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탕!…' 대장장이가 만들어낸 사계절의 일상
2024-08-20 17:35
예올 X 샤넬 '온도와 소리가 깃든 손 : 사계절로의 인도'
쇠와 유리의 조화…고민의 나날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에 한밤중 속옷 작업
칠화백자 같은 달항아리…재와 그을음의 색
쇠와 유리의 조화…고민의 나날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에 한밤중 속옷 작업
칠화백자 같은 달항아리…재와 그을음의 색
20일 찾은 2024 예올X샤넬 프로젝트 전시 ‘온도와 소리가 깃든 손: 사계절로의 인도’는 대장장이 정형구의 묵직한 쇳덩이 두드림이 공간을 채웠다. 800도가 넘는 가마에서 새빨갛게 달궈진 쇳덩이를 무심하게 두드리는 소리에는 묘하게 긴장을 풀어주는 힘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올해의 장인’ 정형구와 ‘올해의 젊은 공예인’ 유리공예가 박지민의 협업을 통해, 쇠와 유리라는 낯선 물질의 조화를 보여줬다.
전시 기획 총괄 및 작품 협업을 이끈 디자이너 양태오는 대장장이의 일상을 사계절의 풍경 속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다양한 도구를 디자인했다. 이어 정형구의 손을 거친 쇳덩이는 우아한 곡선을 갖춘 화병, 모기향 거치대, 부채 받침, 독서대, 촛대 등으로 재탄생했다.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형구는 견고하고 둔탁한 쇠 위에 투명하고 연약한 유리를 얹는 ‘화병받침’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유리와 쇠가 만나는 지점의 날카로운 부분을 매끄럽게 처리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밝혔다.
정형구는 “유리가 다치지 않으려면 (쇠가) 날카롭지 않아야 했다”며 ‘이걸 어떻게 구부리나?’ 고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형제 대장장이로 통하는 유상준 한국전통문화 교육원 교수의 자문을 얻어, 해답을 찾았다. 그는 “시도조차하지 않고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이번 전시 준비는 도전의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쇠가 유리를 안정적으로 잡아준 덕분에 박지민은 유리 형태를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었다. 그는 “유리는 혼자 서려면 바닥을 잡아야 하지만, 쇠가 바닥을 입체적으로 잡아준 덕분에 유리의 형태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형구는 한밤중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라 속옷 차림으로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이 촛대다. 그는 “촛대는 결국 제일 마지막에 완성한 작품이다”라며 “(금속을) 계속 구부려야 해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밝혔다. 몇 번이나 금속을 두드렸냐는 질문엔 “셀 수조차 없다”고 답했다.
정형구는 결혼 후 대장간에서 일하는 장인어른을 돕다가 대장장이의 길을 걷게 됐다. 전국 유명 대장간을 찾아다니며 기술도 배웠다. 2008년 숭례문 화재 복원 당시 전통철물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한국전통문화대학원 전통철물 과정에 도전했다. 이렇게 그는 국가유산수리기능자(철물)가 됐다.
박지민의 작품인 달항아리와 비정형 화병들은 백자에 흑갈색 무늬를 그려 넣은 조선시대 칠화백자나 수묵화와도 같다. 그는 두 장의 판유리 사이에 나뭇잎 등 수집한 대상을 넣어 마그마보다 뜨거운 1200도의 가마에서 가열했다. 물질들은 유리 안에서 재와 그을음으로 변형돼 추상적인 패턴으로 탈바꿈했다.
박지민은 “사물 자체가 탄 흔적들에 집중했다”며 “그을음에도 그라데이션 등 다채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하는 이미지를 뽑아낼 수는 있지만, 100% 컨트롤할 수는 없다”고 부연했다.
전시는 예올북촌가에서 오는 22일부터 10월 19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