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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실 부국장
이수완 논설실 부국장 alexlee@ajunews.com
  • - 아주경제 논설위원
    - 前 로이터 통신 선임 특파원, 편집장
    - 前 서울외신기자클럽회장
  • 크리스마스가 벌써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맘때면 해외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외신기자들은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가 연말연시를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몇 주간의 휴가를 떠나기 시작한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밤중에 뜬금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자유민주국가 대한민국의 정국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면 올해도 연말 분위기가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엄동설한에 국회 앞에선 윤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는 촛불집회 열기가 아직도 뜨거운 가운데 해외 언론은 취재진을 추가로 한국에 보내 정치적 대혼란 사태를 앞다퉈 대서특필 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시선으로 지금의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바라보고 있을까?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하루하루 정국이 숨 막히게 변하고 있다. CNN의 홍콩 주재 선임 특파원인 이반 왓슨은 6일 밤 국회에서 여당 의원들의 집단 불참으로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성립되지 못하는 과정을 라이브로 전 세계에 전했다. 그는 조국혁신당의 김준형 의원에게 질문했다. "Why do you want to impeach President Yoon?" (왜 윤 대통령을 탄핵하고 싶은 겁니까?) 김 의원은 영어로 대답한다. "Because He did violated the constitution. ...He did it (declaration of martial law) for gaining of his political power. And we almost lost the last resort of democracy" (그는 헌법을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의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를 잃을 뻔했습니다). 이어서 CNN 특파원은 가장 핵심적 질문을 던진다. "Who is leading Korea today?" (지금 누가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나요) 김 위원은 "That’s the problem. Officially, He’s still president. But he has no power or non-accountability. Then, If he resigns or impeached, somebody will at least (become) acting president or acting leadership. Now, exactly what you’re saying is right. It’s absence of leadership here" (그게 문제입니다. 공식적으로 그는 아직 대통령이지만,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습니다. 만약 그가 사퇴하거나 탄핵되면, 적어도 누군가는 대통령 직무 대행이나 리더십을 맡게 될 것입니다. 지금,정확히 말하신 대로입니다. 여기에는 리더십이 부재한 상태입니다.) 4일 새벽 국회 진입을 막기 위해 군인의 총부리를 잡으며 "부끄럽지도 않냐"며 일갈하는 더불어민주당 안귀령 대변인 (민주당 도봉갑 지역 위원장)의 대담한 모습은 이번 사태의 가장 결정적 장면의 하나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안 대변인이 군인의 무기를 잡고 몸싸움 하는 모습이 온라인상에 널리 퍼지자 BBC 방송은 그를 찾아가 직접 인터뷰했다. 안 대변인은 BBC에 "총칼을 든 군인들을 보면서 정당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너무 많이 안타깝고 역사의 퇴행을 목도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조금 슬프고 답답하다"고 했다. CNN의 왓슨 선임 특파원도 안 대변인과 인터뷰를 했다. "그 군인이 당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데 무섭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안 대변인은 "사실 저도 사람이니까 좀 두렵고 겁이 났는데, 그래도 그 당시에는 막아야 된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며 "만약에 계엄군들이 여기를 진입해서 본회의장에 가서 국회의원들의 표결을 막는다면, 계엄은 해제되지 못했을 거고…. 저희가 이렇게 만나지도 못했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시대착오적인 계엄이 선포됐다가 6시간 만에 해제된 상황을 두고 열흘 정도가 지났지만 외신들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전시도 사변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남용하며 수많은 반체제 인사를 불법 체포하고 고문하며 용공세력으로 몰았던 과거 어두웠던 군사정권 시절의 아픈 기억을 소환시키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거대 야당의 탄핵소추 남발과 예산안 삭감 문제를 질타하다가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라고 발표했다. 생방으로 담화를 시청하던 많은 국민들은 북한의 도발로 인해 우리의 안보상황이 심각하게 위협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나 하는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는 이젠 잘 알고 있다. 국회의 기능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무장 군인과 헬기를 동원시킨 것은 현직 대통령이라 해도 탄핵은 물론 구속 수사를 피할 수 없다는 상황이 되었다. 영국 가디언의 전 한국 특파원이자 현재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인 마이클 브린은 필자와의 티 미팅에서 "한국과 같이 안정적인 민주 국가의 리더가 국회를 봉쇄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것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고 했다. "만약 북한이 공격하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만일 그랬더라도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은 의외였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신성시 되는데 군인들이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투표를 막으려고 했다는 점은 매우 쇼킹하다"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중형을 받더라도 세계는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필자가 외신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1980년대 군사정권 시대 민주화 시위와 정치적 대격변은 해외언론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휴전선을 따라 대규모 병력을 배치한 남북의 대치상황과 팽팽한 긴장감은 지금이나 그때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판문점에서 가끔 개최되는 군사정전위원회는 한국 주재 외신 기자들이 평양에서 취재 나온 북측 기자들과도 만나 이런저런 궁금한 사항에 대해 비교적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때는 남북간의 경제적 격차도 큰 차이가 없던 시절이었다. 일부 북측 기자들은 북의 체제가 남한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동서 진영의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시기에도 줄곧 외신들은 한반도에 '냉전의 마지막 전선' (The Cold War's last frontier)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국민소득 100달러도 못 되는 세계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일컫는 급속한 산업화를 기반으로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지금은 세계 12위권의 경제강국으로 도약했다. 산업화는 광복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가히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경제력에서 남한의 절대적 우위를 가져왔고 극심했던 민주화의 진통은 있었지만 우리나라를 독재 체제에서 벗어나게끔 했다. 많은 국가들은 대한민국을 독재적 군사정권의 프레임에서 탈피해 빠른 기간에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라고 부러워했다. 세계의 석학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제도에 기반해 이뤄낸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남북한은 분단 전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서로 다른 제도 속에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 격차가 열 배 이상으로 벌어졌다"고 강조했다. 또 이 과정에서 한국은 어려운 민주화 과정을 거쳤고 민주화 달성 이후 성장 속도를 더 높였고 성장 방식도 더 건강하게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북한과의 격차를 벌이며 지금의 한국이 만들진 것이 법치주의가 잘 지켜지고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건전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려 가능했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눈은 크게 달라졌다. K-팝 등 우리의 매력적인 대중문화도 세계를 매혹시키고 있다. 이는 한국 상품 수출 증대로 우리 기업을 살찌우고 있다. 이번 주 한강 작가는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상징 무대인 블루 카펫에 섰다. 많은 국가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늘어날수록 한국으로 들어오는 관광객과 유학생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번 계엄 사태 때문에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을까 두렵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성공을 했더라면 지금 나라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상상하기도 두렵다. 의회 권력을 무력화한 독재자가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짓밟고 고문과 감금이 판쳤던 과거로 역사는 회귀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정치권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수습을 당리당략보다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국정마비 사태가 길어지면 우리 경제는 속절없이 추락할 것이다. 국내외 언론은 14일 예정된 제 2차 윤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분수령으로 주목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불확실성이 길어지는 것이다. 여야 대치가 계속되고, 국민 저항이 확대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저성장과 내수부진에 허덕이는 우리 경제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지게 되어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다가오고 있는데 연말 모임까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주머니 사정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연말 특수를 기대했던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일반인들보다 더욱 힘들 것이다. 'IMF 때보다 힘들다'라는 말이 장사하는 분들의 입에서 오랫동안 들어봤지만 지금은 더욱 실감이 난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힘을 내라는 말밖에 전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자가 진정 누구인지 국민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미국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 중인 최선희 북한 외무상을 예고 없이 만났다. 이날은 러시아 공휴일인 '국민화합의 날'인데 휴일에 특별예우 차원에서 최 외무상을 크렘린 대궁전으로 불러 1분간이나 손을 맞잡은 채 인사말을 주고받는 장면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최근 양국 간 밀착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약 1만명의 병사를 파병한 사실을 아직 공식화하지 않고 있는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내는 "뜨거운 동지적 인사를 최선희 동지가 정중히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중대한 분수령에 섰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동맹국들과의 공조보다는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제로섬' 외교가 4년 만에 복귀하기 때문이다. 선거 기간 트럼프는 자신이 다시 당선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당장 종식시키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복원시키겠다고 공언해왔다. 트럼프는 미국의 최대 주적인 중국을 견제하고 상대하려면 러시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내년 1월 취임 하면 3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전쟁의 종식을 위한 협상을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절친인 푸틴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발다이 토론클럽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하고 트럼프와 대화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역대 최저점"에 있다고 평가했다. 현 바이든 대통령의 재임 기간이 아직 남아 있고 트럼프가 언급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에 대한 발언도 취임 준비 과정에서 어조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구체적인 입장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트럼프와 푸틴의 '브로맨스'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2021년 백악관을 떠난 이후에도 푸틴과 여러 차례 통화해 우크라이나 종전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기도 전부터 서로 경쟁적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들의 속내는 걱정 반, 기대 반일 것이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미국의 동맹들은 자국의 방위를 미국에만 의존하기 어렵게 됐다. 한편으론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협상의 귀재' 트럼프가 유럽 안보를 지킬 것이라는 기대감도 함께 공존한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트럼프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포기하고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으로 '조기 종전'을 압박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푸틴은 7일 포럼에서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나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국으로 남고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 거주민을 대상으로 이 지역 합병을 선언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국 영토를 온전히 지키며 서방에 추가 무기 지원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트럼프와 대화가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한 협상으로 시작된다면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한 북한의 참전은 푸틴에게 유리한 정치적 지렛대를 제공하고 있다. 북한의 지원으로 러시아는 고갈되고 있는 전투 병력이나 지원 인력을 충원해 전쟁의 장기화에도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7월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6월 중순까지 러시아는 개전이후 대략 72만8000~46만2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는 2022년 2월 침공 당시 전체 병력보다 많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전쟁에서 발생한 사상자 수를 넘어섰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도했다. 러시아는 현재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강제동원령은 피하고 징병과 모병을 혼합하여 병력을 운용하고 있다. 미 대선을 코앞에 두고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적 협력을 가속화하며 파병까지 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에겐 엄청난 도박이다. 파병을 결정하게 된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결국은 김정은 정권의 생존과 연관된다.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서방의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고립과 경제난은 장기화되고 있다. 만성적인 식량난에 지난여름 대규모 수해까지 겹치면서 북한 지도부는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정권의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에 파병은 '돈'이다. 북한은 파병 대가로 러시아 측에서 에너지, 식량 등 경제적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정권 유지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의 월남 파병 때처럼 전투 현장에서 실전 경험을 얻을 뿐 아니라 러시아의 고도화된 군사기술과 무기체제를 이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리스크도 크다. 전쟁의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고 북한의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군의 '총알받이' 신세로 전락하고 이 사실이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지면 김정은 위원장의 체제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트럼프의 재선을 예상하고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파병에 합의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파병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전의 길로 치닫게 할 우려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까지 공격하는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확전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가 팽팽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북한제 포탄과 미사일의 공격에 우크라이나군이 심각한 위험에 처한다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사용 제한을 해제해야 할 상황도 올 수도 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20년 유예하고 현재 전선을 동결한 채 비무장 지대를 조성하는 종전 구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재집권에도 불구하고 북·러 간 급속 밀착이라는 변수로 북·미 구도는 제1기 때와 크게 달라졌다. 러시아는 중국의 도움으로 경제파탄 없이 서방의 제제를 이겨내며 지금까지 전쟁을 이끌고 왔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정책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력한 북·중·러 삼각형 연대를 탄생시켰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2018년 싱가포르 회담, 2019년 하노이 회담 등 3차례 만나 양국 간 관계 개선을 위한 북·미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이 중단된 이후에도 이른바 '러브레터'를 서로 주고받으며 우의를 다졌다. 북·미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견해 차이로 특별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지만 그의 집권기간 진행된 남북과 북·미 간 대화는 한반도에 긴장을 완화시키고 한반도에 평화 기조가 정착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의 재선을 크게 반기고 있을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되었더라면 바이든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이 이어지며 북·미 간 대화 창구는 계속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트럼프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김 위원장과 잘 지냈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자신만이 김정은을 다룰 수 있다고 호소했다. 트럼프 2기 북·미 정상회담은 과연 재개될 것인가?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의 전망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더라도 1기 때처럼 북한과 '비핵화'를 주제로 한 협상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됐다. 또한 앞으로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게 북한의 확고한 입장이다. 트럼프에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뿐 아니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긴급한 외교안보적 현안이 산적해 있다. 즉 북·미 간 접촉이 2개의 전쟁이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타진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북한의 파병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 무게추를 한반도로 옮기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설득력이 있다. 트럼프는 3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도록 만든 미 수정헌법 22조에 따라 이번에는 4년 임기를 끝으로 물러나야 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대외 정책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공화당은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장악하게 되었다. 트럼프 2기 외교정책과 국정 동력에 강력한 힘이 실릴 전망이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방어에 미국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유럽 국가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토 회원국들에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을 위해 미국이 지출한 수천억 달러의 비용에 대한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미국의 동맹 중시 외교를 복원시키고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유럽의 무기 지원을 이끌어냈다. 물론 우크라이나에 대한 최대 지원자는 미국이었다. 나토 해체까지 운운하며 방위비의 대폭 인상을 주장하는 트럼프의 재집권은 분명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참전으로 전쟁의 양상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과 대담하면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핵 보유를 전제로 한 북·미 협상의 의사가 있다고 신호를 보낸다면, 또 트럼프 집권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서 러시아에 파병해서 받아내려고 했던 경제적 보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미국에서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김정은은 미국에 이를 요구하면서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군 활동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까지 직접 지원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군의 관여 정도에 따라서 단계별로 우리가 지원 방식을 바꿔나간다"며 "무기 지원을 배제하지 않고, 만약 하게 되면 방어 무기부터 우선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7일 트럼프 당선자에게 축하 인사를 하면서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 문제를 논의했다. 트럼프 당선자의 입장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미 뉴스위크와 인터뷰하면서 "북한이 핵공격에 나선다면 한·미 핵 기반 안보동맹에 기초해 즉각적인 핵 타격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 간 대화의 창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은 헌법까지 개정해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이제는 북에 남한이 하나의 타국이며 제1 적대국이 된 것이다. 북측은 오물풍선을 보내더니 남북 간 연결도로와 철도까지 끊고 군사분계선을 요새화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거나 군대까지 보낸다면 한반도 상황은 어떻게 될까? 이국 멀리에서 남과 북이 나토와 러시아의 대리전을 치르게 된다. 이러한 대리전은 일촉즉발의 한반도로 옮겨갈 수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10%대까지 추락했다. 그의 대북 강경책이 안보적 위기 때문만이 아니라면 정말 큰일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2019년 5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 및 70개 계열사를 거래금지 명단(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중국 정부가 화웨이 통신장비에 해킹도구를 설치해 기밀을 빼간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화웨이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고 인텔, 퀄컴, 브로드컴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과의 거래도 전면 금지되었다. 이듬해 미국은 또다시 중국을 공격한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뿐 아니라 외국 기업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팔려면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을 고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사실상 화웨이에 대한 사망 선고였다. 모든 주력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첨단 반도체 구입이 불가능해진 화웨이는 이듬해(2021년) 매출이 30%나 급감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트럼프 정부의 집중 공격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화웨이의 중저가폰이 중국에서 승승장구 했지만 워낙 삼성 제품이 세계적으로 잘나가던 시절이라 스마트폰 분야에서 그 존재감은 위협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특히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 거세지면서 생사의 기로에 선 화웨이의 부활은 상당기간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최근 기적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화웨이를 전 세계는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화웨이의 부활은 중국의 공급망 대전환 정책의 성공적 사례이다. 미국의 제재를 돌파해내는 기술 자급 노력이 성과를 보이면서 중국 기업과 정책 입안자들은 미국과의 결투에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지난해 화웨이는 매출 7000억원 위안을 기록하며 3년 전 매출 (2020, 8914억 위안)의 80% 가까이 회복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이 지난해 상반기 대비 34% 상승, 2019년 상반기 매출과 비슷한 수준으로 집계되었다. 이렇게 화웨이 매출이 늘어나면서 정상궤도로 진입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가장 큰 요인으로 미국의 집요한 제재에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다른 기업들을 따돌릴 만한 첨단 기술과 제품 개발에 성공한 점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성과는 미국과의 기술패권 전쟁의 첨병으로 불리는 화웨이의 몰락을 막기 위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자립을 위해 조성한 막대한 육성자금이 화웨이의 반도체 자회사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미국 제재를 이겨내기 위한 화웨이의 기술개발 노력과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제재는 화웨이를 중국 반도체 공급망 구축의 중심축으로 이동시켰다. 중국 정부는 2015년 반도체 산업을 10대 전략 산업의 1순위로 선택한 이후 자국의 반도체 자급률을 당시 10% 수준에서 내년까지 70%로 끌어올리려고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에 미국 엔비디아 제품 대신 중국산 인공지능(AI) 칩을 구매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화웨이는 인공지능(AI)용 칩을 새로 개발해 바이두를 비롯한 중국의 빅테크 고객들을 상대로 테스트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든든한 지원 속에 자체 거대 언어모델(LLM) ‘판구 3.0’ 등 AI 인공지능(AI) 생태계 조성을 향해 달리고 있다. 전기차와 전기차 충전 사업에도 진출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선 화웨이는 자율주행 시스템도 대량 상품화해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인 비야디(BYD) 전기차에 탑재할 예정이다. 화웨이 부활 신호탄이 된 5G 스마트폰 '메이트 60'의 깜짝 공개 지난해 8월 말 화웨이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자력으로 만든 5G 스마트폰 '메이트 60'을 깜짝 공개했다. 이 스마트폰에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가 제조한 7나노 공정으로 생산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린 9000'이 탑재되고 OS 역시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하모니(Harmony)가 채택되었다. 네덜란드 반도장비 업체인 ASML이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며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중국에 수출을 금지하자 EUV보다 한 단계 낮은 심자외선(DUV) 장비를 사용해 7nm 반도체를 제조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가 첨단 반도체 기술 및 장비에 대한 규제를 뚫고 7나노미터 반도체 칩을 자체 생산하는 기술자립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지난해 10월 상원 상무위원회 청문회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라고 실토할 정도였다. 지난해 '메이트 60'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화웨이는 올해 9월 16일 미국의 애플이 아이폰 16을 공개한 날에 맞추어 세계 최초로 두번 접는(트리폴드) 스마트폰(메이트 XT)을 출시했다. 메이트 X는 3단 디스플레이를 모두 펼치면 크기가 10.2인치의 태블릿 PC에 준하는 사이즈로 아이폰보다 가격이 2배 정도 비싼 최고가 제품으로 현재 중국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주목을 받는 것은 디자인뿐 아니다. 많은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태블릿 PC의 대체재로 보고 있다. 기업 경쟁력은 고객을 향한 혁신에 달려있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2019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폴더블폰을 출시했을 때 화웨이는 삼성전자를 추월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5년 후인 2024년 화웨이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폴더블폰 시장에서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폴더블폰뿐 아니라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 분야에서도 화웨이는 올해 애플과 삼성을 추월했다. 화웨이가 조만간 출시할 '메이트 70'은 SMIC가 5나노 공정으로 생산한 칩이 장착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미국이 우방과 손잡고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제외시키려고 필사적이지만 화웨이 사태를 겪은 중국은 전혀 휘청거리지 않고 제2차 반도체 굴기에 나서고 있다.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화웨이의 성공에 힘입어 다른 중국 기업들도 트리폴드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프리미엄 휴대폰으로 오랫동안 중국인들의 인기가 높은 미국의 애플은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상반기 애플은 14% 점유율로 화웨이, 샤오미, 비보, 오포, 아너 등 중국산 브랜드에 밀려있다. 중국의 대도시 애플 매장에서 새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매장 앞에서 줄을 서던 열성 팬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있다. 올해 중국 운영체제(OS) 시장 점유율에서 화웨이는 이미 애플의 iOS를 제쳤다. 현재 구글 안드로이드 OS가 중국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화웨이는 스마트폰·PC·자동차 등을 연결하는 하모니의 기본 애플리케이션(앱) 생태계 구축을 통해 안드로이드와 완전 결별을 준비하고 있다. 화웨이의 부활 요인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은 연구개발(R&D)에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투입하는 공격적인 전략을 꼽고 있다. 화웨이는 2022년 실적 보고서에서 전체 매출의 25% 이상인 1615억 위안을 R&D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치다. 전체 직원 20여 만명 중에서 반 이상이 연구인력이다. 자연스럽게 특허건수도 부동의 세계 1위이다.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은 1987년 직원 5명이던 스타트업 기업을 기술과 고객을 중시하는 경영 전략과 뚝심으로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조직중심의 '늑대문화' 화웨이가 중국 '첨단 기술 굴기'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성공 비결로 소위 '늑대 문화'로 불리는 특유의 조직중심적 기업문화를 꼽는 사람이 많다. 5~6년 전 필자는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화웨이를 비롯한 각종 IT 기업들이 밀집해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광둥성 선전(Shenzhen)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여의도 면적의 광활한 캠퍼스에 40여 동의 건물이 위치한 선전의 화웨이 본사를 들렀을 때, 회사의 독특한 경영철학과 인사제도를 소개한 책자인 'dedication(헌신)'을 방문 기념으로 받았다.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 창업자 런정페이는 시간이 지나고 위기가 닥쳐도 '고객 중심'과 '자기반성을 통한 성장' '끈기 있게 싸울 줄 아는 용기와 힘" 등 기업 핵심가치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간부와 직원들에게 '돌격 앞으로'를 계속해서 주문한다. 화웨이의 인사제도를 보면 서구의 대표적 기업들과 비교해도 성과우선주의 색채가 매우 강렬하다. 상시 구조조정이 실시되어 성과가 낮은 직원은 도태된다. 하지만 종업원 주주제를 도입해 직원들의 성과에 대한 보상은 파격적이다. 오래전부터 360도 평가 등 서구적 인사 시스템을 도입해 역동적이고 투명한 기업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모든 간부들에 대한 업무평가표까지 회사 직원들에게 공개되기도 한다. 2004년 여럿의 회사 임원들이 번갈아가며 CEO를 맡는 순환제까지 도입했다. 뛰어난 직원이 무능한 관리자 밑에서 빛을 보지 못하거나 한 사람이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집단의 능력과 지혜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화웨이의 고속성장을 이끈 독특한 기업문화는 우리나라의 70, 80년대 '근면 성실 문화'와 유사한 면도 있다. 최근 중국 베이징의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아들의 동료가 화웨이의 고액 연봉 오퍼를 받아 입사했다가 문화의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금방 퇴사를 했다. 과거와 달리 느슨해진 한국 기업들의 문화에 익숙해 있다가 화웨이의 전쟁터와 같은 치열한 경쟁과 업무 강도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결과였다. 현재 많은 젊은이들이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시대이지만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의 많은 기업들은 미국의 통상 압박과 내부 경쟁 심화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보다 한 발짝 두 발짝 더 뛰면서 경쟁력과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한 수 아래라고만 여겼던 중국 제품들은 가격 경쟁력은 물론 기술 측면에서 한국을 추월한 분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중국은 ‘제조업 최강국’에서 이제는 ‘신품질 생산력’이란 슬로건을 내걸며 국가 전략 차원에서 기업들을 육성하며 미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고 총력전이다. 중국 기업들이 한층 공격적인 경영과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약진'은 우리에게 강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략적 사고의 대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이다. 우리 다음 세대에게 암울한 미래를 물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11월 5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 판도의 최대 변수인 TV토론이 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다. 미국은 1776년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독립 선언문을 채택하고 1787년 헌법을 제정했다. 또 이 헌법이 제정된 9월 17일을 헌법의 날(Constitution Day)로 정하고 영국에 대한 식민지 저항의 중심이자 미 합중국 최초의 수도인 필라델피아에 국립헌법센터를 세워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는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두 달 전 유세 중 피격을 당했던 곳이다.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바통을 넘긴 바이든 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위스콘신, 미시건과 함께 소위 미국 오대호 인근의 쇠퇴한 공업지대, 소위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3대 경합주로 꼽히는데, 펜실베이니아 대의원 숫자가 19명으로 가장 많아 공화당과 민주당의 선거 운동이 가장 치열한 지역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러스트 벨트 백인 저소득층의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해 트럼프에게 패배하며 미 역사상 최초 여성 대통령의 꿈을 접었다. 4년 후인 2020년 바이든은 이 3곳에서 개표 초반 열세를 딛고 역전승을 해 트럼프의 재선을 막았다. 이번 TV 토론이 진행된 필라델피아는 미국 내에서 진보 성향이 가장 강한 곳으로 2020년 선거에서 바이든은 이 한 곳에서만 80% 넘는 몰표를 얻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서재필 박사 등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주요 거점이기도 했던 이 도시는 1990년대 후반 무명배우이던 실베스터 스탤론을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복싱 영화 '로키 발보아(Rocky Balboa)' 무대이기도 하다. 일부 미국 언론은 이번 트럼프와 해리스의 TV 토론을 영화 로키 시리즈 이후 필라델피아가 주최하는 세기의 빅 매치로 부르기도 했다. ABC 방송사가 주관해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100분간 진행된 이번 토론은 결론부터 말하면 날카로운 잽으로 노익장 트럼프를 수세에 몰아넣은 해리스의 판정승이었다. 지난 6월 27일 CNN이 애틀랜타에서 주관한 TV 토론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에 KO승을 거두고 현직 대통령을 대선 후보에서 자진 사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구원 등판한 해리스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전후로 돌풍을 일으키더니 트럼프의 절대적 우위가 점쳐졌던 선거판을 초접전 구도로 바꾸어 놓았다. 지난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에서 트럼프의 유세 도중 발생한 총격이 이번 대선에서 최대 변곡점이 될 것처럼 보였으나 트럼프 캠프는 얼마 되지 않아 해리스를 중심으로 결집한 민주당 지지 세력의 대반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때 해리스는 경합주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기도 했으나 이번 TV 토론을 앞두고는 공화당 지지세력이 다시 결집하며 해리스의 우위가 사라지며 트럼프의 엄청난 회복력을 과시했다. 그리하여 10일 개최된 필라델피아 TV토론에서 우위를 점하는 후보는 남은 대선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전망됐다. 미 CNN 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SSRS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날 토론을 지켜본 등록 유권자의 63%는 해리스 부통령이 더 잘했다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잘했다는 응답자는 37%였다. 상대방 후보가 다르지만 트럼프는 지난 6월 TV 토론 결과와 정반대의 결과를 받은 것이다. 당시엔 토론을 지켜본 유권자의 67%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보다 잘했다고 대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더 잘했다는 응답률은 33%였다. 해리스와 민주당에 더욱 고무적인 소식이 있다면 이번 토론 직후 나온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해리스 부통령 지지 빌표이다. 스위프트는 이날 본인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나는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카멀라 해리스와 (민주당 부통령 후보) 팀 월즈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나는 해리스가 권리와 대의를 위해 싸우기 때문에 그녀에게 투표할 것이고 그것들을 옹호할 전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스위프트는 인스타그램 폴로어만 2억8000만명에 이르는 대형 스타로 그의 지지 선언이 초접전 양상인 이번 선거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지 주목을 끌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낙태, 이민 등 거의 모든 이슈에서 거친 공방을 주고받았다. 전반적으로 트럼프는 해리스의 날선 공격에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며 지난 6월 바이든과 토론할 때 보여주었던 여유 있고 침착한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이번 토론에서 자신감을 얻은 해리스 부통령 측은 트럼프 측에 2차 TV 토론을 제안했다. 바이든 후보의 사퇴로 갑자기 대선 후보가 된 해리스 부통령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칙적 공세와 노련미를 감당할 내공과 준비가 돼 있을지 의문을 갖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TV 토론에서 3차례 대통령에 출마하며 TV토론만 6차례 경험이 있는 노련한 트럼프에게 기세에서도 언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대통령 후보로서 자질과 능력에 대한 검증의 최대 관문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8년 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트럼프에 막혀 이루지 못한 미국 첫 여성대통령 탄생의 역사를 쓰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아직 미 대선의 시간과 변수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트럼프와 해리스의 제2차 TV 토론이 성사될지도 관심사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던 미국 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다음 주 미 연방제도는 기준금리의 인하폭을 고심하고 있다.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 등 2개의 전쟁도 어떤 후보에게 유리하게 전개될지 지켜보아야 한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이번 토론에서 대체적으로 해리스가 선방했지만 팽팽한 선거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녹아웃(knockout) 타격은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해리스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이민 문제에 있어서는 여론조사에서 해리스 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번 대선 토론을 단 며칠 앞두고 트럼프는 그를 괴롭히던 사법리스크에서도 벗어났다. 당초 이달 18일로 예정되었던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의혹' 관련 형사 재판의 형량 선고가 대선 이후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트럼프의 정치적 승리'라고 미 언론은 보도했다. 최대 악재인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면서 막혔던 돈줄이 다시 트럼프 캠프로 몰려들 조짐이다. 트럼프에겐 역공을 펼칠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 문득 로키 발보아가 영화 속에서 던진 대사가 생각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요즘 미국 대선을 보면 한편의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로 향하던 미국 대선이 바이든 대통령의 전격적인 후보 사퇴 이후 민주당 후보로 떠오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돌풍으로 대선판이 한 치 앞도 예상 못하는 안개 속으로 진입했다. 바이든의 사퇴는 고령 논란을 부각시킨 6월의 TV 토론 '참패' 이후 민주당 내 공개사퇴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시점에서 지난달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 중 발생한 총격사건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지난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에서 트럼프의 유세 도중 발생한 총격은 이번 대선의 최대 변곡점이 될 것처럼 보였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를 '언스토퍼블(unstoppable, 멈출 수 없는), '신이 선택한 사람' 등으로 추앙하며 총결집했다. 트럼프가 총알이 귀를 스치는 생사의 기로에서 침착한 모습으로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은 TV토론에서 노쇠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도 연거푸 말실수를 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과 극적으로 대비되었다. 총격 사건 이후 트럼프와 바이든의 지지율 격차가 커지고 트럼프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국민 대통합'까지 외치며 의기양양했다. 이른바 트럼프 대세론이 조기에 굳혀지는 모습이었다. 미국 대선판은 바이든의 후보 사퇴와 해리스 부통령의 급부상으로 인해 이젠 원점으로 돌아간 형국이다. 59세로 나이가 트럼프보다 18살 적은 해리스는 인도계 흑인으로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겸 법무부장관 출신이다. 바이든 대통령에 비해 진보 색채의 인물로 알려진 그녀가 트럼프의 대항마로 부상한 이후 민주당뿐만 아니라 연예계, 청년층, 여성, 유색인종의 표심이 들썩이고 있다. 해리스 캠프에는 지난달 선거자금이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세배 이상 몰렸다. 전국적 지지율도 트럼프와 엎치락 뒤치락 경쟁으로 트럼프 대세론은 한풀 기세가 꺾였다. 물론 해리스가 민주당의 새로운 주자가 결정되는 대형 정치적 이벤트 이후 나타나는 컨벤션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선거자금과 지지율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해리스의 돌풍은 예사롭지 않다.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할 경우 그녀는 8년 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미국 우선주의'를 외친 트럼프에 막혀 이루지 못한 미국 첫 여성대통령 탄생의 역사를 쓰게 된다. 해리스가 여성이자 유색인종이라는 태생적 배경은 이번 선거에서 분명 경쟁력이자 한계로 작용할 전망이다. 2008년 첫 흑인 대통령(버락 오바마)을 배출했던 다원적이며 포용적인 미국 사회가 '흑인 여성' 대통령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됐느냐, 아니면 '트럼피즘'이라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이미 미국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음을 확인하느냐가 이번 선거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해리스 부통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짝 추격하거나 추월까지 하자 트럼프는 해리스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백인 우월주의자'인 트럼프는 최근 "해리스는 내내 인도계 였으나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흑인이 됐다"고 말하는 등 인종주의적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또 해리스를 '급진 좌파'니 ' 마르크스주의 지방검사'라고 부르며 색깔론의 포문까지 열면서 선거판이 혼탁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당연히 공화당 내부에서도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금 트럼프에겐 불필요한 인종차별성 발언이나 색깔론보다는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우려, 이민 문제 등 정책적 승부수로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유권자, 특히 주요 경합주의 부동층 표심을 잡기 위해선 네거티브 전략에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 11월 5일. 앞으로 석달도 남지 않은 미국 대선에서 해리스와 트럼프 누가 승리할지 예측하기는 변수가 너무 많다. 특히 가장 큰 분수령은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트럼프와의 향후 TV토론의 평가일 것이다. 실제로 해리스는 지난 4년간 바이든 행정부에서 제대로 내세울 만한 부통령의 업적이 미약하다. 법조인 출신으로 바이든에 비해 외교 분야 경력이 많지 않다는 것도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바이든이 지난 대선에서 그녀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것은 흑인·아시아계 등 유색인종 여성층의 지지를 받기 위한 전략이었다. 바이든의 후보 사퇴 이후 그녀가 당내 진보층의 결집을 다지는 데 성공하고 있지만 중도층 유권자에 대한 확장성은 아직 의문 부호로 남아있다. 그녀가 TV 토론에서 예상되는 트럼프의 저돌적인 공세를 적절하게 물리치며 '준비된 후보'로서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펼칠지, 또 복지나 환경, 낙태, 이민 문제 등에 대한 급진적인 색채에 대한 중도층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트럼프나 해리스 모두 향후 켐페인은 경합주에 포커스를 맞출 예정이다. 특히, 바이든 vs 트럼프 구도하에서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이내로 나타났던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벨트(rust belt· '세계화'와 '자유 무역'에 타격을 본 오대호 인근의 쇠락한 공업지대)의 표심 공략이 최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이 세곳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이었지만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모두 승리를 거둔 이후 선거 때마다 최대 승부처가 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러스트벨트인 오하이오의 '흙수저' 출신 J.D.밴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낙점했다. 지난 두번의 대선 때처럼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의 중산층 이하 백인 유권자들의 상실감을 집중 공략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해리스는 6일 친서민·노동자 정책을 중시하는 진보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60)를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네브래스카 농촌 출신으로 쾌활한 성격의 백인인 월즈 주지사는 민주당 텃밭인 미네소타에서 6선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2019년부터 재선 주지사로 재임 중이다. 민주당의 전통적 '친노조' 기조를 바탕으로 러스트 벨트 노동자에 다가선다는 전략이다. 다만 해리스가 핵심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조시 셔피로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하지 않은 것을 두고 공화당은 안도하는 모습이다. 지난 대선을 기준으로 애리조나, 플로리다, 조지아, 미시간,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7개주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엇비슷해 7대 경합주로 불린다. 바이든은 애리조나, 조지아,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5개주에서 승리를 거두며 트럼프의 연임을 막았다. 미 주요 언론은 해리스 부통령이 다른 경합주들을 내주더라도 ‘러스트 벨트’ 3곳만 지키면 승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역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곳 중 1곳을 뺏으면 역시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월즈 주지사가 있는 미네소타주는 위스콘신주와 붙어 있다. 밴스 상원의원 지역구인 오하이오주는 미시간주와 펜실베이니아주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vs 해리스'의 대결 못지않게 '밴스 vs 월즈'의 승부도 불꽃이 튈 전망이다. 한 달 전만 해도 '바이든 vs 트럼프'라는 미국민 대다수가 원치 않던 선거구도가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바이든의 후보 사퇴는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다지만 용기있는 큰 정치인의 결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이든은 자신의 후보직 사퇴 결정이 세대교체를 통해 국민 통합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며 해리스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후 민주당은 해리스를 중심으로 진영을 재정비하고 있다. 그동안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를 집중 공격하던 공화당은 선거전략을 다시 고민할 때이다. 잘못하면 그 화살이 트럼프를 향할 수도 있다. 바이든을 염두에 두고 오랜 기간 대선을 준비한 트럼프 진영은 이젠 수세적 입장이다. 특히 검사 출신인 해리스는 물론 트럼프 저격수로 떠오르는 월즈 주지사까지 4개의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를 집중 겨냥할 태세이다. 미 연방 대법원은 지난 5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 추문 입막음 돈 지급' 사건에 대한 재판의 선고를 연기해 달라는 요청을 기각했다. 1심 선고가 예정대로 내달 18일 이뤄질 전망이다. 미 대선판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모디의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UP:Uttar Pradesh)는 인도 북부의 주(州)로 인도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행정구역이다. 인도어로 '북쪽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 우타르 프라데시는 힌두교 신자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갠지스강 상.중류의 대평원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넓이는 한반도 면적과 비슷하나 인구(2억5000만여 명)가 세계 6위의 인구 대국인 브라질보다 많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힌두교인으로 밀과 쌀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1인당 GDP(800~900달러 수준)가 인도의 28개 주와 8개의 연방 직할령 중에서 옆 동네인 비하르(Bihar)주와 함께 가장 낮은 지역으로 꼽힌다. '힌두 민족주의자' 나덴드라 모디 총리는 이곳 우타르 프라데시의 힌두교 성지인 바라나시(Baranasi)가 지역구이다. 어린 시절 길에서 홍차 노점상을 하던 최하층 계급 출신인 모디 총리가 10년 전 총선에서 하원의원으로 처음 당선돼 연방 총리까지 거머지도록 발판을 마련해 준 곳이기도 하다. 당시 총리 등극 확정 후 '힌두 민족주의자'인 모디는 첫 행보로 바라나시 중심부의 유명 힌두사원 카시지슈와니스에서 기도를 한 뒤 갠지스강에 우유를 붓는 종교의식에 참여했다. 그는 "인도가 영적 위대함에 도달했듯 경제강국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2014년 총선에서 모디는 홍차를 팔던 사람이 어떻게 국가의 수반이 되겠느냐는 노골적인 비야냥을 받았지만 고물가와 경제 불황 그리고 부패 스캔들에 지친 유권자는 간디나 네루 왕조의 자제가 아닌 자수성가한 천민 출신 정치인을 선택했다. 구자라트주에서 주 총리를 3번이나 연임하면서 지역경제를 살린 경험을 바탕으로 모디 총리는 과감한 경제개혁과 친기업 정책으로 인도를 눈부신 성장궤도에 올려 놓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세계 10위권 밖이던 인도는 2022년 영국을 제치고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 경제대국이 되었다. 지난해 모디 정부는 독립 100주년(2047년)이 되는 해에 인도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긴 여정을 시작하는 원년으로 선포했다. 모디는 자신의 꿈인 '하나 된 인도, 위대한 인도'를 달성하기 위해선 나라를 '힌두교 국가"로 개조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3연임이 걸린 올해 총선에서 개헌의 마지노선인 362석(3분의 2) 이상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전 포인트였다. 집권 인도국민당(BJP) 정치연합은 2019년 총선에서 개헌선에 9석 모자란 353석을 얻었다 모디 정부는 2019년 무슬림이 다수인 인도 최북단 잠무 카슈미르주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올해 총선을 몇 달 앞둔 1월 22일 모디 총리는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종교 성지인 아요디아(Ayodhya)에서 1992년 힌두 민족주의자 폭도들이 철거한 이슬람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세운 힌두 람사원 개관식을 직접 주도했다.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위해 인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 신자들의 표심을 결집시키고자 하는 정치적인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난 행사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지난 10년간 높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압승을 예상하던 모디 총리에게 굴욕을 안겼다. BJP의 '표밭'이었던 우타르 프라데시는 이번 총선의 최대 이변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BJP는 우타르 프라데시에서 겨우 33석을 당선시켰다. 5년 전에 비해 29석이 감소한 것이다. 모디 정부가 추구해왔던 ‘힌두의 인도’ 건설과 소외계층에 대한 불평등정책을 비판해온 지역 정당인 사마즈와디당(SP)은 BJP보다 더 많은 37석을 확보했다. BJP는 또 다른 '힌디의 텃밭'인 라사스탄에서 5년 전 24석에 비해 10개 의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소위 '힌디 벨트'에서의 참패는 BJP의 의석수가 전국적으로 전체(543석)의 과반에서 32석 모자란 240석에 그치게 된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번 결과는 BJP가 '모디 돌풍'을 일으키며 압승을 거머쥐었던 2014년(282석)과 2019년(303석)에 한참 못 미친다. BJP가 다른 정당과 구성한 여권 연합정치세력인 국민민주연합(NDA)의 의석이 절반(272석)을 넘어서며 모디 총리의 3연임은 가까스로 확정됐지만 힌두교 표밭에서 집권당은 쓴잔을 마셔야 했다. 유권자들은 왜 이곳에서 모디 총리에게 치명타를 날렸을까? 빈부 격차와 '힌두 우선주의' 많은 전문가들은 인도의 빈부 격차 심화와 힌두 민족주의에 대한 반정서를 이유로 들고 있다. 유권자들은 인도의 불평등한 문제 해결보다 힌두 민족주의 의제를 우선시하며 인도 전역을 '힌두의 인도'로 탈바꿈시키려는 모디 총리에게 엄중한 경종을 울린 것이다. 모디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세계 최대 인구 국가인 인도는 높은 경제성장을 거듭해 왔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농민들은 생계가 막막해 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인도의 국제적 모디 정부가 3기에 풀어야 할 많은 숙제를 남겼다. 무엇보다도 성장에 방점을 두었던 기존 정책에서 분배를 신경 쓰는 쪽으로 변화가 예상된다 인도의 빈부 격차 문제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눈부신 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자신이 공저한 에서 2022년 인도 최상위 부자 1%가 인도 전체 소득의 23%를 차지해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22년 이후 최고치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1982년의 6% 수준과 비교하면 부의 격차가 엄청나게 확대된 것이다. 모디 총리는 자신을 농민과 저소득층의 옹호자라고 칭하며 낙후 지역에서 주택 개선과 무료 가스 공급, 화장실 설치 등 각종 지원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지만, 연 7~8%대 고성장에도 자신들은 여전히 소외된 계층이라고 믿고 있는 유권자들의 마음은 얻지 못했다. 특히 농촌 지역으로까지 확대된 디지털 혁신 정책은 우타르 프라데시와 같은 낙후된 농촌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TV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디의 일부 측근을 비롯한 부자들이 경제 고성장과 주식 시장 호황의 열매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그동안 모디 정부는 농산물 가격을 통제해 물가를 잡고 고성장 정책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정책은 농업에 의존하는 인도 전체 인구의 45%가 그들보다 부유한 도시근로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5년 전 201석의 농촌 지역구에서 의원을 당선시킨 BJP는 이번 선거에서 126석만 유지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인도는 올해 말 북부 하리아나(Haryana)주와 중서부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주에서 선거를 치르는데 두 곳 모두 농민들의 입김이 센 곳이다. BJP가 두 곳에서 패배를 한다면 연정 내부에서 모디의 위상은 더욱 축소될 우려가 있다 부의 양극화 문제는 정치적 안정과 제조업 육성을 통해 고성장 드라이브 정책을 펼치려는 모디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8억명이 넘는 농민과 빈곤층의 생활고를 해결하는 문제가 당장 모디 3기의 주요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또 대기업 중심 성장 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날지도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모디의 경제정책은 1970~1980년대 한국의 성장 모델과 유사했다. 즉, 릴라이언스, 아다니, 타타 등 5대 대기업 집단을 중심 지원해서 단기간에 경제를 육성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들이나 정부와 연줄이 없는 민간 기업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최근 인도 경제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다고 해도 GDP는 중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중국과 달리 인도는 향후 30년 이상 인구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가 과거 중국이 누렸던 인구 보너스 효과를 누리며 고성장을 이어가려면 극빈층 생활고와 청년 실업난 해소를 통한 정치적·사회적 안정은 필수이다. 중국의 경우 개혁·개방에 시동이 걸린 1980년대 전체 인구의 90%가 극빈층(하루 생계비 2달러 안팎)에 속했으나 2020년 전후로 공식적으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힌두 우선주의'로 인한 종교적 갈등은 내부적으로 사회적 불협화음의 씨앗으로 인도의 지속적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이번 선거 결과로 입증이 됐다. 외부적으로도 인도라는 다원적 민주주의가 일궈온 그동안의 평판을 훼손시킨다. 이번 선거는 눈부신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인도 경제의 어두운 그늘을 들추어낸 선거였다. 남아시아 국제정치 분석가 T. V. Paul은 최근 저서 에서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글로벌 파워로 도약을 꿈꾸는 인도 지도자들의 성공과 실패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세계 5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인도가 소프트웨어나 의약품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GDP의 1% 미만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면서 기술혁신 분야에서 중국이나 다른 국가에 크게 뒤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어서 중국과 달리 대규모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제조업보다는 고용 효과가 미미한 서비스 분야가 발전한 인도 경제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현재 인도의 25세 이하 젊은이 중 거의 반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총선 선거 결과 불안해진 '모디노믹스'의 동력이 다시 힘을 받아 고도 성장을 견인하려면 모디 총리는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맞서 해결해야 한다. 집권 1·2기 때와는 달리 모디 3기의 정치적 입지는 축소되고 정책적 불확실성은 커졌다. 그러나 모디는 카리스마가 강한 백전노장의 정치인이다. '힌두의 인도'에 대한 야망은 뒤로하고 경제 발전과 사회복지 향상을 위해 국력을 결집시켜 나가면 인도를 선진 민주주의 경제대국으로 변모시키려는 그의 꿈은 실현될 것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지각 대장' 푸틴, 방중 땐 '얼리버드' 지난달 5기 임기를 시작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외 활동이 부쩍 분주해졌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서방 제재에 부닥쳐 자칫 국가부도의 위험에 몰릴 뻔했다. 작년 6월 러시아의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켜 모스크바로 진격할 땐 푸틴은 가장 믿었던 심복이 자신의 등에 칼을 꽂는 것처럼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당시 일부 외신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후폭풍으로 1999년 시작된 푸틴 체제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푸틴은 올해 3월 러시아 대선에서 압도적인 득표율(87.8%)로 당선되었다. 2030년까지 권력을 연장하고 '현대판 차르(황제)'로서 종신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선거를 통해 '우크라이나 특수군사작전' 수행에 대한 자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확인한 푸틴은 첫 해외 일정으로 외교 수립 75주년을 맞은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세계 정상들과 회담할 때 자주 늦게 도착해 '지각 대장'으로 유명한 푸틴 대통령은 베이징 공항에 전용기로 꼭두새벽에 도착해 당일(5월 16일) 아침부터 밤까지 시진핑 국가주석과 12시간 이상을 함께하며 정상 간의 우의를 다졌다. 푸틴의 방문에 앞서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을 3년째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군은 북동부 전선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며 기세를 올렸다. 푸틴이 미국과 서방 세계에 보내자고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중국은 앞으로 우리의 뒷배를 확실하게 책임질 것이다." 과연 푸틴의 바램대로 중국은 러시아의 든든한 파트너이자 후원자로 계속 남을 것인가? 한국전쟁 이후 중국과 적대적 대립관계였던 미국은 1970년대 탁구 경기를 통한 이른바 '핑퐁외교'로 양국 관계를 개선하고 1979년 대만 단교와 함께 중국과 수교를 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했고, 중국은 죽의 장막이라 불리는 고립주의를 타파하고 국경분쟁으로 관계가 악화된 소련에 대한 견제가 필요했는데, 미국의 전설적인 외교 전략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이런 상황을 적절히 간파해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주도했다. 결과적으로, 냉전시대 국제질서는 급속도로 재편됐다. 미·중 간 해빙과 밀착으로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던 소련은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련 붕괴이 후 중국은 개혁·개방에 속도를 내며 미국을 위협하는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현재 중국은 군사력은 몰라도 경제력에서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의 GDP보다 9배를 넘는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대외정책 역량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쏠린 틈을 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했다. 러시아의 '숨구멍'이 된 중국 중국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미국과 유럽의 동맹을 결속하게 만든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겉으로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방의 제재로 고립된 러시아에 '숨통' 역할을 했다. 미국과 유럽은 동시다발적인 제재를 가했지만 중국은 러시아의 뒷배가 되어 서방의 제재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서방이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를 취하자 중국은 유럽을 대체하는 러시아의 최대 에너지 수입국이 되었다. 또 중국 기업들은 러시아에 '이중용도' 물품을 수출하면서 전쟁을 지속할 동력을 제공했다. 이중용도 상품이란 현대전 수행에 필수인 반도체 칩이나 공작기계, 광학장치 등 민간용으로 제조되었으나 군사적인 용도로 전용될 수 있는 상품을 일컫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예상된 시나리오와 달리 장기화되면서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는 러시아의 취약한 경제는 전쟁 수행에 최대 걸림돌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중국과의 교역 확대로 경제적 안정을 찾고 장기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중국은 서방과의 관계 파탄을 우려해 러시아에 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고 있지만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적어도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은 막으려는 심산이다. 사실, 중국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얻는 것이 많다. 서방 기업이 대거 철수한 러시아 시장에 중국 기업과 제품이 몰려가고 있다. 원유시장에선 판로가 막힌 러시아산 원유를 중국은 국제시세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도입했다. 지난해 전 세계적인 수요 부진 때문에 중국의 전체 무역액은 5% 정도 감소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은 전년보다 26.3% 증가한 2401억 달러에 달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이후 러시아는 국제 자금 이동망인 스위프트(SWIFT)에서 축출된 이후 양국 간 무역 결제를 달러화 대신 루불화와 위안화로 하면서 서방의 제재를 피해 나갔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러시아에서 원유를 1억702만톤 수입했다.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중국의 최대 원유 공급국이 된 것이다. 중국 정유사들은 서방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중개무역업자를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원유를 팔고 받은 위안화로 수입이 금지된 자동차나 생필품을 중국에서 대량으로 구매했다. 지난해 러시아는 전시경제 체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국민들의 일상적 경제활동은 큰 문제가 없었다. 고용과 소비수요 등 경제의 각 부문은 되레 살아났다. 전쟁 초기 거셌던 반전 여론도 수그러들었다. 미국의 제재 위협에 중·러 무역 위축 기미 중국과 러시아 간 무역 거래 급증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양국 간에 통화 결제 시스템을 구축한 덕분이다. 푸틴은 시 주석과 회담하면서 양국 간 모든 결제대금 중 90%가 위안화와 루블화로 이뤄지고 있다며 "자국 통화로 결제하기로 한 러시아와 중국 당국의 시기적절한 결정이 무역을 강화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은 러시아 제재 회피를 차단하기 위해 러시아 군산복합체와 거래하는 제3국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세컨더리 제재(제3자 제재) 시행에 들어간 바 있다. 미국은 이어서 러시아가 군용으로 전용할 수 있다고 의심되는 '이중용도' 상품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대러시아 무역거래를 지원하는 대형 중국 은행에 대해 제재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 움직임에 중국 은행들은 최근 대러시아 무역거래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양국 간 교역은 올해 들어 크게 위축되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의 대러시아 수출 상승세가 둔화되더니 지난 3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 가까이 감소했다. 러시아가 위안화를 중국에 송금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러시아는 지난 4월에도 중국산 장비의 수입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푸틴은 이번 방중에서 급증하는 대중국 무역에서 결제하는 화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은행 총재와 국영은행 CEO까지 대동했다. 특히 이번 방문에서 관심이 집중됐던 러시아산 가스를 중국에 연간 500억㎥ 수송하는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계약은 체결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요구한 가스 공급량과 단가에 대해 러시아 입장에서는 무리한 수준의 요구를 한 것이 계약 불발의 이유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시베리아의 힘2' 관련 협상에서 보인 강경한 태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얼마나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고 FT는 분석했다. 푸틴은 서방의 경제 제재를 이겨내고 러시아의 안정과 발전을 계속 도모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미국과의 패권경쟁에서 레버리지로 사용하고 있다. CNN 등 주요 서방 언론은 푸틴은 시진핑과의 이번 회담에서 2022년 체결한 양국 간 ‘제한 없는’ 파트너십 협정에 대한 실질적인 결과물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거창한 수사에도 구체적인 공약은 거의 없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푸틴은 이중용도 품목을 포함해 전쟁이나 방위산업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바라고 있지만 시 주석은 서방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서 러시아와 최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경제학자 출신 러시아 국방장관 푸틴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기 직전 자신의 최측근 군부 인사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주도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해임하고 그의 후임에 러시아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제1부총리인 안드레이 벨루소프 박사를 임명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국방장관 교체 배경에 대해 "현재 러시아 상황이 군사비 지출이 크게 늘었던 1980년대 중반 옛 소련과 비슷해지고 있다면서 이 분야 지출을 국가경제 전반에 더욱 부합하게 해줄 민간인을 국방장관 후보로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의 등장은 푸틴이 장기화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패가 병력과 자원 동원력, 또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의 버티기 싸움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푸틴은 중국 방문에 이어 장기화로 치닫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할 우군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 기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푸틴을 '폭군' 히틀러에 빗대어 공격했다. 기념식에 초청받지 못한 푸틴은 대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 볼리비아와 짐바브웨 대통령 등 각국 인사를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러시아의 전술핵이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핵폭탄보다 서너 배 강력하다며 미국과 유럽에 으름장을 놓았다. 안타깝지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과 서방의 의지는 점점 식어가는 모습이다. 현재 연간 1000억 달러 정도인 서방의 지원 규모로는 우크라이군이 푸틴의 군대를 격퇴시킬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20% 정도를 잠식했다. 현재 푸틴은 북동부 지역에서 승기를 잡아가며 현재의 전선을 기반으로 종전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아마도 그는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하며 우크라이나 사태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하고 싶어할 것이다. 1970년대 중국과의 수교 협상 과정에서 키신저는 "지금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손을 잡지만, 언젠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소련(러시아)과 손을 잡아야 할 날이 올는지 모른다"는 말을 남겼다. 세계의 역사가 키신저의 말처럼 흘러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두 가문의 전략적 동맹 지난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66)을 ‘2024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그는 부패와 독재, 야당 탄압에 항거한 1986년 '피플 파워' 혁명으로 축출될 때까지 20년 넘게 장기 집권했던 악명 높은 지도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외아들로 2022년 대선에서 필리핀 1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무려 60% 득표에 가까운 압도적인 승리였다.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맏딸 사라 두테르테(45)는 한때 유력한 대권 후보로 떠올랐지만 결국 마르코스 주니어의 러닝 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북부 루손 지역의 대표적 정치 세력인 마르코스 가문과 남부 민다나오의 비사야를 대표하는 두테르테 가문의 전략적 동맹으로 차기 권력 분점까지 노린 포석이었다. 두테르테 가문의 지원에 힘입어 대권을 거머쥔 마르코스 주니어는 중국에 몸을 낮추었던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외교노선을 어느 정도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선거 기간 그는 두테르테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모색한 것을 두고 선경지명이 있었다고 평가를 하기도 했다. 당선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도 "미국을 끌어들이면 중국을 적으로 만든다"며 외교정책 전환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바이든 대통령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이후 양국 간 동맹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에는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사상 처음 3국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3국은 중국과 영유권 분쟁으로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해상안보 위협에 공동 대응하고 필리핀 북부 지역의 인프라 개선과 공급망 구축 등 경제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미국 주요 언론은 3국의 안보협력 선언을 두고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구축 중인 '격자형(lattice-like)' 견제망이 완성됐다고 분석했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재임 기간 미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두테르테와 달리 중국 대신 미국을 최우선 순방지로 택해 필리핀의 외교적 전통을 부활시켰다. 그는 대만 코앞에 있는 필리핀 군사기지 4곳에 대한 접근과 사용권을 미국에 추가로 허가하고, 양국 간 합동훈련도 실시했다. 일본과는 자위대 훈련 동참과 파견 협정까지 추진하고 있다. 또 두테르테 재임 기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합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관련 '밀약'을 문제 삼아 진상 규명을 공언하고 있다. 반면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지난해 7월 시 주석과 만나 자신은 양국 간 우호협력을 추동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미국에 필리핀은 지정학적으로 중국 견제를 위한 필수적 요충지다. 과거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 마르코스 독재정권의 부패와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데 앞장선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이다. 남중국해에서 '9단선'이라는 가상의 바다 경계를 쳐 놓고 주변 국가를 위협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이곳의 자유통행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자간 안보협력체제를 강화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에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타임지는 마르코스 주니어를 '2024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면서 그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침략에 확고히 맞서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지역과 전 세계 긴장 고조에 대응해 미국과 동맹을 강화해왔다”고 소개했다. 필리핀 대선은 전통적으로 지역 엘리트 간 연합이라는 지역 구도가 중요한 요소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아버지는 1965년 마르코스 내각에서 행정비서관을 지낸 정치적 동지로 두 가문은 오래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우파' 성향인 마르코스 가문과 '좌파' 성향의 두테르테 가문은 물과 기름의 조합이다. 전략적 동맹으로 지난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지만 최근엔 외교 노선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감한 개헌 문제에서까지 충돌하면서 필리핀 정국이 술렁이고 있다. 특히 내년 상·하원 선거와 지자체장을 뽑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양측은 각자 지지 기반 구축에 나서면서 균열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대통령의 6년 단임 제한을 4년 중임의 내각제로 헌법 개정을 추진하려 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마르코스 주니어 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늘린다는 명분 아래 개헌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국내 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을 40%로 제한하는 현행 헌법은 글로벌 시대에 필리핀의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마르코스가 그의 선친처럼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헌은 1억1000만 인구의 필리핀에 매우 민감한 문제다. 필리핀은 원래 4년 중임의 대통령제 였으나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계엄령과 헙법 개정을 통해 1986년까지 21년간 장기 집권했다.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으로 제한하는 현행 헙법은 1987년 제정되었다. 2028년 대선에서 자기 집안에서 대통령을 배출하고 싶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에게 마르코스의 개헌 추진은 자신의 야망에 최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만다나노 분리독립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자신의 정치적 본거지인 민다나오 최대 도시 다바오시에서 열린 개헌 반대 집회에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을 마약 중독자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마르코스 주니어 정부가 집권 연장을 위한 개헌을 추진한다면 민다나오 지역을 분리 독립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필리핀 정부는 2월 4일 에두아르도 아노 국가안보보좌관 명의로 성명을 내고 어떤 분리 시도라도 단호한 힘으로 맞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남한 면적과 비슷한 민다나오는 필리핀에서 둘째로 큰 섬으로 '모로'라고 불리는 필리핀 무슬림 토착민들이 가톨릭 문화권인 필리핀 정부에서 자치·독립하겠다고 요구하면서 정부군과 무력충돌이 빈번한 지역이다. 오랜 내전으로 빈곤율과 밤죄율이 가장 높은 이 지역에서 두테르테는 검사로 활동하며 초강력 범죄와의 전쟁으로 명성을 높이다가 1988년 다바오 시장에 당선됐다. 지난 1월 집회에서 현 다바오 시장인 두테르테 대통령의 차남 세바스찬 '바스테' 두테르테는 마르코스 대통령에 대해 "일에 집중한다기보다는 정치와 자기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며 "국가에 대한 애정과 열망이 없다면 사임하라"고 촉구했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두테르테 가문의 맹공격에 대해 무대응에 가까운 수세적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자신을 마약 중독자라고 비판한 두테르테 전 대통령에 대해 해당 발언이 두테르테 대통령이 수년 전 마신 "페나닐 부작용 때문"이라며 "의사들이 그를 잘 돌봐주길 바란다"고 맞받아친 것 외에는 전직 대통령과 정면 대결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 국내외 언론들은 마르코스의 이러한 미온적 대응에 대해 그가 성격이 너무 유해서 그렇다고 분석하다가도 아마도 지난 대선 때 두테르테 가문에 진 '빚'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한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세부시에서 열린 집회에서 자신이 개헌을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새 헌법이 현 대통령의 재출마를 금지한다면 개헌에 찬성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루손 회랑 마르코스 대통령은 미국·일본과 3국 협의를 통해 안보와 경제 지원을 얻어냈다. 사실 3국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안보적 측면에서 협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마르코스는 국내에서 이번 회담의 경제적인 성과를 홍보하고 있다. 필리핀에 대한 수십억 달러의 투자 유치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른바 '루손 회랑'은 필리핀 주요 지역을 연결해 철도와 항만 현대화, 에너지·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통해 중국이 동남아에서 공들여온 '일대일로' 구상에 맞불을 놓는 성격이다. 마르코스가 현재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안보 협력 대신 경제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실제로 마르코스 정부는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과 비행기로 3시간 이내로 연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필리핀을 아세안의 제조업과 물류 허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공급망을 전쟁 위협이 있는 대만이나 중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필리핀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필리핀은 배터리 제조에 필수인 니켈을 2023년 기준 전 세계에서 둘째로 많은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마르코스의 친미 행보 배경엔 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향후 두 가문의 대립과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 딸이자 현 정부의 부통령 겸 교육부 장관인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과 한 배를 타고 있는 처지다. 더욱이 사라 두테르테는 현재 차기 대권 주자로 언급되는 인물 중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으로서는 필리핀 정가의 '떠오르는 별' 사라 두테르테를 적당히 견제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녀와 관계 복원이 불가능한 엄청난 균열이 생기는 것도 두려워할 것이다. 최악에는 마르코스 주니어가 36년 전 축출된 아버지의 비극적 운명을 이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22년간 다바오 시장직을 7차례 연임하면서 사병부대인 다바오 척살대(Davao Death Squad)를 동원해 무법 천지였던 도시를 범죄 없는 상업도시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마약사범 수천 명이 경찰에 사살되고 무고한 시민들까지 불법 체포되어 희생되자 국제 인권단체들이 심각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두테르테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부 처리되어 필리핀 북부 고향에 안치돼 있던 마르코스 전 대통령 시신을 국립묘지에 안장시켜 주기도 했다. 사실상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복권을 승인한 것이며 독재자 가문 간 정치적 동맹이 이때부터 본격 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지난 선거에서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젊은 유권자를 집중 공략함으로써 선친의 집권 시절 어두웠던 필리핀 역사를 교묘하게 지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두테르테 가문의 주장처럼 마르코스 주니어가 차기 대권이 두테르테 가문에 넘어가는 것을 막고 자신의 집권 연장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면 양측 간 정면 충돌은 불가피해지고 필리핀 정세는 급격히 불안해질 수 있다. 특히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중국과 충돌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두 가문 간 충돌은 필리핀 경제와 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크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국내외 수많은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세계는 주시하고 있다. 특히 미·중 간 전략적 경쟁 사이에서 장기적으로 국익에 부합하는 외교와 안보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그의 행보에 관심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자유 민주주의의 거대한 실험장 오는 19일 한 달 반 일정으로 인도 총선이 막을 올린다. 최근 중국을 제치고 인구 1위 국가로 올라선 인도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로도 불린다. 1947년 200년 가까운 기나긴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후 헌정 중단 사태 한 번 없이 선거를 통해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그리하여 인구 14억명의 인도는 자유 민주주의의 거대한 실험장으로 불린다. 10년 전 나렌드라 모디 정권이 출범한 이후 힌두 근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그의 강력한 리더십과 눈부신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글로벌 경제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모디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할 경우 그는 현대 인도의 ‘국부(國父)’ 격 인물이자 1대 총리를 지냈던 자와할랄 네루(1889~1964)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록을 갖게 된다. 인도는 5년마다 치르는 총선에서 록사바(Lok Sabha)라고 일컫는 하원 의석수(534명)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총리를 배출한다. 이번에도 직전인 2019년 선거 때처럼 광활한 전 국토를 7개로 나누어 100만여 개 투표소에서 순차적으로 실시된다. 개표 결과는 6월 4일 일제히 발표된다. 유권자 수는 유럽연합(EU) 전체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은 9억6900만명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선거를 공정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그만큼 비용도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인도 선거법은 유권자가 있는 장소의 2㎞ 이내에서 투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선거 관리와 안전 요원은 산골 오지와 도서 지역까지 장거리 이동에 나서야 한다. 2019년 선거 땐 공무원 1500만명이 동원되었고 정당들은 70억 달러(약 9조4700억원) 이상을 지출했다. 올해 선거 비용은 직전 선거보다 두 배 이상에 달할 것이라고 주요 언론은 예상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자신의 3연임을 확신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지난달 각료 전체회의를 소집해 총선 이후 100일 국정 운영의 우선 과제까지 논의했다. 그가 승리를 자신하는 근거는 수년째 70%대를 유지하는 콘크리트 지지율과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에 몰리는 막대한 정치 후원금이다. 그동안 모디의 고성장·친기업 정책에 수혜를 입은 인도 대기업들은 집권당에 정치 자금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미·중 관계 악화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공급망 재구성도 인도에 유리한 환경이다. 무려 3800㎞의 국경을 맞댄 이웃 나라인 중국에서 자본 유출을 걱정할 정도로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반면 새로운 수출기지로 떠오르는 인도에는 외국인 투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4년 모디 정부 출범 이후 인도 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시가총액은 무려 3배로 늘어났다. G20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인도의 경제 규모는 모디 정부 출범 당시 세계 11위에서 지난해 영국을 제치고 5위로 올라섰다. 이대로 가면 5~6년 후엔 독일과 일본을 추월해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대 경제대국이 될 전망이다. 모디의 3연임을 낙관하는 모건스탠리와 JP모건체이스 등 서방의 주요 투자은행들은 인도에 대한 주식과 채권 비중을 적극 늘리고 있다. 만에 하나 모디 총리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인도 주식이 25% 이상 폭락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등장하고 있다. 1950년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바드나가르에서 태어난 모디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버스터미널에서 전통차와 빵을 팔던 가난한 소년으로 자랐다. 하층 카스트 출신인 모디는 21살 때인 1971년 힌두민족주의 단체인 민족의용단(RSS)에 가입해 빈민층을 위한 사회운동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최고의 '인생 역전 드라마'를 써나간다. 그는 1980년 RSS를 기반으로 조직된 정당인 BJP에 가입해 2001년 구자라트주에서 총리로 선출된 모디는 강력한 개방정책을 펼치고 도로, 용수, 전력 등 집중적인 인프라 개선에 나서 국내외 기업들이 구자라크주에 몰리게 했다. 그가 취임한 이후 13년간 구자라트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3%로 인도 평균 성장률의 두 배에 이르렀다. 중앙 정치의 관심을 받던 그는 '모디 돌풍'을 일으키며 2014년 하층 카스트 출신으로는 처음 인도 총리에 올랐다. 10년의 명암 지난 10년간 모디 총리의 국정 수행 기록을 살펴보자. 우선 도로와 철도 공항 등 인프라 개선과 세제 개혁을 통해 서비스 분야에 비해 취약한 제조업 발전 기반 마련에 착수했다. 인도 28개 주에 난립해 있던 10여 개의 간접세를 상품·서비스세(GST)로 통합해 인도 시장의 복잡한 세제를 단일화했고 동시에 세수와 공공지출 확대 기반을 마련했다. 그동안 주민등록 제도가 없어 신분 증명이 어려웠으나 생체인식 정보 기반인 아다르 카드 도입을 통해 디지털 경제와 현금 없는 신용사회로 신속히 탈바꿈시켰다. 게다가 낙후된 농촌 지역에는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어 주민들 삶이 크게 바뀌고 빈민층을 대상으로 무료 식량 배급과 주택, 건강보험 제공 등 사회복지사업도 크게 늘렸다. 하층 카스트 출신으로 그의 서민적 이미지에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정책이 확대되며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모디 정부가 자랑하는 눈부신 고성장 업적 속에는 어두은 그림자도 숨어 있다. 2016년 그가 부정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실시한 무리한 화폐개혁과 2020~2021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 실시한 강력한 록다운(봉쇄) 조치로 인도 경제는 대혼란을 겪기도 했다. 인도가 고성장의 길을 걸으며 소비력을 갖춘 중산층이 늘어나고 해외 기업들이 그들을 공략하기 위해 인도 시장에 몰려오는 가운데 전통적인 부의 세습과 양극화 문제는 사회 안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인도 전체 인구 중 90%는 연 소득이 3500달러 이하 수준이다. 인도 경제 발전의 메인 동력은 정부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는 대기업 집단과 소수의 부유층이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는 모디가 자랑하는 인도의 경제적 성과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미미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디에게는 국가 리더에게 필요한 특별한 무엇이 있는 듯하다. 힌두 민족주의자 특유의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화려한 쇼맨십을 무기로 국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계속 제시하며 인도의 복잡한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풀어나간다. BJP는 2014년 총선에서 '모디 돌풍'에 힘입어 놀랍게도 절반이 넘는 282석을 차지하며 집권했다. 5년 후인 2019년에는 303석을 차지하며 30여 년 만에 인도 단일 정당으로서 최다 의석을 차지했다. 2019년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압승을 거둔 것은 국가 안보에 대한 모디 정부의 단호한 대응 때문이었다. 선거 직전 파키스탄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서 인도 경찰관 40명이 이슬람 무장단체 공격으로 숨지자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 공습을 단행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3차례 전쟁을 치렀고, 핵전쟁 직전까지도 갔던 파키스탄에 대한 응징은 모디를 결단력 있는 인물로 부각시키고, 선거의 주요 이슈를 경제 둔화에서 안보로 전환시켰다. 갑부들의 정치적 후원금이 대거 몰리는 BJP는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충성도가 매우 높은 당원들의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국내 언론은 대부분 모디 정부에 길들여져 고분고분해졌다. 인도 전역에 걸쳐 신문이나 TV 광고는 모디 총리 얼굴과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다. 여당은 지난해 뉴델리에서 G20 정상회의를 주재한 모디 총리를 '세계의 스승(Vishwaguru)'으로 선전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BJP를 주축으로 한 중도우파연합 '국민민주동맹(NDA)'은 이번 총선에서 전체 534석 중 약 70%에 달하는 최소 378석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BJP의 현재 의석수(303석)를 훨씬 웃돈다. 앞서 BJP는 자체 의석수로 370석, NDA의 의석수 400석을 목표로 세운 바 있다.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당(INC)는 '간디-네루' 가문이 지배해온 정당으로 2014년 모디의 거센 돌풍 앞에서 겨우 44석을 얻는 데 그쳤다. 야권은 지난해 INC와 26개 정당이 뭉친 '인디아'가 결성되었으나 이번에도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말리카르준 카르게 (Mallikarjun Kharge) INC 총재(80)는 상원의원과 장관을 지낸 베테랑 정치인이지만 모디 총리의 대중적 지지와 견주지 못한다. 그는 최근 선거 유세에서 "BJP가 다시 집권하면 모디의 독재가 늘어날 것"이라며 "민주주의는 무너질 것이며, 모디는 러시아에서 푸틴이 하는 것처럼 나라를 운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모디 아니면 누구?"라는 인식이 관망자적 유권자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 ‘성장의 인도’ ‘강한 인도’ 모디 정부는 지난해 독립 100주년(2047년)이 되는 해에 인도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긴 여정을 시작하는 원년으로 선포했다. ‘성장의 인도’를 바탕으로 ‘강한 인도’ 건설을 추구해온 모디 정부는 국방 예산을 대폭 증액하며 군사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외교적으로 사안별로 동맹을 추구하는 신(新)비동맹 정책으로 인도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모두에게서 구애를 받고 있는 귀하신 몸이다. 또 전 세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글로벌 사우스'의 맏형 격으로 우뚝 서 있다. 오는 1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될지라도 인도에만큼은 관계를 악화시킬 만한 일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인도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대상으로 꼽히는 이유다. 지난달 11일 모디 총리는 지지층 결집을 위해 반(反) 무슬림법으로 비판받는 '시민권 개정법(CAA)'의 전격 시행에 들어갔다. 2019년 법안 통과 후 인도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이슬람교도의 거센 반발로 4년 동안 시행이 미뤄졌지만 총선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실시된 것이다. 얼마 전엔 수도 뉴델리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부패 혐의로 야당 인사들이 체포되자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모디 총리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힌두 민족주의’가 ‘전체주의’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지만 모디 총리의 3연임을 가로막지는 못할 전망이다. 최근 미국 퓨리서치(Pew Research) 센터가 밝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80% 넘는 인도 국민들은 모디와 같은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선호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과 통치 스타일이 다르지만 모디는 네루 총리 이후 인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조 바이든 대통령(81)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운명의 리턴매치를 준비하고 있다. 그의 기억력 문제를 제기한 특검보고서를 계기로 고령 리스크가 선거의 주요 이슈로 재부각되자 백악관은 지난 주 실시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건강검진 결과를 언론에 알리며 대통령 직무수행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과 치매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의 선거 캠프는 현 행정부의 정책적 성과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외교.안보 정책의 베테랑답게 바이든 대통령은 자유주의 동맹국들과의 연대 복원에 힘쓰고 미 의회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분야 성적표도 높은 물가를 제외하면 내세울 만하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해 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서도 경제 지표가 전반적으로 나름 견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미국 경제의 최대 골칫거리인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목표치 2% 아래로 아직 내려가지 못했지만 꾸준히 둔화하고 있다. GDP 성장률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팬데믹 이후 깜짝 회복세를 나타냈다. 고용시장도 놀라울 정도로 강세이고 주가도 신기록 경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경제의 고공행진은 바이든에 대한 대중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팬데믹 국면을 거치면서 미국인들은 정부가 쥐어준 현금 지원으로 가계는 막대한 저축을 보유하게 되었다. 연준이 2년이 채 안되는 기간 금리를 0~0.25%에서 5.25~5.5%까지 인상하면서 그동안 풀린 엄청난 돈을 회수하고 인플레이션 잡기에 나섰지만 미국인들의 소비 여력은 위축되지 않고 있다. 연준의 통화 긴축으로 건설 투자와 산업생산 위축 등 경기 하강 압력이 커졌지만 미 고용시장의 견고함은 전문가들도 어리둥절하게 만들 정도이다. 지난 1월의 신규고용은 35만3000명으로 시장 예상을 압도했다. 실업률은 올해 1월 3.7%로 집계되고 지난 2년동안 지속적으로 4%를 하회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경제는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 조치에 침체 국면에 빠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이 빗나가며 고도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상무부는 최근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3.2%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작년 3분기 성장률인 4.9%보다 둔화했지만 로이터의 시장 추정치 평균인 2%를 크게 웃돌았다. 올해 1분기는 4.2%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인 경제 회복 체감 못해 데이터 상 미국 경제의 이러한 강력한 모습을 일반 국민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일련의 금리 인상 조치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잡히지 않는 고물가와 주택시장의 침체 등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고령에 따른 기억력 문제가 최대 리스크로 부각된 상황에서 경제 상황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지속되면 바이든 대통령에게 치명타가 된다. 현재 공화당 경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듭하고 있는 트럼프는 바이든의 '치매 리스크'와 경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바이든과의 가상 대결에서도 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수많은 범죄 혐의에 형사 기소된 트럼프 대통령이 안고 있는 '사법 리스크'도 재판의 진행 결과에 따라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아직 대선이 8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미국 경제의 향후 움직임, 특히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잠잠해지고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신규채용 등 고용시장 데이터까지 현재의 견고함이 유지되고 트럼프가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다면 이번 대선의 향방은 누구에게 유리할지 쉽게 점칠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놀라운 실업률 데이터는 현재 미국 경제의 양호한 상태를 알려주는 여러 지표들 중에서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 미국의 대표적 상장 기업을 추종하는 S&P500 지수는 기록 경신을 거듭하면서 근로자들의 401k 퇴직 연금 계좌도 두툼해지고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은 경제가 나쁘면 지나치게 비난을 받고 경제가 좋아질 경우 충분한 찬사를 받지 못한다는 오랜 정치적 격언이 있다. 바이든이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로 남부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자 유입 문제 또는 낙태 금지 문제에 대한 찬반 갈등을 비롯 여러가지가 거론되고 있다지만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은 승부를 가를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1992년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유행시키며 현직 대통령이던 조지 H. 부시 후보를 물리쳤다. 경제는 국민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이고 지도자의 개인적 오점은 눈감아 줄 수 있어도 경제를 망쳐 놓으면 그대로 아웃이라는 미 현대사 선거의 법칙이 이번에도 통할까 관심사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경제가 살아난 것은 '바이드노믹스' 덕분이라고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바이든이 집권을 계속하면 경제가 얼마 안가 망가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현재 증시가 상승하는 이유는 자신의 집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금리정책의 키를 쥔 연준이 바이든 지원에 나설 것이라는 음모론까지 언급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연준의 입장은 금리 인하를 시작하려면 인플레이션이 추세적으로 2%대로 다시 내려간다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연방 노동부는 물가를 측정하는 핵심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월에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시장은 약 3년 만에 CPI가 2%대에 진입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인플레에션 압력이 여전함을 드러냈다. 연준이 가장 주목하는 인플레이션 지표인 PCE(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는 1월에 전년 동기 대비 2.4% 상승했다. 인플레이션 상승폭이 3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둔화된 모습으로 시장에서는 6월 금리 인하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미국 금융시장에는 호재이다. 일반인들이 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고 무엇보다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고금리 모기지론에 침체된 부동산 시장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 미국 경제가 지난해 예상을 압도하는 실적을 냈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경제가 아직 살아났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는 임금 상승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최근 CNN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제에 대한 인식은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도 부정적이다. 절반에 가까운 48%가 미국 경제가 아직 침체라고 믿고 있고 35% 정도만 잘 돌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또 26%는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함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는 지난해 여름 20%, 2022년 12월의 17%에 비해 높아진 수치이다. 미국인들의 경제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은 바이든에게 희망의 빛이다. 재집권을 노리는 트럼프에게 열광하고 그에게 표를 주고자 맘먹은 유권자들에겐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경제를 잘 관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다. 트럼프는 팬데믹 이전 자신의 집권 시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모습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선거 캠페인 사이트는 트럼프 집권 시 미 전역의 가계소득 중간값과 아프리카 흑인들의 실업률이 역사상 최고로 양호한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들은 바이든 행정부 집권 이후 더욱 개선되었다. 바이든은 선거 유세에서 자신의 집권 이후 미국이 팬데믹을 극복하고 기록적인 성장세로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둘 중에서 누가 경제를 더 잘 이끌었는가는 훗날 평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당선이냐에 따라 미국의 대외 무역과 경제정책 기조는 상당한 차이를 보일 전망이다. 트럼프 2기 경제정책 트럼프는 바이든보다 보호주의 무역에 대한 신념이 훨씬 강한 인물이다. 그는 관세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고 오랫동안 침체된 국내 제조업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1기 집권 시 무역전쟁보다는 법인세 대폭 감세(35%→21%) 등 세제개혁이 최우선 경제 어젠다였다면 2기는 무역전쟁이 우선순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이 다시 집권하면 현재 3% 아래인 '보편적 관세(universal baseline tariff)를 10%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모든 나라에 10%의 관세를 일괄적으로 통일하는 것보다는 무역 상대방에 따라 개별 협상을 통해 양보를 얻어내고 대신에 관세를 낮추어주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경제분야에서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트럼프가 말하는 '10% 보편적 관세'는 기존 관세에 추가로 10%가 적용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당선 시 대통령 마음대로 일방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한 미국 관세법의 338조(1933년 제정)를 소환할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2018년 중국의 불공정 경제 관행과 무역수지 불균형을 이유로 특정제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해 미·중 관세전쟁을 야기했던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공세 수위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재집권 시 대중 관세율을 60%로 일괄 적용할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이나 EU 등 미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들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각국의 보복조치와 공급망 교란에 세계 경제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큰 대외적 위기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동맹국이라도 미국의 이익이 없는 곳에 일방적 안보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트럼프는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2개의 전쟁을 미국이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재정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나토 동맹국을 러시아가 공격하도록 부추길 것"이라는 트럼프의 최근 발언은 그가 동맹의 가치까지 훼손하고 자국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물임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 시켜주었다.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트럼프의 집권 시 미국은 국방비를 늘릴 수밖에 없다. 세계 도처에서 적들의 도전을 물리치거나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IPEF(경제태평양프레임워크) 공급망 협정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파리 기후 조약의 탈퇴도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국내에서 석유 등 에너지 생산을 크게 늘릴 것이다. 또한 반이민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모든 것이 그의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구호 아래에서. 트럼프 1기 정부에서 너무 매파적이라는 이유로 파면된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2020년 회고록에서 "그의 첫 4년은 나빴다면 , 두 번째 4년은 더 나쁠 전망"이라며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보복에만 관심이 있으며, 이는 두 번째 임기의 대부분을 소비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바이드노믹스'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인식이 우선 바뀌길 고대할 것이다. 또 세계 안보·통상 질서와 관련 트럼프 2기에 대한 국제적 우려를 선거 전략으로 부각시키며 트럼프와의 결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