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증유의 압사 참사, '안전 불감증' 치유가 시급하다
2022-10-30 20:14
이번 사고는 핼러윈을 이틀 앞둔 주말인 지난 10월 29일 오후 10시 22분쯤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 일대 행사장에서 발생했다. 3년 만에 첫 ‘야외 노마스크’ 핼러윈을 맞아 가파르고 4m 내외의 비좁은 골목길에 10만여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손쓸 새 없이 순식간에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2014년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이후 최악의 인명피해다. 그동안 안전 사회로 가자는 우리 사회의 다짐조차 무색하게 “어떻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충격적인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느냐?”며 경악과 함께 망연자실할 뿐이다.
큰 재해가 일어나기 전, 반드시 작은 사고와 징후들이 존재한다는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우리는 이번 대형 참사의 경고를 수없이 받아 왔다. 1959년 7월 17일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부산시민 위안회 진행 중 폭우로 출구에서 67명이 사망했고 150명이 부상했으며, 1960년 1월 26일 서울역에서 설 귀성객들이 계단에서 밀려 30여 명이 사망했고, 1965년 10월 5일 광주 전국체전 개막식 때 입장객들이 좁은 문으로 한꺼번에 몰려 12명이 사망했으며, 1992년 2월 17일 서울 잠실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열린 미국 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 내한 공연에서 여고생 1명 압사하고 50여 명이 실신(失身)했으며, 1996년 12월 16일 대구 두류공원 우방랜드에서 열린 MBC 라디오 음악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에서 관객들이 앞으로 쏠려 여학생 2명 압사하고 4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2000년 12월 31일 서울 보신각 타종행사에서 5세 남아가 사망하고 9명이 부상했으며, 2005년 10월 3일 경북 상주시 시민운동장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MBC-TV 가요콘서트 프로그램을 방청하기 위해 서로 앞다퉈 입장하려다 11명이 깔려 숨지고 83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눈을 돌려 세계적인 압사 사고는 1984년 4월 영국에서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 간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경기가 열린 힐스버러 스타디움에 관중이 몰리면서 97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했다. 이듬해 5월 벨기에 브뤼셀의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리버풀과 유벤투스가 유러피언컵을 놓고 맞붙었을 당시 양 팀 팬들이 충돌하면서 39명이 숨지고 450명이 부상했다. 1990년 7월 이슬람 성지 메카 인근 사우디아라비아 알 무아셈 터널 내부에서 1,426명의 무슬림 순례자들이 메카와 미나를 연결하는 터널에서 압사 사고로 숨졌고, 사우디에서는 1994년 5월에도 자마라트교에 많은 순례객이 몰려 270명이 압사했다. 또한, 1998년 4월에는 메카에서 유사한 사고로 118명이 숨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2005년 1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의 만드라데비 사원 근처에서 최소 265명의 힌두교 순례자들이 압사 사고로 숨졌다. 같은 해 8월 이라크 바그다드 티그리스강의 한 다리에서 난간이 무너지면서 시아파 무슬림 순례자 640명이 숨졌다. 2010년 7월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열린 ‘러브 퍼레이드’테크노 음악 축제에서 공연장 근처 터널을 지나던 관객들이 서로 엉키면서 21명이 숨졌고 650여 명이 부상했다. 같은 해 11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3일간 진행된 연례 물 축제 마지막 날 다리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나 최소 350명이 숨졌다. 2013년 1월 브라질 산타마리아의 ‘키스 나이트클럽’에서 화재가 발생해 대피하던 손님들이 몰리면서 200명 이상 숨졌다. 가장 최근의 압사 사고는 지난 10월 1일 발생한 인도네시아 축구장 사고다. 경찰이 축구장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132명이 숨지고 100명 넘게 부상했다.
이번 이태원 압사 참사는 통제되지 않은 환경에 불특정 다수가 일시에 몰려들어 발생한 것으로 사고 당시 군중이 ‘집단 패닉’에 빠져 피난로가 두 방향이어도 남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만 가게 되어 피해가 커졌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생존자들도 ‘오지도 가지도 못한 극한 상황’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넘어지면서 도미노처럼 대열이 무너져 30분 넘게 빠져나가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2017년도 한국철도학회 춘계학술대회 논문집에 의하면 보행로에서 1㎡당 0.3명 미만이 보행할 때는 보행속도의 자유 선택이 가능하고 0.3∼0.4명 미만/㎡에서는 정상 속도로 같은 방향 추월이 가능하지만, 0.4∼0.7명 미만/㎡에서는 보행속도 추월의 자유가 제한받으며, 0.7∼1.0명 미만/㎡에서는 보행속도가 제한을 받으며, 1.0∼2.0명 미만/㎡에서는 자신의 보통 보행속도가 불가능하며, 2.0명 이상/㎡에서는 떠밀리는 걸음으로 정지상태가 된다.
숭실사이버대 박재성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화재 발생으로 피난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대규모 축제나 행사의 경우에도 사람들의 군집 밀도가 높아지게 되는데 보통 1㎡에 약 4~5명 정도의 사람이 들어찼을 때 군집의 흐름이 끊기면서 사람들의 신체에 압박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고, 1㎡에 8~9명 정도의 사람이 들어차면 여성들부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며, 1㎡에 약 12명 정도의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을 때 압사나 실신에 대한 사고가 발생한다. 따라서 군중의 흐름에 의해서 흘러가게 되고 앞에서 한 사람이 넘어져 압사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계속 사람들이 밀려와서 압사가 가중되고 피해가 커지는 상황이 된다. 더구나 좁은 도로에 경사가 져 한 사람을 50kg 정도로 보고 100명이 넘어지면 5,000㎏ 정도의 큰 무게가 되는데, 이 가운데 한 사람이 무너지게 되면 도미노처럼 계속 무너지게 되 짓눌림은 가중된다. 더구나 좁은 내리막 골목이라 심폐소생을 펼칠 최소한의 공간 확보도 어려웠다. 이렇듯 이번 참사는 ‘불안전한 환경’과 ‘불안전한 행동’이 ‘역(逆)시너지’로 작용했다. 게다가 워낙 사람이 많았던 탓에 출동한 소방관들도 구조 지연을 감수해야만 했고, 현장의 많은 시민이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했으나 유래없는 최악 참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골든 타임’을 놓친 대가치고는 너무도 참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뒷골목은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큰 안전 취약지다. 평소에도 좁은 골목이 많은 데다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늘 많은 인파로 붐비는 곳이었다. 사고 전날인 10월 28일부터 젊은 층이 대거 몰려 사고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당국의 치안 활동은 강화했지만, ‘노 마스크’로 3년 만에 재개되는 ‘핼러윈’ 행사였다면 수만 명이 몰릴 것을 미리미리 예상하고 그에 상응하는 철저하고 완벽한 대비책을 세웠어야 했는데 이처럼 대규모 인파를 대비한 안전관리 대책은 미흡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야외, 그것도 심야 행사에 당연히 있어야 했을 사전 사고 대비책 부실이 만든 참사라고 주장한 근거다. 쉽지 않았었겠지만, 인파 통행 방향, 밀도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사전에 사고 가능성에 대비했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형 압사 참사는 예고 없이 언제 어디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정부는 차제에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더는 대형 안전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다층적·다각적으로 면밀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미증유(未曾有)의 대규모 도심 인명 참사에 지금은 전 국민 모두 한마음 되어 졸지에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하신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함께 유가족을 위로하고, 조기 수습은 물론, 재발 방지에 국가역량 집주(集注)해야 할 때다. 모든 응급의료체계를 가동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불어 사고의 상처와 후유증을 하루빨리 수습하고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한 것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국가 경쟁력도, 기업 경쟁력도 국민 행복도 모두 안전에서 출발한다. ‘안전’은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 동안 어느 한순간도 가슴밖에 둘 수 없는 최고의 덕목이자 최상의 가치인 이유이다. 관련 시스템 보완은 물론 경제 논리에 밀린 안전불감증의 치유가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아울러 젊은 청년들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에 보다 투철한 인식과 철저한 대비에 힘써야 할 것이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