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경영' 꿈꾸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주가 높아도 걱정 낮아도 걱정

2023-09-21 05:00
영풍그룹서 계열분리 계획할 경우
상대측 지분 3% 미만으로 낮춰야
주당 평균 52만여권···3조원 필요
높으면 부담 낮으면 소액주주 눈치

최윤범 회장이 현대자동차와 한화 등과 손을 잡고 지분 확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고려아연이 '한 지붕 두 가족' 체계를 종식하고 영풍그룹에서 분리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지분구조 등을 고려할 때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단기간에 계열 분리는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만약 최 회장이 영풍그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주가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지분 분쟁에서 최 회장이 다소 유리한 고지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독자 경영 수준이 아니라 계열 분리를 목표로 한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 계열사다. 영풍그룹은 고(故) 장병희·고 최기호 창업주가 1949년 설립한 영풍기업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장씨 가문은 ㈜영풍을, 최씨 가문은 1974년 자매회사로 설립된 ㈜고려아연을 각각 경영하면서 2대까지는 재계에서 흔치 않은 '한 지붕 두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해왔다. 다만 3대인 최 회장 시기에 들어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양측은 신사업 추진에서 갈등이 커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경영권 확보를 위해 두 집안 간 지분 싸움이 수면 위로 떠올랐으며 점차 틈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최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하더라도 영풍그룹 전체를 운영하는 장씨 가문이 고려아연에 대해 계열 분리를 간단하게 허용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올해 상반기 기준 영풍그룹 6개 상장사 매출액 합계 5조494억원 중 고려아연 비중은 71.34%(약 3조6023억원)에 달한다.

이 기간 6개 상장사 영업이익 합계인 2458억원은 고려아연 단독 영업이익인 3195억원보다 적은 수준이다. ㈜영풍과 코리아써키트, 시그네틱스 등 상장사 3곳이 나란히 적자를 기록해 합계 영업이익이 줄어든 탓이다. 현재 고려아연이 그룹 내에서 대들보 역할을 맡고 있기에 계열 분리를 원한다면 최씨 가문일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계열 분리를 위해서는 특수관계인 주식 보유 비중을 상호 3% 미만(상장사 기준)으로 낮춰야 한다. 이 때문에 통상 대주주들이 합의해 서로 지분을 맞교환하는 형식으로 계열 분리가 진행될 때가 많다. 맞교환에 합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계열 분리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보유한 지분을 3% 미만이 되도록 매입하는 데 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영풍 등 장씨 일가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은 648만9016주에 이른다. 지난 6월 말 기준 고려아연 주식 총수가 1986만3158주임을 감안하면 3% 미만(59만5894주)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산술적으로 590만주가량을 매입해야 한다. 최근 한 달 동안 고려아연 주당 평균 가격이 52만4114원임을 감안하면 3조923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만약 주식 매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려아연 주가가 높아지면 자금 소요도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계열 분리를 계획한다면 경영권을 쥔 최 회장으로서는 장기적으로 고려아연 주가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 낮은 주가가 유지된다면 최 회장 경영권이 위험할 수 있다. 최 회장의 백기사로 참전한 현대자동차와 한화도 장기간 손해를 감수하는 데 동의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장씨 일가가 31% 이상 지분을 쥔 상황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액주주들이 32% 이상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장기간 낮은 주가에 지친 소액주주들이 절반만 장씨 일가 쪽으로 기울게 된다면 주주총회에서 우위를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 계열 분리를 계획한다면 최 회장은 주가가 낮거나 높아도 근심거리가 발생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LG 등 사례를 보면 지분 맞교환 등에 합의하고 계열 분리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지분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고려아연 정도 회사라면 조 단위 자금이 필요한 것은 물론 백기사와 소액주주 동향도 신경을 써야 해서 무척이나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