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이사해야 하는데 임차인이 잠수"...집주인도 세입자도 '멘붕'

2022-04-05 18:00
임대차 3법 폐지 예고에 7~8월 전세계약 앞두고 시장 참여자들 혼선

서울 용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집주인 A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오는 7월 세입자와의 계약연장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임대차3법 폐지를 예고하면서 부동산 셈법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전용 84㎡을 보유한 A씨 소유의 아파트 전세보증금은 현재 4억5000만원이고, 시세는 9억원 선이다. 세입자는 5%인 2250만원 한도 내에서 보증금 증액을 요구하며 갱신청구권을 사용하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A씨는 "현 보증금과 시세의 갭이 너무 커서 골치가 아픈데, 조만간 폐지될 임대차 3법 때문에 또 2년을 묶이면 재산상 손해가 크다"면서 "임차인을 내보내기 위해 부부가 따로 떨어져 살면서 임대차법이 폐지될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는 8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집주인 B씨도 세입자와의 갈등으로 고민이 많다. 이미 4년을 거주한 세입자가 최근 계약갱신권을 정식 요청하기 때문이다. B씨는 "그동안 보증금 인상을 한 번도 안했기 때문에 이번에 재계약을 하면 6년간 보증금을 5%밖에 인상하지 않는 셈"이라면서 "세입자가 임대차법 폐지 전, 막차를 타보자는 심보에 매일 수 십번씩 연락을 해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위로금과 이사금액을 줘서라도 반드시 내보낼 것"이라며 "당분간 공실로 냅두는 한이 있더라도 새 임차인을 찾겠다"고 했다.
 
대통령직인수위가 임대차 3법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당장 7월 전세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임대차시장에선 큰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임대차법에 시한부 선고가 내려지기 전 서둘러 계약을 체결하려는 세입자들과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계약갱신제를 어떻게든 피해보려는 집주인간의 눈치싸움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최근 전세시장 양극화를 초래한 임대차3법을 단계적으로 폐지·축소하는 법 개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인수위 관계자는 "시장 기능의 회복을 위해 임대차 3법을 어떻게든 손보겠다는 게 새 정부의 방향성"이라며 "폐지와 축소를 포함해 주택임대차 제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임대차3법은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로 이뤄졌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가 1회에 한해 계약갱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며, 전월세상한제는 재계약 시 임대료를 직전 계약의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다. 법시행 2년을 맞는 7월 31일이면 전월세상한제를 적용받았던 물량이 시장에 풀리는데, 통상 재계약은 3개월 전부터 협의가 가능하다.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면서 활기를 띠어야 할 봄 전세시장도 침울한 분위기다. 신규계약과 갱신청구권 계약의 가격차가 수억원씩 벌어지는 전세시장에서는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6월 지방선거 이후에는 임대차3법이 폐지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당분간 공실을 버티거나 단기계약,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들도 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인근 복수의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재계약을 미루다가 실거주를 하겠다며 매물을 회수하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면서 "세입자들도 작정하고 잠수를 타기 때문에 내용증명을 보내야 하냐는 문의가 하루에 2~3차례 온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집주인도 세입자도 살지 않는 빈집들이 잠실 일대에 꽤 많다"면서 "임대차3법, 토지거래허가제 등 설익은 정책이 집을 아무도 못쓰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시점인 만큼 큰 틀의 제도 변경은 시장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인수위가 임대차3법의 급격한 폐지보다는 수정 보완의 우회로를 선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권은 폐지하지 않는 대신 소형 주택은 주택수에서 제외하고 착한 임대인에게 양도세 비과세 특례를 적용하는 등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식이다.
 
업계 전문가는 "임대차3법 도입 2년 만에 전월세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는 상황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이나 임대료 인상률 등 큰 뼈대를 건드리는 것은 시장에 혼선을 불러올 수 있다"며 "시장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이 모두 수긍할 만한 상생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