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주경제 초빙논설위원
- 前 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실장
- 前 관훈클럽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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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결서가 헌법재판소(헌재)로 넘어갔다. 헌재는 최장 180일간 심리를 거쳐 탄핵(파면) 여부를 결정한다. 탄핵일 경우 60일 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헌재가 심리기간을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내년 4, 5, 6월에서 8월 사이에 선거가 치러질 거라는 전망도 있다. 윤 대통령은 세 번째 대국민 담화(12월 12일)에서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시간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보수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장했고, 취임 이후 한·미 관계 정상화와 한·일 관계 회복의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언론과 야권의 평가는 늘 인색했다. 국정의 목표로 삼은 4대 개혁(연금·노동·교육·의료)조차도 의지만 강조했지 어떤 방법으로 추진할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국민과 직접 소통하거나 대언론 관계에 능한 것도 아니었다. 영부인 문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를 괴롭혔다. 야당은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윤 대통령, 어떻게든 참았어야 그렇더라도 윤 대통령은 참았어야 했다. 이보다 더한 모욕을 당해도 견뎌냈어야 했다. 그는 어떻든 한국 보수의 상징적 버팀목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참지 못하고 비상계엄을 발동함으로써 그는 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결국 탄핵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흔히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답다고들 한다. 새가 양 날개로 날 듯이 말이다. 윤 대통령의 돌발적·즉흥적 행동 하나가 그 균형을 깨곤 한다. '르상티망’은 약한 자들이 강한 자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원한, 질투, 한(恨)을 말한다. 윤 대통령은 계엄 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강변하면서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착각이다. 내란이 아니라고 하면서 내란을 사주하고 있는 꼴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내란죄가 되면 탄핵이고, 내란죄가 아니면 탄핵이 안 되는 게 아니다. 탄핵은 헌법 또는 법률에 중대한 위반이 있다는 걸 말한다. 군이나 경찰을 동원해서 총칼을 소지한 채 진입하거나 강제적 물리력을 행사하는 게 내란죄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이른바 종북세력의 준동과 선거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그런데도 선관위를 상대로 의미 있는 조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어쩌면 크게 둘로 나뉘었을 것이다. 한쪽은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쪽은 대통령의 인식이 냉전시대에 묶여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적실성을 가질까.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북 관계를 개선해 공존과 평화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안보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게 모름지기 애국적·합리적 보수의 자세일 것이다. 윤 대통령, 더 겸손해야 어떻든 윤 대통령은 조금 더 겸손했으면 한다. 대국민 세 번째 담화를 보면서 나는 많이 놀랐다. 대통령은 담화를 읽어 내려가면서 분노한 표정과 어투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걸 보면서 다수 국민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분노-아마 정의로운 분노-가 대통령의 애티튜드와 품성을 구성하고 있는 특징임은 알겠지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뿜어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날 자리는 남북 관계 전반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대응 방안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더 낮은 자세로 이해와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 전후 미국의 외교정책 중 가장 참담한 실패 중 하나가 1961년 4월 17일 피그만 침공사건(The Bay of Pigs)이다. 게릴라로 위장한 쿠바 난민들을 쿠바의 피그만에 침투시켜 카스트로 공산정권을 전복시키려 했던 이 사건은 미국 외교사에 재앙으로 남아 있다. “반군의 내응”이 있을 거라는 미 CIA의 말만 믿고 피그만에 상륙했던 1400명의 가련한 쿠바 난민들은 카스트로 군대에 의해 사살되거나 포로가 됐다. 케네디 정부의 외교적 손실은 막대했다.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한 것은 물론 쿠바와 소련이 가까워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쿠바는 소련의 핵무기를 끌어들임으로써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했다. 피그만 침투작전은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없었다. 카스트로 정권이 난민들에 의해 무너질 만큼 허약하지도 않았고, 누구든 그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그런 무모한 일은 벌인 것일까. 우리 정당들도 ‘그룹 싱크’에 빠질 텐가 피그만 사건은 집단사고(group think)의 폐해를 보여준 정책결정의 전형으로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정책결정에 참여한 사람들 간에 친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치열한 논쟁을 통해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쉽게 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는 현상을 말한다. 이른바 ‘동화(同化)의 경향’인데, 결국 끼리끼리만 모여서 결정을 하면 잘못된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피그만 사건 당시의 정책결정 구조가 그랬다. 케네디(대통령)를 비롯해 딘 러스크(국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국방장관), 맥조지 번디(안보보좌관), 앨런 덜레스(CIA 국장) 등 피그만 결정에 참여한 7인이 모두 친구 사이였다. 성장 배경도 비슷했고, 출신 학교도 대부분 하버드였다. 서로 워낙 친했던 이들은 피그만 침공의 무모함을 짚어내지 못했다. 전략회의가 수차례 열렸지만 누구도 반대편에 서서 한 번쯤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가 당대의 지성인들이고 수재였기에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뒷날 케네디는 “내가 그토록 어리석었단 말인가”라며 가슴을 쳤다고 한다. 12‧3 계엄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행태를 보면 여전히 ‘집단 사고’, 그것도 아주 편협하고 왜곡된 ‘집단 사고’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보는 듯하다. 야당을 향해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고 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거대 야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기 위해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고도 했다.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세력과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의 담화를 놓고 2021년 1월 미 대선 당시 의사당 난입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하자 이에 동조하는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라며 의사당에 난입했다. “군 장성·보직 쓸어담는 ‘김용현 충암파’ 윤석열 정부의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서도 ‘집단사고’가 미치는 함의는 크다. 군은 일반 기관이나 조직과는 다른 상명하복(上命下服)을 거의 절대시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그렇다. 지금껏 드러난 바로는 군에서도 계엄을 주도한 세력은 윤 대통령을 필두로 하는 이른바 ‘충암파’ 군인들로 확인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고교 동문인 ‘충암고 라인’이 계엄을 모의하고 실행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계엄법 2조에 따라 계엄을 건의할 수 있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모두 충암고 출신이다. 국방부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다. 계엄 사태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그는 김용현 전 장관의 지휘를 받아 계엄령 선포 후 정치인 등 주요 인사를 체포하고 중앙선관위 서버를 확보하라는지시 등을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여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총선 이후부터 계엄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자신은) 이후 여러 차례 계엄 추진을 만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설령 만류한 게 사실이더라도, 대통령이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고교 동문들과 함께 계엄을 밀어붙였고 당사자들이 이에 동조했다면 결과적으로 더 강화된 ‘집단 사고’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언론에 따르면 지난 8월 ‘충암파’와 이에 맞서는 ‘국방파’ 간에 알력이 있었다고 한다. ‘국방파’는 지난해 10월 취임한 신원식 국방장관이 국방부와 군의 주요 보직이 충암고 출신으로 채워지자 이에 맞서 키우려 했다는 세력을 말한다고 한다(한겨레 2024년 8월 15일 <군 장성‧보직 쓸어 담는 ‘김용현 충암파’···‘윤석열 친위체제 구축>). 이들 ‘충암파’와 ‘국방파’ 간 경쟁 또는 알력이 12‧3 계엄 사태와 어떤 연관은 없는지도 살펴볼 대목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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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 촉구 나선 문재인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남북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3일 부산에서 열린 한 국제심포지엄에서다. 그는 축사를 통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북·미 대화 재개를 추진할 걸로 보인다”면서 “한국도 소외되지 않고 당당하게 역할을 하려면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해 선제적으로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과 같은 대결주의적 남북 관계가 지속되면 북한은 우리를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대화를 모색할 거고 미국도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경우 북한은 과거와 달리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할 것이고, 러시아와 중국도 그 주장을 비호할 것”이라며 “미국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더 고도화된 현실을 받아들여 대화의 목표를 완전한 비핵화에서 현상 동결과 엄격한 통제, 중장거리 미사일 폐기 등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했다. 국내 정치에 대해선 말을 아끼던 문 대통령이 남북 문제에 대해선 자신의 견해를 비교적 소상히 밝힌 셈인데 솔직히 당혹스럽다. 남북 관계가 지금처럼 경색된 데에는 그의 책임도 작지 않아서다. 먼저 한마디 유감 표명이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대결주의’라고 하기 전에 재임 중 자신의 정책과 행태가 오늘날 불임(不姙)의 남북 관계의 단초가 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면서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 평창올림픽을 매개로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에 어떤 전환점을 만들어보려고 한 것은 평가받을 만했다. 필자도 당시 칼럼을 통해 이를 ‘신의 한 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구상에 따라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역사적인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2020년 6월 30일)이 성사된 것이다. 외신은 ‘세기의 회담’이라고 타전했다. 이에 앞서 두 정상은 싱가포르(2018년 6월 12일)와 하노이(2019년 2월 27일)에서 1·2차 북·미 정상회담을 했다. 마침내 한반도에도 해빙의 봄이 오는 듯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회의는 춤춘다.’고 했던가. 정말 춤만 추었다. 어렵게 성사된 회담이었지만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켰다. 왜 그렇게 됐을까. 상식적인 차원에서 추론은 가능하다. 북·미, 또는 남북 간에 오랜 불신으로 ‘제재 해제’와 ‘보상’의 맞교환에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중재자 격인 한국에 대한 불신과 원망도 커졌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북(對北) 제재를 풀어주는 대가로 김정은이 북핵 문제에 있어서 의미 있는 양보안을 제시할 걸로 기대했지만 북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영변의 핵’, 곧 과거의 핵으로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했다. 서운하기는 김정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신에게 절실한 ‘제재 해제’에 대해서는 별 진전 없이 핵 포기만을 요구한다고 생각했고, 이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 회담을 주선한 한국이 트럼프보다 더 미웠을 것이다. ‘세기의 회담’으로 순식간에 국제뉴스의 중심으로 떠오른 김정은으로서는 이를 모욕으로 느꼈을 법하다. 실제로 그는 격노했다고 한다. 열차를 타고 평양에서 그 먼 길을 왔는데 이런 대접이라면서. 문재인 정권 내내 북이 우리에게 쏟아낸 막말과 각종 도발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을 겨냥한 ‘삶은 소대가리’란 말을 한번 보자. 이 말 속에는 지금 북한의 처지와 남북 관계에 관한 많은 것들, 특히 한국에 대한 북의 증오가 농축돼 있다. 아무리 적대관계여도 상대국의 국가원수를 향해 이런 막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삶은 소대가리’는 ‘사람 축에도 못 끼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의 욕이다. 우리 대통령이 왜 그런 무지막지한 욕을 먹어야 하나. 불행히도 이런 정도의 수모는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흔한 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야당 의원들에게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북의 입장을 옹호·대변한다는 조롱이었다. 2018년 10월 프랑스 방문 때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니 북한 경제의 어려움을 국제사회가 풀어주기 위해 대북 제재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정말 확고했는가? 아니다. 비핵화는커녕 김정은은 매번 엇나가기만 했다. 2020년 6월엔 우리 국민의 혈세로 지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개성)를, 지난 10월 15일에는 경의선‧동해선 연결도로를 모두 폭파했다. 이로 인한 우리 측의 경제적 손실은 공동연락사무소가 447억원, 경의선‧동해선이 1800억원으로 추산됐다. 김정은은 지난 7월 최고인민회의에선 ‘핵무력의 헌법화’도 천명했다. ‘핵보유국’으로서 생존권과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 핵무기를 고도화한다고 헌법에 명기한 것이다. 김정은은 남북 관계 단절도 선언했다. 통일도 포기하고 남북을 완전히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 관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두 결정은 윤석열 정부 때 나온 것이지만 김정은의 일관된 국제인식과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을 필두로 우리 사회의 이른바 진보 진영은 ‘대화론’에 목을 매고 있다. 남북 관계와 주변 정세가 어려울수록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3일 국회에서 진행한 ‘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진보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이종석, 김연철 등 모두 ‘대화론자’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들이었다. 회의를 주재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복잡한 대외 환경에 경제주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격화될 외교‧안보 환경에서 민주당이 나아갈 길을 잘 찾아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민주당은 자문회의를 상시 가동해 트럼프 시대에 맞춘 외교‧안보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여당인 국민의힘 쪽에선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일 긴급 점검회의에서 “(미국 대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한·미 동맹은 강화될 것”이라며 “추후 큰 규모의 세미나를 준비하기로 했다”고 밝힌 게 전부였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외교·안보 문제에 관한 한 늘 보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 시대의 이른바 보수우파는 언어(言語)에서부터 지고 들어간다. ‘대화로 푼다’ ‘대화로 해결한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말인가. 그러나 상대방이 ‘대화’를 얘기하는 순간 이쪽에선 거기에 동조하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대화로 풀자”는데 누가 시비를 걸고 반대할까. 그렇다고 침묵할 수도 없다. 침묵은 ‘반대’로 해석되고 당사자는 이내 대결주의자로 몰리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이들 말싸움처럼 유치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보수우파는 ‘대화’ ‘평화’와 같은 말을 남보다 먼저 더 자주 얘기해야 한다. 아예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문재인 정권 때 ‘기억’이 채 가시지도 않았을 텐데 분위기는 벌써 ‘대화’다. 대북정책 기조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대결주의를 대화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현실적으로 전쟁을 치를 생각이 아니라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릇 대화라면 상황과 여건이 맞아야 한다.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한 테이블에 앉았다고 해서 대화가 되고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대화하라는 것은 무책임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탓도 있겠지만 상황은 매우 미묘하고 복잡해졌다. 김정은은 이미 북·러 관계 강화를 생존책으로 결정한 듯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당장 패퇴하지 않는 한 러시아와 동맹으로 함께 가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우리가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국 협조체제를 생존책으로 삼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김정은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한·미·일 3국에는 더는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김정은의 남북 관계 단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트럼프, 북과 직거래 가능성 낮아 전통적으로 북한은 남한을 자신들의 인질 또는 방패로 보았다. 남한의 국가적 정통성을 부인하고, 적화통일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사실은 남한이란 그늘 아래에서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생전의 김일성 주석이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그런 북이 김정은에 이르러 스스로 그 고리를 끊어낸 것이다. 김정은은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앞으로 대(對)중국 관계에 보다 공을 기울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대화론자’들은 한결같이 앞으로 트럼프가 한국을 제치고 북과 직거래할 가능성을 우려하지만 나는 그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다. 트럼프는 바보가 아니다. 북이 설령 핵과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한·미·일 3국 협조체제라는 잘 작동되는 동맹의 틀을 스스로 먼저 깨겠다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과 동맹, 그리고 트럼프의 시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비해야 함은 맞다. 대화도 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 변화를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왜곡해 과잉 대응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현명하지도 않고 현실에 맞지도 않다. 지금은 대화든 뭐든 강요하기보다는 조금 차분히 지켜볼 때다. 우리도 이젠 그래도 될 만 한 나라가 되지 않았나.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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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5일 경의‧동해선을 폭파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작년 12월 “남북이 ‘두 국가’로 제각기 살아가자”고 한 이래 나온 가장 강력한 관계 단절 메시지다. 남북 간 유일한 연결 통로인 두 도로마저 폭파함으로써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북은 한국을 ‘헌법상 최적대국’으로 규정하고 “주권 침해를 당하면 거침없이 물리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동맹인 러시아를 돕기 위해 특수부대 1만2000여 명을 우크라이나전쟁에 파병한다. 북은 왜 이럴까. 우리의 대응은 적절한가. 한·미 동맹은 여일한가. 한반도에 신냉전의 기류가 엄습하고 있다. 김정은이 통일을 포기하고 남북한 ‘두 국가론’을 들고 나온 이유는 누구든 짐작할 수 있다. 남북 간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 이대로 가면 적화통일은커녕 남한에 흡수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나는 그 연장선상에서 3대 혁명역량론의 쇠퇴를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하고 싶다. 1948년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이래 지금껏 체제유지의 축(軸)으로 기능해온 3대 혁명론이 더는 통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북은 좌절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좌절이 김정은으로 하여금 문(門)을 꼭꼭 닫아 걸게 하고, 스스로 통일을 포기하도록 만들었으며, 한반도에 2개의 국가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도록 했다. 실로 놀라운 변화다. 남북한 격차가 ‘총론’이라면 3대 혁명론은 일종의 ‘각론’이라고 할 수 있다. 3대 혁명역량론은 △혁명의 기지로서 북한 자체의 혁명역량 강화 △남한 내부의 혁명역량 강화 △국제적 지원 강화, 이 셋으로 구성된다. 말은 길지만 내용은 단순 명료하다. 세계 각국에 혁명을 수출하는 기지로서 북의 혁명역량이 먼저 강화되어야 하고, 둘째로 혁명을 수출할(혁명을 받아들일) 대상 국가(남한)의 혁명인프라가 갖춰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혁명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국제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대 혁명역량이 위력을 발휘했던 게 1950년 한국전쟁이다. 이들 세 요소가 완전히 맞아떨어져 스탈린의 사주와 지원을 받은 김일성은 한때 한국 점령 직전까지 갔다가 유엔군의 개입으로 패퇴했다, 그러나 이제 3대 혁명역량론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철 지난 프레임에 불과하다. 세계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북의 형편이 너무 어려운 데 반해 남한은 자유와 시장경제, 그리고 문화의 활력이 넘쳐 언제든 북을 향해 밀고 올라갈 기세다. K-컬처에 맞설 장사는 없어 보인다. 국제사회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원은커녕 핵 개발로 제재를 받고 있다. 북이 요즘 러시아와 부쩍 가까워졌다지만 러시아에 이용만 당하는 건 아닐까.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북의 핵 놀음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김정은이 혹여 줄을 잘못 선 것은 아닐까. 통계청이 밝힌 2023년 북한의 통계지표에 따르면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6조2000억 원으로 한국(2161조8000억원) 대비 1.7%(60분의 1) 수준이다. 1인당 GNI는 143만원으로 한국의 4249만원과 비교가 안 된다. 이 밖에 인구(북 2570만명, 한국 5000만명), 기대수명, 식량생산량, 발전량, 하루 섭취 에너지, 작물 등 모든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주목할 대상은 북한판 MZ세대다. 그들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의 세대, 곧 장마당 세대로 국가 기능의 붕괴를 경험했고, 작지만 시장경제를 경험한 세대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은 그 수를 80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북한 인구를 2500만명으로 봤을 때 32%가 MZ세대인 셈이다. 이들은 알게 모르게 시장(市場)을 통해서 북한 체제의 변화를 추동해 왔다. 시장화로 이제껏 유지되던 가부장제를 통한 배급제도가 약화되면서 출산과 육아가 더욱더 개인의 선택으로 바뀌는 등 그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통일부) 지난해 채택된 평양문화어보호법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에게는 ‘오빠야’ ‘자기야’ 등과 같은 남한 말을 못 쓰게 하는 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를 어기면 처벌된다. 이 법 18조는 ‘국가적으로 지정된 괴뢰말투 제거용 프로그램을 손전화기(휴대폰), 컴퓨터, 봉사기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손전화기와 컴퓨터 사용에 관심을 갖고 ’잡 사상‘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남측 영상물 유포자는 사형에 처해진다. 체제 유지를 위한 북한 정권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김정은은 통일 포기로 천하에 없는 불효자가 되고 말았다. 통일, 곧 적화통일은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의 평생에 걸친 목표였다. 그걸 부정하고 두 국가론을 들고 나왔으니 지하의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북한 정치에서 효(孝)는 지배 이데올로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2001년 평양에 세운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까지 철거해 버렸다. “공화국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면서 철거를 지시했다고 한다. 생전의 김일성은 1948년 제1차 헌법제정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수도)는 서울’이라고 했을 만큼 통일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같은 해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360명을 선출하면서도 212명을 남한 출신으로 뽑을 정도였다. 그런 유산을 손자가 이어받기는커녕 훼손한 셈이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가요가 생각난다. 임종석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도 김정은의 통일 포기와 ‘두 국가론’에 공개적으로 찬성했다. 김정은이 어려울 때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편이 돼준 셈이다. 그러나 지금 통일을 부인하고 두 국가론에 동조했다가 언제든 실제로 통일이 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자칫 북녘 땅을 잃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한 마리의 ‘고슴도치(hedgehog)'를 키워야 할지 모른다. 평소엔 잔뜩 움츠리고 있지만 가시 같은 날카로운 털로 덮여 있어 접근조차 하기 어려운 고슴도치 말이다. 국제정치학계에 ‘고슴도치론’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이상우(李相禹) 전 한림대 총장이다. 그는 1970년대 말 한국의 대외정책이나 행태는 고슴도치를 닮아야 한다고 했다. 약소국이지만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운 가시, 곧 상대가 두려워할 뭔가를 가진 그런 국가라야 한다는 것. 그래야 다른 국가에 무시당하지 않고 할 말은 하며, 국익을 지키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김정은은 ‘고슴도치형 북조선’을 지향할 게 분명하다. 북한의 고슴도치의 가시가 어디 보통 가시인가. 핵(核)으로 벼려낸 가시다. 누구든 그 앞에서 조심하지 않을 수 없을 터. 김정은은 핵은 물론 이런 점까지 염두에 두고 통일도, 남한과 관계 개선도 포기한다고 했을 것이다. 폭파한 경의‧동해선 자리에 쌓아올릴 거라는 장벽 뒤에서 그가 할 일은 뻔하다. 핵은 이미 가졌으니 그에 더해 남한 전역을 때릴 수 있는 초대형 방사포, 신형 전차, 북한판 스트라이커 장갑차 등 신형 재래식 무기 개발에 열을 올릴 것이다. 북은 전통적으로 뭘 잘 만든다. 탱크도 우리보다 먼저 만들었다. 문제는 이제 북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데 있다. 고슴도치처럼 움츠리고 있는 북을 무슨 수로 불러낼 것인가. 평소 대화라도 했던 사이라면 또 몰라도 대화는커녕 서로 날만 세웠던 사이니 쉽지가 않을 것이다. 북으로서도 남한을 ‘헌법상 최적대국’으로 규정했는데 갑자기 대화 운운하기도 쉽지는 않을 터. 자칫하면 ‘대화 공백’이 아주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그 부담은 오롯이 윤석열 정권에 돌아올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북한보다도 우리 사회 내 좌파들의 공격을 견뎌내기가 더 힘들지도 모른다. 벌써 그들이 후렴구처럼 쓰는 상투어가 들리는 듯하다. “평화, 싫어?, 그럼 전쟁하자는 거야?” 내가 언제 전쟁하자고 했나. 위선과 거짓투성이인 평화론은 제발 그만두라고 했지. 남북 대화를 시도한다면 내 생각엔 윤 정부가 효력을 정지시킨 9‧19군사합의를 다시 살려내는 대화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마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도 봐야 하지만 그전에 우리 측이 이니셔티브를 취하는 것도 방법이 아닌가 싶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싱가포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자신의 8‧15 통일독트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자유 통일 한반도가 실현되면 한반도는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가 획기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 ···북한의 핵위협이 사라지고 국제 비확산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역내 국가 간, 지역 간 평화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대폭 활성화될 것이다.” 바른 방향이고, 아름다운 비전이며, 따뜻한 격려였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일어나려면 우선 북과 대화부터 해야 한다. 북을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임기의 반환점을 눈앞에 둔 윤 대통령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5년 임기 내내 남북 대화 한 번 안 해본 대통령으로 남을 것인가.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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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현재와 미래 세력 간의 경쟁이다. 현재의 권력은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쳐야하므로 그 시선이 오늘에 가 있지만, 미래의 권력은 그 지향점이 내일을 향해 있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만 한국은 정권 교체의 사이클(5년 단임제)이 짧아 그 과정이 더 ‘역동적’이다. 때로는 갈등을 빚기도 한다. 여야 의정협의체 구성문제를 놓고 맞선 형국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과 불화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윤 대통령은 19일 체코 방문을 마친 후 24일 한 대표를 비롯한 여당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찬을 갖는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이 자리에선 추석 민심을 점검하고, 의료개혁을 비롯한 개혁과제와 민생현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공식적인 만남은 지난 7월 30일 대통령실에서의 비공개 면담 이후 처음으로 알려졌다. 원래 두 사람은 8월 30일 만찬을 갖기로 했다가 추석 연휴 이후로 미루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추석 민생이 우선”이라고 연기 이유를 밝혔지만, 그보다는 한 대표가 대통령의 뜻과는 다른 의료개혁 중재안을 내놓은 데 대한 불편한 기류 탓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韓, 내가 모르는 내용이라서… 지난 8일 한남동 대통령 관저 만찬에도 한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만찬은 비공개였고, 당의 일부 최고위원들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일리안 보도(9월 11일)에 따르면 한 대표는 기자들이 참석 여부를 묻자 “내가 모르는 내용이라 말씀 드릴 수 없다”고 했다. 참석자들 면면이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대통령이 8월 30일 만찬을 연기한 직후여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한 대표는 20일 보도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련의 상황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가감 없이 밝혔다(8일 대통령 만찬에 초대 못 받은 것에 대해). "밥을 누구랑 먹는 게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실 생각이 민심과 동떨어져있는데, 불편해지는 게 싫다고 편을 들어야 하나?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의료개혁만 해도 많은 국민이 불안을 느낀다면 정치는 뭐라도 해야 한다. 여야정 협의체는 될 때까지 설득하겠다. 의사 증원과 필수 의료 개선 등 개혁에는 찬성하나 증원 규모와 방식에 정답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적 현안을 놓고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분명하게 자신의 소신을 편 사람은 흔치 않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관련’ 사건에 대해서도 그는 “대통령과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됐다고 한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세상에 건널 수 없는 강은 없다. 분명한 건, 부적절한 처신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거다. 예전에 대통령님과 같이 일할 때도 언쟁 많이 했다. 순간의 유불리를 위해 가방을 받는 건 괜찮다고 말하지 않겠다.” 체코 행 비행기 안에서 이 기사를 봤거나, 보고를 받았을 윤 대통령의 표정이 어땠을까. “국민이 불안 느끼면 뭐라도 해야” 사실 우리 정치에서 당 대표라는 자리는 매우 미묘한 자리다. 권한과 책임이 막중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당 대표 제도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때 생겼다, 그 전에는 대통령이 당 총재(대표)를 겸직하다가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을 사퇴하면서 분리됐다. 지금은 각 당이 당헌에 대통령의 당직 겸임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공천 등 당무에 대한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행사를 막기 위해서다. 우리처럼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선 당 대표가 없다. 경선관리를 하는 전국위원회와 위원장만 두고 있다. 대통령에 대해선 상, 하원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찬, 반 의견을 내고 맞설 뿐이다. 당 대표는 법적으로 당원의 대표(실제 전 당원투표로 선출)이므로 정책이나 의견표명이 대통령과 꼭 같아야 할 필요도 없다. 당원들의 대표이므로 행정기관이나 집행기구도 아니다. 다만 정치적인 면에서 민심을 파악하고 전달할 수 있는 의사 전달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행정부의 정책 수립 전에 민심을 전달하고 협의, 조율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과정 없이 사안을 당에 떠넘기거나 밀어붙인다면 언제든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윤과 한의 관계를 얘기할 때는 누구든 과거 검찰에서의 관계부터 떠올리게 된다. 서울법대 선후배이자 특수통 검사로서 두 사람은 평소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윤이 검찰총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자 한 대표는 법무부장관을 거쳐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후 ‘김경율 사천 논란’ 등으로 소원해지는 것처럼 비쳤지만 지난 1월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조우함으로써 유대를 과시했다. 추운 날씨에도 현장에 먼저 나와 대통령을 기다리던 한 위원장과, 그로부터 90도 폴더 인사를 받고 그의 어깨를 툭툭 치던 대통령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호전’되는 듯 했으나 8개월여 만에 여야 의정협의체 문제 등을 놓고 다시 갈등 중이다. “여야 의정협의체 현실성 없다” 대통령실의 입장은 분명하다. 한 대표의 의대 정원 유예안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건 대안이라기보다는 의사 증원을 하지 말자는 얘기와 같다는 것. 한 관계자는 “정부와 의료계가 강 대 강 대치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해집단의 구조적인 저항에 굴복한다면 정책을 펴기 어렵고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양측의 주장이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서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사안의 본질은 제쳐두고 끝없이 정치화되기 때문이다. 정치화되면 될수록 해법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 전에 차단해야 하나 불행히도 그 단계는 이미 지난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재명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에서 한 대표의 안을 “의료붕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안 중의 하나”라고 치켜세우고 정부에 언필칭 “심도 있는 고민”을 당부했을 때 이미 감지됐던 불길함이다. 탄핵국회, 특검국회 대신 민생국회를 민심은 어디에 있나. 도대체 민심은 무언가. 누구를 지지하거나 두둔해서가 아니다. 총선 참패로 최소한의 균형마저 깨져 국회는 사실상 탄핵국회, 특검국회로 전락한 현실 앞에서 의사 수 늘리는 문제로 갈라지고 찢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답답함이다. 국민이 많은 걸 바라는 것도, 무슨 거창한 논의를 해달라는 것도 아닐 것이다. 최소한의 균형을 이룬 국회, 탄핵보다, 특검보다 민생을 놓고 머리를 맞댈 국회를 보고 싶다는 게 국민의 마음일 터다. 윤 대통령부터 인식을 바꿔야 한다. 한 대표와의 검찰 때의 위계(位階) 관계에 관한 추억과 결별해야 한다. 한때 수직적 관계였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가 수평적 쌍방향 관계로 이미 바뀌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뀌고 있다고 할 만큼 전환기적 시대”라고 했다. 그에 맞는 인식과 행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黨의 원로들은 구경만 하고 있나 당의 원로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한때 날렸던 다선의 중진들이 앞장서서 설득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바뀔 것이다. 의정단상을 누볐던 다선의 상임고문단이 있지만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도 발언권을 주고 당의 단합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솔로몬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러고 싶어도 기회를 안 줘서 못하는 원로 의원들이 많다. 정부 여당 사람들이 민주당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게 일사불란과 상명하복이다. 당에서 지시하면 그대로 따라가고 다른 의견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거다. 올해 들어 민주당은 국회의장을 비롯한 주요 선거에서 확실하게 일사불란함을 보여줬다. 선거에 나온 모든 후보들도 하나같이 이재명 대표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이른바 ‘명심(明心) 팔이’다. 저쪽의 ‘명심팔이’는 비판하면서 자신들은 원내외의 작은 다양성 하나도 소화를 못한다면 모순이다. “韓, 정치적 희망 가지려면 윤과 멀어져야” 아주 현실적인 정치 얘기를 하자. 대통령학 전공자인 함성득 교수(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는 오래전부터 말했다. 한국 정치에서의 정권에 대한 평가는 그 정권이 얼마나 잘했느냐 여부보다는 자신에게 얼마나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고. 우리 현실에선 후임 정권과 다투지만 않아도 고마울 터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은 지난 4월 23일 SBS 유튜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치적으로 나름대로 희망을 가지려면 윤석열 대통령과 멀어지는 게 좋고, 본인을 윤 대통령과 일치시키면 전혀 희망이 없다.” 윤과 한, 두 사람은 최근 지지율 조사에서 동반 하락했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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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파리 올림픽 하면 ‘해병대 훈련’부터 먼저 떠오른다. 선수들의 선전으로 연일 메달이 쏟아지자 이기홍 대한체육회장은 “올림픽을 앞두고 실시한 해병대 훈련으로 ‘원팀 코리아’ 분위기가 조성된 결과”라고 했다. 작년 12월 선수와 임원 400여 명을 경북 포항 해병대 캠프에 모아 놓고 2박 3일간 실시한 극기 훈련이 주효했다는 거다. 무슨 훈련이든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게다. 그렇다고 2박 3일이라는 짧은 해병대 훈련 덕분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하긴, 필자를 포함한 이른바 ‘꼰대’ 세대들은 ‘정신력 강화’ 하면 해병대부터 생각했고, 나름대로 효과도 있다고 믿었으니까. 중·고등학교 교실에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급훈(級訓)을 걸고 공부하던 세대가 아니던가. ‘해병대 훈련’의 대척점에 배드민턴 여자 단식 우승자인 안세영(22‧삼성생명)이 있다. 부상투혼으로 국민을 감동케 한 그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그동안 힘들었던 과정을 털어놓았다.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배드민턴협회가 그에 합당한 케어(보호관리)를 해주지 않았다”는 거고, “이런 상태라면 대표 팀과 같이 가기 힘들 것 같다”는 가히 폭탄선언이었다. ‘해병대 캠프 훈련’의 기적? 배드민턴협회는 즉각 반박했다. 나름대로 최선의 지원을 했다는 거다. 대선배인 방수현(52‧MBC 해설위원‧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단식 우승)도 나섰다. “협회에선 사상 처음으로 안세영에게 개인 트레이너를 붙여줄 정도로 배려를 했다”면서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나도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들어가 그 시간을 다 겪었다, 누가 등을 떠 밀어서 대표팀에 들어 간 게 아니지 않으냐”는 것. 짐작했겠지만 여론은 두 갈래로 나뉘는 듯하다. 앞서 말한 ‘해병대 캠프’ 세대, 이른바 ‘꼰대’의 눈으로 보면 안세영의 대응은 조금 지나쳤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필자가 여론조사기관을 동원해 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 친분이 있는 원로 체육계 인사들에게 물어보면 답은 대체로 같다. “협회에 서운한 게 있더라도 이런 식으로 터뜨리듯 대응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거다. 그러나 배드민턴 문제에 정통한 한 전문가의 생각은 달랐다. 김화성 전 동아일보 스포츠 담당 기자는 지난 10일 월간 신동아 8월호(온라인)에 기고한 글에서 안세영 사태의 원인은 배드민턴협회의 무관심과 무능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안세영이 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부상한 이후 (협회가) 지속적으로 세밀하게 체크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의 주장이다. “안세영의 말은 간단하다. 제발 대표선수 관리와 협회 운영 좀 똑바로 하라는 거다. 협회의 구닥다리 ‘꼰대’ 시스템을 전면 개혁해 달라는 거다.” 이기홍 회장은 안세영이 배드민턴협회와 계약한 용품회사의 신발이 발에 안 맞아 불편하다고 했지만 “이용대(2008년 베이징 올림픽 혼합복식 우승)도 아직까지 그런 컴플레인(complain‧불평)은 없었다(안 했다)”고 했다고 한다. 안세영만 유독 유난을 떤다는 뉘앙스라는 것. 김화성은 방수현 해설위원의 ‘라떼···’ 발언과 비슷한 ‘꼰대 맥락’이라고 했다. 대통령실까지 나선 ‘안세영 사태’ 문체부는 안세영 선수가 “배드민턴협회의 부상 선수 관리, 선수 육성 및 훈련 방식, 의사 결정 체계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며 사실관계를 파악해 적절한 개선 조치의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 위로 대통령실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니, 애먼 사람들만 곤욕을 치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대통령실까지 나설 일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체육회에 맡기면 될 일 아닌가. 어떻든 이번 사태로 선수들이 위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근까지도 선수들이 이런 일로 협회의 결정에 드러내놓고 반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안세영 사태’를 한국 스포츠 문화와 관리체계의 한 ‘변곡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바뀌고 있다거나, 우리도 마침내 스포츠를 자아실현(自我實現)의 한 수단으로 보게 됐다는 분석들이 그런 예다. 이런 인식은 앞에서 언급한 ‘해병대 캠프론’과 충돌한다.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꼰대’ 세대와 MZ 세대의 충돌인 셈이다. 안세영 측은 향후 국가대표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이 또한 협회의 도움(승인) 없이는 어렵기 때문이다. 안세영 측은 관련 규정을 개정하기 위해 법적 투쟁도 불사할 거라고 한다. 그는 이달 중 열리는 일본 오픈과 코리아 오픈에 불참한다. 부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협회와의 불화 등 이런저런 사유들이 겹쳤을 게다. 선수나 협회, 그리고 체육회와 문체부부터 안세영도 살리고, 협회도 환골탈태하도록 해 양측이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아주 멋진 말 ‘自我實現’ 한국 스포츠도 전근대적인 국가주의와 집단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의 발전과 행복을 추구하는 스포츠 본연의 모습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꼰대’는 한 발 물러서고,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MZ세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즐기라”는 말은 얼마나 멋진 말인가. ‘자아실현’이라는 말은 또 어떻고. 필자는 기자 초년병 때 체육부에서 잠깐 근무했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하에서 프로야구가 잉태될 무렵이었다. 햇병아리 기자라서 소위 비인기 종목들을 10여 개 모아서 담당했는데 집안 형편이 극도로 어려웠던 어린 선수들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들에게 스포츠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다. 어떤 종목의 누구라고 적시할 수는 없지만 이런 선수도 있었다. 추석날, 감독이 훈련을 중지하고 아이들을 모두 고향에 내려 보내는데 한 선수만 서울에 남아 계속 훈련하겠다고 했다. 청소년 대표급 기량을 가진 아이여서 감독이 더 기특하게 생각했는데, 귀성(歸省)을 안 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고향에 가봤자 누가 밥 한 끼 따뜻하게 차려줄 형편도 못 되고 굶주린 부모와 동생들 얼굴 보기도 미안해서 안 간 거였다. 그 아이는 추석날 자정이 훨씬 넘도록 텅 빈 체육관에서 혼자 연습했는데 아마도 울면서 공을 쳤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 다 잘생겼다” ‘라떼’ 얘기는 피하고 싶었는데 또 하게 됐다. 그동안 세상이 바뀌어 우리도 선진국이 됐고, 먹고사는 문제쯤은 해결됐다고들 한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이른바 귀족 스포츠라는 양궁, 펜싱, 사격에서 메달이 쏟아졌다. 공교롭게도 펜싱의 오상욱을 필두로 우리 선수들은 인물도 좋고 매너도 좋아 “한국 사람들은 다 잘생겼다.”는 말까지 들었다. 필자부터 ‘선진국’ 대접을 받는다는 게 것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국제대회에만 나가면 남북 관계부터 질문해 기분을 잡치게 하던 서양 언론도 이제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럼에도 우리 선수들 절대 다수는 여전히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힘들다는 건 체육인 자신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가 밥술이나 먹게 됐다고 해서 ‘자아실현’ 운운하는 걸 선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우리 선수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꼰대’ 세대의 피와 땀, 눈물 위에 오늘의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이 서 있다. 함께 가야 한다. ‘꼰대’의 헌신과 기여도 소중하고, ‘MZ’세대의 도전과 창조적 열정도 소중하다. 양측의 갈등이 폭로전 양상으로 흘러서야 되겠는가. 안세영 사태 이후 한국실업배드민턴연맹은 신인 선수의 연봉과 계약금 상한제를 완화하는 방안에 착수했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서로가 조금씩 물러서자. 올림픽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내고도 이게 무슨 꼴인가. 체육계에도 몰려드는 저출생 위기 '고장 나지 않은 것은 고치지 않는 게 좋다'는 보수주의자들의 금언은 맞다. 섣불리 선진국 흉내 낸다며 지금의 협회 체제를 해체하고 유럽 국가들처럼 클럽 체제로 가는 데 대해서도 신중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생활(대중)체육과 엘리트체육은 상보(相補) 관계다. 누구라도 그 보편성에 흠집을 내서는 안 된다. ‘자아실현’도 좋고 클럽 체제도 좋지만 나는 금메달이 더 좋다. 어쩌면 곧 체육계에도 덮쳐올 저출생의 위기부터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전통의 서울 K상고는 탁구팀을 재창설하기로 했다가 포기했다. 선수들을 공급해줄 중학교 팀을 찾지 못해서다. 종목을 막론하고 선수들이 없어서 팀을 못 만든다는 얘기들이 계속 쏟아질 판이다. 위기 앞에서는 선수든 협회든, 꼰대든 MZ든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쳐주자. 안세영도 열심히 했고, 배드민턴협회도 할 만큼 했다고. 더 큰 신화 창조를 위해 함께 나아가자고. 한 세대(3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해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의 기적도 서로가 맞잡은 바로 그 손으로 일궈낸 것 아닌가.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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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대를 한 건 아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도 대개는 그러했을 것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도토리 키 재기처럼 고만고만한 당권 주자 4인이 당과 보수 우파를 살릴 새바람을 몰고 올 거로는 기대하지 않았다. 지난 총선 참패에 대한 설욕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0일 당대표 출마(연임)를 공식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먹고사는 문제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아직도 총선 참패 책임론에 매여 있는 국민의힘 주자들이 그와 맞서서 이길 수 있을까. 글쎄다. 어쩌면 한 가닥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조차도 ‘김건희 여사 문자 메시지’ 파문 등 갖은 잡음 앞에서 기대를 접지나 않았을까. 우선 지적하고 싶다. 대통령이 나라 밖에 있을 때는 내부 정쟁은 일시 중단하는 게 예의이자 관행일 터. 그런데도 경위야 어떻든 대통령은 물론 영부인까지 끌어들여 제2의 선거판을 벌인 셈이니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사활이 걸린 ‘탄핵전쟁’이 벌써 시작됐는데도 말이다. ‘어대명’은 보통명사가 된 지 오래다. '어차피 민주당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말 아닌가. 애초 당대표 선거에는 이 대표만 나오는 걸로 알려졌지만 막판에 김두관 전 의원과 김지수 한반도미래경제포럼 대표도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 대표로서는 ‘단독 출마’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됐다. 자칫 1인 출마가 됐다면 모양이 빠질 뻔했다. 이재명 대표는 사법 리스크로 쫓기고 있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는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대장동 사건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10월이면 1심 공판 결과가 나올 거라는 관측도 있다. 헌법 제84조도 논란거리다. ‘대통령은 내란‧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이 조항이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달라진다. 여기서 이 점 하나는 짚고 넘어가자. 필자는 그동안 이재명 대표가 한 많은 말 중 가장 치명적인 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한 이 말이라고 생각한다. “존경하는 박근혜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누구는 이 말을 가십성 잡담 정도로 보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 한마디에 그 사람의 모든 것, 도덕성, 진실성, 인성까지도 담겨 있다. 누구든 그 함의를 한 번쯤 깊이 따져보기를 권한다.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대입해보자. “사랑하다고 했더니 진짜로 사랑하는 줄 알더라.” 어떤가 느낌이. 이 대표에게 이 말은 두고두고 흠결로 남을 것이다. 선거 이전에 말이다. 국민의힘 어벤저스 4인은 이런 대권 주자와 싸워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준비가 덜 된 듯하다. 탄핵의 칼은 이미 춤을 추고 있는데 상호 비방과 ‘김건희 여사 사과’ 문제에만 매몰돼 있다. 어떡할 셈인가. 때로는 이들이 당대표 선거에 나선 것인지, 대선(大選)에 나선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대선이라면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지사, 홍준표 대구시장 등 잠재적 후보들이 줄잡아 10명은 훌쩍 넘을 텐데 이들은 다 어떡하고? 모두들 조금씩 차분해졌으면 한다. 누구든 너무 나가면 되돌아오기 쉽지 않은 법이다. 다행히 그들에겐 함께 싸워야 할 공동의 적(敵)들이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흔들고,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며, 정치적 불안정성을 키우고, 이미 세계에 입증된 우리의 문화와 창의성을 하찮게 여기는 세력들이 바로 그 적들이다. 그들과 싸워 이기지 못하면 그동안 우리가 누렸던 자유도, 안정된 삶도, 발전도 포기해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온 나라에 팽배한 '르상티망' 이 중 가장 힘든 상대는 누구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요즘 부쩍 입에 오르내리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을 꼽는다. ‘르상티망’은 약자의 분노와 질투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철학자 니체가 저서 <도덕의 계보>에서 ‘주인도덕’과 ‘노예도덕’ 간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한국 사회로 치면 약자와 강자, 없는 자와 있는 자의 구도가 심각하고 빈부 격차도 심한 불균형의 상태에서 흔히 약자가 갖게 되는 마음의 상태(원한)가 르상티망이다.(인터넷 ‘마음의 흐름, 니체의 르상티망- 약자의 분노와 질투’에서 인용) 마침 4·19 세대로 한국일보 주필을 지낸 원로 언론인 김성우씨(90)가 최근 캐나다에서 글 한 편을 보내왔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발행되는 ‘캐나다 한국일보’에 6월 27일부터 사흘간 게재한 글인데 시사점이 많아 어느 한 줄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제목은 ‘이것이 국민의 승리인가’. 같은 글방 관계자들과 아주경제신문의 허락을 얻어 그 일부를 원문대로 소개한다. “··· 오늘날 한국의 시대정신은 르상티망이다. 약한 사람이 강자(强者)에게 갖는 원한과 증오심을 르상티망이라고 한다. ··· 르상티망이 온 나라에 팽배해 있다. 지난 총선은 전형적인 르상티망의 선거였다. 선거의 야당 측 주역들은 자신의 범죄혐의를 덮기 위해 복수 일념으로 검찰 독재 타도를 외쳤고, 많은 국민들은 이에 대한 동정심뿐만 아니라 명품백 같은 것으로 자신들의 르상티망에 불을 질렀다. 야당은 이 악감정을 교묘히 이용하고 선동했고 성공했다. ··· 극단적인 증오는 극단적인 편애를 낳는다. 르상티망의 반작용이 극성 지지자들을 이끄는 팬덤이다. 팬덤이 지금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광풍의 핵이다.···” 동의하기 어려운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상식 차원에서 본다면 르상티망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점도 부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표현이야 어떠했든 모두가 ‘르상티망’의 힘으로 또는 그걸 동력 삼아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 아닌가. 그 공과(功過)와 과정은 언제든 이성적으로 톺아봐야 한다. 르상티망은 바꿔 말하면 반(反)엘리트주의다. 과거 엘리트들에게 가졌던 존숭(尊崇)의 마음이 사라지면서 갖게 된 엘리트 경시 현상이나 반감(反感)의 총체가 반엘리트주의다. 쉽게 말하면 ‘너만 잘났냐, 나도 잘났다’는 거다. 엘리트들이 오랜 세월 누렸던 우월적 지위와 특권을 더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다. 남보다 더한 노력, 앞선 공부, 칼 같은 혜안이 있어서 이만큼 우리 공동체를 이끌어 왔다는 것도 인정하기를 꺼린다.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이런 의식을 갖고 있으면 능력 있는 소수가 결정하고 끌고 간다는 생각은 갈수록 고전이 된다. 아직도 엘리트주의의 미덕과 효능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내친 김에 4인에게 충고하나 하겠다. 무엇보다 르상티망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거다. 4인은 모두 좋은 머리, 좋은 대학, 남보다 유복한 환경, 국내 최고 수준의 인적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닌 세상으로 우리는 바삐 옮겨가고 있다. 어떤 성취도, 아름다움도 르상티망에게 걸리면 빛을 잃거나 오히려 짐이 되는 세상이다. 교과서처럼 재미없는 얘기겠지만 현대사회와 정치, 특히 민주주의 나라에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르상티망과 포퓰리즘의 결합이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결혼 중 하나가 이 둘의 결혼이다. 이건 악성 중 악성이다. 둘 다 서로를 잡아당기는 힘도 워낙 강해 한 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가장 최근에 이를 절감케 한 게 코로나 팬데믹과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이 약속한 국민 1인당 25만원 현금 지원이다. 피땀으로 쌓아올린 나라를 하루아침에 베네수엘라로 만들자는 것인지, 분명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다중적 복합 위기의 시대 바야흐로 다중적 복합 위기의 시대다. 위기에 위기가 덮침으로써 해법도 출구도 안 보인다. 위기를 뚫고 나아가야 할 정부·여당은 손발이 묶이거나 잘려버린 형국이다.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부 보수 우파 시민단체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즉각적인 비상계엄 선포를 요구할 정도다. 그럴수록 선배들의 지혜와 경륜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 필자는 최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한 언론사(매일신문)와 인터뷰한 내용을 대학 동창 소개로 숙독한 바 있다.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총장은 국내외적으로 우리가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북핵을 비롯한 남북 관계, 한·일 관계, 4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심지어는 우리 교육 문제까지도 잘 정리돼 있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한다. 그렇다고 그가 다시 정치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는 2021년 펴낸 영문 저서 <‘Resolved: United Nations in a Divided World(한국어 표제 ‘반기문 결단의 시간들’)>에서 자신의 정치 참여와 포기에 대한 경위와 심경을 상세히 밝힌 바 있다. 우리 어벤저스 4인이 가장 자주, 가장 진지하게 만나야 할 사람이 우선 반기문이라고 나는 느꼈다. 어디 반기문뿐일까. 생각과 지향점이 같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만날 것을 권한다. 개혁 보수 우파, 합리적 중도 우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말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이재오)가 올해 6‧10 민주항쟁 37주년을 맞아 내놓은 슬로건이 뭔지 아는가. '오직 한마디, 민주주의다'! 나는 이 말이 좋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에서도 나왔던 ‘더 큰 대한민국, 더 따뜻한 대한민국’도.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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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을 위한, 이재명에 의한 민주당이 당원 중심주의의 기치를 치켜들었다. ‘당원 중심주의’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 분명치 않지만 이재명 대표의 설명과 민주당 일각의 논의로 미루어 ‘당의 결정에 당원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는 것’쯤으로 읽힌다. 여기서 당원은 정기적으로 당비를 내는 당원을 말한다. 흔히 권리당원, 책임당원, 후원당원 등으로 불린다. 이들이 당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게 당원 중심주의라면 레토릭 차원에선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달 16일 22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을 위한 당선자 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5선의 우원식 의원이 총 투표수 192표 중 189표를 얻어 6선의 추미애 의원을 누르고 국회의장이 됐다. 당원 다수가 지지하고, 이재명 대표의 이른바 ‘명심(明心)'도 얻었다는 추 의원이 낙선하자 많은 당원들은 반발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권과 맞설 국회의장감으로 평소 전투력이 있다는 추 의원을 선호했다. 그들은 짙은 배신감을 느꼈고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집단 탈당했다. 그 수가 한때 2만여 명에 달했고 당 지지율도 급락했다. 이 대표가 직접 나섰다. 22일 ‘민주당의 갈 길’ 토론회에서 “이번 탈당 사태를 “과잉 반응 또는 소수의 팬덤 현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잠시 일렁이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밑바닥 흐름이 감지되는 중”이라며 “이를 당의 분열과 역량 훼손이 아닌 새 발전의 계기로 만들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그는 “뽑은 유권자, 뽑힌 의원, 뽑힌 자들의 대표, 세 단계가 있는데 뽑은 유권자의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돼야 하느냐, 똑같아야 하느냐, 똑같은 게 반드시 바람직한가 하는 논쟁들이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당원 투표 20% 반영'···이건 탈법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대표는 일관되게 ‘당원 중심주의’를 주장해왔기에 당원 중심주의의 강화 또는 심화를 위한 숨 고르기쯤으로 들렸다. 민주당은 이미 우원식 의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추미애 의원을 지지했다가 낙심한 당원들을 달래기 위해 당헌·당규 개정팀을 통해 ‘당원 투표 20% 반영’을 공식 안으로 채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탈법이다. 삼권분립의 원칙하에 입법부 구성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국민 또는 국민이 뽑은 대표자의 의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이때의 국민은 단순히 다수당의 당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을 배출한 모든 정당의 당원을 포함한 전체 국민이기 때문이다. 행정부와 사법부도 그 구성 원리가 이와 동일하다. 이게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민주주의다. 반면 자치조직인 정당의 구성은 그 조직의 헌법과 법률에 해당하는 당헌과 당규에 따라 당원이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은 정당 안에 머물러야 한다. 당원이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게 아닌 만큼 당연하다. 당원들이 여론조사 차원에서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비공식적으로 전달할 수는 있지 않으냐고? 그런 시도 자체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정당들이 대법관 후보를 놓고도 여론조사를 빌미로 지지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그게 옳은가? 법의 취지는 ‘정당의 일은 정당에 머무르게 하고 자꾸 정부 안으로 끌고 들어오지 말라’는 거다. 이런 원칙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당이 법과 국가, 그리고 제도를 흔드는 사회가 된다. 그런 사회를 우리는 잘 안다. 대명천지에 그럴 일은 다시 없겠지만 2차 세계대전 직전 파시즘이 그러했다. 미국도 대통령선거 예비선거는 프라이머리(primary‧예비선거)와 코커스(caucus‧당원대회)라는 두 방식으로 치른다. 프라이머리는 당원 또는 지지자들이 모여서 본선 투표 하듯이 후보를 뽑고, 코커스는 등록된 정당원들끼리 만나 본선에 내보낼 대의원들을 뽑는 방식이다. 프라이머리는 당원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개방형(open primary)과 당원만 투표할 수 있는 비개방형(closed primary)으로 나뉜다. 미국도 비개방형에서 개방형으로 진화돼 왔다. 그래서 강성 당원들의 팬덤 현상이 특정 후보에게 쏠리더라도 당원이 아닌 국민들이 참여하는 선택이 허용되는 한 미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유지되는 안전판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왜 민주당과 이재명 지지자들은 자꾸 ‘당원 중심주의’를 외칠까. 답은 간단하다. ‘당원 중심주의’, 그 너머의 ‘권력’을 응시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회의장 선출 과정에서 당원들의 투표 참여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그 참여율을 높이면 의회 권력도 누릴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이 대표 측근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강성 팬덤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결정하는 게 이 대표의 당원 중심주의인가”라는 비판(동아일보)에 대해 “웃음이 나온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언론”이라고 했다. 당원 중심주의에 비판적인 언론은 시대에 뒤졌다는 얘기 같은데, 정작 본인은 정당자치(政黨自治) 구현의 원칙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원내대표를 지낸 비교적 합리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지난달 23일 한 인터뷰에서 “원내 직은 국회의원이 뽑고, 당대표, 최고위원, 시도당위원장 등 당직은 당원들이 뽑는 게 맞다”면서 민주당의 오랜 원칙은 지키는 게 좋다고 했다가 일부 당직자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다. 양문석 당선자는 “맛이 간 기득권과 586, 시대정신이 20년 전에 멈춰선 작자들이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몫이라고 우기며 내부 총질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내 친명계 최대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회원이기도 하다.(한겨레 6월 8일) 우리도 이미 ‘실패 사례’가 있다. 2022년 12월 여당이던 국민의힘은 일반 국민 여론조사 없이 ‘당원투표 100%’로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기로 당헌‧당규를 개정했다가 총선에서 패배하자 다시 국민 참여의 틀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당헌‧당규 개정 당시에도 “친윤’ 후보를 당대표로 선출하기 위해 무리하게 경선룰을 바꾼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때 나온 구호가 호기롭게도 '당심이 곧 민심'이었다. 국민의힘은 ‘당원투표 70%+일반 국민 여론조사 30%인 종전 경선 룰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결선투표제가 도입되고 ’역선택 방지 규정‘이 추가된다. 국민의힘은 야당인 민주당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와 반대로 가는 형국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당원권 강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전국대의원대회’ 명칭부터 ‘전국당원대회’로 바꿨다, 국회의장단은 물론 원내대표 선출에도 권리당원 투표 20%를 반영키로 한 것 외에도 시도당위원장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반영 비율을 20대 1미만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중앙당에는 당원 전담부서인 “당원주권국‘을 설치하고, 당론 위배자에게는 공천예비심사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추진한다. 개딸과 태극기부대의 결전장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이재명 대표 ‘단일체제’의 완성 여부에 있다. 어쩌면 이미 끝나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민주당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도록 관련 당헌·당규 개정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당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1년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에 예외를 두기로 했다. 대통령 궐위 같은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사퇴를 미룰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오는 8월 임기가 끝나는 이 대표(임기 2년)는 연임되더라도 차기 대선을 1년 앞둔 2026년 3월 전에 사퇴해야 하므로 그해 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 규정을 고쳐 이 대표가 2026년 3월 지방선거에서 공천권도 행사하고, 2027년 3월 차기 대선에도 출마할 수 있도록 했다. 전형적인 특정인을 위한 맞춤형 당헌‧당규 개정이고 위인설법(爲人設法)이다. 결국 이 대표와 민주당이 내세우는 ‘당원 중심주의’는 어떤 수사(修辭)를 동원해도 이 대표와 그의 추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방위적 방탄작업의 일환으로 보인다. 자신이 지지한 사람이 국회의장이 안 됐다는 이유로 집단 탈당하고, 이를 정치 에너지원으로 삼으려는 것은 민주적 대응이 아니다. 세상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민주주의의 요체는 대의제(代議制)다. 당의 결정권은 일차적으로 당원이 아닌 당의 의원들에게 있다. 그 결정을 따르고 존중하는 게 민주주의이다. ‘개딸’이나 ‘태극기부대’에 쉽게 양도할 권리가 아닌 것이다. 섣부른 당원 중심주의,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당원 중심주의는 상대 당을 자극해 갈등과 대결의 악순환만 격화시킬 뿐이다. 작금의 원 구성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여야 간 대결을 보라. 이 대결이 자칫하면 정치와 세상을 개딸과 태극기부대의 결전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 누구의 말처럼 필자는 ‘시대정신이 멈춰선 기득권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대의제에 충실한 당과 당원들이 정치를 지키고 키워야 한다고 믿는다. 임혁백(고려대 명예교수)의 말처럼 대의제는 '국민의 지배를 근대국가의 환경에서 실현하기 위한 지난 1000년의 제도적 발명'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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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가 던진 질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수석 경제평론가 마틴 울프(Martin Wolf)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곧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결혼’은 실패한 것으로 끝나고 마는가.” 최근 번역돼 나온 저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The Crisis of Democratic Capitalism, 2023년, 고한석 옮김, page2)>에서다. 이 ‘결혼’은 적어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1989년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공산 전체주의에 맞서 승리했다”고 선언한 이래 인류의 자유와 번영을 담보할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실패한 결혼’이라니···.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울프는 옥스퍼드 너필드칼리지의 명예 펠로이자 세계경제포럼(WEF) 국제미디어위원회 위원이다. 2000년 금융저널리즘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제국훈장(CBE)을 받았고, 2019년에는 세계 경영·금융전문가에게 주는 제럴드 로브 어워드 평생 공로상도 받았다. 영국 비커스 은행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금융 공황의 시대> <변화와 충격> <세계화는 왜 작동하는가> 등 저서가 있다. 울프는 “지금 와서 보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자본주의 중 어느 쪽도 승리를 거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개발도상국, 신흥국, 옛 공산권 국가뿐만 아니라 서구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실패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을 흔들고, 정치적 실패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켰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거부하는 공산 중국의 부상 또한 '서구의 확신'과 ‘서방에 대한 확신’을 흔들어놓았다.” 울프의 진단과 처방이 논리적으로 완벽히 연결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는 민주주의가 위기여서 자본주의에도 위기가 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성찰부터 하고 그것이 자본주의로 어떻게 전이됐는지를 설명하는 게 순서다. 그러나 이를 건너뛰고 곧바로 자본주의 위기로 간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 때문에 민주주의에도 위기가 온 건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아니면 양자가 도돌이표처럼 맞물려 돈다는 것인가. 주(註)를 포함해 650쪽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과 균형을 이룰 때 자유롭고 번영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일관된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식에서 ‘자유’라는 말을 무려 35회나 언급했다. 정통 우파 보수주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셈이다. 윤 대통령의 ‘자유’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울프를 통해 한번 들여다보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균형 회복이 최대 과제 울프는 서방의 고소득 민주국가들의 장기적 추세, 곧 실질 소득의 정체, 가계부채의 폭발적 증가, 치솟는 실업률, 금융위기, 불평등의 심화, 탈산업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으로 인해 기득권층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으며,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정치적 충성도에 변화가 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의 ‘미국에 다시 찾아온 아침’이 트럼프에 이르러 ‘미국의 대학살'로 변해버렸다는 것. 따라서 서구 시스템의 건강성(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균형)을 회복하는 게 이 시대 최대의 과제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없이 생존할 수 없고, 민주주의는 시장경제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취약한 성과가 포퓰리즘과 폭정의 물결 속에 사라지기 전에 보호하는 게 엘리트들의 책임”이라고 했다. 요즘 윤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비판 중 하나는 “국가의 정체성과 국정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거다. 대체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모르니까 소통이 안 되고, 소통이 안 되니까 국민이 공감하지 못한다는 거다. 역대 정권들처럼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같은 네이밍이라도 했어야 하나. 그러나 이런 비판 자체가 상투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유롭고 부강하며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중추국가’ 이상의 무슨 비전을 더 보여줘야 하나. 울프는 특히 미국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음으로써 체제의 건강성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트럼프는 ‘스트롱맨’과 스트롱맨 정치를 동경하고, 자유언론을 혐오하며, 서방 동맹의 생존에 무관심하며, EU를 극도로 싫어하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나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해 이념적 애착이 없으며, 포퓰리스트이자 본능적 권위주의자로 대통령이 되는 데 필요한 인격과 지성이 부족했다”는 거다. 이런 지도자가 다시 집권하게 되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적 자본주의 간 ‘균형’은 깨어지고, 그 결과는 자유민주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거라고 울프는 경고했다. 그는 ‘균형’을 유지하는 요소로 법치와 엘리트의 도덕성을 꼽았다. “법치가 없다면 시장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고··· 엘리트의 능력과 그 타당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은 필연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것. 그 결과로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분노의 포퓰리즘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울프는 ‘지위불안(status anxiety)'을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적 정치인의 부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틀이라고 했다. 불안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계층구조상 맨 밑바닥이 아닌 밑바닥에서 몇 단계 위쪽에 있는 사람들, 즉 사회적 지위는 낮지만 그래도 방어해야 할 지위가 상당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런 그룹의 사람들은 꼴찌 혐오, 즉 위계질서에서 최하위로 떨어질까 봐 걱정하게 되는데 서구(西歐)에선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이 이에 해당된다는 것. 울프는 특히 포퓰리즘의 폐해와 위험성에 대해 강력히 경고한다. “높은 불평등, 경제적 불안, 느린 경제성장, 거대한 금융위기 탓에 주요 고소득 사회의 엘리트에 대한 신뢰가 약화됐다. 결국 포퓰리스트의 당선과 포퓰리즘적 대의명분의 승리로 이어졌고 이는 대개 나쁜 정책으로 이어진다. 나쁜 경제가 나쁜 정책을 낳고 다시 나쁜 경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번 총선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최악은 포퓰리즘의 악덕과 전제주의 악덕의 결합이다. “포퓰리즘의 악덕은 단기주의, 전문성에 대한 무관심, 장기적인 고려보다 당장 정치적인 것을 우선시한다. 전제주의 악덕은 부패와 자의성이다. 이 두 가지는 경제적 비효율성과 장기적인 실패를 초래한다. 이런 정권은 큰 규모로 도둑질하는 경향이 있다. ··· 이들의 정치는 국민에 대한 사랑이라는 외피 아래 숨겨진 거짓, 억압, 도둑질의 정치로··· 결국 갱스터 국가를 만들어낸다.” 그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망상'이라고 일축했다. 민주주의 회복은 '시민성'을 바탕으로 울프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결혼’이 유지되려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쇄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가장 덜 나쁜 경제체제이듯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도 가장 덜 나쁜 정치체제다. 그럼에도 시장 자본주의에 개혁이 필요하듯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역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시민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쇄신은 시민성을 바탕으로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거다. 시민성은 세 가지 측면으로 이뤄진다. 충만한 삶을 누리기 위한 동료 시민들의 능력에 대한 관심, 시민들이 번영할 경제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 열린 토론과 상호 관용의 가치에 대한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실패하고 자유는 증발해버린다”는 거다. ‘시민성’은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레브치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가 2018년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언급했던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과 절제(forbearance)를 연상케 한다. 이들은 1930년대 유럽, 1960년대와 1970년대 남미에서 벌어졌던 민주주의의 약화와 부식을 막아준 것은 관용과 절제가 가드레일(guardrail‧난간)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그런 가드레일이 있는가. 윤석열 정부가 도덕과 법치를 정치의 한 축으로 세운 것은 옳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한마디에 국민은 감동했다. 그게 출발점이 되기는 했지만 그게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가 다수에 의한 지배임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부는 또 아니다. 법과 다수가 충돌하면 엘리트는 자취를 감춘다. 엘리트는 ‘실력 있는 전문가’를 말한다.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국가적으로 손실이다. 여야 모두 너무 경직돼 있다. 더 큰 비효율과 불행이 오기 전에 서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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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이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여야는 승패 분석과 향후 정국 전망에 여념이 없지만 이번 선거가 “역대급 저질 선거”였다는 오명을 벗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반듯한 어젠다는 물론 이렇다 할 정책도 이슈도 안 보였고 그저 막말뿐인 선거였다. 우리 정치가 왜 이렇게 작아지고 남루해졌을까. 선거가 미래를 선도하지 못하고 과거에 매임으로써 정치의 퇴행은 가속화됐다. 산적한 국가적 과제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의 선거 참패는 한마디로 불통 이미지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해도, 무슨 호소를 해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것처럼 꽉 막힌 벽 같은 이미지에 국민이 질린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또 몰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엔 도어스태핑(door stepping)을 통해 제법 소통도 할 것처럼 보였으나 곧 이를 중단했고, 이후 기자회견다운 기자회견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인사에서도 검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대통령은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을 데려다 쓴다고 했겠지만 국민을 우습게 아는 행위였다. 특정 대학에 검사면 다 우수하다는 인식은 이미 구시대의 잔재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이 AI 시대에 웬 검사냐는 국민의 시선을 한 번이라도 직시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불신과 혐오의 선거판 크게 보면 여야가 ‘정권 심판론’과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으로 맞붙는다고 했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민생을 비롯한 모든 이슈들이 두 심판론 사이에서 증발했고, 그 빈자리를 끝 모를 불신과 혐오가 채웠다. 선거판은 지난 대선에 이어 다시 ‘검사 대 피의자’ 프레임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이 프레임에선 어느 한쪽이 무죄로 방면되거나 처벌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사법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갈등의 심화가 우려돼 일각에선 ‘정치의 복원’을 거론하기도 했으나 윤 대통령 치하에선 쉽지 않은 일임은 누구나 알았다. 검찰은 선거 중이던 지난 8일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으로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사건의 핵심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징역 15년, 벌금 10억원과 추징금 3억4000만원을 구형했다. 이 대표 또한 이 사건과 관련해 제3자 뇌물 혐의를 받고 있다(이화영 부지사에 대한 선고기일은 6월 7일이다). 조국혁신당으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조국 대표는 그동안 드러내놓고 ‘복수혈전’을 예고해왔다.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이 “너무 길다”고 했고, “김건희 특검법과 한동훈 특검법도 발의하겠다.”고 했다, 총선 직전에는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되면 여러분은 하반기에 김건희씨가 법정에 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녀 입시비리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범죄 피의자가 대통령과 정치를 겁박한 셈이다. 조 대표는 대법원 판결로 유죄가 확정되면 바로 감옥행이다. 정치판 자체를 떠나야 한다. 그런 그가 윤 대통령을 레임덕(Lame duck·절름발이 오리)에서 데드덕(Dead duck·죽은 오리)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정상은 아니다. 조 대표의 움직임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당 재정비 작업과도 맞물린다. 이 과정에서 조 대표와 민주당의 선명성 경쟁 또는 연대로 대여 투쟁 강도가 더 세질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총선으로 새롭게 원내에 진출한 군소 정당들이 가세할 수도 있다. 벌써 조 대표의 ‘복수혈전’이 윤 정부에 비판적인 범야권에 의해 대통령 탄핵의 불쏘시개로 쓰이고 있다. 이 막장 드라마의 연출자는 재야 원로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다. 그는 지난달 14일 오마이TV와 인터뷰하면서 “이번 총선은 문재인 정부(제1기 촛불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성공하는 제2기 촛불정부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조국혁신당의 바람도 있지만 조국은 조연일 수밖에 없고 민주당의 이재명이 주역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재명 말고 누가 2기 촛불정부를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돌려서 말할 필요가 없다. 제2기 촛불정부의 조기 수립이라는 얘기는 윤석열 정권을 빨리 끌어내리고 이재명을 다음 대안으로 빨리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이 기사를 봤을 때 나는 설마 했다. 우리 사회의 원로이자 재야 지도자인 영문학자(86‧하버드대 영문학박사)가 드러내놓고 사실상 ‘민중혁명’을 획책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대북 문제와 이념 문제에 정통한 한 선배는 딱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이른바 좌파라는 사람들의 생리와 투쟁 방식에 대해 그렇게도 모르냐는 핀잔이 담긴 표정이었다. 이재명·조국의 연대 가능성 그는 조국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연대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둘이 손을 잡거나, 이 대표가 대장동 사건으로 사법 처리돼 영어의 몸이 된다고 해도 그 뒤를 이을 사람들 중에 조 대표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이미 야권과 진보 좌파 또는 친북 좌파는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면서 “어쩌면 우리는 공천파동으로 민주당에서 한때 배제된 박용진 의원과 임종석 전 의원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그들이 갖은 수모를 참아가며 당에 잔류한 것은 우리마저 떠나면 70여 년 의회민주주의 전통을 고수해온 민주당은 소멸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라고 했다. 한국 야당사의 큰 맥(脈)이었던 DJ(김대중) 민주당의 동교동계는 사실상 사라졌다. 남은 인사는 올해 94세인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 정도다. DJ의 3남인 김홍걸 전 의원은 지난 1월 이재명 대표가 주도한 공천 심사에서 낙마했다. 재산신고 누락 등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 임무교체를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그 교체가 정치 발전과 국민 통합, 그리고 협치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인가 혹여 맹목적 종북이나 시대의 유물이 된 좌파 이념에 대한 수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끝까지 살펴야 한다. 조 대표는 일관되게 “민주당과의 합당은 없다”고 했다. 이번 총선에서 선전한 그가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게 된다면 사안에 따라 국민의힘과 연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전에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있지만 어제의 적(敵)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셈이다. 이제 국민의힘은 조 대표의 심기까지 살펴야 하게 됐다. 그는 당선 후 일성으로 윤 대통령에게 그동안의 실정(失政)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조 대표 뒤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있다. 이미 정치에 뛰어든 문 대통령은 총선 중 일부 민주당 후보 지원 유세를 펼치면서 “대한민국이 퇴행하고 있다”고 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나도 숟가락 하나 얹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또 하나의 게임 플레이어(game player)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재임 중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임종석은 ”(윤석열 정부 들어) 무너져가는 외교나 정치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시고, 그렇게 소리를 내는 것이 국민들에 대한 당신 책임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했지만 본격적인 ‘정치 재개’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한동훈의 거취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거취도 관심사다. 8월로 예상되는 새 지도부 구성 때 당대표를 맡아 대권 주자로서 위상을 굳힐 수도 있고, 아니면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잠시 정치판을 떠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유력 대권 주자로서 위상은 살아 있을 것이다. 비록 선거를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고군분투했던 그의 헌신과 열정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한동훈의 움직임에 따라 차기 대권 경쟁은 조기에 가시화할 게 분명하다. 벌써 잠룡(潛龍)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여권에선 한동훈, 오세훈, 안철수, 나경원, 원희룡 등이, 민주당 쪽에선 이재명 대표 외에 김동연 경기지사 이름이 나돈다. 정치는 ‘생물(生物)'이라고 했다.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크고 있는지 누가 아는가. 벌써 이쪽저쪽으로 줄을 섰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두가 윤 대통령에겐 부담이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원칙과 상식에 충실하되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필자는 지난번 칼럼에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1대1 영수회담 가능성에 대해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관한 문제일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제는 갑과 을이 바뀐 것일까. 선거는 끝났지만 22대 총선 얘기는 계속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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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의 막이 올랐다. 여야 예상 의석수와 승패 등을 놓고 전망이 분분하다. 이른바 ‘정부 지원론’과 ‘정부 견제론’이 맞서고 있다. 어느 쪽이 이기든 총선 후 정국은 극심한 국정의 체증(滯症) 또는 밀어붙이기식 독주(獨走)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야는 이미 공천 과정에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막말과 증오의 표출로 충분히 예열돼 있는 상태다. 경쟁과 투쟁은 정치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너무 심하다. 양극단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줄 세력도 기제도 없다. 개혁신당, 새로운 미래, 조국혁신당 등 일종의 파생 정당들이 있다지만 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어떤 정당은 순전히 개인의 방탄과 신원(伸冤)을 목적으로 급조되기도 했다. 의원 꿔주기 위성 정당으로 언제든지 본체에 합류할 정당도 있다. 어느 새 이게 우리 정치의 풍경이고 일상(日常)이 됐다. 세계 10위권 선진국이라지만 정치는 늘 우리를 참담하고 부끄럽게 만든다. 한국 정당정치의 출발점을 1945년 9월 16일 한민당의 결성으로 본다면 우리 정당사도 어언 한 세기가 다 되어간다. 그럼에도 민주적 정당정치의 핵심인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의 미덕과 지혜는 여전히 멀리 있다. 품격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정치 특유의 비타협성, 증오, 불화, 한마디로 뭉뚱그려 후진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념과 역사, 정치인 개개인의 자질, 권위주의적 정치문화 등 정치학개론을 여러 권 써야 할 만큼 원인은 많다. 필자는 눈앞의 현실정치와의 관련 속에서 인정(認定)의 부재(不在) 또는 결여를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다. 정치의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 또는 국정 운영의 파트너이자 조력자로서 ‘인정’을 안 하는 게 작금의 불화와 증오의 근본 원인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 부재 탓으로 좁혀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인식은 대화 부재의 책임을 어느 한쪽에 지움으로써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윤 대통령을 잘 아는 전직 법조인에게 물었다. 그런 식으로 양자 간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느냐고. 답은 “절대로 아니다”였다. 그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그건 정치지도자를 떠나 개인으로서 정체성(正體性‧identity)과 가치(價値)에 관한 문제였다. 이 문제는 아마도 이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거나 관련 재판이 마무리되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상사에서도 그렇지만 ‘인정의 부재’는 반발과 증오심을 키움으로써 관계를 더 소원해지게 만든다. ‘엇나간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들어맞는다. 이 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골적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암시했다. 사용한 언어도 직설적이었다. “대통령이 말을 안 들으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가 “내쫓아야 한다” “중도해지해야 한다”고 갈수록 수위를 높였다. 이런 발언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냈을지는 몰라도 정도는 아니다. 필자가 보기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과연 대통령과의 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가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2018년 어크로스)>를 다시 보자. 그들에 따르면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해온 것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설계한 헌법 시스템 덕분만은 아니다. “두 가지의 기본적인 규범이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미국 사회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왔다. 그 두 가지 규범이란 정당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과 이해(understanding),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forbearance)를 말한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대통령이든 야당 대표든 누구든 경청해야 할 경구가 아닐 수 없다. 내친김에 조금 더 인용해보자.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 “이 두 규범은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국 민주주의 기반을 강화해왔다. 양당의 지도자는 서로를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였고, 그들에게 시한부로 주어진 제도적 권리를 오로지 당의 이익을 위해서만 활용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관용과 절제의 규범은 미국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연성(軟性) 가드레일로 기능하면서, 당파 싸움이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반면 1930년대 유럽이나 1960년대와 1970년대 남미에서 나타난 자멸적인 당파 싸움은 여러 국가의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우리에게도 ‘연성 가드레일’이 있는가. 윤 대통령이나 이 대표 모두 겸허히 자문해야 한다. 다시 ‘현실’의 영역으로 돌아가자. 두 사람 간 대화가 어렵다면 우회하는 방법이라도 찾아야 한다. 이런 제안에 발끈할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지금이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도 아니고 야당 대표가 만나자고 하면 선뜻 만나야지” 하면서 말이다. 그에 대한 반박도 차고 넘칠 것이기에 서로 ‘절제’하고 ‘상호 관용’의 자세로 해법을 모색해보자. 필자는 이 대표가 꼭 대통령을 직접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국민의힘 대표와 일대일로 여야 대표회담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굳이 격식이 필요하다면 그 회담을 ‘영수회담’이라고 부르면 될 일이다. 그 모습이 오히려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줄 압박은 상당하지 않겠는가. 꼭 그걸 의식해서가 아니라 그런 자세와 제안만으로도 의미가 클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막말정치로 시작되는 한국 정치의 퇴행과 후진화(後進化)를 막아야 한다. 얼음은 위에서부터 녹는다고 했다. 여야가 영수회담 또는 여야 대표 회담을 통해 막말정치의 근절을 선언하고 구체적인 실천 강령을 제시한다면 저 아래 지구당까지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뀔 것이다.(이럴 때는 중앙집권제의 유산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게 고맙다) 막말정치로 한국 정치를 4류로 전락케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22대 총선을 그 출발점으로 삼자. 이 대표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으면 한다. 한국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내몰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