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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소장
안치용 소장 carmine.draco@gmail.com
  • -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 前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 ■ 기후위기의 급진적 해법=우주거울의 역사는 SCoPEx 하나만이 아니다. 1989년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의 제임스 얼리 연구원은 ‘우주 태양 차단막(Space Sunshade)’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이때 제안된 우주 태양 차단막은 지구온난화 대응이 아니라 다른 행성을 정복하는 이른바 테라포밍(Terraforming) 목적이었다. 표면 온도가 500℃에 육박하고 두꺼운 황산 구름으로 뒤덮인 금성의 극단적 기후는 대기 중 97%에 이르는 이산화탄소가 야기한 극단적인 온실효과 때문이다. 금성을 냉각하기 위해 얼리가 제안한 태양 차단막, 즉 우주거울은 몇 mm 두께로 얇지만 2000㎞나 되는 유리 방패 모양이다. 1991년 6월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은 SCoPEx를 비롯해 우주거울에 관해 많은 시사를 주었다.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2000톤 이상의 황산염 화산재가 지상 10~50㎞ 성층권까지 치솟았고 화산재는 성층권에서 수년간 머무르며 태양에너지의 지구 흡수를 막았다. 이에 따라 그 해 지구 평균 온도는 약 0.6℃, 폭발 이후 2~3년 약 0.2~0.5℃ 낮아졌다. 대기 중의 알베도의 변화로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빛이 약 2.5%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구 밖에 거대한 거울이나 차양을 설치하여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 복사량을 조절하는 ‘우주 태양 차단막’ 구상은 1980~90년대에 NASA와 러시아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분출했다. 우주거울과 비슷한 개념이 ‘즈나미야 프로젝트(Znamya Project)’다. 1993년 지름 약 20m 원형 반사막을 설치한 첫 시험이 이루어졌다. 반사막으로 태양빛을 반사해 유럽의 일부 지역에 비추는 데 성공했으나 빛의 강도가 낮아 실질적인 효과는 크지 않았다. 1999년의 두 번째 시험에서는 더 큰 반사 거울을 사용하여 빛의 강도를 높이고 반사 면적을 넓히려 했으나 발사 도중 차단막이 우주선 안테나에 걸려 찢어지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후 ‘즈나미야 프로젝트’가 폐기됐다. ‘즈나미야 프로젝트’는 지구온난화 대책이 아니라 극지방이나 북유럽 등 겨울철 일조량이 적은 지역에 빛을 공급해, 겨울 동안 조명을 제공하거나 농업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발상이었다. 반사 거울을 통해 대규모의 빛을 반사하여 지구 특정 지역에 인공조명을 제공하는 구상은 당시의 기술적 한계와 막대한 비용으로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았다. ‘즈나미야 프로젝트’에서 띄워 올린 차단막의 반사각을 조정하면 SCoPEx가 제안한 우주거울과 비슷한 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의의가 적지 않다. 우주에서 태양빛을 반사해 지구에 사용하는 아이디어는 20세기 초반부터 나왔다. 1920년대에 러시아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는 ‘우주 정거장을 이용한 태양열 반사’를 구상했다. 치올콥스키는 우주에 거대한 거울을 설치하여 지구에 에너지를 반사하는 구상을 최초로 제안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과학자 사이에서 군사적, 전략적 목적으로 우주 거울을 활용하는 논의가 중심이 되었다. 1970년대 에너지 위기 시점엔 미국 물리학자 제러드 오닐이 우주 태양광 발전소를 제안해 지금의 우주 기반 태양광 발전(SBSP) 연구의 기초가 됐다. 우주거울 구상은 우주구름(Space Cloud), 우주거품(Space Bubbles), 프레넬렌즈(Fresnel Lens), 태양돛(Solar Sails) 등 여러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비용장벽도 낮아지고 있어 지구공학의 구상이 현실화할 개연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과거엔 다소 공상과학 같은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심각한 기후위기 국면이어서 언제든 정책입안자가 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법하다. 다만 SCoPEx 사례에서 보았듯, 또 영화 <설국열차>가 상징적으로 표현했듯 부작용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가가 쟁점이다. 완벽한 변수 통제를 할 수 있는 지구공학이 과연 가능할까. 사전 논의거리는 대부분 기술보다는 사회와 정치적인 것이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중에서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다음 달 5일 백악관의 주인이 가려지는 이번 대선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난 7월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일어난 트럼프 암살 시도이지 싶다. ■ 2시간 9분=이 사건이 트럼프 승리의 발판이 됐는지는 조금 더 기다리면 확인되겠지만, 저격범이 발사한 총알이 엉뚱한 사람을 거꾸러뜨린 건 확인됐다. 재선을 노리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피격 이후 대선 후보를 사퇴했으니 말이다. 당시 잠시 잦아든 상태인 후보 사퇴 요구는 이 사건으로 민주당이 대선 패배를 예감하면서 다시 본격화했고, 부통령 해리스가 바통을 넘겨받는 것으로 귀결했다.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트럼프가 총격을 받은 사건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트럼프에게 매우 소중한 사진을 남겼다. 가장 유명한 피격 현장 사진은 귀에 피를 흘리며 경호원들과 대피하는 와중에 트럼프가 주먹을 치켜든 모습.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테랑 사진기자 AP 에반 부치가 트럼프가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불끈 쥔 손을 치켜든 모습을 포착해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이 너무 극적이었다. 창해일속에 맞먹는 확률로 생명을 건진 데다 준비한 듯 세기의 사진까지 건졌으니 자작극이라는 등 음모론이 터져 나올 만했다. 당시 쏟아진 많은 기사 가운데 ‘2시간 9분’이 제목에 포함된 기사가 개인적으로는 관심을 끌었다. ‘2시간 9분’은 트럼프 피격 사진이 공개되고 이 사진이 들어간 ‘트럼프 티셔츠’가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를 시작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현지시간으로 AP가 사진을 전 세계에 타전한 시간은 이날 오후 6시 31분. 중국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 ‘트럼프 티셔츠’가 올라온 시간은 같은 날 오후 8시 40분이었다. 티셔츠 판매자는 “총격 사건을 보자마자 광고를 올렸고 아직 티셔츠를 인쇄하지도 않았는데 3시간 만에 미국과 중국에서 2000개 이상 주문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의 공장은 베이징 근교인 허베이성에 있다. 새로운 티셔츠를 만들려면 이미지를 내려받아 인쇄하기만 하면 된다. 가장 빠른 곳은 중국이었지만 이후 봇물 터지듯 피격 기념품이 쏟아졌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7월 15일(현지시간) 수공예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 엣시(Etsy)에서 ‘도널드 트럼프 암살’로 검색하자 포스터, 티셔츠, 모자 등 1000개 이상 상품이 나왔다. 한 판매자는 엣시에서 파는 16달러짜리 티셔츠를 엑스(X·옛 트위터)에서 홍보하면서 “탄핵은 실패했고, 그를 감옥에 넣는 것도 실패했으며, 살해 시도도 실패했다. 그를 이길 수 없다. 이 상품의 가격처럼!”이라고 적었다. 판매자들은 ‘방탄 트럼프 2024’ ‘총격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스쳤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등의 문구를 넣은 ‘트럼프 티셔츠’를 판매 중이다. 일부 상품은 이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의 재선을 도우려는 지지자들이 판매한다. 보수 유튜버인 호지 쌍둥이는 엑스에 티셔츠 판매처를 공유하며 “이 티셔츠 판매 수익의 100%를 트럼프 선거운동에 기부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중국 판매업자들의 돈벌이 기회로 활용되는 듯하다. ■ 빨라도 너무 빠른=‘2시간 9분’에서 언론이나 정치권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은 패스트패션의 폐해다. 요즘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보니 울트라패스트패션이란 말을 쓴다. 전 세계에 걸친 폐해 또한 울트라급으로 커지고 있다. 신상품을 빠르게 만들어 싼값에 팔고 소비자에게 즉시 보내주는 패션업계 트렌드 울트라패스트패션의 문제는 쉽게 산 만큼 쉽게 버린다는 것이다. 울트라패스트패션의 뒤편엔 저임금과 환경오염, 온실가스 배출이 도사리고 있고, 소비자를 거치며 쓰레기 문제로 이어진다. 초고속 패션을 무기로 글로벌 의류 시장을 위협하는 브랜드는 아소스(ASOS), 부후(Boohoo), 미스가이드(Missguided) 등으로 초고속 인터넷으로 하나가 된 세상을 공략하고 있다. 디자인부터 매장에 놓이기까지 오프라인 공정이 2~4주 이내에 이루어진다. 패스트패션의 기존 강자 자라와 H&M에서는 이 과정이 통상 5주였다. 의류업계의 전통적인 제품 생산 주기는 6~9개월이었다. 부후와 아소스는 일주일 단위로 수백 개에서 수천 개 제품을 웹사이트에 선보인다. 울트라패스트패션이란 용어는 아소스, 부후 등이 패스트패션보다 더 빨리 옷을 출시하는 현상을 설명하며 등장했다. 울트라패스트패션의 최강자는 중국의 ‘쉬인(SHEIN)’이다. 쉬인은 2021년 16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파죽지세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전까지 8년 연속 매년 100% 이상 성장했다. 쉬인이 글로벌 실적을 공개하진 않지만, 업계나 분석 기관은 올해 매출이 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때 ‘짝퉁 자라’로 불린 쉬인은 경쟁사인 미스가이드를 인수하는 등 이제 이 업계의 공룡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쉬인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시장에 출시된 의류 패턴을 분석하고 분석 결과를 신속하게 디자인에 반영한다.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기간을 5~7일로 줄여 다른 울트라패스트패션 기업들을 눌렀다. 하루에 내놓는 신상품이 1000~6000개로, 물량으로 압도한다. SNS 플랫폼을 공략한 마케팅이 세계 신세대를 파고든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인플루언서에게 옷을 입혀서 인스타그램·틱톡 등에 노출하면 일정액을 주는 식으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갔다. 기존 오프라인 매장이나 온라인 쇼핑몰보다 인플루언서·블로거 등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뉴 미디어 채널을 선호하는 소비자 경향을 쉬인이 파악해서 잘 활용한 사례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소비가 위축됐으나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기존 수준을 유지하거나 전보다 늘었다. 울트라패스트패션 브랜드가 급성장한 계기로 코로나19가 꼽힌다. 팬데믹 시기에 오프라인 접근성이 떨어지자 온라인 비즈니스 기반이 부족한 패스트패션 기업들이 타격을 입은 반면 신흥 울트라패스트패션 기업들은 날개를 달았다. ■ 울트라패스트패션의 짙은 그늘=쉬인이 지난해 영국에서 올린 매출은 우리 돈으로 3조원에 육박하는 15억5000만 파운드였다. 쉬인이 영국에서 상장을 준비하면서 제출한 서류를 통해 밝혀졌다. 쉬인은 지난 6월 영국 증권당국에 기업공개(IPO)를 신청했다. 당초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했지만 여의치 않다고 보고 런던 증시로 방향을 튼 것으로 분석된다. 쉬인은 앞서 2022년 뉴욕 증시에 상장하려다 실패했다. 당시에 IPO에 필요한 ESG 기준을 쉬인이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온실가스만 해도 2021년 한 해에만 울트라패스트패션을 작동하며 연간 약 630만톤을 배출했다. 상장을 준비하며 쉬인은 2030년까지 직간접적인 탄소 배출량을 각각 42%, 25%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증권당국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저임금 노동과 상표권 침해, 디자인 표절 등 상장을 앞두고 여러 비판이 봇물 터지듯 나왔고 상장은 실패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보다 더 저렴하게 옷을 공급하는 울트라패스트패션의 등장은 소비자의 의류 과소비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티셔츠’만 해도 지금 인터넷에서 2000원대를 포함하여 대부분 1만원 미만에 구매할 수 있다. 많은 울트라패스트패션 쇼핑몰의 사정이 대동소이하다. 소비자가 싼 가격에 혹해 옷을 쉽게 사고 또 쉽게 버리는 풍조를 만연하게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유행한 ‘쉬인 하울’이 이런 풍조를 반영한다. ‘쉬인 하울’은 싼 옷을 사서 상품평을 올리는 일종의 인증사진 놀이였다. 실제로 착용할 의도에서가 아니라 SNS에 올릴 목적으로 옷을 구매하는 행태는 자원을 낭비하고 온실가스와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킨다. 싼값에 옷을 만들려다 보니 울트라패스트패션 원단은 대부분 ‘폴리에스터’다. 공급가는 싸지만 사실상 플라스틱인 폴리에스터는 제조 과정에서 면섬유의 세 배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한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의류를 세탁할 때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져 나와 바다로 흘러 들어가서는 해양을 오염시키고 종국에는 인간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점이다. 세탁기를 통한 미세플라스틱 생성과 바다 유입이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버려진 폴리에스터 의류를 통해 바다로 직접 유입되는 미세플라스틱도 어마어마하다. 의류 쓰레기를 수입하는 가나의 수도 아크라 인근 해안은 쓰레기 해안으로 변했다. 아크라 비슷한 곳이 세계적으로 많다. 한국폐기물자원순환학회의 연구(최연석 외, 2022)에 따르면 지구 전체에서 생산되는 의류는 매년 약 1억톤이며 그중 약 15%만 재활용된다. 나머지 75%는 소각 또는 매립 말고 처리할 방법이 없다. 버려지는 옷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판매되지 않는 옷이 존재해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의류의 약 30%가 판매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다. 무게를 벌로 환산하여 쉬인 같은 울프라패스트패션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매년 생산되는 1000억벌의 옷 중 약 3분의 1이 같은 해에 버려진다. 한 명이 1년에 버리는 옷이 30㎏ 정도라는 추정치가 존재한다. 미판매 재고는 업사이클링이나 기부로 활용되지 않고 앞서 살펴보았듯이 광범위하게 소각된다. 멀쩡한 옷을 태우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소각으로 회계상 손실로 처리하여 세금을 줄이고 창고에 보관하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과거 미국 곡물 메이저가 과잉생산한 밀과 옥수수를 바다에 그대로 버린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제3세계에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주려면 보관과 운송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에 그대로 해양에 투기한 모습과 겹친다. 심각한 자원 낭비와 함께 과거엔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걱정거리가 등장했는데, 온실가스이다. 생산하는 데 막대한 물을 쓰고 온실가스를 발생시킨 다음 태우고 묻으며 추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나아가 미세플라스틱을 지구에 방출한다. 의류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최대 10%까지 추정되며 전 세계 항공기,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많다. 미세플라스틱 발생원으로는 최대 3분의 1로 보고 있어 인간이 입는 옷이 시간차로 부서져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은 쉬인 등을 겨냥해 만장일치로 ‘패스트패션 제한법’을 가결했다. 내년에 패스트패션 업체에 환경 부담금으로 의류 제품당 5유로를 부과하고, 2030년까지 판매 가격의 절반을 넘지 않는 선에서 부담금을 10유로까지 인상할 수 있다. 이들 업체의 초저가 의류 판매 광고도 금지한다. ‘트럼프 티셔츠’로 기세를 올린 불량산업 (울트라)패스트패션에 어떤 식으로든 강력한 조정이 있어야 할 시점이다. 가치소비를 권장하는 소비자 의식만으로는 역부족인 듯하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 원래 내가 생각한 제목은 ‘북극곰 멸종 프로젝트’였다. 출판사 요청으로 바꾸었으나 앞에서 책 내용을 소개하였듯 ‘생존’에 회의적이다. 북극의 묵시록을 정리하여 보여준 다음에 사람들에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다. 루쉰(魯迅)이 ‘쇠로 된 방’ 이야기를 하며 탈출이 불가능한 방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은 기억이 난다. 지금 인류가 처한 상황은 그 방보다는 분명 낫다. 그렇다고 루쉰이 말한 대로 여럿이 함께 걸어 희망의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희망의 근거가 없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시답잖은 정언명법이 우리 세대의 의무라는 정도의 얘기는 어쩌면 나눌 수도 있겠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 사람은 호흡을 통해 산소를 받아들여 살아가는 동물이기에 체내에 산소의 균형을 유지하는 체계가 있다. 활성산소가 과도하면 항산화물질이 작용해 넘치는 양을 제거한다. 우리 몸에서 항산화물질은 유지보수 체계를 가동하는 스위치 같은 기능을 한다. 항산화물질이 Nrf2로 알려진 세포를 자극하면 Nrf2는 대부분 세포 보호 기능을 수행하는 500개 이상의 유전자를 작동한다. 사람에게만 Nrf2 같은 방어기제의 일종인 방아쇠가 있을 리는 없다. 식물에도 비슷한 메커니즘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게 합리적이다. 실제로 식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폴리페놀 같은 물질을 증가시켜 대응하는데, 이러한 물질은 식물뿐 아니라 섭취한 인간 건강에도 유익하다. ■고통은 더 성숙한 열매를 준다지만=수백 건의 유기농 연구에서 ‘고통의 효과’가 확인된다. 생산량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기존 방식과 다른 유기농 과일과 채소에서 살충제 잔유물이 적은 건 당연하겠지만 흥미롭게도 항산화물질을 20~40% 더 많이 함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맛도 더 좋았다. 미국 버지니아주 해밀턴에서 사과 농사를 하는 그린먼이란 농부가 2014년에 행한 비공식적 실험에서는, 같은 나무에서도 상처가 있는 사과가 상처가 없는 사과에 비해 당도가 2~5% 높았다. 이러한 사실은 나무가 해충 자외선 등 외부 환경에 맞서 싸워 자신을 지켜낸 성공의 징표로 보인다. 과거 누군가 제주도에서 재배한 감귤을 가져다주었는데 작고 못생겼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가족 먹으려고 농약 안 치고 저절로 자라게 내버려 둔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달았다. 꽃길만 걸은 사람에 비해 온갖 어려움을 겪고 성공한 사람에게서 더 인간다운 향기가 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유기농이 아닌 일반 농법에서 생산된 못난이 과일과 채소는 어떨까. 판매 및 유통용 과일과 채소는 철저하게 외모지상주의의 지배를 받는다. 영양과 당도가 아니라 모양이 우선이다. 물류 효율을 높이고 유통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물류 표준화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름 오이의 일종인 ‘가시계 오이’는 구부러진 정도가 2㎝ 이내면 특, 4㎝ 이내면 상, 특과 상에 미달하면 보통 등급을 받는다. 농산물 표준규격에 따라 적잖은 농산물이 ‘등급 외’ 판정을 받게 되고 ‘등급 외’ 농산물은 정상적인 유통경로에서 배제되어 폐기되거나 헐값에 팔린다. 못생겼다고 맛에 차이가 있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2020년 8월 24일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총 27개 농산물생산량에서 ‘등급 외’ 발생 비중은 평균 11.8%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 128개 산지 농협에 설문조사한 결과로, 정부가 등급 외 발생 현황을 조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품목별로는 당근 19.6%, 무 19%, 배추 17%, 깻잎 16%, 양파 12.6%, 대파 11.8%, 마늘 10.4%, 풋고추 10.2% 등에서 ‘등급 외’가 높았다. 과일류에서는 배 27%, 복숭아 26%, 포도 21.8%, 사과 14.1%로 과일류의 평균이 22.2%로 채소류보다 높았다. 실제 ‘등급 외’ 발생률은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양파를 예로 들면 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의 선별 과정에서 ‘등급 외’가 20%가량인데, 농민이 아예 APC에 넘기지 않는 ‘등급 외’가 수확량의 20% 정도는 되기 때문이다. 산지에서 농민이 스스로 판정한 ‘등급 외’는 판매경로를 찾지 못하거나 유통비용 등의 이유로 그대로 밭에 버려질 때가 많다. 세계 전체 상황이 비슷했다. 2019년 유엔환경계획(UNEP)의 ‘식량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식량의 약 14%가 수확 후 판매되지 못하고 낭비된다. 2021년 UNEP의 ‘식품 폐기물 지수 보고서’에서는 소비되지 못하는 식량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8~10%를 차지하여 기후와 가뭄, 홍수와 같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2021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음식물 쓰레기 환경영향에 관한 보고서는 매년 미국 식량의 손실과 폐기물이 1억7000만t(톤)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추산했다. 유엔은 식품 폐기물이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생태계를 악화하는 부정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하나로 책임 있는 소비와 생산을 포함했다. 세계 한쪽에서는 굶주리지만, 다른 쪽에서는 많게는 생산된 농산물의 절반가량이 판매 전후에, 팔리지 않아서 혹은 음식쓰레기로 버려지고 낭비된다.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생산 및 유통 체계의 극명한 비효율인 셈이다. ■과일과 채소의 외모지상주의 극복=식량 손실과 폐기물의 감소는 여러모로 긍정적이며 특히 지구에 미치는 부하를 줄이는 데에 기여한다. 이러한 목표 아래 자본주의 농산물 유통방식의 개선을 지향하며 등장한 것이 ‘푸드 리퍼브(Food Refurb)’이다. ‘푸드 리퍼브’는 음식을 뜻하는 푸드(Food)와 재공급품을 뜻하는 리퍼브(Refurb)의 합성어. 리퍼브(Refurb)는 ‘새로 꾸민다’는 의미의 ‘리퍼비시(Refurbish)’의 준말로 공장에서 출고될 때 흠이 있거나 반품된 제품, 전시상품 등을 다시 손질해 싼값에 되파는 제품을 뜻하는 유통업계 용어. 대체로 가전제품 가운데 신품과 중고의 중간 제품 정도로 인식된다. ‘푸드 리퍼브’는 겉모습 때문에 소비자에게 닿지 못하고 버려지는 농산물을 주로 유통업체에서 구매해 상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을 말한다. 리퍼브와 마찬가지로 가격이 낮게 책정된다. ‘푸드 리퍼브’는 ‘푸드 뱅크’ 등과 달리 시장 내의 새로운 시도이다. ‘푸드 리퍼브’는 해외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슈퍼마켓 엥테르마르셰(Intermarche)에서 2014년 ‘부끄러운 과일과 채소’ 캠페인을 통해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상관없잖아?”라는 슬로건으로 못난이 당근을 판매한 것이 ‘푸드 리퍼브’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가격은 시세보다 30~50% 낮게 결정됐다. 이후로 ‘푸드 리퍼브’ 시장은 다양한 채소와 과일, 더 많은 나라로 확대되었고, 화장품 업계와 같은 비식품 시장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네덜란드 크롬코마(Kromkommer, ‘휘어진 오이’라는 뜻)는 낭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2014년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못난이 농산물로 수프를 만들었고, 2020년엔 못난이 농산물 인식 개선을 위하여 이상한 형태의 과일과 채소 모양의 장난감을 개발했다. 미국에서 월마트, 크로커 등 대형 유통업체가 적극적으로 ‘푸드 리퍼드’에 뛰어들어 못난이 농산물을 30~50% 저렴하게 팔아 소비자의 호응을 얻었다. 영국에서는 못난이 농산물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소비자가 느낀 만큼의 가치를 음식값을 내게 하는 ‘더 리얼 정크 푸드 프로젝트(The Real Junk Food Project)’ 식당이 등장했다. 덴마크 시민단체 ‘단처지에이드’가 직접 운영하는 슈퍼마켓 ‘위푸드’에서는 못난이 식품을 30~50% 저렴하게 판매하고 수익을 저소득층 지원에 사용해 주목받았다. 시장방식과 비시장방식의 창의적 혼용인 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풀 하비스트(Full Harvest)’는 음식물 쓰레기 제로를 표방하며 못생긴 농산물을 식료품 제조업자에게 연결해주는 B2B 사업을 진행한다. 농가는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여 수입을 올리고 식료품 제조업자는 온라인에서 싼 가격에 원료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서울신문 보도 사례에서 본 것과 같은, 수확 후 그대로 밭에다 갈아버리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다. ■국내의 ‘푸드 리퍼브’=국내에서는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협업한 2019년 ‘못난이 감자’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푸드 리퍼브’ 사례로 기억된다. 마땅한 판로를 찾지 못한 못난이 감자 30t을 기존 감자보다 싸게 900g당 780원으로 팔았다. ‘풀 하비스트’와 비슷한 개념으로, 못난이 농산물을 생산한 농가와 식품 가공업체를 연결해주는 ‘파머스페이스’와 같은 사업이 등장했다. 못난이 농산물 정기 구독 서비스 ‘어글리어스’는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21년 서비스를 시작한 후 3년 만에 누적 가입자 23만명, 누적 매출액 100억원을 달성했고, 재구매율이 88%에 달한다. 화장품업계가 ‘푸드 리퍼브’에 관심이 많다. 농산물을 직접 보여주는 게 아니라 원료를 사용하는 것인 만큼 사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11월 ‘어글리 러블리’ 브랜드를 시작했다. 농가에서 버려질 뻔한 못난이 농산물에서 원료를 추출해 화장품을 만들었다. 현재 올리브영 온라인몰, 더현대 오프라인 매장 등에서 팔고 있고, 동아시아 7개국에도 진출했다. LG생활건강에 앞서 어글리시크는 전북 무주의 유기농 못난이 사과를 활용하여 만든 저자극 여성 청결제와 제주도의 유기농 브로콜리를 활용한 자외선 차단제를 선보였다. TV홈쇼핑에 자주 등장한다. 흠이 있는 사과를 일컫는 ‘보조개 사과’가 제일 유명하고, ‘못난이 참외’ 외에 배, 명란, 굴비 등 모양 빠지는 농산물과 수산물이 성황리에 판매됐다. 2007년 8월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서울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 10여 명과 저녁을 하며 “‘특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고를 때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인생의 지혜”라며 “덜 예쁜 여자” 운운했는데, 만일 그때 ‘푸드 리퍼브’를 논했으면 자신이나 국민이나 더 행복해지는 진짜 지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2014년에 ‘푸드 리퍼브’란 말이 돌기 시작했으니 우리나라 지도자에게 세계보다 7년쯤 앞서가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푸드 리퍼브’의 정착과 확산을 기대한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 지침 적용 대상은 (1)직원이 1000명을 초과하고 전 세계 순매출액(전년 기준)이 4억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EU 기업 및 그 모기업 (2)근로자 수와 순매출 기준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역내 프랜차이즈 또는 라이선스 계약으로 창출된 로열티 수익이 2250만 유로를 초과하는 기업 (3)EU 역내 순매출액(전전 연도 기준)이 4억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역외 기업 및 그 모기업 (4)3번의 순매출 기준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역내 프랜차이즈 또는 라이선스 계약으로 창출된 로열티 수익이 2250만 유로를 초과하는 역외 기업이다. 시행은 지침 발효 후 기업 규모에 따라 2027~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로열티 수익 기준 지침 적용 기업은 2029년부터 일괄 실사 적용 기업이 된다. <표> 지침을 위반하면 회사의 전 회계연도 전 세계 순매출액의 최대 5%를 벌금으로 물릴 수 있다. 후속 조치로 2027년 3월 31일까지 공시항목 관련 위임법을, 지침 발효 후 최대 36개월 이내에 기업의 실질적 실사 의무 준수 방법과 관련하여 일반·섹터별·특수 부정적 영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다. CSDDD는 관보 게재 후 20일이 지나면 발효된다. 앞서 지난해 1월 CSRD가 발효돼 있어 유럽은 ‘기업지속가능성(CS)’ 제고를 보고(CSRD)와 실사(CSDDD) 양축 제도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셈이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 지구는 대기권, 수권, 빙권, 생물권, 지권의 5개 요소로 구성돼 요소 간의 상호작용으로 기후와 기상이 결정된다. 이 다섯 요소가 상호 작용하면서 어떠한 현상을 증폭하거나 감소하는 것을 ‘되먹임 효과’라고 한다.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은 처음 주어진 변화를 증폭하고,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은 작용을 받아 변화를 억제한다. ‘되먹임 효과’는 지구의 다른 지역보다 북극권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알베도 현상’은 대표적인 ‘양의 되먹임’으로, 북극에 넓게 자리한 얼음이 녹으면서 태양열을 덜 반사하고 동시에 얼음이 사라진 곳의 바다가 태양열을 더 흡수하여, 계속해서 기온이 오르고 더 빠르게 빙하가 녹게 한다. ‘알베도’는 표면이나 물체가 반사하는 태양복사의 비율을 말한다. 눈처럼 흰 물질은 알베도가 높아 태양복사에너지를 더 많이 지구 밖으로 튕겨낸다. 반대로 초목으로 덮인 표면이나 해양은 알베도가 낮아 에너지를 더 많이 받아들인다. 여름에 흰옷을 입고 겨울에 검은옷을 입는 습관은 생활 속에 자리잡은 ‘알베도’이다. ■지구온난화의 카나리아=알베도와 되먹임은 다른 지역보다 북극에서 얼음이 더 빨리 녹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얼음이 녹아 흰색 면적이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고 해양의 짙은 색깔 면적이 늘어나 변화를 가속한다. 반사만 주는 게 아니라 줄어든 반사만큼 흡수가 늘어나는 구조다. 극지방에서 한번 온도가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계속해서 그 정도가 심해지는 양의 되먹임이 나타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중위도나 고위도 지역에서, 적도 지방을 비롯해 얼음이 없는 지역보다 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북극권에만 머물지 않는 데에 있다. 다른 지역보다 빠른 북극의 온난화는 다시 여타 지역의 온난화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여타 지역의 나쁜 영향은 북극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악순환 구조로 인해 북극은 ‘지구온난화의 카나리아’로 불린다. 세계 주요 6개 기관 자료를 근거로 매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분석해 도출하는 유엔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23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1850~1900년) 1.45℃ 올랐다. 표본오차(±0.12)를 고려하면 1.57℃까지 상승했다고 볼 수 있다. 파리기후협약에서 인류가 합의한 2100년까지의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 제한 목표 1.5℃를 사실상 넘어섰다고 봐도 무방하다. 2023년의 지구 평균기온은 174년째인 지구 기온 측정역사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기도 했다. WMO에 따르면 2023년 이전에 가장 따듯한 해는 2016년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1.17~1.41℃ 높았다. 지금 추세로는 2024년, 2025년에 계속해서 신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극에서도 상황이 비슷했다. 2022년 10월~2023년 9월까지 북극 표면의 평균 기온은 1900년 이후 6번째로 따뜻했고, 2023년 여름(7~9월)은 기록상 가장 따뜻했다. <그림 북극의 기온변화-자료 NOAA>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발표한 북극 기온자료(그림 북극의 기온변화)를 보면 왼쪽 그림에서 2023년 여름(7~9월) 기온은 1991~2000년 여름의 평균 기온보다 북극 전역에서 높았다. 붉을수록 평균보다 2023년 여름 기온이 더 높다는 뜻으로 가장 붉은 색깔은 평균보다 4℃ 높다. 푸른색은 평균보다 낮다는 의미이다. 전체적으로 붉은색이고 푸른색을 찾기 어려웠다. 1940년부터 2023년까지 북극 전체의 여름 평균기온을 1991~2000년 평균과 비교한 그래프(그림 오른쪽)상에서도 북극 지역의 기온상승이 확연히 확인된다. 21세기 들어 상승세가 더 완연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극증폭=NOAA가 2006년 이래 매년 발표하는 ‘북극 성적표(Arctic Report Card)’에서도 알베도-되먹임이 확인되며, 이 현상을 특별히 북극증폭이라고 부른다. ‘북극 성적표’는 북극이 다른 지역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온난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극의 기온상승은 북극 생태계의 핵심인 해빙(海氷)에 영향을 미친다. 북극 해빙은 북극을 둘러싼 대륙 안쪽 바다의 대기 접면이 얼어붙은 것으로 북극해와 북극권뿐 아니라 지구 전체 기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해빙 면적은 얼음 농도가 15% 이상인 바다의 범위로 정의되며 1979년부터 마이크로파 위성 원격탐사를 통해 북극 해빙 면적을 조사하고 있다. 북극의 계절적 순환은 3월에 해빙이 최대 면적을 기록하며 봄과 여름을 거쳐 얼음이 녹으면서 9월에 최소 면적을 기록한다. 미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에 따르면 1979년 9월 북극 해빙의 면적은 약 645만km²였지만 2023년 9월엔 423만km²로 줄었다. 한반도 면적의 10배 이상의 얼음이 그 사이에 사라졌다. <그림 2023년 북극 해빙 면적과 평균 대비 면적 변화 추이-자료 NSIDC> NSIDC가 2023년 9월 해빙 면적을 그림으로 표현한 자료를 보면 1981~2010년의 중앙값과 1991~2020년의 중앙값에 비해 확연하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히 1991~2020년의 중앙값 면적이 1981~2010년의 중앙값 면적보다 작다. 1991~2020년의 평균값과 비교한 연도별 면적 추이를 보면 그 차이가 약 70%p에 달한다. 9월의 최소 면적 변화에 비해 3월의 최대 면적 변화는 훨씬 덜하지만, 감소추세는 분명히 눈에 띈다. 해빙은 태양의 에너지를 반사하여 온난화를 늦출 뿐 아니라 해양 포유류에게 서식지를 제공하는 등 북극 생태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빙 감소, 나아가 소멸은 북극에 변고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얼음 없는 북극 현실로=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등의 예측에 따르면 인류가 아무리 잘해도 북극 얼음을 지켜내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로선 산업화 이전 대비 2100년까지 지구표면 평균온도가 약 1.8~4.4°C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국립기상과학원은 북극의 연평균 얼음량이 이에 따라 21세기 말에 현재 대비 최소 19%에서 최대 76%까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온이 높아지는 여름철에 북극 해빙은 모든 시나리오에서 21세기 중반 이후 거의 사라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멀지 않아 얼음 없는(ice-free) 북극이 현실화하며 IPCC는 2050년 이전 최소 한번은 북극에서 여름에 얼음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북극 항로가 열린다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 법하지만, 얼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북극곰을 떠올리면 이만저만한 곤경이 아니다. 지구 전체 기후와 해양에 미칠 효과가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기에 북극곰의 곤경은 북극곰에 그치지 않는 확실히 상징적인 장면이다. ■해수면 상승 위험=지구온난화의 피해 중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해수면 상승이다. 다행히 북극의 얼음이 녹는다고 해수면 상승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른 걱정거리는 많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얼음이 녹는 것은 이론상 해수면을 끌어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스커피 속의 얼음이 녹아도 잔이 안 넘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은 그린란드와 남극 등 육지에 있는 빙하가 녹아서 바다로 유입하며 발생한다. 그린란드 빙하의 용융은 잊을 만하면 뉴스를 통해 전해지고, 남극의 얼음이 녹는다는 얘기도 자주 들리고 있다. 빙하(glacier)는 육지 위로 천천히 흐르는 얼음과 눈의 축적물이다. 이 빙하가 육지에 자리를 잡고 5만㎢ 이상 확장되면 빙상(ice sheet)이라 불린다. 현재 지구에는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에 하나씩 모두 두 개의 빙상이 존재한다. 두 곳에 얼어 있는 담수는 지구 담수 총량의 68% 이상으로 추정된다. 남극은 대륙이기 때문에 북극처럼 얼음이 녹는다고 즉시 바다가 드러나 태양에너지를 더 흡수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 남극에 분포하는 빙상 면적은 대략 한반도의 약 60배에 해당하는 1390만㎢이고 빙상의 평균 두께가 1937m나 되기에 다 녹기도 힘들다. 만약 남극 빙상이 모조리 녹는다면 전 세계 해수면이 약 60m 올라갈 것이기에 사실상 인류 문명의 종말을 초래한다. 그렇다고 남극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해수면 상승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남극 얼음의 용융은 2006~2015년에 매년 해수면이 0.43(±0.05)mm 상승하는 데 기여했다. 과거에 비해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IPCC는 온실가스 발생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된다면(RCP 8.5) 2100년까지 지구의 해수면이 평균 0.84m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때 남극 빙상 용융의 상승 기여분은 0.12m로 추산됐다. 빙붕은 빙상의 연장으로 해안에서 바다 위로 뻗어 있는 두꺼운 얼음판이다. 남극대륙에는 총 15개의 주요 빙붕이 있다. 두께가 약 50~600m인 빙붕이 해안에서 수십~수백 km까지 펼쳐진다.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질량을 잃고 있는 빙붕은 남극대륙 서남극의 ‘스웨이츠 빙하’이다. 매년 500억 톤의 얼음이 녹아 전 세계 해수면 상승의 약 4%를 담당하기에 ‘스웨이츠 빙하’를 ‘종말의 날 빙하(doomsday-glacier)’라고 부른다. 최근 극지연구소(책임연구원 박태욱)와 일본 홋카이도대, 서울대 국제 공동 연구팀이 ‘종말의 날 빙하’의 붕괴 기작을 규명하는 등 ‘스웨이츠 빙하’를 살리려는 국제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종말의 날 빙하’가 하루아침에 녹아 없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북극과 남극에서 종말을 향한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적어도 북극곰과 황제펭귄 등 일부 펭귄 종에게는 그렇다. ‘종말의 날’이 사람은 피해서 갈까. 이미 인류에게 종말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너무 태평한 건 아닌지 걱정이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 세계적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최근 구설에 오른 건 기후정의의 상징적 장면이다. 스위프트는 2월 11일 오후 3시 30분(현지시간)이 조금 넘어서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이날 오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 즉 ‘슈퍼볼’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슈퍼볼 우승 트로피는 스위프트의 연인 트래비스 켈시가 소속된 캔자스시티에 돌아갔다. 캔자스시티가 승리한 뒤 시상식장에 내려와 그가 켈시와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 전 세계 매체에 보도됐다. 스위프트의 ‘사랑꾼’ 행각은 켈시에게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것이었겠지만 대중의 눈엔 논란이 됐다. 스위프트는 10일 오후 6시(현지시간) 도쿄돔에서 시작한 콘서트를 3시간 30분가량 진행하고 한 시간 만에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자신의 전용기 다소 브레게 미스테르 팰콘 900을 타고 곧 바로 연인의 슈퍼볼을 보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4000만 달러짜리 전용기로 이동한 거리는 약 8900㎞로 며칠 뒤인 16일 호주 공연을 위해 움직인 것까지 합치면 연료로 약 3만3000ℓ를 썼다. 이에 따른 탄소 배출량은 약 90톤. 워싱턴포스트(WP)는 “(스위프트의 전용기 이동에 따른 탄소 배출이) 올해 내내 평균적인 미국인 6명이 배출한 탄소를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라고 했다. 스위프트는 2022년에 ‘탄소 배출이 가장 많은 유명인 1위’로 선정됐다. 스위프트는 전용기 사용 등으로 그해 상반기에만 세계인의 평균을 1500배 상회하는 8293톤을 배출했다. 영국의 지속가능성 마케팅 업체 ‘야드’는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하며 유명인들이 전용기를 과도하게 띄우며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위프트 측은 전용기 사용으로 배출한 탄소를 상쇄하기 위해 배출권 구매 등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새로운 불평등 지표, 탄소=이날 슈퍼볼을 보기 위해 전용기를 띄운 사람이 스위프트만은 아니었다. WP는 비즈니스 항공편 추적업체 WingX 통계를 인용해 “스위프트를 태운 전용기는 지난 주말 라스베이거스로 향한 전용기 882대 중 하나”라며 올해 슈퍼볼 관람을 위해 이용한 전용기는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고 보도했다. 슈퍼볼에 가장 많은 전용기가 집결한 때는 지난해로 애리조나 글렌데일에서 열린 슈퍼볼 경기에 931대가 날아들었다.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려는 부유층의 무절제한 낭비나 과시형 소비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과소비에 따른 탄소 과다 배출은 다른 차원의 문제를 야기한다. 부유층의 과거 과소비는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고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현재의 과소비에 따른 탄소 과다 배출은 타인에게 실질적인 손해를 끼친다는 데서 새로운 차원의 사회적 문제가 된다. 출처: 옥스팜 2020년 옥스팜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0~2015년 기준 전 세계 상위 1% 부유층(6300만명)이 소비활동으로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 배출량에서 15%를 차지했다. 범위를 상위 10%(6억3000만명)로 넓히면 비중이 52%였다. 소득 하위 50%(31억명)가 배출한 탄소는 전체 중 7%에 불과했다. 소득 상위 1%가 소득 하위 50%에 비해 두 배 넘는 탄소를 뿜어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새로운 글로벌 의제를 제시한다. 기후정의다. 탄소불평등은 부동산이나 소득·자산 불평등과 완전히 다르고 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불평등이 편익의 편중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비용으로 직결하고, 게다가 비용을 치를 능력이 부족할수록 더 큰 비용을 치르게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나 집단, 국가는 편익을 누리지도 못한다. 윤리적 관점을 논외로 하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스위프트가 전용기 사용에 따른 탄소 배출을 배출권 구입으로 상쇄했다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양식은 지킨 셈이다. 반면 전용기 900대가량을 몰고 온 부자들이 대중의 감시에 노출된 스위프트처럼 상쇄의 길을 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전용기 사용이 슈퍼볼에만 국한한 사안이 아니고 탄소불평등이 전용기 사용에만 국한하지도 않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기념비적 저서로 기후변화 담론을 세계에 공론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앨 고어가 탄소불평등과 관련한 ‘불편한 진실’로 10여년 전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미국 명문가 출신인 고어는 테네시주 내슈빌에 거실 20개와 욕실 8개가 있는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으며 다른 곳에도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논란이 된 건 고어 부부가 사는 내슈빌 대저택의 전기요금이었다. 미국인 가정의 평균 전기 사용량에 비해 약 20배 많은 전력을 썼다는 사실이 폭로돼 한동안 이중성이 도마에 올랐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진보적인 시각을 취하고 있는 스위프트 또한 탄소 과다 배출과 관련한 공격을 종종 받는다. 미국 보수 정치평론가 앤 콜터가 “그렇다. 우리는 석유가 필요해서 이라크를 침공한다. 그래야만 너희들이 자가용 비행기와 리무진을 타고 다닐 것이 아니냐”고 한때 할리우드를 겨냥해 일갈한 적이 있다. 콜터의 경구가 당시 민주당 진영을 공격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부유층의 탄소 과다 배출을 꼬집었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라크 침공을 그렇게 쉽게 정당화하거나 희화화해서는 안 됐다. 출처: CDG(국제개발센터) ■세계적 규모의 탄소불평등 탄소불평등에 기반한 기후정의 문제는 국민국가의 국경을 넘어선다. 주지하듯 주로 선진국에서 발생한 온실가스가 국경 안에 머물지 않고 북극·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들쑤시고 다니기 때문이다. 국제개발센터(CDG)의 기후위기 취약국가 종합순위는 중국, 인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적도기니, 브룬디, 수단, 방글라데시, 르완다, 세네갈, 나미비아 순으로 1~10위였다. 10위권에 OECD 국가는 한 나라도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과 인도를 빼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하위권에 속한다. 온실가스는 적게 배출하고 피해는 많이 보는 국가들에서 목격되는 불평등과 부정의가 기후정의의 핵심 쟁점이다. 대표적으로 탄소 저배출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2022년 여름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규모 홍수가 일어나 국토가 3분의 1이나 잠기는 재앙을 당했다. 이에 따라 그해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기후변화 피해를 당한 중저소득 국가에 선진국이 보상하는 ‘손실과 피해’ 보상 기금 마련에 합의했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국가별 분담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관한 구체적 합의가 쉽지 않겠지만 지구촌 차원에서 탄소불평등을 인정하며 기후정의를 위한 국제적인 행동계획을 수립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적용하기 쉽지 않은 CBDR 원칙 1992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 선언’에 명시된 CBDR(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원칙은 공동의 책임을 인정하지만 국가 간에는 차별적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역사적 책임의 차이와 환경문제를 다룰 수 있는 경제적·기술적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여 국제의무를 차별화하는 내용이다. 현실에서 CBDR 원칙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파키스탄에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를 보상한다고 할 때 국가별로 어떻게 차별적 책임을 부과할 것인지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 지금 전 세계에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중 인간이 인위적으로 배출한 것은 산업화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쌓인 것으로, 누적 배출량은 미국이 1위지만 현재 배출량은 중국이 1위다. ‘차별적 책임’을 산정할 때 현재의 책임과 현재완료의 책임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지 국가 간에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까. 더구나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두 나라가 다름 아닌 중국과 미국이다. 기후정의는 이처럼 국내보다는 국제적으로 더 문제가 되기에 해법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 위기는 글로벌하지만 의사 결정이 국민국가 수준에 맡겨져 있다는 근본적인 거버넌스의 한계 때문이다. 기후정의는 20세기 말에 들어 인류가 처음으로 자각한 전혀 새로운 문제지만 이 문제는 인류가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 목록 최상단에 위치한다. 그전까지 지구촌은 개별 국가 차원에서 작동하는 환경정의를 어떻게 실현할지를 고민했다. 환경정의도 레이철 카슨 등이 활약한 20세기 중반에 등장했으니 비교적 새로운 의제였다. 산업화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했지만, 국가가 개입하여 우선순위를 조정하며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더라도 환경정의에 관해선 나름 해법을 찾아갈 수 있었다. 기후정의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를 마련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환경정의와 달리 해법 마련 가능성을 어둡게 한다. 그나마 글로벌 거버넌스라고 존재하는 유엔이라는 것이 세계정부와는 한참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결합한 국민국가 체제는 결국 기후위기라는 글로벌 의제를 해결하는 데 바람직한 시스템이 아닌 것이 밝혀질 테고, 기후정의는 기후위기의 심화 속에서 표류하다가 과거 유행한 세계시민이란 말처럼 폐허 속에서 실현해야 했지만 하지 못한 통한의 개념으로 후세가 곱씹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면 너무 비관적인가. 공동의, 그리고 차별적 재앙이 본격화하고 있어서 낙관론을 살리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자료 도움: 박예린(경기연구원 연구원)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 미국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이 뒷걸음하고 있다. 소수자 우대 정책에 백인 역차별 논란이 제기되면서 DEI 정책에 대한 미국 보수층의 반발이 실제 법제화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는 스펜서 콕스 미국 유타주(州) 주지사가 지난 2월 1일 주의회가 송부한 DEI 정책 금지법에 서명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콕스 주지사가 서명한 법안은 공립 교육기관과 주 공공기관에서 DEI 정책을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당장 공공기관의 각종 프로그램에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능력 중심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인종차별이나 성차별로 매도하는 것도 금지된다. 교육기관이 일부 소수인종 학생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반(反)DEI 움직임이 유타주에서만 있는 건 아니다. NYT는 지난해부터 미국 내에서 DEI 정책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타를 포함해 텍사스, 노스다코타, 노스캐롤라이나 등 8개 주에서 DEI 금지법이 제정됐다. 텍사스주에서는 올해 들어 DEI 금지법이 발효됐다. 이에 따라 텍사스 내 공공기관은 소수인종을 우대하거나 다양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인력을 채용하거나 특혜를 줄 수 없게 됐다. 텍사스주립대는 교내에 설치된 ‘다문화촉진센터’를 폐쇄하고, 졸업식 행사에서 흑인·히스패닉·아시아계 학생을 위한 별도의 이벤트에 자금을 대는 것도 중단했다. 테네시주의 DEI 금지법에는 공립대학이 교직원에게 편견 해소를 위한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 보수층이 DEI를 백인에 대한 역차별로 판단해 대놓고 조직적인 반대 운동을 벌이면서 보수색이 짙은 지역을 중심으로 DEI를 폐기하는 법제화가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미국에서 8번째로 DEI 금지법이 발효된 유타주는 대표적인 보수 우세 지역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DEI란?=DEI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이란 세 가치를 한꺼번에 부르는 말이다. 다양성은 인구학적 다양성을 포함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이 공존하게 하는 것이다. 다양한 배경이란 인종, 성, 종교, 성적 취향, 사회경제적 지위, 언어, 장애, 종교적 신념, 정치적 관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구성원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실재하거나 인식된 차이이다. AT&T, 구글, 3M, 러쉬 등 주요 글로벌 기업이 매년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하여 조직원 다양성 비율을 공개한다. 미국에서는 인종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다양한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그만큼 인종차별이 여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정성으로도 번역하는 형평성은 제도나 시스템을 통한 절차나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으로 존 롤즈의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연상시킨다. 평등(Equality)이 구성원에게 자원을 균등하게 배분하자는 이념인 반면 공정은 구성원 사이에 격차가 있음을 인정하고 장애인, 고졸채용자, 비정규직노동자 등 비주류 구성원도 균등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적절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불가피하게 불평등을 용인해야 한다면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에 관한 원칙으로, 가장 불우한 사람의 편익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롤즈의 ‘최소극대화(maximin) 원칙’에 맞닿아 있다. 포용성은 다양한 특성을 가진 개인이 조직에서 ‘다름’을 존중받고,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며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용어 자체로는 배제(exclusion)의 반대말로, ‘조직 내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도 피해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는’ 심리적 안전감을 토대로 구성원이 가진 ‘다름’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여, 예컨대 기업이라면 생산성을 높이는 게 포용성의 핵심이 된다. 소극적 의미로는 일상생활에서 흑인, 동양인, 동성애자 등 소수자를 차별하는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 원천 배제된 상황이 출발점일 수 있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아주 작은’이라는 뜻의 마이크로(micro)와 ‘공격’이라는 뜻의 어그레션(aggression)의 합성어로, 예를 들어 식당에서 같이 앉는 것을 피하는 행동과 같은 일상 속의 차별을 통해 상대에게 모욕감이나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이 마이크로어그레션에 해당한다. ▲정의 혹은 생산성=이 세 가지 가치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따로 떼어서 설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다양성이 형평성과 포용성이란 가치가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지만, 다양성 없이 형평성과 포용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형평성이 개념상 구분이 있지만 현실에서 겹치는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어서, DEI를 I&D(포용성과 다양성, Inclusion & Diversity)로 줄여 쓰기도 한다. 반대로 세부적으로 더 구분해 소속감(belonging)의 B를 추가한 DEIB, DEIB에 접근성(accessibility)의 A를 더하여 DEIAB라는 용어를 개발해 쓰기도 하나 결국 DEI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경영학에서는 DEI와 기업 생산성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져 DEI가 기업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많이 보고돼 있다. 생산성을 논외로 하고, 공정으로서 정의처럼 DEI를 그 자체로 보편적 가치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기업에서 대체로 정의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정의 대신 수익성에 신경을 쓰는 기업에서 지속가능경영과 ESG경영 흐름에 따라 지속가능성 임원 등 과거에 없던 직제가 생겨나는 가운데 SAP에서는 ‘Global Head of People Sustainability & Chief Diversity and Inclusion Officer’란 직함이 목격된다. I&D를 D&I로 바꿔서 다양성과 형평성을 다루는 임원인 CD&IO를 CEO나 CFO처럼 만든 것인데, 글로벌 기업인 만큼 여기에 ‘People Sustainability’를 추가해 포괄적으로 이 부문을 책임지게 했다. 글로벌 기업에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유사한 직제가 많이 생겼다. 미국과 유럽에서 DEI가 조금 더 복잡하고 섬세하다면 한국에서 DEI는 주로 여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인종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판단하거나 이 문제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으며, 동성애나 다른 소수자 문제는 아직 대면할 여건이 안 됐다고 외면하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젠더 의제는 비교적 공론화한 상태이고 성차별 해소에 관한 압력이나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상태여서 일종의 여성할당제가 여러 분야에서 확산하고 있다. ESG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진 국내 유수 대기업에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여성 중간간부 박 아무개 과장은 “확실히 사내 분위기가 여성을 우대하는 쪽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맞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는 ‘여성 사외이사 전문과정’을 만들어 지금 7기를 모집 중이다. 홍보문안에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사는 여성 이사를 1명 이상 선임해야 한다”고 적시하며 “각계의 경륜 있는 여성리더를 위한 전문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화여대의 ‘여성 사외이사 전문과정’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모습을 두고 여성인 어느 교수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식의 대응이 오랫동안 사회적 약자로 차별받은 여성에게 나쁜 전략일 수는 없지만, 실력이 아니라 배려로 어떤 지위에 오르려는 여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또 실제로 실력 있는 여성까지 도매금으로 묻어가기도 해 씁쓸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 과장도 “사내에서 남성 입사 동기들이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불이익을 당한다고 인식하는 듯하며, 여성으로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내면 비슷한 역량의 남성에 비해 유리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DEI가 자리잡은 지 오래인 미국에서는 인종·여성할당제에 대해 능력주의를 도태시켜 미국 사회를 자기해체의 길을 걷게 한다는 반발이 백인 보수층을 중심으로 터져 나온다. 특히 소수자 우대 정책을 펴는 미국 일부 명문대학을 두고는 학문적 자살을 감행한다는 비난 공세를 퍼붓는다. 유타주를 포함하여 8개주에서 DEI 금지법이 제정된 것은 이런 분위기에 힘입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지난 1월 미국 내 사무소들의 인턴십·장학금 관련 흑인 우대 정책을 폐기하고, 미국의 가난한 백인 학생들에게도 인턴십과 장학금 기회를 열어주었다. PwC 외에 화이자 등 일부 미국 기업들이 회사의 흑인 우대 제도를 손본 것으로 전해진다. ▲정의는 생산적이다=PwC의 정책변화는 유타주의 사례와는 결을 달리한다. DEI를 폐기한 것이 아니라 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포용의 기준으로 인종 대신 가난을 택한 것이므로 어느 정도 논리적 타당성을 갖고 공정으로서 정의에도 부합한다. 핵심은 DEI가 공시적 관점의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능력주의를 획일적 평등의 관점에서 적용하면 소수자는 주류사회에 진입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 주류사회에 진입하여 성장하는 과정과 재생산을 통해 역량을 키울 수 있기에 역량을 키울 기회 자체가 없는 모습의 진입장벽 존재는, 능력주의를 인정하더라도 능력주의의 올바른 바탕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DEI를 통시적 관점에서 파악하여 능력을 키울 여건이 평등하게 제공되었나를 보면서 능력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PwC처럼 DEI 정책 내에서 수혜 대상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도적으로 한때 역차별이 일어나고 반대로 과도한 특혜를 받는 계층이나 집단, 계급이 있을 수는 있다. 과거에 받은 차별이 현재에 해소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어느 정도 강압적 조정 없이 새로운 노멀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최소극대화(maximin) 원칙’은 인간 사회를 문명사회로 지탱하는 근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공시적 비효율을 감내하는 그런 통시적 조정 과정을 거쳐 사회는 전체의 역량과 생산성을 키운다. 정의는 장기적으로 생산적이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 경기 남부에 조성하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원자력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지난 15일 반도체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탈원전을 하게 되면 반도체뿐만 아니라 첨단산업이라는 건 포기해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원자력 발전 확대를 선언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우리나라의 전력공급 방안을 두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는데, 요약하면 ‘RE100 대 CF100’의 대결이다. 사용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과 같은 재생에너지로 조달하자는 ‘RE100’ 관점에서는 윤 정부의 원전 확대 방침이 세계적 재생에너지 전환 추세에 역행한다고 비판한다. 재생에너지 가격이 높아 현실적으로 RE100을 고수하는 건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게 된다는 반론이 있고, 윤 정부는 이 주장에 힘을 싣는다. ▲“니가 가라 하와이”=21세기 인류의 최대 현안인 기후위기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국민국가 체제의 한계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국가들이 ‘국부’의 관점에서 자국 발전(發展) 우선 정책을 펴다 보니 지구에 생태계가 감당 못할 온실가스가 빠른 속도로 쌓이며 현재의 기후변화를 불렀다.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중상주의 체질을 벗어나지 못한 세계 각국의 이해를 조정해 실제로 글로벌한 차원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데에 있다. 파리기후협약이 생각만큼 순항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각국은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대의에 공감하면서도 각론에서는 자국의 산업 키우고 국부를 증진하는 데에 양보할 마음이 없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파리협약에서 탈퇴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마디로 영화 <친구>의 대사처럼 “니가 가라 하와이”인 셈이다. 어느 나라도 국부를 희생하고 국민생활 수준을 떨어뜨리는 방향의 기후정책을 수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민국가의 정치체제가 정치지도자의 그런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 반도체 클러스터에 어떤 전기를 공급할 것이냐는 논란의 본질이다. 말하자면 이 문제에 관한 한 윤석열은 트럼프의 길을 가고 있다. 이 논의가 간단하지 않은 게 한국 정부가 주장한, 재생에너지보다 원자력 사용을 늘려서 탄소중립을 달성하자는 CF100(carbon free 100%)이 국민국가 차원에서 더 좋은 해법이냐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 당연히 단기적으로는 유리하고 현실적이다. 현재로선 RE100이 기업에 더 큰 비용을 물게 한다. RE100을 달성하는 방법으론 크게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구매, PPA(Power Purchase Agreement), 녹색프리미엄요금제가 있는데 모두 RE100을 신경 쓰지 않고 전기를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예컨대 가장 많이 활용되는 REC 구매는 같은 전기를 대략 150% 가격에 구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REC 구매 가격은 월평균 현물가격으로 2021년 12월에 1REC당 3만8779원에서 지난해 12월 7만5624원으로 오르는 등 상승추세이다. RE100이 확산하면 더 오를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7일 설명자료를 내어 반도체 클러스터에 원전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언급을 보충했다. 설명자료에서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RE100 달성을 선언한 기업들은 녹색프리미엄, REC 구매 등의 방법으로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추가 비용이 발생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9월 유엔 총회에서 윤 대통령은 국가별로 다른 에너지 공급 여건을 고려하고 RE100 이행에 따른 기업들의 과도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원전을 포함한 모든 무탄소에너지를 적극 활용하자는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를 제안한 바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말한 CFE는 원전 전력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현실을 따르겠다는 발상이다. 전력 수요 폭증을 감안할 때 신규 전력원을 발굴해야 하는데, 윤 정부가 이처럼 원전에서 조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면서 원전 발전량 비중 목표가 올라갈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12월에 나온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원전 발전 비중 목표가 25%였지만 지난해 1월 현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 없이 32.4%로 목표를 상향했다. 현 정부가 발표할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을 포함하여 2030년 원전 발전 비중 목표가 더 올라갈 전망이다. 실제로 국내 발전량 중 원전 비중은 다시 올라가 대략 30%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외에도 중국 영국 프랑스 등이 새로이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원전 대체가 생각만큼 순조롭지 못한 상황이다. 온실가스 저감이 핵심 현안으로 떠오르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면서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원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고, 빌 게이츠가 온실가스 문제 해법으로 원전을 지지한다는 이야기 또한 회자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원전 생태계 유지가 원전 수출국으로서 지위를 지키고 원자력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긍정적이다. 원전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이처럼 현실론에 막혀 원전 발전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 ▲24/7 CFE=그러나 한국 정부의 CF100이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키우는 데 좋은 착수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 중인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18일 원전 논쟁에 뛰어들어 “반도체라인 증설을 하면서 원전 충당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건 세계적 트렌드나 산업에 대해 모르는 무식한 이야기”라며 “앞으로 몇 년 안에 RE100을 달성하지 못하면 반도체를 포함한 우리 수출 품목들의 수출길이 막힐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BMW, 볼보 등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국내 부품 수출 기업에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RE100 목표 이행계획서’ 제출을 요구해 국내 기업들을 당혹게 하는 등 관련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에 “무식한 이야기”란 과격한 표현을 쓴 김 지사의 주장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국제적으론 RE100을 요구하지, CF100을 요구하지 않는다. CF100의 선두주자는 구글이다. 2017년에 처음으로 연간 에너지 소비량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한 구글은 2018년 ‘연중무휴 무탄소 에너지(24/7 Carbon-Free Energy)’ 사용을 세계 최초로 선언했다. 구글의 ‘24/7 CFE’ 100% 달성 목표 연도는 2030년. 2021년엔 사용한 에너지의 67%를 무탄소로 조달했다. 2017년에 RE100을 달성한 구글이 아직 CF100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사용 에너지 전체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지 못하고 일부를 REC 구매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구글은 2017년 RE100을 처음 달성한 이후 2022년까지 6년 연속 RE100을 달성했다. 사실 내용상으론 CF100을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24/7 CFE’는 시간·위치 기반 청정에너지 조달에 중점을 둔다. 필요한 전력을 언제 어디서나 무탄소로 충당해야 하므로 ‘시간 일치’와 ‘현지 조달’이 필수적이다. ‘간헐성’으로 표현되는 재생에너지 공급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전력소요시설과 가까운 곳에서 청정에너지를 끌어오거나 시설 자체 혹은 인근에 배터리를 갖춘 태양광·풍력발전소나 하이브리드 발전소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간헐성 극복을 위한 기술들이 태양광·풍력발전을 더 잘 적용하기 위한 보조수단이고, 여전히 ‘24/7 CFE’의 중심은 재생에너지라는 사실이다. 구글의 사례에서 보았듯 ‘24/7 CFE’는 RE100을 우선한다. 재생에너지 사용 100% 이후에 추가적으로 전력의 완전한 탈탄소화를 위해 CFE를 다음 단계로 선택하기에 한국 정부의 CF100과는 결이 아주 다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12월 미국의 모든 연방 기관에 ‘24/7 CFE’ 조건의 전력 구매를 요구하는 행정명령 14057호에 서명한 것에서도 이 기조가 유지된다. 2030년까지 100%의 CFE를 달성하되, 이 중 50% 이상을 연중무휴 대응할 수 있는 현지의 재생에너지로 제공한다는 게 목표다. 따라서 탄소중립만을 내세우며 기후대응 정책인 RE100을 건너뛰고 CF100으로 직행하는 것은 자칫 위험한 정책이 될 수 있다. 산업부는 “무탄소에너지 논의를 시작한 것은 RE100을 부정하거나 CF100만을 추진하겠다는 취지가 아니라 RE100을 보완 병행 추진하면서 국내 기업의 RE100 이행에 따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모색해보고 국제적 확산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분명한 것은 구글 등이 말하는 ‘24/7 CFE’와 CF100은 완전히 다른 정책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재생에너지 용량은 3372GW로 전년(3077GW) 대비 8.9% 증가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거의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03년 처음으로 비중이 1%대에 진입했고 2018년 8.44%를 최고점으로 2020년 6.41%까지 떨어졌다가 2021년 7.15%로 회복됐다. 재생에너지 정책에서 한국의 특이점은 신재생에너지란 용어를 쓴다는 것으로 연료전지·IGCC(석탄가스화 복합화력발전)를 신에너지로 분류해 재생에너지와 묶어서 통계를 내고 있다. 통계의 착시가 일어날 수 있다. 김 지사는 “이번 정부 들어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를 억누르는 방향으로 가는 정책을 많이 쓰고 있다”며 “수요가 늘어나서 공급이 많이 늘어야 가격이 저렴해진다”고 진단했다. “재생에너지 수요를 늘리면 공급이 늘고 가격도 덩달아 하락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공급이 늘고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까지 기다릴 체력이 충분해야 하며 동시에 정부 입장에서는 그 기간에 정책적으로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RE100이든 CF100이든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대세를 거스를 순 없다. 참고로 게이츠가 지지하고 후원하는 원전은 우리나라에서 가동되는 것과 같은 대형 원전이 아니라 출력이 300MW보다 작은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이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 정부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로 환경단체와 친환경제품 생산업체들이 반발하는 등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11월 29일 국회 앞에서는 종이빨대를 바닥에 버리는 퍼포먼스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종이빨대생존대책협의회,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등이 환경부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에 따른 친환경제품 생산 피해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벌인 행사였다. 앞서 11월 7일 환경부는 계도 기간 1년을 두고 시행키로 한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철회했다. 이날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원가 상승과 고물가, 고금리, 어려운 경제 상황에 고통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규제로 또 하나 짐을 지우는 것은 정부의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규제 대신 자발적 참여와 시민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각종 지원과 다양한 캠페인 등을 벌여 일회용품을 줄이는 생활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환경부의 지원 방안 중에는 다회용기 지원 사업이 들어 있고 관련 예상 68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와 협의 중이다. ▲온라인 음식서비스 시장의 폭발적 성장 사회 전반의 디지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급증하고 음식 배달앱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음식의 온라인 구매가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음식서비스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통계청이 공식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7년 2조7326억원에서 2018년 5조2628억원, 2019년 9조7353억원, 2020년 17조3370억원, 2021년 26조1597억원, 2022년 26조5940억원으로 최근 성장세가 둔화하였지만 짧은 기간에 시장이 말 그대로 폭발했다. 5년 사이에 약 10배로 시장 규모가 커졌다. 이러한 폭발적 성장은 배달앱 빅3인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가 주도했다. 배달의민족이 시장점유율 과반을 기록하고 있고 빅3가 사실상 시장 전체를 과점한 상태다. 온라인 음식배달 시장의 성장은 언론에 오르내리기로는 배달 용기 쓰레기가 매일 830만개 발생한다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낳았다. 배달앱이 보편화하기 전에는 없던 새로운 종류의 쓰레기다. 물론 기존 방문 식당에서도 일부 일회용 용기를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전면적인 온라인 음식배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숫자는 일회용 배달에 들어가는 용기를 3개로 계산하였기에 실제 배출되는 배달 용기 쓰레기는 상식적으로 하루 1000만개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으로는 36억개 넘는 배달 용기 쓰레기가 코로나19 이후 사회 곳곳에서 배출되고 있는 셈이다. 녹색연합이 2021년 4월 시행한 ’배달쓰레기에 관한 시민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2%가 ’마음이 불편하거나 걱정이 된다‘, 34%가 ’죄책감이 든다‘고 답했다. 배달쓰레기 처리대책 중 가장 시급한 것으로는 40%가 다회용기 사용 확대, 33%가 일회용기 감소를 위한 규제를 들었다. 일회용기 규제가 미뤄지고 있어서 현실적인 배달쓰레기 저감 대책은 다회용기 사용 확대밖에는 없다. 그러나 갈 길이 너무 멀다. 아주경제 2023년 3월 23일자 《배달앱 '다회용기' 써보니···서비스 업체 적고 이용 불가 메뉴도》 기사를 보면 이용자가 다회용기에 담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게 꽤 어렵고 불편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녹색연합은 2022년 11월 17일 보도자료에서 배달음식 다회용기 서비스가 하루 60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일회용품이 음식배달에서만 발생하는 건 아니다. 최근 환경부가 규제를 완화한 고객 방문 매장에서도 일회용품은 넘쳐난다. 골목마다 볼 수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매장 내 취식보다는 테이크아웃 비율이 더 높아 일회용품 쓰레기가 줄어들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배달이나 테이크아웃에서 다회용기를 사용하게 하는 것만이 이 문제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해답이다. ▲독일의 판트(Pfand) 제도 ’판트 제도‘는 독일의 공병 보증금 제도다. 판트는 보증금 혹은 예치금을 뜻하는 독일어다. 유리병, 페트병, 캔과 같은 빈 병을 무인회수기에 반납하면 개수에 따라 돈을 환급해 준다. 독일은 2022년 1월 1일 포장재법을 개정하여 같은 해 7월 3일 전면 시행에 들어가 모든 음료 포장재가 판트 적용 대상이 됐다. 우유와 유제품 포장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을 더 두어서 2024년 판트 제도를 적용할 예정이다. 판트제도가 시행되면서 소비자는 생수나 탄산수 같은 음료를 사면서 제품 가격 외에 최소 제품당 0.25유로의 보증금(판트)을 같이 결제한다. 상품 가격과 판트가 계산서에 따로 표시된다. 소비자가 나중에 판트기계에 빈병 혹은 용기를 반납하면 미리 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독일 포장재법 주요 개정 사항엔 판트 제도 외에 케이터링, 배달서비스,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테이크아웃 시 재사용 가능한 포장재 사용을 의무화한 것이 포함된다. 즉 우리나라처럼 일회용기에 담아서 음식을 배달하거나 가져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2023년 1월 1일 시행에 들어간 개정안은 노동자 5명 이하 소기업과 사업면적 80㎡ 이하 영업장에 대해 예외로 두었지만 이러한 소규모 상점에서도 소비자가 다회용기에 포장해 달라고 요청하면 응해야 한다. 판트 제도, 테이크아웃이나 배달 시 다회용기 의무화 등 선도적인 친환경 정책으로 독일은 재활용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에 이름을 올렸다.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약 46%에 달하고 병 하나당 재사용 횟수가 40회 이상이며 재사용률은 95%다. ▲라라워시 등 한국 다회용기 사업 한국은 최근 환경부 조치에서 보듯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방침과 무관하게 다회용기 사업은 국내에서도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 경기도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라라워시를 비롯하여 7개 업체가 사업을 하고 있다. 공공 영역에 속한 라라워시와 사회적 기업인 레빗 외에 나머지 5곳은 영리기업으로 신진마스타와 프라임 두 곳의 연간 매출이 100억원을 훌쩍 넘는다. 다회용기 사업은 다회용기 공급과 수거·세척, 세척 후 재공급 구조로 이루어진다. 내용상 세척이 사업의 핵심을 이룬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단체급식 시설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최근 삼성증권이 발표한 ‘기업의 다회용기 세척서비스 지불의사가격(WTP, Willingness To Pay)’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식기 1개당 WTP는 2018년 약 70원 수준에서 2020년 약 200원까지 올랐다. 잠재 고객의 WTP는 상승하고, 서비스 원가는 떨어지는 추세여서 다회용기 세척서비스 시장은 지속해서 확대될 것으로 삼성증권은 전망했다. 다회용기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온실가스를 감축에 기여한다. 말 그대로 다회 사용했을 때 환경적으로 다회용기가 우위에 선다. 아주대 ESG센터의 전과정평가(LCA) 결과 일회용컵의 탄소발자국은 100gCO₂e로 다회용컵을 1회만 사용했을 때 248gCO₂e에 비해 탄소발자국이 낮았다. 텀블러와 비교하면 마찬가지로 일회용컵이 더 환경적으로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회용컵을 3회 이상만 사용하면 다회용컵이 일회용컵보다 환경적으로 우수했고 사용 횟수가 많아질수록 당연히 환경성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10회 사용 시 다회용컵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일회용컵의 40%였다. 국내에서 일회용컵이 연간 53억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다회용기 보급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라라워시는 2018년 11월 성남점을 시작으로 현재 경기도 내에 17개 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다. 다회용기 보급과 자활을 결합한 일종의 공공사업이어서 도비 지원을 받는다. 현재 일자리 219개를 창출했고, 올해 3분기까지 매출을 약 13억원 올렸다. 최선린 경기광역자활센터 부장은 “경기도 내 모든 기초지자체로 사업단을 확대하여 일자리 창출과 온실가스 감축, 플라스틱 쓰레기 저감을 동시에 꾀하는 바람직한 공공사업 모델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회용기 확산을 위해서는 공공 영역의 우선 사용을 비롯해 제도와 관행 개선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더불어 다회용기 자체를 재활용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는 음식물을 담는 용기여서 재활용플라스틱 사용을 기계적으로 금지한 상태다. 플라스틱을 줄이겠다며 새로운 플라스틱으로 다회용기를 만드는 건 지양하면 좋겠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