와 비상하는 그림을 믿거든요.”
 
“저는 여기서 네덜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해요. 70년대 전쟁, 평화의 상징이었던 우드스탁 공연의 영웅 Doors의 짐모리슨, 기타 천재 지미핸드릭스, 젊음의 아이콘 제임스 딘, 불멸의 작곡가 모차르트 등 천재는 일찍 생을 마감한다는 말이 있는데 고흐도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요.

당시 그의 작품 대부분은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해요. 아마도 그를 바라봤던 사람들이 그의 천재성보다는 예술을 향한 그의 광기, 예술적 신념을 위해 귀라도 자를 수 있는 거침없는 행동, 그리고 자살로 마감하는 생에 더 관심을 두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고흐는 당시 다른 사람들 눈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그가 세상과 이별하기까지 괴벽스럽고 아무런 사회적 지위도 갖지 못한 이 화가의 가슴 속에 세계 미술사를 바꿀 뜨거운 영혼이 들어 있는 줄 아는 이는 많지 않았어요. 그의 손끝에서 꿈틀거리는 붓질속에 생명과도 같은 투혼이 있었고 그의 뿌리 깊은 고뇌를 표현했던 것에는 사랑이 있었던거죠.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 감정과 열정을 담아내고자 거칠게 표출되리만큼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훗날 후세에 영원히 기억될 불후의 명작 ‘화병속에 꽃힌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와 같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거죠. 

고뇌와 열정이 오가는 인생여정은 화가의 기록물

“사실 요즘 잘나가시는 선배 화가들도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찾는 모험으로 뛰어든다고 해요. 왜냐하면 경쟁을 넘기 위해서는 대중이 원하는 그 이상의 특별한 것이 경쟁력이거든요. 사실 화가들도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미술사 바깥으로 내몰리는게 냉혹한 현실이예요. 설령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도 목적지에 다다르기는 결코 만만치 않고요.
저는 경험은 짧지만 솔직히 두렵습니다. 그러나 고흐의 경우처럼 현실이 어렵고 생환은 더욱 힘겹다 해도 자신만이 추구하는 인생관과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노력은 포기해서도 밀려서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윤화가가 내년 2월에 있을 개인전 준비를 위해 작품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변화는 새로움과 만나는 기회이고 인생이란 여정을 다채롭게 만들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하지요. 인간이 자기 이해과정의 가장 탁월한 객관적 증거로서 위대한 예술 작품을 향한 열정이 계속될 때 숱한 방황속에 수확한 화가의 기록물이 될겁니다. 
무엇보다 값지고 소중 한 것은 장미나 백합은 때가오면 다시 피지만 예술의 꽃은 영원한 것이기에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나 봅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미술을 왜 어려워하는 걸까? 가, 궁금했다.
윤 화가의 말처럼 미술이 목숨을 걸 만한 가치라면 그건 결국 그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일반인에게는 무리인듯 싶었다. 그래서야 미술이 와 닿을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든 것이다. 화가가 자신의 상징성을 드러내고 싶은 걸 일반 대중에게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에대해 윤 화가는 그림을 감상하고 화가를 이해하는데는 정답이란 없다고 강조한다. 대신  '자유'라는 표현을 썼다. 그림을 보는 것은 물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데는 자신만의 고유한 자유가 있고 선택의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에게 있어 세상의 이야기 자연의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그것에 대해 많은 대중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망만이 생리적으로 화가에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들이 떠다니는데 그림이라는 공간속에서 함께 하고 대화하는 것, 그것이 대중과의 만남이다.

이렇게 윤 화가의 미술 세계를 들여다보다 문득 80년대 암울한 시대에 유행했던 유리벽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신형원이라는 가수를 세상에 알리기도 했던 이 노래는 '내가 너의 손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는', 가사처럼 알 듯 모를 듯한 우리네 인생을 풍자해서 인기를 얻었던 곡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유리벽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유리벽 밖으로 세상은 보이는데 정작 닿지 않는, 잡히지 않는, 만져지지 않는 곳이라면 분명 답답해 할 만도 할 것이다. 

윤 화가의 미술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유리벽'에 둘러싸인 인생살이에 작은 희망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뷰 말미에 윤 화가는 자신의 미술 철학을 능숙한 언어구사로 거침없이 꺼내들며 꿈많던 예고시절에 유명화가가 되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노라고 당차게 다졌던 마음의 자화상을 다시 되새겨 보였다. 지금 이 순간 유리벽을 뚫고 다시 고흐의 영혼처럼 세상에 널리 기억될 좋은 작품을 만드는 이름있는 화가가 되기 위한 다짐을 해본다고....

편집국  edit@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