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침체의 골이 바닥을 모른채 깊어지고 있다. 소비심리는 16년래 최악의 상황에 빠졌고 글로벌 신용위기의 근원지인 부동산시장 역시 살아나기는 커녕 불안감만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초 올해 경제 침체가 바닥을 확인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같은 전망을 전면 수정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소비심리 16년래 최저=미국 경제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는 소비 심리는 고유가와 고용시장 악화, 주택가격 하락 등 3대 악재로 16년래 최저 수준으로 급랭했다.
민간경제연구기관인 컨퍼런스보드에 따르면 6월 소비자신뢰지수가 전월의 58.1에서 50.4로 하락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지난 1992년 이래 가장 낮은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상한 56.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향후 6개월 뒤의 체감경기를 의미하는 기대지수는 전월의 47.3에서 41.0으로 하락해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쳤고 현재 체감경기를 반영하는 동행지수 역시 74.2에서 64.5로 떨어졌다.
문제는 인플레 기대 심리 역시 사상 최악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은 향후 12개월 동안 물가가 7.7%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소비심리 악화에 대해 놀랍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하이 프리퀀시 이코노믹스의 이안 셰퍼드슨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놀라울 정도로 악화된 수치"라며 "당국이 세금을 환급하는 등 경기부양을 위한 노력이 유가와 식품 가격 상승으로 상쇄됐다"고 말했다.
FTN파이낸셜의 크리스 로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개월간 소비심리는 악화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는 곧 소비지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고용시장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일자리가 늘어났는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14.1%에 그쳤다. 이는 전월의 16.1%에서 하락한 것이다.
◆20개 대도시 주택가격 사상 최대 하락=부동산시장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미국 20개 대도시의 주택가격이 지난 4월 사상 최대 하락률을 기록하면서 1990년대 이른바 '부의 효과'를 가져왔던 부동산시장은 이제 천덕꾸러기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월가가 가장 신뢰하는 주택가격 지표인 S&P/케이스-쉴러 주택가격 지수에 따르면 미국 20대 대도시의 4월 주택가격은 전년동월대비 평균 15.3% 하락했다. 이는 지난 2001년 이 지수가 발표되기 시작한 이래 최대 낙폭이다 .
지역별로는 라스베가스와 마이애미, 피닉스 등 주요 도시 주택가격이 25% 이상 하락하면서 부동산시장 침체를 주도했다.
이로써 미국의 주택가격은 지난 2004년 수준으로 돌아간 셈이 됐다. 미국 부동산가격은 지난 2003년부터 3년간 50%가 넘게 오른 뒤 2007년 1월부터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문제는 전문가들이 추가적인 부동산 가격 하락을 예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택가격이 지난해 고점에서 최대 30%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UBS의 제임스 오설리반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시장에 재고가 넘쳐나고 있어 주택가격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면서 "경제와 부동산시장 모두가 취약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린스펀 "신용위기 여파 내년까지 간다"=잊을만 하면 한마디씩 던져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몰고 오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역시 이날 불안심리를 확산시켰다.
그린스펀은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최근 연준의 조치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감소하기는 했지만 혼란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용위기는 향후 수개월 동안 이어질 것이며 내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린스펀은 연준의 정책에 대해 신뢰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린스펀은 연준의 '3월 조치' 이후 시장 상황이 나아졌다고 언급했다.
3월 조치란 신용위기로 위기에 빠진 베어스턴스에 대한 구제금융 제공 등 일련의 시장 안정 조치를 의미한다.
◆긍정론 출현...SIFMA 내년 본격 회복할 것=한편 긍정적인 소식도 전해졌다. 내년 미국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는 조사가 발표된 것이다.
미국 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SIFMA)는 내년 미국 경제 성장률이 2.2%를 기록해 올해에 비해 두 배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IFMA는 650개 회원사중 18개사의 선임 이코노미스트들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내년 주택가격이 바닥을 치고 주택판매는 올해 하반기부터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됐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은 올해 3.3%를 기록한 뒤 내년에는 2.2%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는 올해 2.1%를 기록해 연준이 설정한 안심권인 2%에 비해 크게 높지 않을 것이라고 SIFMA는 설명했다.
이같은 전망은 국제통화기금(IMF) 등 다른 기관의 전망에 비해 낙관적인 것으로 IMF는 내년 미국 경제 성장률이 2%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SIFMA 부회장을 맡고 있는 JP모간체이스의 짐 글래스먼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시장 침체와 고유가 사태가 이어지고 있지만 내년에는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