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애국’으로 이념·세대갈등 치유…국민통합 화두로
2017-06-06 14:49
"국가보훈처 장관급 격상" 약속…화해·통합의 기틀로서 '애국' 강조
文대통령 옆자리에 4부요인 대신 지뢰사고 부상 군인들
文대통령 옆자리에 4부요인 대신 지뢰사고 부상 군인들
아주경제 주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추념사를 통해 '애국'을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과 정치적 편 가르기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국민통합'의 '중심 화두'로 제시했다.
A4 용지 넉 장 분량의 추념사를 12분에 걸쳐 읽어 내려가는 동안 애국이라는 단어를 22차례나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념사에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 6·25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과 청년들, 베트남 참전용사들, 파독광부 와 간호사, 청계천 봉제공장 여성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데 애쓴 모든 분들이 애국자’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는 노인이 되어 가난했던 조국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그분들께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의 훈장을 달아드린다"면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0년간 굴곡의 현대사 속에서 목숨도 버리면서까지 조국의 독립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경제를 일으켰으며,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국민의 애국심이 바로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출발이자 원동력임을 강조했다. '좌우' 진영을 모두 애국의 주체로 아울러 적시하는 탈(脫) 이념적 역사인식을 보여줬다.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이른바 태극기와 촛불로 나뉘어 보수 대 진보, 세대 간 갈등이 극심했던 상황을 우회적으로 떠올리게 하면서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이념갈등을 끝내주실 분들이다. 이 나라의 증오와 대립, 세대갈등을 끝내주실 분들도 애국으로 한평생 살아오신 바로 여러분들”이라며 “무엇보다,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애국심이 바로 정의와 상식, 공정, 화해와 통합을 이루는 밑바탕이자 힘이 될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보상과 예우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정부와 국가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가보훈처를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그 가족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애국·정의·원칙·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가자"고 당부했고, 내빈들은 세 번의 박수로 문 대통령의 추념사에 화답했다.
보훈정책을 국정의 주요기조로 내세우고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은 정치적 측면에서도 대선과정에서 안보 불안감을 느껴온 중도와 합리적 보수층에 상당한 호소력을 가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보훈 약속은 이날 추념식장 풍경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 내외 옆자리는 지난해 지뢰 사고로 우측 발목을 잃은 공상군인인 김경렬씨(22)와 2년 전 북한의 비무장지대 지뢰도발 당시 부상을 입은 김정원(26)·하재헌 중사(23) 등이 앉았고, 문 대통령이 현충탑에 헌화·분향할 때도 4부 요인이 아닌 이들 상이군경을 비롯해 광복회장, 대한민국상이군경회장,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장, 4·19혁명희생자유족회장 등과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다섯 명의 국가유공자에게 직접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했다. 한국전쟁 당시 포병으로 근무한 박용규씨(88)를 대신해 증서를 받은 아들 종철씨(59)가 소감문 낭독을 마치자, 문 대통령은 단상에 올라가 박용규씨를 직접 부축해 자리로 안내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추념사에서는 대북 메시지는 없었다. 또 '북한'에 대한 직접적 언급도 없었다.
문 대통령은 다만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는 동안 목숨을 바친 조국의 아들들이 있었다" "철원 '백마고지', 양구 '단장의 능선'과 '피의 능선', 이름 없던 산들이 용사들의 무덤이 되었다"는 등 한국전쟁을 간접적으로 연상케 하는 단어들만 썼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압박 흐름에 동참하면서도 북한과의 대화의 여지를 열어두려는 포석이라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