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실물이 흔들린다

2008-10-1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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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금융위기로 국내 실물경제도 위축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고 기업들은 금융위기로 돈줄이 막히자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한국 경제의 나홀로 엔진이었던 수출은 선진국경기 침체로 인해 불안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금융위기의 고비를 넘기더라도 혹독한 실물침체가 오랫동안 깊이 진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경제의 엔진 수출이 흔들린다
수출은 기대수준에 미달하고 있다. 16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은 113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6% 증가했다. 수출이 월말에 몰리는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올해 1~9월 수출증가율 22.9%와 견줘 보면 크게 낮아졌다.

   이는 선진국 경기가 빠르게 냉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4분기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특수로 수출이 급증해야 하지만 경기침체로 특수가 실종된 상황이다.

   지식경제부는 반도체와 컴퓨터는 단가하락과 경기침체로 인해 이달에도 수출 감소세를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표적 소비재인 섬유류 수출도 꺾일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 역시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시장의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개도국마저 경기부진을 겪으면서 한국의 수출은 더욱 고전할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전영재 수석연구원은 "수출증가율은 올해 20.7%에서 내년에는 8.3%로 하락할 전망"이라며 "개도국의 경기침체로 그동안 호조를 보였던 기계와 화학 등도 부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경부는 최근 무역을 중심으로 중소기업과 외국인투자, 10대 업종 등 분야별로 미 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제 파급상황을 점검하는 실무대책반을 구성했지만 수출 둔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수출이 금액 기준으로는 20%대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제품단가의 상승률이 10%를 웃돌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의 고용 창출력은 떨어지고 있으며 본격적인 수출 둔화가 예고된 내년에는 생산 감소에 따른 인력 감축이 우려된다.

  
◇ 설비투자도 둔화세
기업들의 설비투자도 둔화세가 뚜렷해지고 있으며 금융위기로 추가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전년동기대비 설비투자 증가율은 지난 7월 9.9%에서 8월 1.6%로 내려앉았다.

   설비투자 지표인 기계류 내수 출하 증가율도 이 기간 7.2%에서 2.3%로 둔화했으며 내수용 자본재수입 증가율도 18.9%에서 9.4%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선행지표인 국내 기계 수주도 7월 20.7% 증가에서 8월 1.7% 감소로 반전됐다.

   한국은행이 2천154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기업경기조사 결과'를 보면 설비투자 실사지수(BSI)는 8월 99에서 9월 96으로 떨어졌다. 이 수치가 100을 밑돈다는 것은 당초 계획보다 투자를 늘리겠다는 업체의 수보다 투자를 줄이겠다는 업체 수가 더 많다는 의미로, 통상 경기가 나쁠 때 100 밑으로 떨어진다.

   산업은행이 지난 8월 국내 150대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올해 설비투자는 작년보다 20.9%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산은 관계자는 "정보통신, LCD 관련 대기업들은 투자 계획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중소기업은 글로벌 금융불안과 경기둔화 여파로 당시 조사보다 설비투자가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설비투자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모니터링한 결과 LCD, 조선업체 등 상반기에 실적이 호조를 보인 대기업들은 설비투자에 나서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최근 경기둔화로 채산성이 악화하고 있는데다 은행들이 중기대출마저 줄이고 있어 설비투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환율 상승으로 키코 등 파생상품 관련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올 상반기 매달 5조~6조 원을 웃돌았으나 8월 들어 1조 원대로 급감했다.

  
◇ 소비자들 지갑 닫아
내수는 수출이 막혔을 때 '구원투수'가 될 수 있지만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있고 건설 경기도 얼어 붙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기대비 민간소비 증감률은 2004년 3분기 감소세에서 증가세로 돌아선 이후 지난 2분기 -0.2%를 기록하며 감소세로 돌아섰다. 또 8월 중 소비재판매를 보면 내구재 및 비내구재는 판매가 부진해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이 7월 3.9%에서 8월 1.5%로 낮아졌다.

   9월 들어서는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매출마저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백화점 매출은 9월 -0.3%(전년 동월 대비)를 기록하며 올들어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였다.

   시장에서는 경기가 식으면 우선 내구재나 고급형 제품 소비를 줄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전체 가전제품의 매출이 전년 동기와 비교할 때 2.9% 줄었다. 세탁기는 -9%, 양문형 냉장고는 -11%, 신사복은 -2.1%였다.

   이마트 관계자는 "올해 추석에는 중소기업이 단체선물을 구매하거나 일반 소비자들이 선물용 가공식품을 구매할 때 지난해보다 단가를 낮추는 경향이 많았다"고 말했다.

   한은의 모니터링 결과에서도 9월에는 홈쇼핑 판매는 증가한 반면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판매가 감소로 전환했고 승용차 내수 판매도 전월에 이어 크게 감소했다.

   소비의 원동력이 되는 고용 사정도 악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취업자는 2천373만4천명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고작 11만2천명(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런 증가폭은 3년 7개월 만의 최저치다. 고용의 악화는 내수의 버팀목이 허물어진다는 의미다.

   전망도 밝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내년도 세계 및 국내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1.2분기 각각 3.4%, 2.3%였던 민간소비 증가율이 3분기에는 2.2%, 4분기엔 2.1%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소는 "올 하반기에는 고물가와 심리 불안, 고용 상황 악화 등으로 소비 부진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부동산 가격 하락 이미 시작
부동산 가격은 이미 하락세를 시작했다. 부동산업소에는 급매물이 속출하고 있으나 매수세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주택 수요자들이 가격의 추가적인 하락을 예상하고 매수시기를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의 한 주민은 "갑자기 급매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한국도 미국처럼 부동산가격이 폭락하면서 경제전체를 흔드는 것이 아니냐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시의 한 주민은 "최근들어 아파트 급매물이 많이 나왔는데, 상당부분은 강남 부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택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강남 부자들이 가격하락을 벌써 예감하고 부동산 현금화에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경우 연초부터 대형평수 중심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 8월부터는 낙폭이 커지고 있다. 서울 강북도 상반기에 오름세를 나타냈지만 이제는 약세로 돌아선 상태다. 분당.용인 등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하락한 상태다.

   부동산114의 김희선 전무는 "전반적으로 지난 9월 이후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면서 "부동산가격의 급락은 피하기 어렵고 다만 어느 정도까지 떨어질지가 관심 대상"이라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2009년 주택시장의 향방' 보고서에서 "경기회복의 부진, 대출금리의 불안 등으로 수요가 침체할 것으로 보이고 미분양아파트 문제가 심화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급 매물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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