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칼럼] 무소불위의 편의적 행정권력이 불러온 가상화폐 규제의 혼란
2018-01-15 08:48
[이병태칼럼]
암호 화폐의 투자 열풍이 사회적 논란이 되자 정부의 각 부처가 앞다투어 규제 의도를 분명히 하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라는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발표는 가격이 폭락하고 투자자가 몰려서 거래소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태를 만들었다. 법무부 장관이 "비트코인은 돌덩이"라며 조심성 없는 발언을 쏟아내고,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부처 간 협의된 사항이라고 규제 지지에 열을 올렸지만 이에 분노한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청와대 청원자 수가 17만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나자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는 정부차원에서 조율된 입장이 아니다"고 청와대가 발을 빼며 시장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위험한 투자로 사고가 나면 그 투자의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려는 후진적 경험을 종종 갖고 있다. 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키코가 환 투기 대상이 되면서 은행의 불완전 판매 여부는 오랜 법정 시비가 되었고, 위험한 후순위 채권에 노후자금을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동양증권의 부도 당시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을 이유로 배상을 요구하는 사태로 사회적 문제로 발전했었다. 일부는 현재의 비트코인을 정치적 의혹으로 번졌던, 오락을 가장한 사행성 도박 '바다이야기'와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투자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서서히 시작해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투자열풍이 옮겨 다니는 글로벌 현상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상화폐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머니와 아이템의 거래소가 발달해서 지금의 2030세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가상 화폐에 친숙하다. 그때도 지금의 채굴과 유사한 게임머니를 벌어서 현금화하는 소위 작업자들이 우후죽순처럼 활동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잘 발달한 PC방과 채굴업자들에 의한 채굴로 판매할 가상화폐가 많이 생성되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거래가 활발한 이유가 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가상화폐 경제에 익숙한 세대를 지난 20년간 양성해 오고 있었기에 그 세대들은 매우 익숙하게 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가상화폐가 빌 게이츠의 찬사처럼 '돈의 혁명'으로 진화할 것인지, 우리 정책당국자들의 확신처럼 돌덩이일 뿐인 사기로 조만간 폭락할 것인지 누구도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다만 기술적 혁신은 한번의 시도로 성공하지 못하고 반복된 실패를 딛고 요소 기술이 성숙되면 대중화에 성공하는 경향이 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꾸기 전에도 PDA폰과 같은 수많은 실패한 시도가 있었던 것처럼, 암호화폐가 실험과 진화를 통해 일정부분 안전하고 혁신적인 지급결제의 수단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가능하다. 그리고 많은 가상화폐를 통해 급속도로 자금이 투입되며 발전하고 있는 블록체인의 잠재성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고 있다. 가상화폐의 금지는 결국 우리나라에서 블록체인 혁신이 비켜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의 그 어느 공무원도 우리나라의 법무장관이나 금융위원장과 같은 극단적 확신을 이야기하지 않고 기존 금융 제도권 안으로 규제를 제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위관리들이 다른 나라의 관리들에 비해 기술적 식견이 탁월하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 전망의 불확실성 이전에 이번 사태를 초래한 정책당국자들의 시장에 대한 태도와 정부의 역할이 전근대적이고 권위적이라는 점에 있다. 암호화폐도 개인자산이고 그것을 불법화할 수 있는 명시적인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래소 폐쇄나 징세의 법적 근거도 매우 희박하다. 그런데 국회나 수백만 투자자의 이해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소수의 관료들이 밀실 회의 한번 하면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을 불법화할 수 있다는 발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법무부 장관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지 법으로 시장을 협박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금융감독위원회도 금융감독의 체계 내에서 관리할 의무를 넘어 입법이 전제되고 사법적 시비 대상의 최종 결정권자를 자임하는 것은 결국 삼권분립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번 정부 들어 권위적이고 무소불위의 권력 과시가 잦고 자의적이며 남용적인 권한해석에 의한 시장 개입과 관치의 확대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 같은 암호화폐 규제 혼란은 오만한 권력의 자세가 빚은 참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빅브러더를 자임하는 권위적이고 절제되지 못한 권력 과시형 정부 아래서는 4차 산업혁명도, 혁신성장도 숨쉴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