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선 매직'의 비결은 "태극마크에 대한 자긍심"
2017-04-27 03:05
아이스하키 대표팀 기적의 3연승으로 월드챔피언십 승격 '눈앞'
NHL 스탠리컵 두 차례 들어 올린 백 감독은 '빙판의 히딩크'
"7명의 귀화선수도 똑같은 한국인, 따로 질문하지 마라"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한국의 전력이 급상승한 이유가 뭔가?"
지난 2월 일본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의 취재진은 백지선(50·미국명 짐 팩)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국이 2차전에서 일본을 4-1로 꺾은 이후였다.
백 감독은 이 질문에 "선수들은 유니폼에 새겨진 태극마크에 커다란 자긍심을 느끼고, 열정적으로 경기를 뛴다. 그 외의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백 감독 부임 이후 한국 아이스하키가 달라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유로 아이스하키 챌린지(EIHC)에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연파하고 정상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같은 해 4월 세계선수권에서는 일본을 3-0으로 꺾고 34년 만에 일본을 꺾는 쾌거를 이뤘다.
진짜 마법은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벌어졌다.
백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22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막을 올린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2부리그)에서 3전 전승으로 대회 선두를 달리고 있다.
"강등만 면해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적들이 즐비한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유일하게 무패 팀이다.
한국은 이제 남은 두 경기에서 승점 2점만 추가하면 사상 처음으로 '꿈의 무대'인 월드챔피언십(1부리그)을 밟는다.
2014년 7월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한 백 감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선수들에게 대표팀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준 일이다.
과거 땀 냄새가 진동하고 지저분했던 대표팀 라커룸은 요즘에는 경건한 느낌이 들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선수들은 이동할 때면 항상 정장을 착용한다.
백 감독은 선수들에게 "너희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한국 국가대표로서 자부심을 느껴라"고 강조했다.
이는 귀화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백 감독은 현재 7명에 이르는 귀화 선수들을 따로 분류해 질문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백 감독의 말은 한결같다.
그는 "내 눈에 그들 모두는 한국인이다. 물론 피부색이나 눈 색깔이 다를지는 몰라도 그들은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를 말할 줄 알고, 동료들의 존경을 받는다"며 "내 눈에는, 그리고 그들의 눈에도 그들 모두는 이 나라를 대표하는 한국인"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보다 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귀화 선수들을 보유한 카자흐스탄이 우리에게 2-5로 무릎을 꿇은 결정적인 이유였다.
백 감독은 토종 선수든, 귀화 선수든 상관없이 유니폼에 새겨진 태극마크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결국, 그 하나 된 마음이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서울 태생으로 1세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에 이민한 백 감독은 1990년대 초반 NHL 명문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수비수로 활약하면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NHL 챔피언에게 주어지는 스탠리컵을 두 차례나 들어 올렸다.
범접하기 어려운 경력에다 백 감독이 지시한 전략이 경기에서 그대로 적중하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선수들의 백 감독에 대한 신뢰는 가히 절대적이다.
혹자는 백 감독을 '빙판 위의 히딩크'라고 부른다.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두 사령탑은 닮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11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뒤 기술보다는 체력 훈련에 방점을 찍었다.
백지선 감독도 약체가 강호를 이기려면 가장 필요한 게 체력이라는 걸 알았다.
2년째 여름마다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소화한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카자흐스탄(5-2승), 헝가리(3-1승)에 모두 역전승을 거둔 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백 감독은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이기는 겁니다. 우리는 지려고 가는 게 아닙니다. 질 거라면 왜 대회에 나갑니까?"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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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