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갑분' 국민 속으로 들어온 대통령
2022-10-30 06:00
지난 여름 '대통령의 휴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궜다. 호화 여행을 떠나서가 아니다. 매일 서초에서 용산으로 출퇴근하는 대통령이 휴가 기간 동안 자택에 머무르면서 일대 교통 정체가 해소됐다는 글들이 올라오면서다. 한 배우는 "평소 1시간 걸리던 출근길이 30분으로 줄었다"며 "그저 웃지요"라고 일갈했다.
대통령이 청와대를 벗어나 '국민 속으로' 들어온 지 170일이 흘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과 동시에 집무실을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겼다. 이른바 '용산 시대' 개막은 대통령의 두 가지 의지가 담겼다.
하나는 국민의 삶 속에 가까이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공간·물리적으로 국민과 동떨어져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대통령실 앞에는 '국민 속으로'라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대통령은 매일 출퇴근길 이 조형물을 보면서 초심을 다잡을지 모르나, 그 일대를 자차로 통근하는 시민들은 혼잡해진 출퇴근길 때문에 "열심히 일하겠다"는 초심을 잃을 지경이다.
혼란해진 것은 시민들의 출퇴근길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아주경제 수습기자단이 방문한 대통령실 일대는 여전히 어수선했다. 도로 및 시설물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고, 시위 진압을 위한 경찰 차량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청와대 이전의 두 번째 이유는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약속은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내민 '용산 이전' 손가락을 맞잡을 국민들이 손가락을 낼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용산 시대는 도장 찍고 복사까지 돼버렸다. 국민과 약속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오판을 바로잡는 용기도 중요하다. 국민의 삶과 실리를 제쳐두고 '대선 공약을 지켰다'는 보여주기식 공약 이행은 아집에 불과하다.
"용산 시대 의미는 후대에 다르게 평가될 것입니다." 김영태 대통령실 대외협력비서관은 수습기자단이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완전히 준비된 상태로 들어오지 않아서 비용 부분 등에서 지적이 있지만, 경복궁 인근 청와대가 과거 왕조 중심 시대에 가까웠다면 용산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출퇴근길이 막히지는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비서관은 미리 준비한 듯 "저는 차가 막히지 않는 오전 7시 이전에 나온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도 갑작스러운 이 수고로움을 그와 함께 기꺼이 짊어지겠다고 생각할까.
대통령은 취임 200일도 되지 않아 20%대로 떨어진 지지율을 되새김질하고, 지리적 국민 속이 아닌 국민 '마음 속으로' 들어올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