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금융위기 진정을 위해 공조하고 있는 가운데 예정됐던 악재가 글로벌 경제에 먹구름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경기침체(recession)에 대한 공포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마련하는 등 금융위기에 대한 불안감은 한풀 꺾였지만 이제는 실물경제를 중심으로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전세계 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침체 공포로 증시 폭락세 전환=침체 공포가 확산되면서 증시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16일 아시아증시에서 일본증시와 홍콩증시가 10% 가까이 폭락했으며 인도와 싱가포르증시 역시 각각 6~7% 내외의 낙폭을 기록했다.
전일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가 700포인트 이상 폭락하면서 지수 9000선이 무너지며 8500선으로 밀려나는 등 지난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이후 최악의 장세를 연출한 것이 아시아증시 폭락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됐다.
사진: 15일(현지시간) 미국증시가 폭락하자 트레이더가 괴로운 몸짓을 하고 있다. |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반영하는 변동성 지수 역시 급등세를 나타내며 상황이 좋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시카고옵션거래소에서 거래되는 VIX지수는 이날 26% 급등한 69.25를 기록했다. 이는 3주래 최대 상승폭이다.
블룸버그 통신이 3700여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세계경제 신뢰지수 역시 전월 11.3에서 10월 들어 4로 급락하면서 악화된 투자심리를 반영했다.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은행권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오펜하이머의 메레디스 휘트니 애널리스트는 이날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펀더멘털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분기가 필요하다"면서 "신용 비용은 놀랄 정도로 높아질 것이며 기업들의 매출은 큰 폭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간키건의 존 윌슨 주식 전략 부문 공동 책임자는 "지금 장세는 공포와 불확실성에 싸여 있다"면서 "경제가 어느 정도로 나빠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밝혔다.
◆美 경제 침체 '악화일로'=금융위기에 밀려 잠자고 있던 'R'의 공포는 경제지표로 촉발됐다. 미 상무부는 9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1.2% 감소했다고 15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로써 소매판매는 3년래 최대폭으로 감소했으며 월가 전망치인 0.8% 감소보다 악화된 셈이 됐다.
7월과 8월 수치도 하향 수정되면서 소매판매는 지난 1991년 이후 처음으로 3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했다.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신용위기의 근원지인 부동산 시장의 악화와 고용시장 부진까지 이어지면서 전문가들은 미국의 실질 소비가 17년래 처음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조업 지표 역시 경기침체 공포를 확산시켰다. 뉴욕준비은행은 10월 엠파이어 스테이트 제조업지수가 -24.6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월의 -7.4에서 큰 폭 하락한 것으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공개한 베이지북 역시 미국 경제의 둔화세가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12개 지역 준비은행의 경제조사를 종합한 베이지북을 통해 연준은 미국 전역의 경제 활동이 둔화됐다면서 불투명한 경제 전망으로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고 있고 기업 역시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밝혔다.
연준은 특히 경기침체의 먹구름이 미국 경제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비금융 서비스업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유가 하락과 경기 둔화로 인플레 압력은 둔화됐지만 고용시장의 악화가 심각해지고 있는데다 서비스업까지 침체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미국 경제의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당분간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알트에이도 위험...S&P 등급하향 경고=신용위기의 출발점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알트에이(Alt-A)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동산시장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S&P는 이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비해 신용등급을 높은 알트에이와 관련된 2801억달러(약 340조원) 규모의 유동화증권에 대한 신용등급을 하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S&P는 알트에이 모기지의 채무불이행 비율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면서 사태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함을 시사했다.
S&P는 5년 고정금리 알트에이 모기지와 관련된 주택차압 손실 전망치가 기존 35%에서 40%로 상향된 것을 반영한 것으로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금융권은 이제 알트에이발 충격에 대비해야 되는 상황에 놓였다.
◆연준 추가 금리인하 확실시...美 경제 내년도 안좋아=경제 전망 악화로 당국의 경기부양 의지는 더욱 확고해질 가능성이 높다. 오는 28일부터 이틀 동안 열리는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연준의 추가 금리인하는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 역시 뉴욕 경제클럽 연설을 통해 불안한 경기 전망을 내놓아 결과적으로 금융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킨 셈이 됐다.
버냉키 의장은 "금융시장과 신용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즉각적인 경기 반등을 이끌지는 못할 것"이라면서 "금융시장 안정은 필수적인 첫단계일 뿐이며 경제가 당장 회복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15일(현지시간) 뉴욕 연설에서 금융시장이 안정되더라도 미국 경제의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
그는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금융시장과 함께 실물경제의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데다 소비와 기업 투자 역시 위축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수분기에 걸쳐 경제활동은 금융과 신용시장의 정상화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지표 결과와 버냉키 의장의 발언으로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블룸버그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분기 0.2% 감소한 뒤 4분기에도 0.8%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P의 샘 스토벌 투자전략가는 "지표들이 미국 경제의 침체 진입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글로벌 경제 역시 침체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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