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엔터프라이즈-삼성전자] '100년 기업', 반세기 전환점이 갈랐다

2019-01-14 06:00
삼성전자 13일 창립 50주년…전문가들 "100년 기업 도약하려면 시장 변화 빠르게 인지해야"
IBM, R&D 막대한 투자로 26년간 '특허왕'…디지털 외면한 코닥은 자충수로 몰락

13일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숍 앞으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창업 난수성(易創業 難守成)'

중국사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끌었다는 당 태종의 말이다. 일을 시작하기는 쉬워도 이룬 것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는 것. 수성을 강조한 태종 덕분에 당나라는 300년 가까이 중국 문명의 최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태종의 고민은 1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요약되는 기술 격변기는 기업에 끊임없는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100년 기업의 조건'의 저자 케빈 케네디 어바이어 대표는 글로벌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13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13일 창립 50주년을 맞은 삼성전자는 이미 향후 반세기를 내다보고 있다. 김기남 부회장은 이달 초 신년사를 통해 "초일류 100년 기업을 향한 여정이 시작됐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를 보면 50주년 즈음의 행보가 앞으로의 50년을 결정한다"며 "삼성전자가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인지하고 그에 맞게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100년 기업 비결은··· 끊임 없는 체질 개선, 과감한 인재 기용
 

[사진=IBM 100주년 기념 홈페이지]


1911년 천공카드 제조사로 출발한 미국 IBM은 100년 기업의 단서를 제공한다. 끊임없는 변신을 통해 IBM은 가장 변화가 빠르다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1세기 이상 경쟁력을 지켜왔다.

변화의 원동력은 연구개발(R&D)이다. 1914년 사장으로 취임한 토머스 왓슨은 경영철학으로 '싱크(Think)'를 제시했다. 대공황을 맞은 1930년대에도 그는 전체 매출의 10%를 R&D에 투자하며 기술에 승부를 걸었다.

1952년 2대 사장 자리에 오른 토머스 왓슨 주니어 또한 선대의 경영철학을 이었다. 이미 사무기기 시장을 석권했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왓슨 주니어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300만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IBM이 내놓은 개인용 컴퓨터(PC)의 전신은 기업은 물론 국방 분야에서도 활용되면서 폭발적인 매출을 낳았다. IBM의 '싱크'는 현재진행형이다. IBM은 지난해 26년 연속으로 가장 많은 특허(9100건)를 취득한 기업의 자리에 올랐다.

'프리미엄 가전'으로 유명한 독일의 밀레는 1899년 창립됐다. 고객으로부터의 신뢰가 이들의 경쟁력이다. '2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모토 아래 품질에 대해 강박적일 정도로 천착해 왔기 때문이다.

창립 50주년 이후 내놓은 '75번 드럼세탁기'의 직사각형 디자인 또한 이러한 경영철학의 일환이었다.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최대한 심플한 디자인을 도입해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한 것이다.

아파트가 주거공간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밀레의 의도는 적중했다. 지하실 대신 주방과 욕실에서도 인테리어로 기능할 수 있는 세탁기는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밀레를 글로벌 업체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일본의 게임회사 닌텐도의 경우 과감한 인재 기용이 기업의 운명을 바꿔놓은 경우라 할 만하다. 1899년 화투 제조업체로 창립된 닌텐도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50여년 만에 도산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닌텐도는 엉뚱한 곳에서 활로를 찾았다. 야마우치 히로시 당시 회장은 신입사원 요코이 군페이가 업무 시간에 심심풀이로 만들던 집게를 보고 상품화를 지시한다. 이 집게는 1966년 '울트라 핸드'라는 이름의 장난감으로 출시돼 크리스마스에만 140만개 이상 판매된다.

군페이는 이후에도 휴대용 게임기 사업을 제안하며 닌텐도를 현재의 반열에 올린 일등공신이 된다. 임직원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업 아이템으로 검토한 모범적인 사례다.

◆시대 역행·무리한 확장··· 공룡기업도 한순간에
 

한 관람객이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19' 코닥 부스를 지나가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몰락을 피하지 못한 기업들도 있다. 미국의 코닥이 대표적이다. 1833년 설립된 코닥은 한때 필름의 대명사로 명성을 떨쳤으나 2012년 파산을 신청했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경영 판단이 코닥을 무너뜨린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실제로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으나 상용화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자사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아날로그 필름 시장을 디지털 카메라가 붕괴시킬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디지털 전환을 거부하던 코닥의 전략은 1998년 일본 카메라 제조사들이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를 내놓기 시작하면서 자충수가 됐다.

1865년 제지업으로 출발한 노키아는 휴대전화 제조업으로 변경하면서 한때 핀란드를 먹여 살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부진을 벗지 못하고 2013년 휴대전화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했다.

최고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를 보유한 상황에서도 노키아가 무너진 원인은 무엇일까. 현 상황 유지에 보수적으로 집착했다는 점이 몰락의 원인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노키아는 유럽 휴대폰 시장의 맹주라는 위치에 안주해 당시 세계 최대 시장이었던 미국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2000년대 당시 미국에서는 폴더폰이 유행했지만, 노키아는 바 형태의 휴대폰만 고집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그 틈새를 비집고 점유율을 늘렸다. 애플의 '아이폰' 출시는 노키아에 대한 '확인사살'이었다.

문어발식 사업확장 또한 공룡기업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한때 가전업계의 절대강자였던 소니는 2012년 TV 사업을 분사하고 PC 부문을 매각했다. 영화와 게임,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규모로 투자하면서 오히려 본업인 하드웨어의 핵심 기술을 등한시했다. 소니는 기존 사업을 과감히 버리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 위주로 재편하면서 비로소 지난해 상반기에만 19조5000억원이라는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이병태 카이스트 IT경영대학 교수는 "기업의 영속성은 끊임 없는 혁신을 통한 핵심적인 역량을 쌓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위기가 왔을 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하며 돌파했듯 반도체 다음의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