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국회가 '37개 재벌'을 세금도둑 만드나

2017-03-09 14:38

아주경제 조준영 기자= 아버지는 100원을 아들에게 줬다. 아들은 집을 청소했다. 부모는 올바른 훈육, 아이 입장에서는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착취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방금 얘기한 아들이 청소한 집은 100원짜리다. 집주인은 이제 아들이다. 아버지는 더 큰 집도 가지고 있다. 아들은 회사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회사에 1000원을 줬다. 회사가 고용한 알바가 더 큰 집을 청소했다. 아들은 1년 동안 알바에게 0.365원을 줬다. 회사는 아들에게 상법상 배당가능이익을 모두 채워 배당했다. 더 큰 집도 이제 아들이 주인이다.

대기업집단도 마찬가지다. 오너가 계열사 청소나 경비, 자재구매, 전산관리를 자식에게 맡긴다. 이런 식으로 경영승계가 상속세나 증여세 없이 이뤄져왔다. 삼성SDS와 현대글로비스, SK C&C처럼 익숙한 재벌 계열사 가운데 적지않은 곳이 이런 지적에서 자유릅지 않다. 정부가 최근에서야 부당 내부거래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시에 다시 큰 구멍이 생길지 모른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못 넘은 채 시행령이 바뀌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6년 9월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고쳤다. 상호출자를 막는 대기업집단 기준을 완화했다. 자산총계 기준이 5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많아졌다. 공정위는 커진 경제 규모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대신 부당 내부거래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예전처럼 막기로 했다. 자산총계가 5조원 이상, 10조원 미만인 경우는 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는 얘기다. 준대기업집단은 상호출자 규제에서 벗어나지만, 내부거래 내역을 공시해야 한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해마다 5월 대기업집단을 지정해왔다. 이런 이유로 새 대기업집단 기준도 오는 5월부터 적용한다. 자산총계 기준이 상향 조정돼 대기업집단 수는 65곳에서 28곳으로 37곳 줄어든다. 이번에 빠져나가는 37곳이 사익편취를 감시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물론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규제 공백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국회가 문제다. 더 좁히면 법사위가 발목을 잡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이미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를 통과했다. 애초 공정위는 준대기업집단 기준을 시행령에 위임하려 했다. 국회와 관계 없이 공정위가 고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에 비해 정무위는 준대기업집단 기준을 공정거래법 개정안 자체에 넣었다. 정부안보다 깐깐해졌다. 하지만 본회의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를 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당인 자유한국당이 법사위 주도권을 쥐고 있다. 법사위 간사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상법 개정안을 비롯한 경제 민주화 법안이 번번이 법사위 문턱을 못 넘었다.

경제민주화 법안을 주도해 온 야당은 불만이다. 모든 법안이 법사위에서 막힌다고 얘기한다. 물론 시간에 쫓겨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졸속 처리돼서는 안 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정부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을 때 대기업집단 기준을 더 세분화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자산 규모별로 경제력집중 억제와 사익편취ㆍ불공정거래 금지, 금산분리, 공시의무를 차등 적용하자는 것이다.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자산 순위로 전환하는 것도 요구했다. 해당 대기업집단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규제하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알바노조는 서울 명동거리에서 펼침막을 들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동일 민낯'이라고 썼다. 일한 만큼 돈을 줘야 할 뿐 아니라 여성 알바 노동자에게 화장을 강요하는 것도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쉬운 얘기다. 부당 내부거래도 마찬가지다. 일감 몰아주기가 사실상 상속이나 증여에 해당한다면 세금도 그에 맞게 내면 그만이다. 돈이 있어야 정부도 일할 수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홍준표 경남지사,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을 비롯한 유력 대선주자가 모두 막대한 돈을 써야 하는 복지공약을 내놓을 것이다. 국회가 제때 법안만 통과시켜도 세금도둑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