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부진·대외 리스크로 한국경제 흔들려도 정부 '나 홀로 호황'
2016-05-10 15:32
곳곳에 악재 가득…정부, 곳간 채우는데 급급
살림살이 팍팍한데 세금은 지난해보다 14조원 더 걷어
살림살이 팍팍한데 세금은 지난해보다 14조원 더 걷어
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최악·최장 수출부진이 지속되고 중국 경기둔화, 미국 금리 인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이탈) 등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국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자 기업은 영업이익이 줄어서, 근로자는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기가 힘들어서, 자영업자는 장사가 안된다는 이유로 다들 아우성이다.
그러나 정부는 1분기 거둬들인 세금만 지난해보다 14조원 가까이 늘어나는 등 경제 적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 최악 수출 부진 지속…정부 "민간부문 회복 약해"
기획재정부는 10일 발간한 '최근 경제 동향(그린북)' 5월호를 통해 한국 경제가 민간소비 등 내수는 개선되고 있지만 수출 감소세가 지속되고 세계경제 회복 지연 등 대외 리스크도 상존, 민간부문 회복 모멘텀이 약하다고 진단했다.
이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날 발표한 '경제동향' 5월호에서 "최근 일부 지표가 다소 개선됐지만 경제 전반의 성장세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모두 한국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우려스러운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수출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은 지난해 최악의 부진을 기록한 이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 3월 한 자릿수를 기록하며 미약하나마 회복의 기미를 보이던 수출은 다시 두 자릿수로 감소 폭을 키웠다. 4월 수출액은 410억 달러로 작년 같은 달 보다 11.2% 줄었다.
지난 1월 6년 5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인 -19.0%를 기록한 뒤 2월 -13.0%, 3월 -8.1%로 감소 폭을 줄여가던 수출이 다시 악화되는 모양새다. 수출은 16개월 연속 마이너스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세계경제 회복 지연…대외 의존도 높은 한국경제에 치명타
한국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세계경제 회복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투자가 부진해지면서 한국경제 성장률이 연평균 0.21%포인트씩 하락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정규철 KDI 연구위원은 이날 발표한 '글로벌 투자 부진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금융위기 이후 세계 최종수요에서 글로벌 투자 비중이 축소됐다"며 "이는 2008∼2014년 우리 경제 성장률을 연평균 0.21%포인트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보다 투자와 밀접하게 연결된 중간재·자본재 수출에 집중해 글로벌 투자 수요 의존도가 높다.
2014년 기준으로 수출품 성질별 비중을 보면 한국 수출품 중 중간재와 자본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64.2%, 23.2%로 전 세계 평균 47.9%, 15.6%를 넘어서고 있다.
2011년 국제산업연관표 자료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로도 한국의 수출 중 글로벌 투자 수요에 영향을 받는 부분이 47.9%로 선진국과 신흥국을 포함한 40개국과 기타지역 등 전 세계 평균(33.7%)을 뛰어 넘었다.
국가 전체 국내총생산(GDP) 중 글로벌 투자에 영향을 받는 비중 역시 한국이 15.5%로 전 세계 평균(6.4%)보다 2.4배 컸다.
정 연구위원은 "이는 금융위기 이후 지속하는 글로벌 투자 부진이 다른 국가보다 우리 경제에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투자 부진이 상당 기간 지속할 수 있는 만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산업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연구위원은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우리 사회의 한정된 자원이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수요 구조가 소비 위주로 변하는 중국 등 주요 수출시장에서 소비재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경기침체 지속에도 1분기 더 걷힌 세금 14조원 육박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지만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은 올 1분기에만 64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3조8000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경기침체로 가계, 기업은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경제주체 중 정부만 유일하게 '나 홀로 호황'을 누린 것이다.
정부 국세 수입을 세목별로 따져보면 부가세 수입이 1∼3월 14조8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조5000억원 증가했다.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와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 '코리아 그랜드 세일' 등 할인 행사 등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4분기 소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소득세 수입은 1∼3월 16조6000억원으로 3조6000억원 늘었다. 지난해 말 부동산 거래로 발생한 양도소득세 납부가 이어지고 근로자들의 명목임금이 상승한 영향이라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거래 이후 두 달 뒤까지 납부할 수 있으며 분납도 가능하기 때문에 올해 1분기에 세금이 들어오고 있다.
같은 기간 법인세는 34조2000억원 걷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조원 늘었으며 담배에 붙는 개별소비세와 증권거래세 등이 포함된 기타 세수(32조9000억원)는 1조6000억원 늘었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국세수입이 늘어나는 것이 국가 재정건전성 강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경기 회복으로 각 경제주체의 소득과 소비가 늘어 세금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며 "우선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인 수출 부진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대응책이 나와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