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유미 "따뜻한 에너지를 가진 연기자, 사람이 되고 싶어요"
2016-07-11 00:00
아주경제 김아름 기자 = 배우 정유미에게는 그윽한 향기가 느껴졌다. 후각을 자극 시키는 향이 아닌 오감을 만족시키는 향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를 표현해낼까 고민했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그냥 정유미라는 사람은 어떤 복잡한 수식어는 필요가 없다는 것을.
최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정유미는 최근 종영한 KBS ‘마스터-국수의 신’ 종영 후 홀가분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앞선 ‘육룡이 나르샤’는 50회였고, ‘국수의 신’은 2회였잖아요. 제가 육룡이 끝나고 일주일 텀 두고 바로 작품을 들어가서 마음과 몸이 지친 상태였죠. 그래도 긴 작품 후 바로 다음 작품으로 이어져서 이제 좀 친해지려나 했었는데 끝난 느낌이었어요.”
“요즘 실제로 욱하는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장면을 촬영할 당시 밤을 이미 너무 많이 샜고, 조재현 선배님도 몽롱하신 상태였거든요. 멱살을 잡아야 하는 장면을 연습하는데, 그때 저도 모르게 ‘개자식아’가 아닌 더 센 대사가 나와버렸어요. 하하하. 멱살을 잡는데 선배님께서 ‘여자한테 멱살 잡히니까 잠이 깬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 장면이 저도 참 통쾌했던 것 같아요.”
반면 힘든 장면도 있었다. 특히 태하(이상엽 분)를 향한 죄책감은 연기하면서도 따라다녔다고.
앞서 언급했듯 정유미는 ‘육룡이 나르샤’ 이후 ‘국수의 신’ 촬영에 바로 투입되는 등 쉴 새 없이 연기를 이어왔다. 이유가 궁금했다.
“데뷔하고부터 쭉 오디션을 보고 다음 역할이 정해지고 그렇게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아직까지도 공백기가 길어지면 제 자리가 망가질 것 같고, 잊혀질 것 같은거예요. 연기자로서 정유미가 없어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쌓아온 걸 유지하려면 눈에 계속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조급했던 것 같아요. 쉬지않고 작품을 했지만 이제는 좀 쉬어야 할 때가 맞는 것 같긴해요.(웃음) 얼마전에 ‘육룡이 나르샤’ 통해서 친해진 김명민 선배님과 밥을 먹는데 선배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연기자로서, 여자 배우로서 분명히 한 작품 한 작품이 소중하고 귀하다. ’육룡이‘와 ’국수의 신‘ 캐릭터가 연결성이 있는데 그런 이미지가 틀에 박히면 절대적으로 이미지 소모 밖에 안된다. 배우가 많이 비쳐지는 건 크게 무의미 하지 않느냐. 조금 더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약간의 공백을 두더라도 다음 작품은 한 템포 쉬어가라. 이미지 소모는 마이너스니까 비쳐지는 것에 연연하지 말라’고요. 선배님의 말씀 덕에 조급한 마음은 없애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다음 작품이 결정된 게 없으니 불안하고 그런 것 같아요. 하하하.”
선배 연기자의 조언으로 또 하나를 배워간 정유미는 ‘국수의 신’ 전작 ‘육룡이 나르샤’를 통해 얻은 인연들에 대한 소중함을 언급했다. 배우 변요한, 신세경, 윤균상, 김명민 등이 그와 친분을 쌓고 있었다.
“(변)요한이 뮤지컬 ‘헤드윅’을 관람하러 가기도 했어요. 요즘 요한이가 ‘육룡이’ 때보다 바빠서 자주 못봐요. 그래서 간간히 통화하고 문자하면서 계속 연락은 주고 받아요. 요한이 뿐 아니라 (신)세경이나 (윤)균상이와도 단체 메신저로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죠. 저희 사모임이 있어요. 이름이 ‘입술로’예요. (웃음) 드라마 초반에 회식하면서 따로 모임을 갖는데 이름을 정하자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에요. ‘입술로’가 무슨 뜻이냐고요? ‘입으로 술이 들어가는 길’이라는 뜻이에요. 하하하하. 다들 바빠서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틈만 나면 연락해요. 또 (김)명민 선배님도 동네가 같아서 간혹 집 앞에서 만나서 종종 맛있는 거 사주세요. 너무 좋은 분들이세요.”
정유미에게서 느껴졌던 여리면서 새침데기 같은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의리는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원래 정유미는 주변인들을 잘 챙기는 배우다. 함께 작업한 드라마 스탭들은 물론이거니와, 작품을 함께했던 배우들까지도 작은 인연 하나를 소중하게 여겼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은 확실히 있어요. 사람이 남는 거더라고요. 특히 작품을 하다보면 맨날 봐야하니까 친해질 수밖에 없잖아요. 작품이 끝나서 조금 소홀해지면 그 시간들이 무의미할 정도로 멀어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는 빚지고는 못사는 편이라는 말로 자신의 성격을 대신 설명했다. 연애할 때도, 가족들에게도 하나를 받으면 반개라도 갚고 살자는 생각이라고.
정유미는 몇 년 전 가수 정준영과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에 가상부부로 출연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이렇다 할 예능 출연은 하지 않았다.
“예능은 언제든 하고 싶고 워낙 좋아해요. ‘1박 2일’도 정준영 씨 때문에 보는 게 아니라 강호동 씨가 나올 때부터 보고 있는 예능 중 하나에요. 예능 출연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요. 딱히 출연할 기회가 없었던 것 뿐이었죠.”
이제 무거웠던 ‘국수의 신’을 내려놓고 정유미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물론, 그녀의 성격상 가만히 쉬지만은 않을 예정이다.
“다음 주에 서핑 강습 예약을 잡아놨어요. 양양에 가서 서핑을 배울 예정이에요.(웃음) 스쿠버 자격증도 따놨는데 바다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얼마 전에 ‘1박 2일’에 울릉도가 나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물 좋은 곳으로 가서 사놓은 장비를 마음껏 사용하고 싶어요. 또 제주도 여행가서 혼자 올레길을 걸어보고 싶고, 혼자 외국도 가고 싶어요. 또 저희 외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이서 같이 여행을 보내드릴까 생각하고 있고요. 많은걸 경험해보고 싶어요.”
무엇이든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정유미는 앞으로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에 대해 “진짜 풀어진 연기를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육룡이’부터 ‘국수의 신’까지 두 작품 연이어 움켜쥐는 작품을 하다보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작품은 확 풀어지는 작품을 해보고 싶습니다. 막 망가지고 술주정도 해보고요.(웃음) 막 내려놓고 해볼 수 있는 것? 그런 역할도 하고나면 물론 어두운 캐릭터가 그리워지겠지만요.(웃음)”
벌써 연기한지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부족하다 여기는 정유미는 40년 후 배우 정유미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따뜻한 에너지를 가진 배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지금의 정유미라면 충분할 것 같다.
“지금도 10년이 넘었어요. 아직도 연기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고 부족한 게 많잖아요. 10년이 어디로 날아갔나 싶을 정도로 아직 부족해요. 하지만 40여년 뒤, 70대가 됐을 때 김혜자, 고두심 선생님처럼 내면이 꽉 차서 안정감 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됐으면 해요. 내면의 아름다움이 밖으로 뿜어져 나와서 그 현장의 분위기를 훈훈하게 데워줄 수 있는 그런 배우요. 따뜻한 에너지를 가진 연기자가 됐으면 합니다. 만약 연기자라 아니더라도 그런 따뜻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