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소송비용... 외국은 어떻게?

2020-03-09 11:38


#1

작년 장모씨는 한 중고차 딜러로부터 자동차를 구입했다. 무사고 차량으로 알고 샀지만 얼마 후 고장이 나 자동차 정비 업소에 갔더니 대형 사고가 난 차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고차 딜러에게 속은 것이다.

#2

어린 딸을 집 근처 사립 유아원에 맡기는 맞벌이 주부 이모씨는 요즘 속앓이를 하고 있다. 딸을 혼내려고 하면 화장실에 들어가 숨는 것이다. 수상쩍어 알아보니 유아원에서 아이들이 잘못했을 경우 방에 혼자 가두는 벌을 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3

최모씨는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 이사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 전까지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한다. 집주인에게 이미 이사할 집을 계약했다고 말했지만 집주인은 어쩔 수 없다고만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변호사를 선임해 해결하고 싶지만 변호사 비용이 부담된다. 결국 변호사 조력 없이 나 홀로 소송을 해보지만 어렵고 복잡한 소송 절차로 인해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해외 선진국에서는 위와 같은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해결할까?

해외 선진국은 이런 경우에 대비한 법률비용보험 제도가 발달했다. 법률서비스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개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법률비용보험이란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 보험사가 법률비용보험에 가입한 사람에게 법률 상담 및 일정 한도 내에서 변호사 선임비용, 인지대, 송달료 등과 같은 소송과 관련된 비용을 보장해주는 손해보험의 일종이다.

법률비용보험은 우리에겐 아직 낯선 개념이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전체 가구 수 가운데 43%, 미국은 국민의 40%, 영국은 2가구 중 1가구가 가입해 법률서비스를 받고 있다.

법률비용보험제도가 운영되는 나라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한 달에 $35.95 정도의 보험료만 내면 계약서 검토, 세금납부, 민·형사 소송 등 사실상 법률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보험형태의 법률비용지불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17년 프랑스의 도시인 르망(LeMans)에서다. 사고가 속출하는 르망자동차 경주대회에서 피해자가 경주대회 주최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데 많은 비용이 소요되자 스위스 국적의 한 회사가 이를 보험으로 처리하는 상품을 내놨다. 1928년 이 회사가 자회사 설립방식으로 독일에 진출했다. 처음에는 자동차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소송 및 변호사보수, 감정서 작성비용 등을 보장하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후복구와 경제부흥의 필요에 의해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됐다.

미국은 노동조합이 사용자로부터 기금을 받아 놨다가 조합원이 법적 분쟁에 얽혀 법률비용이 발생 했을 때 해당 금액을 지급하는 ‘공제형 보험’이 주로 발달했다. 천차만별인 변호사비용과 지역마다 다른 보험관련법규 때문에 영리보험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899년 의사협회가 의료과실사건에 대해 변호를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1919년 경찰관 상조회, 1930년 열차승무원 상조회 등으로 그 숫자가 서서히 증가하다가 1971년 연방대법원이 단체를 통한 변호사비용 마련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법률비용보험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일본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변호사단체가 직접 법률비용보험의 판매 주체로 나서고 있다. 2000년 일본변호사연합회는 닛세이도 등 3개 보험회사와 협약을 맺고 상품개발과 판매에 나섰다. 또 각 지방변호사회에 ‘법률상담센터’를 설치해 법률비용보험에 가입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변호사소개에도 적극적이다. 하지만 일본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연간 55만 건으로 소송건수가 적은 편에 속하고 법률비용보험 보상한도도 500만 엔 정도에 불과해 국민들의 법률비용보험 가입률은 그리 높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8년 독일계 법률비용보험회사가 진출해 보험 상품을 내놨지만, 5년 만에 철수 결정을 내렸다. 현재 이 회사는 더 이상 신규 고객을 받지 않고, 이미 법률비용보험에 가입한 사람과 맺은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계 보험회사도 법률비용보험을 내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판매를 중단한 한 바 있다.
 

[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