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목적지 못 찾은 '대리운전 업종제한'
2022-05-26 07:00
여전히 식당이나 술집에 이야기를 하면 전화콜을 통해 배정해 주기 때문일까, 앱을 통해 대리기사를 호출하는 비율보다 전화콜을 주로 이용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고 한다. 또한 앱을 이용하는 연령대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용율이 뚝 떨어져 점유율은 20~30% 정도다. 내로라하는 대형 플랫폼 기업들이 전화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였다.
서로 의견 차이가 있겠지만 지난 24일 동반성장위원회에서는 ‘대리기사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였다. 1년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70여 차례 모임과 논의가 있었으며 서로의 주장을 조정하여 도출된 결과지만 양쪽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은 것 같다. 앞으로 세부 실행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지만 이번 결정으로 대형 플랫폼 기업의 전화콜 시장 진출은 사실상 어려워졌으며 사업 확장은커녕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기도 어렵게 되었다.
기존 전화콜 기업들 역시 불만이 많다. 이들은 대형 플랫폼 기업 편에서 위원회의 결정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며 이번 적합업종 결정이 오프라인 종목에 한정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미 대리기사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다 진출했으며 온라인을 통해 우회적 침해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사항은 이번 결정에서 빠져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늘어난 뱃살, 음주운전의 위험성과 택시 잡기도 힘들고 다음 날 차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 등으로 술을 가급적 멀리하고 싶지만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단숨에 만회하려는 조급함 때문인지 유혹을 참기 힘들다. 그래도 우리나라 음주문화 속에 대리운전업은 표준직업분류의 틈새를 파고든 신종 일자리라 생각한다.
이용자 입장에서 오랜만의 술자리에서 만취한 경우도 없지 않지만 가볍게 즐기는 경우도 많아 대리기사분과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일도 늘었다. 최근 만난 분들은 퇴근 이후 투잡으로, 어떤 분은 본인만의 사업 준비를 위해 대리운전업을 한다고 했다. 놀란 점은 생각보다 새벽배송부터 대리운전 등 코로나 이후 직장인의 투잡 현상이 더욱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과거 일본에서는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정책적으로 부업을 장려하였다. 일본 정부는 노동법까지 수정하였으며 이로 인해 대기업에서도 부업과 겸직이 허용된다. 우리나라에서 부업은 아직까지 ‘겸업·겸직 금지' 등 조항을 통해 직장인의 부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부업은 원칙적으로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과거 고용노동부는 부업에 대해 근로자의 겸직을 사생활 범주로 해석하여 기업의 노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겸직까지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일자리, 특히 투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아직 부족하다. 이번 대리운전업 사태에 있어서도 자신들 밥그릇에 대한 싸움이지 노동자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실제 대리운전 업체는 다수의 전화번호를 이용하지만 사실은 한 사무실에서 콜을 받는 경우가 많다. 콜센터를 통한 배정이 이루어지기에 대리기사님들 역시 특정 회사에 속해 있지 않다. 이분들 입장에서는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대리운전 기사님들은 오히려 콜 수수료 저렴하고 현재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간 움츠렸던 기업들이 생존과 변화를 위해 앞다투어 디지털 변환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네 일자리의 형태, 업무 방식 등에도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플랫폼을 바탕으로 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증가를 가져왔으며, 고용 형태 측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번 대리운전업 사태로 인해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이 생겼다.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에 따른 일자리 변화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보장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보장해 줘야 하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위한 싸움 속에 이리저리 내몰리기보다는 무엇이 우리 경제를 위한 길인지, 추구하고자 하는 상생은 무엇이며 그 대상은 누구인지 다시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의 지능정보사회로 변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과업과 업무프로세스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고용 및 근로관계 역시 새롭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근로자를 효과적으로 노동시장에 정착시킬 수 있도록 제도 정비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기존 제도의 틀에 억지로 맞추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근로자의 선택권을 인정하고 시장에서 자율적 협의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제도적 안정을 추구할 시점이다.
이번 대리운전법 사태를 계기로 사회적 변화에 대비한 새 정부의 판단을 기대한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영정보학과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