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스트리밍 시대 비평적 가치가 갖는 의미
2020-02-16 08:49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기생충>이었다. 아카데미가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보수적인 태도를 차치하고서라도 경쟁자들의 면면을 봐도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1917>은 미국 감독 조합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아 아카데미에서도 수상이 유력해 보였다. 국내에서 개봉하기 전이지만 시사회를 통해 <1917>를 접한 국내 영화 관련 전문가들조차 조심스럽게 <1917>의 수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다. 다른 경쟁작은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지는 <아이리시맨>이다. 봉준호 감독이 경의를 표한 마틴 스콜세지는 아마도 20세기와 21세기를 통과해 온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한 명일 것이다. 그와 함께 했던 배우들의 면면은 그 자체로 헐리우드의 인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의 이름은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다.
넷플릭스는 이 결과에 다소 허탈할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들이 24개 부문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결혼 이야기>로 로라 던이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작년에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촬영상을 받았던 <로마>가 거뒀던 성취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올해의 실패를 계기로 아카데미상을 수상 할 만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 더욱 열을 올릴 것이다.
우리는 이용자가 동영상을 자신이 놓여 있는 환경에 맞게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스트리밍 시대에 살고 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우려했던 참여의 제약은 극복된 지 오래다. 기존 방송사와 영화사,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전용 플랫폼까지 가세한 동영상 시장에서 경쟁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경쟁수단인 콘텐츠의 성격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넷플리스는 자체적으로 자신들의 연혁을 5가지 시기로 구분해 놓고 있다. 그중 마지막인 2017년부터 지금까지를 보면 주요 시상식에서의 수상실적이 대부분이다(https://media.netflix.com/ko/about-netflix).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자신들이 비평적으로 최상위급 작품을 만드는 회사로 발돋움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있는 것이다.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그 저명한 이름을 빌리자면 작년에 스콜세지가 마블이 만든 작품은 시네마가 아니고 테마파크에 가깝다고 해서 크게 이슈가 되었다(Martin Scorsese (2019. 11. 14). Martin Scorsese: I said marvel movies aren’t cinema. let me explain. The New York Times.). 당연히 마블이 들으면 서운할 얘기인데, 단순히 기분 나쁜 소리여서가 아니라 다른 쪽에서는 마블이 만드는 콘텐츠가 지나치게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집착해서 자신들이 제작하는 콘텐츠를 망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수익을 올려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미디어 기업들이 비평적 가치 혹은 자신들의 평판 관리에 집착하는 것일까? 스콧 갤러웨이는 『플랫폼 제국의 미래』(이경식 (역)). 서울: 비즈니스북스.)에서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들이 좋은 평판을 유지하는 것이 투자를 유치하는 것에 유리할 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규제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유익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용자들도 자신들의 돈 혹은 시간을 투여하는 서비스가 가급적이면 명품에 가까운 형태이기를 바란다고 갤러웨이는 말한다.
상업적인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화와 같이 문화적 성격을 갖는다면 언제든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가 이용하고 있는 플랫폼과 콘텐츠가 낮은 비평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좋아할 이용자가 있을까? 설사 내가 자주 이용하지 않더라도 내가 구독하고 있는 플랫폼이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콘텐츠로 가득하다면 그것을 싫어할 이용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는 내년에도 아카데미에 도전할 것이 분명하며, <조커>로 재미를 본 워너브라더스도 <조커> 같은 영화를 다시 만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마블도 스콜세지의 말을 되갚아 주고 싶을지 모른다. 스트리밍 시대 콘텐츠가 갖는 비평적 가치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생충>을 통해 놀라운 경험을 한 대한민국에서도 동영상의 비평적 가치에 대한 관심과 논쟁 그리고 투자는 지속될 것이다. 다시 한번 <기생충>의 승리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