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주경제 논설고문
- 前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 前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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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원 특검법, 벌써 세번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해병대원 특검법을 국민의힘 의원 퇴장 속에 강행 통과시켰다. 해병대원 특검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국방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핵심 수사 대상으로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월과 7월에도 그랬다. 그때마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로 맞섰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그럴 게 확실하다. 똑같은 법안에 세 번씩이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 윤 대통령으로선 징글징글할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은 정치 공세로 일관하는 민주당을 탓할 것이다. 민주당 탓도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사태의 근본 원인은 윤 대통령의 정치력 문제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윤 대통령 수사 개입 의혹이 처음 불거진 것은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등장하는 직책들은 사건 당시 기준임)이 항명 혐의로 국방부 조사를 받으면서 제출한 진술서에서였다. 앞서 지난해 7월 19일 해병대원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박 단장은 7월 30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하겠다고 국방부에 보고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를 결재했다. 그런데 하루 만인 7월 31일 결재를 번복하고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을 통해 박 단장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그럼에도 박 단장은 8월 2일 오전 경북경찰청에 수사기록을 이첩했다. 국방부는 당일 오후 경북경찰청에서 수사기록을 회수했다. 그리고 박 단장을 항명 혐의로 입건했다. 국방부는 8월 9일 이 사건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하고 재조사를 거쳐 8월 24일 임성근 사단장 등을 뺀 대대장 2명의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8월 28일 박 단장을 항명 혐의로 소환조사했다. 이때 박 단장이 사건의 경찰 이첩 보류 배경에 윤 대통령 의중이 작용했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국방부에 제출한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진술서 내용에 따르면 7월 31일 박 단장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임성근 사단장을 혐의 대상에서 빼라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김 사령관이 ‘(오늘)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대통령) 주재 회의 도중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박 단장이 ‘정말 VIP가 맞습니까’라고 묻자 김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다고 한다. 통화 기록에서 나타나는 대통령 개입 정황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윤 대통령이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했다는 외압 의혹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에 비춰 보면 윤 대통령 개입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해 사건 당시 윤 대통령과 이종섭 장관이 통화한 기록이 결정적 정황이다. 이 장관은 7월 31일 해병대 수사단의 언론 브리핑이 국방부 지시로 취소되기 직전에 대통령실 일반 전화를 받은 사실이 나타났다. 이 장관이 당일 오전 11시 54분쯤 '02-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일반 전화를 받아 168초 동안 통화했다고 한다. 당시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 넣은 조사 결과를 언론에 브리핑하려 했다. 이 장관은 이 통화를 마치고 오전 11시 57분쯤 김계환 사령관에게 브리핑 취소와 사건 기록의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날은 김 사령관이 박 단장에게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는 날이다. 대통령이 격노해 국방부가 언론 브리핑 취소와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게 아닌지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윤 대통령은 8월 2일 낮 12시 7분, 43분, 57분 세 차례에 걸쳐 이종섭 장관에게 전화를 건 사실도 통신사실 조회에서 나타났다. 당일 오전 10시 30분쯤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사단장 등 8명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고, 국방부는 오후 7시 20분쯤 이를 회수했다. 이 장관이 수사 기록이 경찰에 이첩된 상태에서 대통령 전화를 받았고, 대통령 지시로 수사 기록을 회수토록 해병대 사령관에게 지시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할 만한 정황이다. 윤 대통령은 8월 8일 오전 7시 55분에도 이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33초간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하루 뒤인 8월 9일 국방부 조사본부에 해병대원 사망 사건 재검토를 맡기기로 하는 결정이 이뤄졌다. 이 결정과 대통령 지시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의심하게 한다. 이처럼 여러 정황들이 윤 대통령 개입이 사실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데도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부인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대통령과 통화했는지를 묻는 야당 의원 질의에 "이 건과 관련해서 통화한 게 없다"고 답했다. 이 장관 측 변호인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통화를 한 적 없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고 설명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지난 6월 야당 주도로 열린 '해병대원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VIP 격노설'을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전했냐는 의원들 질의에 '수사 사항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이 자리에서 박 단장은 거듭 김 사령관에게 'VIP 격노설'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사단장 형사 처벌 부적절' 속마음 아니었나 바로 이 대목에서 윤 대통령의 정치력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만약 윤 대통령이 진작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 걸어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지시했다’고 당당히 밝히고, 왜 그게 옳은 판단이었는지를 국민들에게 설명했으면 어땠을까? ‘임성근 사단장에게 지휘 책임을 물어 적절한 인사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형사적 책임까지 물어야 할 일은 아니다.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 어땠을까? 윤 대통령은 2022년 11월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책임자 문책 요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거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원 사건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여기에 수긍할 국민도 많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게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지시했다고 해도 그걸 위법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정부조직법 제11조는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중지 또는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종섭 장관은 당초 박정훈 수사단장의 보고를 받고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 넣기로 한 조사 결과를 결재했다. 윤 대통령은 이 사실을 보고받고 이 장관의 결재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래서 정부조직법 규정에 따라 국방부 장관에게 그 처분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면 위법이라 할 수 없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장관의 상관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결재 처분 취소를 지시하고, 이 장관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결재를 번복하고 수사 기록을 이첩하지 말라고 해병대 사령관에게 지시한 것 역시 위법이 아니다. 군사경찰직무법 제5조 ④항은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돼 있는 부대의 장(이번 사건에서는 해병대 사령관)은 군사경찰직무를 관장하고 소속 경찰을 지휘·감독한다’고 정하고 있다. 해병대 사령관이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은 ‘소속 경찰에 대한 지휘·감독’ 규정에 따른 합법적인 조치다. 대통령 지시, '불법 수사 개입'으로 볼 수도 없어 야당 측에서는 윤 대통령이 ‘수사’에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의 이번 사건 수사는 기소를 전제로 한 법률적 의미의 수사가 아니다. 과거에는 군대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군 검찰이나 헌병대 같은 군 수사기관이 가졌다. 그러나 군 수사기관의 수사 범위를 정한 군사법원법 제2조가 2021년 8월 31일 개정돼 이제는 그렇지 않다. 개정된 법은 2022년 7월 1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군대 내 성폭력 범죄, 군인이 사망에 이르게 된 범죄, 과거 군에 입대하기 전에 저지른 범죄 등 3대 범죄에 대해선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권을 갖는다. 군사법원법 제228조는 군 수사기관이 이 3대 범죄를 인지했을 때 검찰이나 경찰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대 범죄에 대한 수사 절차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7조는 ‘지체없이’ 이첩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해병대원 사망 사건은 이 3대 범죄에 해당한다. 따라서 해병대 수사단은 이 사건을 수사할 권한이 없다. 경찰에 사건을 ‘지체없이’ 이첩하면 임무가 끝난다. 수사 범위와 대상은 경찰이 정하게 된다.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는 기소를 전제로 한 법률적 의미의 수사가 아니라 경찰에 이첩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서 ‘조사’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맞는다. 사법 절차가 아니라 행정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이종섭 장관의 결재나 결재 번복 처분 역시 행정 절차이지 사법 절차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게 처분을 취소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수사 개입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권이 없는데 어떻게 수사에 개입한다는 말인가? 정치인 덕목 통찰력·결단력 부족 아무리 이치가 이렇다고 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막상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한 게 사실이라고 인정하면 야당 측은 곧바로 탄핵 공세를 펼 게 뻔하다. 그러나 대통령 지시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조사한다는 특검법 제정 공세는 명분을 잃게 된다. 윤 대통령에게는 이렇게만 돼도 큰 성공이다. 나아가 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안 되는지, 그게 왜 부당한지에 관해 다수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설득한다면, 그리고 대통령실이 정부조직법, 국가공무원법, 군사법원법, 군사경찰직무법 규정에 따라 알기 쉽게 설명한다면 불법 수사 개입이라며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론의 호응을 받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국방부 지시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졌다. 정치 지도자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돌파하느냐를 좌우하는 게 정치력이다. 정치력의 핵심은 상황을 정확하게 헤아리는 통찰력, 필요한 조치를 적기에 실행하는 결단력, 국민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력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수사 개입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상황을 바로 보고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면, 그리고 왜 그렇게 하는 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당했는지를 납득시켰다면 지금 사정은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위법을 저지르고, 진실을 숨기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과 비판을 받는 처지에 빠지지는 않았을 수 있다. 이 모든 게 결국 윤 대통령의 정치력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게 어디 해병대원 사건뿐이겠는가? 김건희 여사 문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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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소추 결의문 읽어보니 더불어민주당의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의지는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다. 전임 이동관·김홍일 위원장을 탄핵 소추 하려다 이들이 자진 사퇴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위원장 직무대행인 이상인 부위원장마저 탄핵 소추하려 했으나 그 역시 자진 사퇴해 불발에 그쳤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진숙 위원장에 이르러 탄핵 소추를 성사시켰다. 이 위원장이 헌법재판소 판단을 받아 보겠다며 자진 사퇴하지 않고 버텼기 때문이다. 특정한 직책 한 자리를 놓고 이토록 집요하게 탄핵을 추진한 일은 전례가 없다. 민주당이 왜 그토록 방통위원장을 탄핵하려 하는지는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다. 방송 장악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의도임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오히려 궁금한 점은 윤석열 정부 산하 역대 방통위원장들이 정말로 탄핵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법을 저질렀는지다. 민주당 주장대로 그들이 한 직무 행위가 정말로 법에 어긋나는지다. 이런 궁금증에서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 소추 결의문을 찾아 읽어보았다. 총 66쪽짜리 결의문에는 탄핵 소추 사유와 그 증거 자료라는 것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민주당은 탄핵 소추 사유로 네 가지를 들었다. 이진숙 위원장이 방통위를 2인 위원 체제로 운영했고, 기피 신청을 당했는데도 기피 신청을 기각하고 회의를 주재했고, 과거 문화방송에 재직하는 동안 언론의 자유를 억압해 공영방송 이사 선임이라는 방통위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자격이 없는데도 업무를 회피하지 않았고, 방송에 대한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강행했다고 했다. 이 중 핵심은 방통위 2인 체제 운영이다. 결의문 10쪽에서 41쪽까지 31쪽 분량에 걸쳐 2인 체제 운영의 위법성을 지적했다. 결의문 전체 66쪽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2인 체제 운영이란 방송통신위원회법상 방통위원은 5인인데 이진숙 위원장이 위원장 1명과 위원 1명 등 위원이 2명뿐인 상태에서 방통위 회의를 열고 중요 안건을 심의·의결했다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2인 체제로는 방통위를 열 수도 없고, 더 나아가 안건을 의결할 수 없는데도 이 위원장이 회의를 강행했다며 이는 방통위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이동관,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위원장 직무대행 탄핵 소추안 발의 때 사유로 든 것도 2인 체제 운영이었다. "2인 위원으로 회의 소집·의결은 위법" 주장하지만 민주당은 2인 체제 운영이 위법이라는 근거로 방송통신위원회법 제4조와 제13조를 들고 있다. 제4조 ①항은 ‘위원회는 위원장 1인, 부위원장 1인을 포함한 5인의 상임인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정하고 있다. 제13조 ①항은 ‘위원회 회의는 2인 이상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한다. 다만, 위원장은 단독으로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제13조 ②항은 ‘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정하고 있다. 13조 ①항은 방통위가 회의를 소집하는 데 필요한 위원의 수인 의사 정족수에 관한 규정이고,. 제13조 ②항은 방통위가 안건을 의결하는 데 필요한 위원의 수인 의결 정족수에 관한 조항이다. 민주당은 ‘2인 이상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는 위원장이 소집한다’는 제13조 ①항 규정은 ‘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위원 2명과 이 요구에 따라 회의를 소집하는 위원장 등 최소한 3명’의 상임위원이 존재해야 함을 전제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5월 23일 YTN 지분 매각 사건에서 내린 방통위 2인 체제 관련 결정 내용도 그 증거로 제시했다. 이 사건에서 서울고법은 2인 체제 운영에 절차적 위법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피고(방통위)가 합의제 행정기관에 해당하고, (방통위법) 13조 1항의 내용에 비추어 회의를 요구할 2인 이상의 위원 및 위원장 1인 합계 3인의 재적위원이 최소한 요구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없지 않아 2인의 의결로 행해진 이 사건 처분의 절차적 위법성이 문제될 여지가 있다. 다만 이는 궁극적으로 본안에서 판단할 부분~.” 민주당은 나아가 2인 체제로는 ‘의결’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제4조에 방통위원이 5인으로 정해져 있고, 13조 ②항에 재적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 있으니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는 5명의 과반인 3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진숙 위원장이 2인만으로 의결했기 때문에 법 위반이라고 민주당은 주장한다. '위원장 단독 소집 가능' 방통위법에 명시돼 그러면 민주당의 이 같은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 우선 위원 2인 체제에서 회의를 연 것이 제13조 ①항 규정 위반이라는 주장을 보자. ‘회의는 2인 이상의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한다’는 이 규정은 민주당 주장대로 ‘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위원 2인과 이 요구에 따라 회의를 소집하는 위원장 등 최소한 3인의 위원이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 경우 2인 체제로는 회의를 열 수 없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단서가 있다. ‘위원장은 단독으로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위원장은 위원들의 회의 소집 요구가 없더라도 직권으로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방송통신위원회 회의 운영에 관한 규칙' 제3조 제3항도 '위원회의 회의는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 또는 위원회 위원 2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위원장이 소집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진숙 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 단독으로 방통위 회의를 열 수 있음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설사 2인 체제라고 해서 회의 소집이 법 위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 2인 체제 의결이 ‘재적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제13조 ②항 위반이라는 주장은 어떤가? ‘재적위원’의 뜻이 무엇이냐가 관건이다. ‘재적(在籍)’은 ‘학적, 병적 같은 명부(名簿)에 이름이 올라 있음’이라는 뜻이다. 방통위 재적위원이란 방통위 위원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는 위원을 말한다. 명부에 이름이 오르려면 그 이름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의 이름이어야 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의 이름을 명부에 올릴 수는 없다. 현재 방통위원 명부에 이름이 오른 위원은 이진숙 위원장을 포함해 2명이다. 이 2명이 재적위원이다. 나머지 3명은 공석이라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 이름을 올리려야 올릴 수가 없다. 그럼 ‘재적위원 과반수’는 몇 명인가? 2명의 절반(1명)을 초과하는 2명 이상이면 과반수다. 따라서 이진숙 위원장과 다른 위원 1명 등 2명이 전원 찬성하면 재적위원 과반수가 성립한다. 2인 체제 의결이 위법이라는 민주당 주장은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재적위원'과 '정원' 구별 못하는 듯 민주당이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법 조항을 ‘상임위원 5명의 과반수인 3인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는 것은 재적위원과 ‘정원’을 구분하지 못한 처사이다. 법제처는 2007년 9월 14일 '재적위원은 법에 정해진 위원정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위원정수에서 사망, 사직, 퇴직 등에 의하여 결원된 위원수를 제외한 현재 위원 신분을 가진 사람의 수를 말한다'고 해석했다. '법에 정해진 위원정수'인 정원과 '현재 위원 신분을 가진 사람의 수'인 재적위원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방통위원 수는 법에 5명으로 정해져 있다. 그 5명은 정원이지 재적위원이 아니다. 민주당은 그 5명을 재적위원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정원과 재적위원의 차이는 국회의 경우를 봐도 명백하다. 공직선거법 제21조 ①항은 ‘국회의 의원정수는 지역구 국회의원 254명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46명을 합하여 300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의원 정수’, 즉 국회의원 ‘정원’이 300명이라는 뜻이다. 반면 국회법 제54조는 ‘위원회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정하고 있다. ‘정원’이 아닌 ‘재적위원’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국회의원 정원 300명 중 실제로 국회 각 위원회 위원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이 재적위원이다. 대법원도 2018년 5월 17일 '국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재적위원은 현재 위원회에 적을 두고 있는 위원을 의미'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임기 도중에 사퇴하거나 유죄 선고로 의원직을 잃으면 국회의원 명부에서 제명돼 더 이상 국회의원이 아니다. 따라서 재적위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위원 5인의 합의제로 운영하게 돼 있는 방통위를 2인 체제로 운영하는 것은 방통위의 설립 목적과 법조항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맞는 말이다. 방통위가 하루빨리 5인 위원 체제로 정상화하고, 그 체제에서 방송통신 정책 관련 주요 결정을 심의·의결하는 게 적절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부적절하지만 위법이라고 하기 어려워 그러나 부적절과 위법은 다르다. 위법은 법을 위반한 것이고, 부적절은 이치상 올바르지 않다는 뜻이다. 부적절하다고 해서 위법인 것은 아니다. 헌법상 탄핵 요건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이다. 위법이지 부적절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더 나아가 탄핵은 파면이기에 가벼운 법 위반으로는 안 되고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위반이라야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탄핵 사유가 될 수 있으려면 우선 법 위반이 명백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법 위반의 정도가 중한지 가벼운지를 따지게 된다. 그런데 방통위 2인 체제 운영은 법 위반이라고 단정하기부터가 어렵다. 정말로 위법인지가 의문이다. 이렇게 명확한 위법이라고 하기 어려운 사유를 들어 방통위원장마다 탄핵을 하려 하니, 그걸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민주당은 탄핵 소추 결의문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는 행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는 피소추자(이진숙 위원장)에 대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권력남용을 통제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탄핵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권력을 남용하는 쪽은 방통위원장이 아니라 민주당이 아닌가 묻게 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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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유럽 왕 견제 수단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과반수 정당이 되면서 전에 없이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탄핵’이라는 말이다. 민주당은 입만 열면 탄핵을 공언한다. 최근 들어서만 검사 4명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소추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주장도 시도 때도 없이 들고나온다. 국회청원동의에 올라온 윤 대통령 탄핵안에 100만명이 동의했다며 탄핵 청문회를 열겠다고 한다. 민주당은 탄핵 제도를 민주주의에서 권력을 견제하는 보배로운 칼인 듯 여긴다. 그러나 탄핵 제도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민주당식 사고방식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알게 된다. 원래 탄핵제도는 14세기 유럽 군주제 국가에서 의회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당시 의회는 성직자와 귀족이 주도했다. 그런데 14세기 들어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세상이 바뀌어 갔다. 우선 중산 계급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했다. 중산계급은 성직자와 귀족이 주도하던 의회에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당당히 참여하게 됐다. 동시에 군주는 군대 유지와 전쟁 대비, 행정 유지 등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중산계급에 세금을 부과하게 됐다. 이에 의회는 군주가 요구하는 세금이 정당한가를 따지기 위해 군주에게 재정 보고서를 요구했고 회계 심사를 시작했다. 징세 과정도 감독했다. 의회는 이런 과정을 통해 예산 및 재정에 관한 권한을 확보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게 오늘날 국회의 예산·결산 심의권이다. 의회는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정치적 통제에도 나섰다. 군주가 특별 보조금을 요구하면 지급 여부를 승인하기 전에 군주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군주가 임명한 대신(大臣)들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찍어 해임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군주는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의회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 문헌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1340년과 1371년에 군주가 몇몇 대신을 의회 요구에 따라 해임했다고 한다. 의회는 1376년에는 왕에게 부정부패를 저질러 해임 대상에 오른 대신들에 대한 심판권을 상원으로 넘기도록 강요해 관철시켰다. 당시 상원은 대법원 역할을 했다. 군주가 의회 요구에 따라 대신을 해임하고 그 심판권을 상원으로 넘긴 것이 오늘날 탄핵 제도의 기원이 됐다. 영국 영향을 받아 미국은 지금도 하원이 탄핵 소추를 의결하면 상원이 탄핵 여부를 결정한다. 탄핵 제도는 이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잡았다. 국민대표기관인 의회가 행정부나 사법부를 견제하는 장치로 발전했다. 이런 점에서 탄핵 제도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시대 탄핵은 예외적 비상 수단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탄핵 제도가 애초 군주제 국가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군주제 국가에서는 왕이 아무리 잘못해도 의회가 견제할 수단이 없었다. 왕은 세습제이고 종신직이라 한번 왕위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왕위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이에 의회는 왕에 대한 불만을 왕의 신하인 대신을 향해 풀었다. 왕이 임명한 대신을 해임하도록 요구해 간접적으로 왕을 견제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주 국가에는 왕이 없다.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이지만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중임제이다. 중임제에서는 첫 번째 임기가 끝나면 다시 선거를 치러 현직 대통령을 재선하거나 낙선시킨다. 국민이 선거로 대통령과 그 정권을 직접 심판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임제라 대통령을 직접 심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의 대선 후보 대신 다른 정당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대통령을 심판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정당 간 정권 교체가 그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대통령 임기 중에 실시되는 국회의원 총선이나 지방선거 역시 심판 무대이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나 검사 등이 잘못하면 정권이 총체적 책임을 지고 심판을 받게 된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고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도 대통령과 그 정권에 대한 심판의 결과이다. 총선 때 윤 대통령의 불통,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과 명품백, 해병대원 사건 수사 외압,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및 출국, 검찰 공화국 논란 등이 주요 이슈가 됐었다. 요즘 민주당이 윤 대통령 탄핵 사유로 주장하는 것들이다. 국민은 이런 논란들에 대해 민주당 압승, 국민의힘 참패라는 선거 결과로 국민의 뜻을 나타냈다. 이게 바로 선거를 통한 권력 견제이고 심판이다. 이렇게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이 대통령과 정권을 직접 심판할 수 있다. 따라서 탄핵 제도가 갖는 의미가 군주제 국가에서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선거 제도가 있으니 탄핵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 대통령과 정권을 심판할 수 있으니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나 검사 등을 굳이 탄핵 대상으로 삼지 않아도 된다. 이제 탄핵 제도는 권력을 견제하는 통상적인 수단이 아니라 불가피한 때만 사용하는 비상 수단이 됐다. 선거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위법 행위가 너무나 중대해서 당장 자리에서 해임하지 않으면 안 될 예외적인 경우에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헌재도 탄핵 요건 엄격히 제한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도 탄핵 제도의 기본 취지를 살리고 그 남용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 헌법 제65조는 헌법이나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은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란 ‘피청구인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했다. 탄핵은 곧 파면이기에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탄핵 사유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위반의 정도가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탄핵 제도를 남용해선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 소추를 당론으로 정한 검사 4명의 혐의는 과연 헌법재판소가 밝힌 탄핵 요건에 해당할까? 검사 4명 중 3명은 이재명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연관돼 있다. 박상용 수원지검 검사는 ‘대북 송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박 검사는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를 이재명 전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원지검은 “상식적으로 36년간 정치활동을 하고 국회의원과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을 지낸 이화영 피고인을 상대로, 그것도 민주당 법률위원회 소속 변호사가 참여한 상황에서 거짓 진술을 하라고 회유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어떠한 검사도 직을 걸고 그처럼 무모한 짓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사의 위법한 수사권 남용을 국회의 탄핵권으로 막자는 취지”라고 했다. 어떤 사건에서든 수사권을 위법하게 행사했다면 그 사건을 다루는 재판에서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수사기관 강요로 허위 진술을 했다면 그 진술은 유죄 증거로 인정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규정을 어기고 수집한 증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까지 민주당의 탄핵 추진 대상이 된 검사들이 저질렀다는 행위가 법정에서 논란이 된 적이 없다. 오히려 검사로부터 허위 진술을 강요받았다는 이화영 전 부지사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법원은 이화영씨에게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방북 대가로 송금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9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자금을 댄 김성태씨에 대해선 '이화영과 공범 관계'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탄핵 사유로 주장하는 내용들은 소문에 근거한 의혹일 뿐이다. ‘카더라 탄핵’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의혹에 근거해 누구를 파면하라고 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인가. 더불어민주당은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당론으로 채택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기자들에게 “현재 ‘2인 체제’로 불리는 방통위에서 두 명의 위원만으로 중요 결정을 내리는 상황 자체가 직권남용이며 위법”이라고 했다. 현재 방통위원은 법정 정원 5명 중 2명밖에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법 제13조는 ‘위원회의 회의는 2인 이상의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하며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인 이상이 요구하면 회의를 열 수 있으니 회의를 연 것 자체는 합법이다. 탄핵 남발하다 다음 선거 때 '진짜 탄핵' 당할 수도 문제는 의결 요건인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이다. ‘재적’의원이 법률상 정원인 5명을 뜻하느냐, 현재 근무하는 2명을 뜻하느냐이다. 민주당은 전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법 해석상의 문제이다. 법 해석의 문제는 법원에 맡기면 된다. 방통위가 2인 체제로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 법원에 무효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법원이 유효라고 결정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 무효라고 결정하면 그간의 방통위 결정은 모두 효력을 잃는다. 앞으로 민주당에 불리한 결정도 할 수 없게 된다. 민주당은 이런 통상적이고 간편한 절차를 놔두고 비상 수단이라 할 탄핵부터 꺼내들었다. 민주당의 진짜 의도가 방통위 운영의 정상화가 아니라 방송 장악을 위한 정치공세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을 견제하는 보편적이면서 최종적인 수단은 선거이다. 탄핵은 불가피할 때만 사용해야 하는 비상 수단이다. 탄핵을 남발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선거라는 민주 제도가 없는 수백년 전 군주제 국가에서 사는 것이나 같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다가는 국민으로부터 ‘진짜 탄핵’을 당할 수 있다. 다음 선거에서 표로 심판 받는 게 그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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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료계 집단 행동이 3개월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특정 집단이 정부 정책에 반발해 이렇게 장기간 집단 행동을 벌이는 일은 거의 전례가 없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떠나 특정 집단이 정부 정책 결정에 어디까지 관여하고 개입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민주정치에서 이익단체는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 지지나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 단체의 이해관계가 걸린 정부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를 통해 여러 가지 긍정적 역할을 한다. 정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 정책안에 대해 대안을 제시한다. 문제점 지적과 대안 제시는 정부 정책안이 합리적인지 아닌지에 관한 사회적 토론을 불러일으킨다. 의사 단체 같은 전문가 단체는 정책의 전문성을 높여주기도 한다. 정부는 이익단체의 주장과 사회적 토론 내용을 반영해 정책을 수정 및 보완한다. 이렇게 해서 이익단체의 활동은 정책의 합리성과 민주성을 높이게 된다. 의대 증원 문제점 지적과 대안 제시는 긍정적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해 의사 단체들도 이 같은 긍정적 역할을 한 점을 인정할 수 있다. 의사 단체들은 필수 의료나 지역 의료 붕괴가 그저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수는 없다는 점을 줄기차게 지적했다. 의사들이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필수 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주요 이유는 의료 수가(건강보험 공단이 의료 행위에 대한 대가로 주는 돈) 책정의 불합리성과 의료 소송 부담 때문이라고 했다. 의사들이 지역 의료계를 떠나 수도권으로 집중하는 이유는 지역의 열악한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빅5’로 불리는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가 몰릴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의료 시스템 탓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런 지적을 반영해 필수 의료 분야에 향후 5년간 건강보험 재정 1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식이나 심뇌혈관 질환 같은 중증 질환 분야에 5조원, 저출산으로 타격을 입은 소아와 분만 분야에 3조원, 필수 의료기관 간 네트워크 구축에 2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미 올 한 해에만 중증, 응급, 소아·분만, 심뇌혈관 질환 등을 중심으로 1조2000억원 이상 수가 인상을 확정해 중증‧응급 수술 수가는 최대 3배, 6세 미만 소아 심야 진료에 대한 보상은 2배 이상 올렸다고 했다. 정부는 의료 사고 안전망 구축 방안도 밝혔다. 의료계, 환자 단체, 전문가들과 논의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을 마련했고,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초안의 핵심은 의사가 책임보험과 종합보험에 들면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대폭 완화해 준다는 내용이다. 필수 진료과 의사에 대해서는 고의적 불법행위가 없는 한 환자가 가벼운 상해는 물론 중상해를 입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도록 했다. 환자가 사망했을 때라도 고의적 불법이 없으면 감형을 받고, 불가항력일 때는 처벌되지 않게 했다. 정부는 모든 의사가 책임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하고, 필수 진료과 의사의 책임보험비는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역 의료 대책도 내놨다. 우수한 지역 국립대병원과 종합병원을 필수 의료 중추로 육성하고, 지역 내 작은 병원들과 협력 진료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역 암센터를 중심으로 암 치료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특별회계, 기금 등 지역 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한 별도의 재정 지원 체계를 신설해 지원하겠다고 했다. 반대 넘어 '무산' 시도는 민주 정치 원리 위배 의료계는 의대 정원을 갑자기 늘리면 의대 교수와 시설이 부족해져 의료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정부는 “대학이 필요로 하는 교수를 바로 신규 채용할 수 있도록 올 8월까지 대학별 교수 정원을 가(假)배정하고, 내년 대학 학사 일정에 맞춰 신규 교수 채용을 완료하겠다고 했다. 국립대는 전임 교원을 1000명 늘리기로 하고 충원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했다. 의대 시설 증개축 또는 신축이 필요한 공사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장애 요인들을 제거하고,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의료계의 문제 제기 덕분이다.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정책 결정 과정에 의사 단체들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정부가 이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의사 단체의 활동은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한 여러 가지 현안들을 검토하고 해결 방안을 찾게 하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사태는 여전히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18일 하루 전면 휴진 (총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전국 40개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휴진과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은 17일부터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 등 소속 병원 4곳에서 무기한 휴진을 하겠다고 결의했다. 서울대병원 외에 빅5로 불리는 상급종합볍원 의사들도 속속 집단 휴진에 동참하겠다고 한다. 의사 단체들은 의대 정원 증원 전면 백지화를 주장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의료 파괴’라고 한다.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한다. 의사들은 정부의 합법적 정책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과 의료 개혁 정책을 ‘의료 농단’ ‘교육 농단’이라고 한다. 정부는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한이고 책임이다. 그런 정부의 정책 결정을 ‘농단’이라고 하는 것은 정부의 고유 권능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정책 실패에 정부는 책임지나 이익단체는 책임 안 져 민주 국가에서 어떤 집단이든 정부 정책에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 목표와 결정 과정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데도 자기들 주장과 다르다고 해서 반대 의견 제시를 넘어서서 정책을 무산시키려 한다면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의사와 의대 학생들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절차 위반이고 공익 침해이니 중지시켜 달라고 소송을 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이 잇달아 각하하거나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의사들이나 의대 학생들의 소송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한발 더 나아가 의대 정원 증원이 의대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지만,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해 실현하려는 공익이 의대생들이 누려야 할 학습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결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결정의 근거도 나름대로 갖췄다고 했다.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의 합법성과 공익성을 법원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정부는 정책의 결과에 책임을 진다. 정책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으니 당연히 책임도 지는 것이다. 정책의 잘못이 드러나면 국무총리나 장관들이 국회에 불려나가 추궁을 받고 질책을 당한다. 정부가 대국민 사과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선거에서 심판받는다. 국회의원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심판받고,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해 정권을 잃게도 된다. 그러나 이익단체는 다르다. 극렬한 반대로 정부 정책을 무산시켜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고 해도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 1998년 마지막으로 늘어난 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 분업 사태를 거치면서 논의 끝에 2006년 감축이 결정됐고 그 이후 19년간 동결됐다. 2010년대 들어 급속한 고령화로 의사 부족론이 나와 이명박·문재인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시도했지만 의사 단체의 반발과 집단 행동으로 증원은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 27년 동안 정부는 의대 정원을 한 명도 늘리지 못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의사 부족 사태이다. 그렇지만 의사 단체들은 의대 정원 증원 무산으로 빚어진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모든 책임은 정부에 돌아갈 뿐이다. 중대한 기로에 선 우리 사회 어떤 단체이든 주장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면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 관여하고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 그 단체의 의견과 이해관계가 최대한 반영되도록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여론전을 펴는 선에 그쳐야 한다. 그 정도를 넘어 정책을 무산시키려 한다면 민주 정치 원리와 국가의 역할을 부정하는 일이나 같다. 결과에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자기 이익만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1970년대 탄광 노조의 불법 파업을 끝장낸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탄광 노조는 전국 주요 탄광을 점거하고 불법 파업을 일삼았다. 어느 정부도 탄광 노조에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정부보다 탄광 노조 힘이 더 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대처 총리는 이런 탄광 노조에 분연히 맞섰다. 불법 파업을 벌이는 탄광 노조와 무려 1년을 대치한 끝에 탄광 노조 측에서 백기 항복을 받아냈다. 그때 대처 총리가 한 말이 있다. “누가 영국을 통치하는가. 정부인가, 탄광 노조인가?” 지금까지는 탄광 노조가 지배했지만 이제는 다를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말이었다. 대처의 의지대로 영국에서 탄광 노조는 완전히 힘을 잃었다. 탄광 노조뿐 아니라 노조 전체가 비슷한 처지가 됐다. 그 결과 노조 천국, 파업 천국이라는 ‘영국병’이 사라졌다. 노조가 지배하는 비정상 국가에서 정부가 지배하는 정상 국가로 돌아왔다. 정책 결정의 최종 권한과 책임에서 어떤 단체도 정부보다 위에 설 수 없다. 정부가 잘나고 예뻐서가 아니다. 국민이 정부에 그런 권한과 책임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도 이 원리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의대 정원 증원을 막으려는 의사의 집단 행동이 3개월째 계속되는 우리 사회는 갈림길에 서 있다. 정부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느냐, 의사 단체 같은 힘 센 단체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느냐의 갈림길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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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부인 김건희 여사의 이른바 ‘명품 백’ 사건과 관련해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에 대해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 마침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말 이 사건이 불거진 지 5개월 만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전담 수사팀을 꾸려 신속히 수사하라”는 이원석 검찰총장 지시에 따라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이 총장은 “오직 증거와 법리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별 고려’가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 부인이니 특별 대우를 해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거꾸로 ‘대통령 부인이라고 해서 특별 대우 하는 게 하나도 없구나’하고 국민들이 느끼게끔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다수 국민이 수사 결과를 신뢰하게 되고, 그래야 윤 대통령도 ‘아내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까지 대통령 아들이나 형제·친인척이 그 대통령 임기 중에 수사 받은 일은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이 수사 받은 일은 없었다. 검찰의 김건희 여사 수사는 우리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검찰이 어떤 자세로 수사하고 대통령실은 어떤 자세로 협조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눈여겨보는 것은 한 가지일 것이다. 공정과 상식이 지켜지는지이다. 공정과 상식은 윤 대통령의 대선 약속이기도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목말라하는 가치이다. 그 가치가 얼마나 실현되는지에 따라 김건희 여사는 물론이고 윤 대통령을 대하는 국민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어떻게 이재명· 조국을 지지하나' 하지만 이번 국회의원 총선 기간 동안 ‘어떻게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사람을 지지할 수 있느냐’ 의아해하고 나아가 분노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이재명 대표는 10여 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중에는 거짓말과 위증 교사 혐의도 있다. 파렴치범에 가까운 혐의다. 이 대표의 아내는 법인카드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조국 대표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실형 2년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아내는 이미 실형 4년 확정 판결을 받았고, 딸도 1심에서 벌금 1000만원 형을 받았다. 이 정도이면 이 대표나 조 대표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게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심정이고 판단이다. 그러니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 대표나 조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 반응은 전혀 달랐다. 이들에게 ‘이 대표나 조 대표의 범죄 혐의를 보고도 어떻게 지지하느냐’고 물어보면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윤석열이나 한동훈이나 주변을 탈탈 털면 이재명·조국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느냐’는 대답이었다. 이런 반응에는 현 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과 반발심이 깔려 있다. 검찰이 이 대표와 조 대표 및 그들의 가족 비리는 정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파헤치면서 윤 대통령 가족이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관련 의혹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현 정부가 말하는 정의는 상대방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선택적 정의’라고 주장하며 정부를 공격했다. 이 대표나 조 대표 지지자들은 선택적 정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의 도덕성 논란이 불거진 것은 현 정부가 선택적 정의에 따라 두 사람을 편파적으로 수사했기 때문으로 봤다. 이 대표와 조 대표의 도덕성 논란보다 현 정부의 선택적 정의에 더 분노하고 반발했다. 그런 민심이 국민의힘 참패라는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검찰이 처음부터 이 대표나 조 대표 또는 그 가족을 겨냥해 먼지 털기식 수사를 한 것은 아니다. 기획 수사나 별건 수사로 사건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의혹이 터지고 몇몇 시민단체가 고발해 법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했을 뿐이다. 특정 정치인을 탄압하기 위해 벌인 정치 수사라고 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이 대표와 조 대표에게만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 탈탈 털었다’는 선택적 정의 주장은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야당 사람들은 검찰이 조국 대표와 그 부인과 딸 등 일가족을 ‘도륙을 냈다’고 비난하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전례가 없는 것은 맞지만, 그 이유는 조국 대표처럼 일가족이 범죄에 연루된 전례도 없기 때문이다. '선택적 정의' 주장이 공감 얻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나 조 대표 지지자들이 ‘선택적 정의’라고 주장하며 반발하는 데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2022년 대선을 전후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들이 불거졌으나 검찰이 이 대표나 조 대표를 수사하듯 파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명품 백 사건이 터졌다. 그간 제기된 김 여사 관련 다른 의혹들은 증거가 확실치 않다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명품 백’ 사건은 다르다. 백을 받는 장면이 동영상에 찍혀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검찰도 윤 대통령 부부가 고발된 작년 12월 이후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니 야당 고정 지지층은 물론이고 중도층에까지 선택적 정의라는 주장이 먹혀 들고, 윤 대통령이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이 헛말이라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 윤 대통령과 검찰은 명품 백 사건 수사를 선택적 정의라는 부정적 인식을 씻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공정과 상식이 지켜졌다는 국민 신뢰를 얻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이원석 검찰총장 말대로 오직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수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직자의 배우자는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1회 100만원 또는 연간 300만원을 넘는 금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또한 공직자는 자신의 배우자가 이 같은 금품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면 ‘지체없이’ 관계기관(감사원, 수사기관,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신고하고 받은 금품은 그 제공자에게 반환하도록 해야 한다. 김 여사가 받은 백의 가격은 300만원 상당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법률적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해 백을 받았는지와 윤 대통령이 김 여사의 백 수수 사실을 언제 알았고 알고 나서 관계기관에 신고하거나 그 제공자에게 반환하도록 했는지이다. 가장 핵심적 쟁점은 ‘직무 관련성’ 여부이다. 직무 관련성은 대통령의 직무 내용, 그 직무와 백 제공자의 관계, 백을 제공한 사람과 받은 김 여사 간에 특수한 사적 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백을 받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해 판단하게 된다.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청탁금지법상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직무 관련성이 인정된다면 그 다음 문제는 윤 대통령이 김 여사가 백을 받은 사실을 언제 알았고 안 뒤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이다. 안 뒤 지체없이 신고하거나 반환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처벌 대상자는 김 여사가 아닌 윤 대통령이다. 청탁금지법에 해당 공직자만 처벌할 뿐, 그 배우자를 처벌한다는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은 임기 중 형사 소추를 받지 않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따라서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고 적절한 사후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도 윤 대통령을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도덕적 비난을 받게 되고, 정치적으로도 곤경에 처해지게 된다. 이처럼 이번 사건은 수사 대상이 겉보기에는 김 여사뿐인 것 같지만 만에 하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된다면 윤 대통령도 될 수 있다. 김 여사가 백을 받은 게 직무 관련성이 있는지,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윤 대통령이 언제 알았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가 핵심적 수사 대상이다. 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과연 국민 눈높이와 상식에 맞을 것이냐가 관건이다.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든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헛일이다. 김 여사, 검찰에 공개 출석하고 포토 라인 서야 바로 이 점에서 검찰의 ‘특별 고려’가 요구된다. 수사 결과에 대해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으려면 수사 결과 못지않게 수사 절차와 방식이 중요하다. 절차와 방식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결과가 흡족하지 않더라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번 수사의 절차와 방식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김 여사 조사 방식과 절차이다. 소환, 서면, 방문 조사를 생각할 수 있다. 소환도 공개 소환이 있고 비공개 소환이 있다. 방문 조사는 대통령실에서 할 수도 있고 제3의 장소에서 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신뢰 받을 수 있는 절차와 방식은 공개 소환 조사이다. 서면 조사나 방문 조사는 국민 눈에 특혜 조치로 비칠 수밖에 없다. 현직 대통령 부인도 공개 소환 조사한다는 것은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자체로서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인정받아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도 공개 소환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소환 일정이나 검찰 출석 방식을 놓고 검찰과 신경전을 벌이거나 특혜를 요구하는 듯 비치면 국민들은 바로 고개를 내젓게 된다. 김 여사는 최소한의 경호 인력만 대동해서 검찰에 출석하고, 검찰청사 앞 포토 라인에도 설 수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 ‘현명하지 못한 처신’에 대해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면 김 여사를 향한 국민의 따갑던 시선이 다소간에 누그러질 수 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간부들이 지난 13일 모두 교체됐다. 하필 김 여사 관련 수사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수사 지휘 라인이 교체돼 수사 배경을 놓고 말들이 많다. 야당에서는 김 여사 수사 방탄용이라고 주장한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인사 다음날인 14일 기자들의 질문에 "어제 단행된 검사장 인사는…. 제가 이에 대해서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해 불편한 듯한 기색을 내보였다. 이번 인사가 김 여사 수사의 공정성과 엄정성을 의심하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의를 실현하려면 실제로 정의로워야 하지만 겉모습도 정의로운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은 사법 절차에서 교과서로 통한다. 검찰은 나중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어떤 정치적 고려도 없이 증거와 법리에 따라 수사했다고 할 것이다. 그게 실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김 여사에 대한 수사 절차와 방식이 정의롭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수사 결과의 정당성은 인정받기 어렵다. 이번에도 ‘선택적 정의’가 작용했다고 여겨지기 쉽다. 그리 되면 나라는 더욱더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문제로 시끄러워지고 국민은 현 정부로부터 마음을 돌리게 된다. 이번에야말로 선택적 정의라는 부정적 인식을 씻는 기회가 돼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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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국회의원 총선이 더불어민주당 압승, 국민의힘 참패로 끝나자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상당 부분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그런 지적을 받아야 할 사람은 윤 대통령만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윤 대통령 못지않게 정치 행태의 변화가 요구된다. 이 대표는 총선 공천 과정을 통해 민주당을 장악했다. 그리고 총선 압승으로 국회를 장악했다. 이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총선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그런 만큼 정치에서 이 대표의 역할과 책임이 커졌다. 그가 진정한 정치 지도자의 면모를 보일 수 있느냐가 우리 정치의 중대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2022년 3월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지금까지 권력 투쟁의 정치를 해왔다.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모든 것을 쏟는 정치가 권력 투쟁의 정치다. 대선에서 패했으면 일정 기간 자숙의 모습을 보이는 게 그간의 관례다. 그러나 이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곧바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이어 민주당 대표 경선에 도전해 대표직을 차지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다. 이 대표의 권력 집착은 타고난 본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법 리스크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방탄’에 성공했다. 한번은 민주당이 국회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는 바람에 구속될 위기에서 벗어났다. 또 한번은 민주당 일부 의원 이탈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됐으나 법원이 영장을 기각해 구속을 면했다. 이제 이 대표가 민주당을 장악하고 총선에서 압승해 국회 권력을 쟁취했으니 정부는 물론이고 법원도 과거보다 더 이 대표 눈치를 볼 가능성이 커졌다. 이 대표의 권력 유지를 위한 ‘방탄’이 한층 더 튼튼해졌다 진실성·신뢰성 무시하며 권력 추구에 올인 이 대표는 민주당 대표로 있는 동안 진실성이나 신뢰성 같은 가치는 고려하지 않는 듯한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대장동 사건 등으로 자신의 측근 5명이 숨지는 일이 터졌음에도 주눅들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들을 모른다'고 했다. ‘그들을 죽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검찰’이라고 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하고는 막상 체포될 수 있는 순간이 오자 말을 뒤집었다. 이런 일들은 권력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도 된다는 권력 지상주의 행태라는 말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 대표의 권력 투쟁 정치는 총선 공천 과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다. ‘비명횡사, 친명횡재’로 불리는 공천 결과가 그것이다. 민주당은 막말 파문으로 친명 후보가 사퇴한 지역구에서 경선을 두 번이나 치르면서까지 하면서 결국 박용진 후보를 탈락시켰다. 박 후보는 평소 이 대표를 비판해 왔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사람은 절대 살려두지 않는다는 이 대표의 냉혹한 권력 의지가 읽혀지는 장면이다. 이 대표는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선동식 정치 행태를 보였다.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윤 대통령 발언을 공격거리로 삼은 게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 발언 전문을 보면 당초 MBC가 윤 대통령 발언 취지를 거두절미하고 왜곡했음이 드러난다. 윤 대통령은 '원래 가격은 1700원 정도인데 875원에 판매 중'이라는 마트 관계자의 안내에 "여기 하나로마트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데는 이렇게 싸게 사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이에 관계자가 "(농협중앙) 회장님이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하라고 했다"고 하자 농협중앙회장은 "원래는 2550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한창 비쌀 때에는 3900원까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물가를 몰라서 대파 한 단을 875원이라고 한 게 아니라 '875원이라면 소비자 입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일 텐데’라는 뜻으로 희망 사항을 말한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총선 압승으로 정치 위상 높아져 그럼에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대파 한 단 값도 모르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공격했다. 이 대표는 과거에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논란에 휩싸이자 "(박 전 대통령을)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말이라는 것은 맥락이 있는데 맥락을 무시한 것이 진짜 문제"라고 했다. 대파 논란이야말로 맥락을 무시한 말이다. 전형적인 거두절미식 선동이다. 권력 투쟁에서 선동은 빠지지 않는 수단이다. 민주당 일부 지지자들은 투표소에 대파를 들고 가는 쇼를 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대파 논란이 선거에서 유리할 것으로 봤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대파 논란은 총선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는 선거를 앞두고 몇 차례 재판 받으러 법원에 출석하면서는 ‘이게 다 정치 검찰이 노린 결과’라고 했다. 재판 일정은 검찰이 아닌 담당 재판부가 정한다. 재판장조차 ‘재판 일정은 재판부가 정한다’라고 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마치 검찰의 장난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법정에 들락거려야 하는 듯이 말했다. 이 역시 교묘한 선동이다. 내막을 잘 모르는 유권자들은 ‘정치 검찰 탓’이라는 이 대표 말을 믿고 ‘검찰 독재 심판’이라는 이 대표 주장에 손을 들어줬을 것이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이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과 위상이 총선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높아졌다. 이제 이 대표는 그 영향력과 위상에 걸맞게 정치 행태를 바꿔야 할 때가 됐다. 권력 투쟁 정치에서 리더십의 정치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권력 투쟁 정치에선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다. 리더십의 정치에서 권력은 정치다운 정치를 하기 위한 수단이다. 리더십은 지도하는 기능이다. 나라가 나아갈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고, 그걸 달성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들이 동참하도록 이끄는 기능이다.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가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면서 국민을 설득해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게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다. 이 대표는 ‘소극적 복지에서 적극적 복지로’를 주장한다. 탈락자를 구제하는 소극적 복지에서 탈락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적극적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구체적 내용이 기본 소득, 기본 주택, 기본 대출 등 ‘3대 기본 시리즈’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듬고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는 나름의 인식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듬고 지원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일이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국정의 방향과 목표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 지도자 면모 보여줘야 할 때 국정 방향과 목표가 되려면 대내적으로는 국가를 경제·문화·법치 등 주요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원대하고 포괄적인 비전이 담겨야 한다. 이 대표는 그 비전이 있는가? 이 대표의 ‘적극적 복지론’은 복지 분야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극적 복지론은 퍼주기 정책이다. 퍼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퍼줄 돈을 마련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퍼주려면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가 재정이 튼튼해져야 한다.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도 개혁이 시급하다. 연금과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막으려면 국민들에게 돈을 더 내게 하든지, 연금 수령액이나 건강보험 혜택 수준을 낮추든지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가? 돈을 더 내는 것도, 혜택이 줄어드는 것도 대부분 국민은 싫어 한다. 그러나 싫어한다고 방치할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정치 지도자라면 국민이 당장은 싫어할지라도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그 구상을 밝히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대표는 그런 구상과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가? 대외적으로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강대국과의 외교· 안보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흔히 말하듯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식으로 간단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 현실은 수학으로 치면 초등생도 할 수 있는 더하기와 빼기 수준이 아니다. 대학생도 풀기 어려운 고차원 방정식 수준이다. 이 대표는 이 어려운 외교· 안보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구상이 있는가? 그는 ‘중국과 대만의 문제가 어찌 되든 우리와 뭔 상관이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우리가 왜 끼어드나’라고 했다. 고차원 방정식으로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더하기와 빼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식이다. 이 정도 인식 수준으로 복잡하고 냉엄한 국제 현실에서 과연 국가를 안전하게 이끌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권력 투쟁 정치는 교활하고 사악한 술수의 정치다. 거짓, 왜곡, 선동, 말 뒤집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한다. 권력 쟁취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리더십의 정치는 다르다. 신뢰성, 진실성, 인간성 같은 기본 가치를 존중한다. 선동 대신 설명하고 설득한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정당한 목적을 사실과 이치에 근거한 정당한 방법으로 추구한다. 이 대표가 권력 투쟁 정치에서 벗어나 리더십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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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10 국회의원 총선에서도 선거 결과를 좌우할 사람들은 중도파 또는 무당층이다.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중도파는 대략 30% 수준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자신을 중도파라고 하는 응답 비율이 작아지긴 한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 또는 국민의힘 중 어느 한쪽으로 마음을 굳힌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30%에 이르는 중도파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는 전통적 지지층이 있다. 지역, 나이, 이념에 따라 고정돼 있다. 이들 전통적 지지층은 선거 때마다 더불어민주당 또는 국민의힘에 ‘묻지 마’ 투표를 한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정치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선거 당시 상황에 따라 양당 지지층의 결속력에 다소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선거 결과를 좌우할 정도는 되지 않는다. 중도파 또는 무당층은 말 그대로 어떤 특정 정당도 고정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투표를 할 때 지역, 나이,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어떤 정당이 정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따져서 표를 던질 뿐이다. 당연히 선거 때마다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지고,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정당의 승패가 결정된다. 중도파 또는 무당층의 선택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전 국민 1인당 25만원'···긴급 처방이냐 매표 행위냐 그럼 중도파는 이번 총선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무엇을 기준으로 지지할 정당을 골라야 할까? 그 기준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그 정당의 국가 운영 철학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정당이 큰 테두리에서 국가를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 것인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정당의 국가 운영 철학은 그 정당의 대표적이거나 상징적인 정책에서 나타난다. 이 정책을 잘 살펴보면 그 정당의 국가 운영 철학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이재명 대표가 말한 ‘민생 회복 지원금’ 정책이 상징적인 정책의 하나이다. 민생 회복 지원금이란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원, 가구당 100만원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이 대표는 “여기에 필요한 예산은 13조원”이라며 “이 돈으로 죽어가는 민생 경제와 소상공인, 골목 경제, 지방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전 국민에게 25만원씩 총 13조원을 풀면 소비가 활성화돼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 주장대로 당장은 돈이 돌아 소비가 늘 수는 있다. 하지만 ‘반짝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때도 긴급 재난 지원금을 풀었지만 소비 진작 효과는 단기간에 그치고 말았다. 이 대표는 민생 회복 지원금을 ‘민생 경제 심폐 소생술’이라고 했다. 심장이 멈춰 생명을 잃어가는 사람에게 심폐 소생술이 필요하듯, 민생 경제가 죽어가는 상황이니 긴급 지원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당장 가구당 100만원을 풀지 않으면 숨이 넘어갈 만큼 긴박한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심폐 소생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선거에서 돈으로 표를 얻기 위해 상황을 의도적으로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나아가 국가의 바람직한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 하는 논란이다. 큰 정부는 예산을 많이 쓰고 국민 생활에 많이 개입한다. 작은 정부는 그 반대다. 큰 정부가 되면 재정 부담이 커지고 그 부담을 감당하려면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여야 한다. 세금을 늘리면 경제 활력이 떨어져 국민 전체의 소득이 줄고 이는 소비 감소를 불어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대표 주장대로 소비를 늘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반짝 효과에 그칠 일회성 정책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업 투자 지원과 일자리 창출로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국민의힘 상징적 공약의 하나로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들 수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은 금투세 폐지법안(소득세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반대해 통과되지 않고 폐기될 상황”이라며 “국민의힘이 1400만 개인 투자자의 힘이 되겠다. 금투세 폐지를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들을 향해 “총선 결과에 따라 금투세가 폐지될지 아니면 시행될지가 결정된다”고 했다. 정책 들여다보면 정당이 보인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같은 금융투자로 일정 수준 이상의 양도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다. 주식투자로 5000만원, 펀드 등 기타 상품으로 250만원 이상 벌면 이익의 20~25%를 과세한다. 금투세는 2022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주식시장 침체를 이유로 2년간 유예돼 2025년부터 시행된다. 금투세가 시행되면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 대신 외국 주식시장으로 옮겨 갈 수 있다. 이는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금투세를 폐지하면 장기적으로 국내 주식시장이 활성화돼 1400만 개인 투자자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금투세 폐지는 조세 형평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말대로 근로소득처럼 투자소득에도 과세해야 하는 게 조세형평 원칙에 맞을 수 있다. 세금 감면으로 경제를 활성화해 장기적으로 국민이 이익을 보게 하는 정책을 따를 것인가, 조세 형평이라는 원칙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이다. 외교 안보 정책에서도 양당 국가 운영 철학의 상징성이 드러난다. 이재명 대표는 “중국인들이 한국이 싫다고 한국 물건을 사지 않는다. 왜 중국을 집적거리느냐, 그냥 ‘셰셰(謝謝·고맙다는 중국 말)’,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정권이 가장 크게 망가트린 게 외교”라며 “(중국과 대만의) 양안 문제에 우리가 왜 개입하나, 대만해협이 뭘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 있나”라고 했다. 이 대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우리가 왜 끼나"라고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협력 강화만을 중시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멀리하거나 자극한다는 비판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한동훈 위원장은 “민주당의 대중국 굴종 인식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한 위원장은 “이 대표는 작년 6월 주한 중국 대사관을 직접 찾아가서 외교부의 국장급에 불과한 싱하이밍 대사에게 훈시에 가까운 일장 연설을 15분간 고분고분 듣고 왔다”며 "중국 패배에 베팅(‘건다’는 뜻) 하다간 후회한다는 싱 대사의 협박에 가까운 발언에 한마디 반박도 못한 게 이 대표다. 실수로 반박을 못한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이라는 점을 이번 셰셰 발언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 불법 어선이 서해까지 들어오고 한복, 김치를 자기들 문화라 주장하고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리 역사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해도 이 대표는 그 뜻을 받아들여 '셰셰'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민주당 강민석 대변인은 “중국은 우리 최대 교역국이다. 최대 교역국과 잘 지내라는 말이 왜 사대주의냐”며 “외교의 목적은 국익이다. 국익 실현을 위한 외교를 하라는 게 무슨 굴종적 자세냐”라고 했다. 민주당 주장대로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잘 지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대중국 및 대러시아 정책은 한·미·일 안보·경제 협력 체계라는 우리 외교 안보 정책의 큰 틀을 떠나서 논의할 수는 없다. 막말·자질 논란보다 중요한 '국가 운영 철학' 우리가 중국이나 러시아라는 주변 강대국의 간섭과 압박에서 벗어나 국가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 토대는 한·미 안보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한·미·일 협력 관계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도 잘 지내면서 안보의 기둥이 되고 있는 미국·일본과도 잘 지내는 게 우리의 과제이고 숙명이다. 우리가 중국과 대만의 양안 문제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두 문제가 한·미·일 협력 체계라는 우리 외교 안보 정책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미·일 협력 체계를 유지하려면 중국과 대만 간의 양안 문제나 러시와와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국제 문제에 대해 우리는 미·일과 보조를 맞춰야 할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한·미·일 협력 체계가 흔들릴 수 있고 이는 우리의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게 우리가 놓인 현실이다. 민주당 말대로 ‘국익’ 외교를 한다면 이런 복잡한 국제정세를 잘 헤아려 심사숙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이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왜 끼어드나’ 라고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셰셰’ 논란에는 외교 안보 국정 운영 철학에 대한 이 대표와 한 위원장의 근본적 차이가 담겨 있다. 이 밖에도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에는 국정 운영 철학 차이를 보여주는 정책들이 많이 있다. 후보들의 막말이나 자질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중요한 게 양당의 국가 운영 철학이다. 이번 총선에서 어느 쪽 국가 운영 철학이 국가와 국민에게 더 이익이 될지 하는 판단이 내려진다. 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중도파 또는 무당층이다. 이들이 어떤 쪽을 선택하느냐에 나라의 미래 운명이 걸려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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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업이 끝날 조짐이 없다. 지난달 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날 때만 해도 의사 파업이 길어야 1~2주 만에 끝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가 의사들에게 손을 들든, 의사들이 정부에 손을 들든 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파업이 벌써 4주째 이어지고 있다. 이젠 빅5 병원 의사들까지 파업에 동참하려 한다. 서울대병원 의사들은 오는 18일까지 정부가 의대 증원 방침을 바꾸지 않으면 집단 사직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른 빅5 병원 의사들도 연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의사 파업 사태를 보면서 당혹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의사 파업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화물연대 등 일반 노조 파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른 노조 파업은 물류나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이다. 의사 파업은 사람 생명을 담보로 한다.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면 환자들이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아무리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담보로 파업하는 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런 의문 때문일 것이다. 생명을 담보로 한 파업에 당혹감 정부는 203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530만명으로 증가하는 등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의사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개발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울대 등 3개 기관은 연구 보고서에서 2035년 의사 수가 1만명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여기에 의료 취약 지역에 필요한 의사 5000명을 더해 총 1만5000명 부족으로 결론 내렸다고 설명한다. 5년간 의대 정원을 매년 2000명씩 늘리고 5년 뒤에 의대 정원을 재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를 인용해 2021년 기준 한국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가 2.6명(한의사 포함)이라고 밝혔다. OECD 평균(3.7명)보다 30% 정도 적다. 연간 대학 의학계열(한의학 포함) 학과 졸업자 역시 인구 10만명당 7.3명으로 OECD 30개 회원국 중 이스라엘(6.8명), 일본(7.2명)에 이어 세 번째로 적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며 증원에 반대한다. 의사 수가 부족한지 아닌지는 정밀한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다. 정부 방침대로 5년 동안 매년 2000명을 늘리는 게 적정한지는 논란거리가 될 수는 있다. 정부도 5년 뒤 의대 정원을 재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관련 통계로 보면 한국의 의사 수가 선진국 주요 국가보다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의사들도 이 현실을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의사들은 정반대다. '증원 백지회'만 주장한다. 의사가 부족하지도 않지만, 의사를 증원한다고 해서 의료계 최대 문제인 필수 의료 인력과 지방 의료 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의사를 증원한다고 필수 의료 인력과 지방 의료 인력 부족이 저절로 해결될 수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의사를 늘리면 그중 일부가 필수 의료 분야나 지방 병원으로 가는 '낙수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낙수 효과가 과연 있을지, 있다면 얼마나 클지는 알 수 없다. 정부 대책 거부하고 '증원 백지화'만 주장 그래서 정부는 의사 증원과 별도로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 인력 확충 정책도 내놓고 있다. 필수 의료 분야에는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 보상을 확대해 주기로 했다.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을 만들어 의사가 책임보험과 종합보험에 들면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도 대폭 완화해 주기로 했다. 의료 사고를 당한 환자는 의사가 가입한 보험에서 손해배상금을 전액 받게 해 의사나 병원의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정부가 공개한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초안에 따르면 미용 같은 비필수 진료과 의사는 진료 기록, CCTV 위조 등 고의적 불법 행위가 없는 한 환자가 상해를 입더라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필수 진료과 의사는 면책 범위가 더 넓어진다. 고의적 불법행위가 없는 한 환자가 가벼운 상해는 물론 중상해를 입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환자가 사망했을 때라도 고의적 불법이 없으면 감형받고, 불가항력일 때는 처벌되지 않는다. 정부는 모든 의사가 책임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하고, 필수 진료과 의사의 책임보험비는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완화는 필수 진료과로 꼽히는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오래전부터 요구해온 사안이다. 정부는 지방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 2028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생 60%를 지역 인재로 선발하되 '비수도권 지역에서 중학교를 입학·졸업한 뒤 해당 의대가 있는 지역의 고교를 입학·졸업한 학생'으로 자격 조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방 중·고교 입학·졸업자로 한 이유는 예컨대 서울에서 학교 다니다가 중간에 지방으로 전학 가서 의대에 입학하고 졸업 뒤에는 서울로 되돌아오는 편법을 막기 위해서다. 중·고교를 지방에서 나왔다면 지방 연고가 그만큼 강해 의대 졸업 후에도 지방 병원에서 근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정부의 필수 의료 대책까지 거부하고 있다. 정부 대책이 미흡한 점이 많고, 전공의들을 병원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꼼수라고 주장한다. 정부 대책에는 여러 가지 보완할 점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은 앞으로 더 논의해서 보완하면 된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자기들이 요구해온 대책까지 거부하며 ‘증원 철회’만을 외친다. 의사들은 정부 방침대로 의사를 증원하면 의료 체계가 붕괴되고 의대 수업이 부실해진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이 맞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런 위험이 있다면 정부에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을 요구해 고쳐 나가면 된다. 그러지 않고 증원 철회만 주장하니 의료 붕괴와 의대 수업 부실 우려는 증원을 반대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고 속셈은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사 늘어 수입 줄까 우려하는 듯 의사가 늘어나면 의사 수입은 줄어든다. 지금의 의사는 물론이고 장래의 의사인 의대 학생들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의사들이 다른 직종에 비해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지금의 체제를 선호하고 지키려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의사는 일반 직장인 평균 연봉의 몇 배에 달하는 고연봉을 받고 고수입을 올리는 게 당연한가 하는 점이다. 의사들의 고연봉·고수입은 시장경제 논리로만 보면 정당할 수 있다. 의사가 되려면 남보다 더 노력해서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의대에 들어가 10년간 수련해야 한다. 그러자면 머리도 좋고 노력하는 기질도 갖춰야 한다. 의사는 이런 능력과 노력의 산물이다. 능력과 노력으로 이룬 성과에는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하는 게 시장경제 원리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낸 로버트 노직(1938~2002)은 시장의 결과는 정당하다고 말한다. 자기가 정당하게 소유한 것을 정당하게 사용해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이 능력과 기질을 이용해 모은 재산은 물론이고 타고난 능력과 기질도 그 개인의 소유물이라고 한다. 의사는 자기 개인의 정당한 소유물을 정당하게 이용해서 의사가 됐다. 그러니 능력이 떨어지거나 노력하는 기질이 없어서 의사가 되지 못한 사람들보다 고연봉을 받고 고수입을 올리는 것은 노직 주장대로 한다면 정당하다. 부유한 부모를 둔 덕분에 의사가 된 경우는 어떨까? 가난한 집안보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 의사가 되기에 유리한 게 현실이다. 어려서부터 사교육도 받고 등록금이 다른 학과보다 훨씬 비싼 의대에 입학할 수 있다. 부유한 계층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성공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천장에 부딪힌다는 ‘계급 천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노직은 이렇게 부유한 부모 덕분에 남들보다 성공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정당하게 번 재산을 자식에게 정당하게 사용한 이상 그 결과는 정당하다고 한다. 정부가 불평등을 바로잡으려고 개입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의사 고연봉·고수입은 당연한가 이에 대해 역시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낸 존 롤스(1921~2002년)는 시장의 결과라고 해서 무조건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시장의 결과는 타고난 재능과 기질의 결과이다. 어떤 부모를 뒀느냐도 시장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남다른 재능과 기질을 타고나는 것은 운이다. 부유한 부모를 만나는 것도 전적으로 운이다. 그런데 타고난 운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다. 개인의 선택과 통제 범위 밖에 있다. 롤스는 우리가 선택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결과까지 개인의 몫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한다. 불운을 타고난 사람에게 그 불운의 결과를 혼자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마찬가지로 행운을 타고난 사람에게 그 행운의 결과를 혼자 독차지하게 하는 것도 부당하다. 롤스는 과정은 외면한 채 결과만 따질 수는 없다고 한다. 불운을 타고나 흙수저가 된 사람은 영원히 흙수저로 살고, 행운을 타고나 금수저가 된 사람은 영원히 금수저로 살아야 한다면 이는 정의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 롤스의 주장에 담겨 있다. 롤스는 불운을 타고난 사람에게 정부가 여러 가지 복지 혜택을 줘 불평을 해소해 줘야 하듯이, 행운을 타고난 사람에게는 일정한 제한을 가해 재산을 재분배하는 게 정의라고 한다. 롤스 이론대로 의사라고 해서 일반 직장인 평균 수입의 몇 배나 되는 고연봉을 받고 고수입을 올리는 것이 꼭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능력과 노력의 결과 의사가 된 점을 존중해 일반 직장인보다 더 높은 수입을 얻는 것은 인정하되 너무 높은 보상이 되지 않도록 정부가 적절히 통제할 필요가 있다. 의사 증원은 의료 시스템이 지금보다 더 잘 작동하도록 하려는 게 근본 취지이다. 하지만 의사가 늘어나면 의사 수입이 줄어드는 효과도 낼 수 있다. 고연봉·고수입이 자연스럽게 조정될 수 있다. 의대 입학생 수를 2000명씩 늘리면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반도체 등 기술입국에 필요한 분야로 진줄하는 학생들이 적어지면 국가적으로 손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과도기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다. 의사가 늘어나서 ‘의사=안정적 고수입 보장’이라는 현실과 인식이 바뀌면 의대 쏠림 현상은 오히려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자원 배분이 정상화될 수 있다. 의사 파업에는 의사 증원에 따른 의사 수입 감소라는 의사들의 불안과 불만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의사의 고수입·고연봉이 반드시 정당하지만은 않다면 국민 생명을 담보로 고수입·고연봉을 지키려는 의사 파업도 정당하다고만 하기는 어렵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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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러가지 민·형사소송에 휘말려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소송이 있다. 2020년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것을 막겠다며 미국 시민들이 벌이는 헌법 소송이다. 연방대법원에서 조만간 이 소송의 결론을 내린다. 미국 정계와 법조계는 물론 일반 국민의 눈이 연방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할지에 쏠려 있다. 판결 결과에 따라서는 트럼프가 공직 취임권이 박탈돼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금까지 4가지 사건으로 기소돼 형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 중 두 개는 전직 포르노 배우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숨기기 위해 그 배우에게 입막음성 돈 13만 달러(약 1억7000만원)를 지급하고자 회계 장부를 허위로 작성한 사건, 플로리다주 사저에 백악관 기밀문건을 불법으로 보관하고 돌려주기를 거부한 사건이다. 또 다른 두 개는 2020년 11월 자신이 조 바이든 현 대통령에게 패배한 대선에 불복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한 사건이다. 트럼프는 이 같은 4개의 개별 형사 사건에서 모두 합쳐 무려 91개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헌법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 헌법 소송은 트럼프가 유죄냐 무죄를 따지는 다른 재판과는 성격이 다르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맡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재판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 14조 3항을 트럼프에게 적용해 트럼프의 공직 취임권을 박탈해야 하느냐 아니냐가 재판의 핵심이다. 제 14조3항은 ‘미국 헌법을 지지하기로 선서한 사람이 내란이나 모반에 가담하면 공직을 맡을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2021년 1월 6일 국회의사당 난입 선동 혐의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19일 이 조항을 적용해 트럼프를 콜로라도주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명단에서 빼야 한다고 판결했다. 트럼프는 미국 의회가 2020년 11월 치러진 대선에서 현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됐음을 확인하기 위해 2021년 1월 6일 회의를 열었을 때 회의를 막으려고 자기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부추겨 국회의사당을 습격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총까지 든 시민들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한 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당시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이 사건 이후 수정헌법 14조 3항에 따라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맡을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소송이 여러 주에서 이어졌다.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은 네 가지다. ①트럼프 지지자들이 2020대선 결과의 공식 확인 절차를 중단시키기 위해 의사당에 난입한 것이 ‘반란’인가, ②반란이라면 트럼프가 사전에 지지자들에게 선거 불복 메시지를 던지고, 의사당 난입 사건 당일에는 불복을 독려하는 연설을 하고,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해산을 권고하지 않고 방치한 행위가 ‘반란 가담’인가, ③ 14조3항의 해석과 적용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법원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가, ④14조 3항에서 말하는 ‘공직’에 대통령직도 포함되는가이다. 콜로라도주 하급심은 ①~③항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④항에는 ‘아니다’라고 했다. 취임 자격이 박탈되는 ‘공직’에 대통령직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공직 취임 자격을 박탈해 달라는 청원을 기각하는 판결을 했다. 하급심은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14조3항에는 취임 자격이 박탈되는 ‘공직’이 나열돼 있는데 대통령직은 여기에 명문으로 언급돼 있지 않다는 게 첫째 이유였다. 또 하나는 대통령의 취임 선서 내용과 14조3항의 선서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고 방어’할 것을 선서한다. 그런데, 14조 3항은 헌법을 ‘지지’하기로 선서한 사람으로 돼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두 가지는 트럼프 변호인들이 재판 과정에서 주장했다. 하급심은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대법관 7명 중 4대 3의 다수결로 ④항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판결했다. 대통령직도 14조3항에서 말하는 취임 자격 박탈 대상 ‘공직’에 해당한다고 했다. 따라서 트럼프는 대통령직을 맡을 수 없기에 선거법에 따라서 콜로라도주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명단에서 빼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14조3항의 ‘공직’에 대통령직이 특별히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대통령직이 너무나 분명한 공직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다”고 했다. 트럼프의 대통령 자격 박탈에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 3명은 절차상 이유로 그리 했다. 트럼프가 반란에 가담했는지, 14조3항이 대통령직에도 적용되는지 하는 실체적 이유가 아니었다. 이들은 각 주(州)의 법원이 연방의회의 적절한 선행 조치 없이 이런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했다. '대통령 될 자격 있나' 논란 대통령직이 14조3항에서 말하는 ‘공직’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하는 논란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어 보인다. 공직으로 치면 대통령직보다 더 헌법을 지키는 데 모범이 돼야 할 공직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트럼프 변호인들은 대통령직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를 제소한 측에서는 “14조3항에 적혀 있는 ‘공직’이라는 단어의 평범한 의미에 일부러 눈을 감는 어이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트럼프가 헌법을 ‘보존, 보호, 방어’한다고 선서했지, ‘지지’한다고 선서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더욱 실소를 자아낸다. ‘보존, 보호, 방어’에는 ‘지지’의 의미가 전제돼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지지하지 않고서야 보존, 보호, 방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트럼프 측은 14조3항 규정대로 ‘지지’한다고 선서하지 않았으니 3항이 대통령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측은 지자자들의 의사당 난입이 ‘반란’이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반란이란 ‘무기를 들고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라고 한다. 트럼프를 제소한 측은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의사당에 총을 들고 난입한 폭동이 어찌 반란이 아니냐’고 반박한다. 콜로라도주 대법원도 판결문에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는 의회의 행위를 막거나 방해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집단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반란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트럼프는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을 맹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바이든을 당선시키고 자기를 낙선시키려고 꾸민 책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화당 차원의 반발은 없다. 민주당도 조용하다. 판결을 환영한다든지, 트럼프는 즉각 후보 사퇴하라는 주장이 나올 법하지만 그렇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대부분의 민주당원들은 이 소송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가 의사당 난입 사건에 가담한 것은 자명하다”라면서도 “트럼프의 대통령직 자격 박탈 여부는 법원 결정에 따를 일”이라고 원론적인 말만 했다. 우리 같으면 재판 결과를 놓고 지지와 반대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법원을 죽여라 살려라 난리를 치고, 여당과 야당은 사필귀정이니, 정치 판결이니 하고 싸우느라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일이다. 미국에서는 정치 공방 대신 수정헌법 제14조3항의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법률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조항은 미국이 남북으로 갈려 싸운 남북전쟁(1861~1865년) 직후인 1868년 만들어졌다. 남부 7개 주(州)는 1861년 연방정부인 아메리카합중국(미국)에서 탈퇴해 '남부연합'이라는 별도 정부를 수립하고 남북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1865년 전쟁에서 패배하고 항복했다. 남부연합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반란 세력이다. 미국은 그런 남부연합 출신들이 공직을 맡는 것을 막으려고 수정헌법 14조 3항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조항은 단 한 번만 적용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 전쟁에 반대해 폭동을 선동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회주의 계열 하원의원을 제명할 때였다. 이처럼 적용된 적이 단 한 번뿐이기에 이 조항의 의미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일도 없었다. 그런데 트럼프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을 계기로 이 조항이 비로소 현실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조항의 해석과 적용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놀라운 일은 미국 민주주의 가장 묵직한 이슈를 다루는 14조3항 관련 헌법 소송이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아니라 뜻밖에도 무명의 일반 시민들이나 비영리단체에 의해 제기됐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최소 35개 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직 박탈’을 위한 헌법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 소송을 낸 사람들이 크게 세 보류라고 보도했다. 존 앤서니 카스트로라는 40세의 텍사스 출신 무명 공화당원, ‘워싱턴의 책임성과 윤리를 위한 시민들’과 ‘인민을 위한 자유 언론’이라는 두 개의 비영리단체, 지역주민들 모임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헌법 소송 주도 놀라워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은 ‘워싱턴의 책임성과 윤리를 위한 시민들’이 이끌어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메인주 국무장관이 이 판결을 근거로 트럼프의 대통령직 자격을 박탈하고 공화당 예비경선 명단에서 트럼프를 삭제한다고 발표했다. 메인주는 법원이 아니라 국무장관이 이런 결정을 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메인주의 결정을 이끌어낸 것은 지역주민들 모임이다. 특이한 사람은 존 앤서니 카스트로이다. 뉴욕타임스는 카스트로가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자 명단에서 빼려고 최소 27개 주의 법원을 드나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만큼 여러 주에서 소송을 냈다는 말이다. 법학 석사 출신인 카스트로는 “좀 더 잘 알려진 누군가 이 소송에 나서주길 바랐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아 혼자서 하기로 했다”고 한다. ‘트럼프 자격 박탈’ 소송은 제기하는 사람에 따라 형식이나 논리가 각양각색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2020년 대선 패배를 뒤집으려 한 트럼프가 과연 다시 대통령직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선거 불복으로 헌법을 위반한 사람이 헌법 수호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다시 되도록 내버려 둬도 되느냐고 묻는다는 말이다.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을 인용할지 파기할지는 연방대법원에 달려 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8일 트럼프 측과 제소자 측을 불러 질의 응답을 벌였다. 뉴욕타임스는 그 내용으로 볼 때 연방대법관들이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의 적절성에 회의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연방대법원이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을 파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러면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 판결 결과에 관계 없이 이번 헌법 소송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불복한 사람이 다시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것을 바라만 볼 수는 없다는 문제 의식이 표출됐다. 그 문제를 집회나 시위 또는 정치 공세 같은 비법률적 방법이 아니라 헌법에 따라 해결하려고 했다. 헌법 소송으로 이끈 주역이 정당이나 정치인이 아닌 일반시민들이다. ‘죽어 있던’ 헌법 조항을 끄집어 내 민주주의와 헌법에 관한 쟁점들에 대해 무엇이 적절한지 국가적으로 토론하고 있다. 이런 게 미국의 힘이 아닐까.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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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서약해야 4월 국회의원 총선 후보자로 공천하겠다고 선언했다. 불체포특권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과거 한때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공개 약속 했었다. 그는 나중에 자신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말을 뒤집었지만 불체포특권 포기가 국민에게 호소력이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은 틀림없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하다. 불체포특권 포기가 정치 개혁의 대표적 방안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이다. 문제는 헌법에 보장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약속만 하면 실제로 포기될 수 있는 것인가이다.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 개인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제도’의 하나다. 제도가 개인의 의사에 따라 무력화될 수 있느냐가 불체포특권 포기 논란의 핵심이다. 불체포특권은 영국에서 16~17세기에 의회제도와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생겨난 제도이다. 당시 왕은 중산층한테서 세금을 거둬 왕정을 운영했다. 왕은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며 세금을 마음대로 거뒀다. 그러나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 세력이 커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중산층이 왕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중산층은 자신들이 대표자를 뽑을 테니 이 대표자들과 협의해 세금을 거두라고 왕에게 요구했다. 대표자와 협의하지 않으면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의회민주주의 발달사에서 그 유명한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구호가 그때 상황을 대변해 준다. 그 대표자들이 의회의원이다. 왕은 처음에는 중산층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갈수록 중산층 세력이 커지고 이들이 내는 세금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결국 중산층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의회가 힘을 키워 갔다. 이후 중산층은 갈수록 왕의 절대적 권한 행사를 견제하려 했다. 그중 하나가 의회의원이 의회에서 왕정을 비판하더라도 왕이 의회 동의 없이 함부로 잡아가지 못하게 하는 제도의 도입이었다. 바로 불체포특권이다. 이뿐이 아니다. 의회의원들이 의회에서 왕정을 비판하려고 한 말에는 책임을 묻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게 면책 특권이다. 의회의원들은 왕이 임명한 내각대신(大臣), 즉 장관들에게 불만이 있을 경우 의회가 결의하면 내각대신을 해임하라고 왕에게 요구했다. 중산층 세금에 의존해야 하는 왕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여기서 생겨난 게 요즘 민주당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는 탄핵 제도이다. 국회의원 방탄 장치로 전락, 비판 여론 크지만 이처럼 불체포특권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왕으로부터 의회를 지키기 위해 생겨났다. 1603년 영국 의회가 불체포특권을 담은 ‘의회 특권법’(Privilege of Parliament Act)을 처음 법제화했다. 이를 1789년 미국이 헌법에 수용했다. 이후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많은 나라가 불체포특권을 헌법적 기본 권리로 채택했다. 우리도 1948년 정부 수립 때 미국 헌법을 본받아 불체포특권을 헌법에 넣었다. 과거 유신정권이나 전두환 군사정권 같은 민주화 이전 시대에는 불체포특권이 정권으로부터 국회의원과 국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정권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어 국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헌법에 불체포특권이 규정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권이 국회의원을 함부로 체포하거나 구속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했다. 국회를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을 한 것이다. 민주화가 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정권이 국회의원을 불법 부당하게 탄압하기는 불가능하다. 정권의 권력이 국민의 힘을 누를 수가 없다. 대통령 권력이 국회 권력을 누를 수 없는 세상이다. 언론과 각종 단체들도 정권을 견제한다. 사법부도 정권에 장악돼 있지 않고 상당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정권 탄압으로부터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불체포특권 제도는 굳이 없어도 될 정도이다. 오히려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들이 비리를 저지르고도 국회 권력을 방패 삼아 체포와 구속을 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국회가 동료 의원을 감싸는 방탄 장치로 전락해 있다. 많은 국민들이 불체포특권 폐지를 정치 개혁 최우선 순위의 하나로 꼽게 된 게 바로 이래서다. 이러니 한동훈 위원장이 불체포특권 포기를 들고나오고, 이재명 대표가 한때나마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하고 나온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불체포특권이 포기한다고 해서 포기될 수 있느냐이다. 일반적으로 권리는 당사자가 그 권리의 행사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별다른 조치 없이 즉각 포기의 법적 효력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1심 재판에서 진 사람은 2심에 항소하고 나아가 대법원에 상고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당사자가 항소권이나 상고권을 포기하면 그는 항소할 수 없고 상고도 할 수 없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도 마찬가지다. 피의자가 실질심사를 받을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그 효과는 즉각 나타나 법원은 실질심사 없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 역시 당사자가 포기하면 국민참여재판은 열리지 않는다. 포기하겠다고 해서 포기되지 않아 그러나 불체포특권 포기는 다르다. 불체포특권은 국회 동의 없이는 체포나 구속되지 않을 헌법상 권리를 말한다. 불체포특권 포기가 가능하려면 포기의 법적 효과가 다른 권리의 포기 때처럼 별다른 조치 없이 즉각 나타나야 한다. 당사자가 포기한다고 하면 국회의 체포 동의안 표결 절차가 법적으로 불필요해져야 한다. 그리고 법원은 국회 동의 없이도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헌법상 불가능하다. 아무리 당사자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하더라도 국회 동의 절차를 생략할 수는 없다. 국회 동의 없이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 수도 없다. 국회의원이 국회 체포 동의안 표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법원 영장 심사에 응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라도 법원은 국회 동의 없이 체포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하면 국회 체포 동의안 표결 과정에서 동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질 수는 있다. 영장이 청구된 국회의원이 신상발언을 통해 특권 포기 의사를 밝히면 다른 국회의원들은 찬성 표을 던지더라도 마음의 부담이 덜해질 수 있다. 게다가 다른 국회의원들도 공천 과정에서부터 특권 포기를 서약했다면 체포 동의안에 찬성 표를 던져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요인들이 합쳐져 체포 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의원이 많게 나와 동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게 해서 체포 동의안이 통과돼 당사자가 체포된다고 해도 그건 ‘표결에 의한 체포 동의’의 결과이지 ‘특권 포기’의 결과가 아니다. 아무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해도 체포 동의안에 대한 찬반 표결 절차는 거쳐야 하고 여기서 동의안이 통과돼야 체포될 수 있다. 불체포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된 이유가 ‘포기’라는 개인의 의사 때문이 아니라 ‘국회의 체포 동의’라는 헌법상 절차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는 법적 효과가 별다른 조치 없이 즉각 나타나는 다른 권리의 포기와는 법적, 실제적 성격이 다르다. 개인이 포기한다고 해서 곧바로 포기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말로 그치지 말고 제도적 대안 제시해야 국회의원이 불체포특권에 안주하지 않고 포기하겠다면 그 취지는 높이 사 줄 만하다. 단순한 선거 전략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 여론을 받들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그러나 다른 권리들처럼 개인이 포기한다고 하면 곧바로 포기되는 양 말하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많은 국민들은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만 하면 비리 혐의 국회의원이 국회 동의 절차 없이 곧바로 체포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을 호도하고 심하면 속이는 일이 될 수 있다. 헌법 개정 없이 불체포특권 포기는 불가능하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하려면 말로만 그러지 말고 제도적 대안을 함께 제시하는 게 옳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작년 7월 불체포특권 포기와 관련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의 핵심은 국회의원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스스로 영장실질심사에 응하고자 할 경우 다른 의원들에게 체포 동의안 표결을 위한 임시회를 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권성동, 정우택, 유의동,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불체포특권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들은 현행 ‘72시간 내’로 규정된 체포동의안 표결 기간을 단축하고, 무기명인 투표 방식을 기명으로 변경하며, 기한 내 처리되지 않은 경우 가결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들 의원이 낸 법안을 종합해 영장이 청구된 당사자가 임시회를 열지 말아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하고, 그 경우 임시회를 열지 않으며, 72시간이 지나면 가결된 것으로 간주하는 식으로 국회법을 개정하면 불체포특권 포기를 미흡하나마 법적 제도로 구현할 수 있다. 이런 제도적 대안의 제시 없이 말로만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해선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다시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행이 따르지 않아 실속이 없는 빈말, 이른바 구두선이 선거 때마다 반복될 게 뻔하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