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바보야 민생이야, 코로나야!
2021-07-07 15:16
미·중 경쟁, 어느 쪽이 국민을 더 이롭게 할까
2022년 한국 대선…역사관, 이념 논쟁 말고민생과 코로나
2022년 한국 대선…역사관, 이념 논쟁 말고민생과 코로나
베이징대 국제관계대학원 왕지쓰(王缉思) 원장은 중국 지도부의 ‘수석 외교 책사’다. 시진핑(習近平)의 중국이 그리고 있는 세계 체제, 글로벌 질서의 큰 그림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디자인했다. 일대일로는 2010년대 초반 미국이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자, 그 대응으로 나왔다. 미국이 막으면 태평양 반대로 눈을 돌려 서아시아·유럽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포함하는 현대판 실크로드를 만들겠다, 이게 일대일로의 핵심이다.
“미·중 양국은 ‘상호 존중’이라는 접근 방식을 준수해야 합니다. 미국은 수억명의 사람들을 빈곤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에 안정을 가져다 준 중국의 내부 질서를 존중해야 하며, 중국은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된-중국에도 큰 이익을 줬던-기존 국제 질서에서 미국의 긍정적인 역할을 존중해야 합니다.
중국 노학자가 세계 평화와 미·중 상생을 위해 울린 '비상벨'은 바로 요즘 우리 정치권에도 딱 들어맞는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뿐 아니라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앞으로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될지가 바로 ‘상호 존중’, ‘민생’, ‘코로나’에 달려 있다.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일을 8개월여 앞두고 여야 정치권과 대선 주자들이 쏟아내는 말과 행동을 보면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여와 야 사이 상호 존중은 언감생심이고, ‘누가 더 국민을 이롭게 하느냐’, ‘누가 더 코로나를 잘 극복하느냐’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만큼이나 멀다.
여야 각각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점령군 논쟁’으로 20대 대통령 선거 전쟁을 시작했다.
‘경제 부흥’을 내걸며 출사표를 던진 이 지사가 대한민국 출범을 미국 점령군과 친일 세력의 합작으로 규정하며 “깨끗하지 못한 출발”이라고 했다. 국민을 양분할 가능성이 큰 이념 대결 이슈를 먼저 꺼내든 셈이다. '장모 유죄'로 코너에 몰린 윤 전 총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고 이 지사를 공격했다.
두 후보 간 대권 첫 ‘일합’이 역사 논쟁, 나아가 ‘색깔론’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 지사는 지리산에서 빨치산을 하든지 북한에 망명하든지 하라”고 했다. 그는 나아가 “(이 후보가) 안동이 아닌 예안 출신이라 기본이 안 돼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 했다. 색깔론에 이어 망국적 지역감정까지, 배설 수준의 막말을 이어갔다.
조국 사태는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여당 경선에서 조국 전 장관을 옹호하는 ‘친조’와 비판하는 ‘비조’ 사이에 설전이 끊이지 않는다. 조 전 장관을 비판했던 외부 인사가 경선 면접관으로 발탁되자 큰 분란이 빚어졌다.
당 내부는 ‘대깨문’(극성 문 대통령 지지자) 논란으로 시끄럽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소위 ‘대깨문’이라고 떠드는 사람이 ‘누구가 되면 차라리 야당을 찍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순간 문 대통령을 지킬 수 없고 성공시킬 수 없다는 걸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문계 강성 지지층이 일제히 반발하는 등 민주당은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6일 열린 토론회에서 각 주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며 문제 해결 방안을 제각각 내놨다.
정세균 전 총리는 ‘공급 폭탄’,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토지공개념’,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주택임대차 3법 개정’, 이재명 지사는 ‘공공 기본주택’, 박용진 의원은 ‘땅 끌어모으기’를 주창했다.
민주당 대권주자들은 7일에도 ‘정책 언팩쇼’에서 민생 공약을 중심으로 공약 경쟁을 벌인다.
아직 본격적인 대선 후보 간 경쟁을 벌이고 있지 않은 보수야권은 윤석열 전 총장만 ‘민생’이라는 화두를 내걸었다. 하지만 민생을 파고들기보다는 ‘반문’ 색채, 정치적 제스처가 짙다.
‘윤석열이 듣습니다’라는 제목의 민생 행보 첫 방문지는 대전 현충원이었다. 연평해전 전사자와 천안함 용사 묘역을 찾아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카이스트를 찾아 탈원전 정책 비판을 이어갔다. 계속된 일정에서 충청권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충청권 대망론’에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모임을 가진 호프집 주인이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경찰에 신고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의 민생 행보는 서민 삶과 동떨어진 ‘세 과시’와 다름없다.
경기도 방역 총책임자인 이 지사는 법정 사퇴일인 12월 9일까지 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다. 언제 그만두든 간에 코로나19와 관련한 도지사 업무를 소홀히 해선 곤란하다. 윤 전 총장 역시 중대한 코로나 유행 시국에 지지자들이 몰려드는 장외 행사를 최대한 자제하는 게 바람직할 거다.
여야 골수 지지자를 제외한 평범한 중도층 국민들은 누가 나를 포함한 민생의 고통을 덜어줄 사람인지, 코로나 시국에서 나와 내 가족, 이웃의 건강을 지켜준(줄) 후보인지를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리턴 민주당 후보는 “바보야,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으로 승리했다. 그 다음 선거에서도 이겨 재선에 성공했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 세력은 “바보야 민생이야, 코로나야!”라고 외쳐야 한다.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실제로 이뤄내야 한다. 그 능력이 제1 선택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