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1% 시대] 경기활성화 vs 가계부채 증가…기대와 우려 교차
2015-03-12 17:24
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한국은행의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하가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더해진 한국경제에 회복의 힘을 실어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리인하가 정책당국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 '저성장 저물가'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가계부채 증가와 돈을 풀어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갖가지 경기부양책들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좌불안석에 빠졌지만 이번 금리인하가 정책당국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맞물려 경기회복 청신호 밝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금리 인하 조치에 대해 "금융통화위원회가 국내외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제적으로 조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회복세가 미약한 경기 회복과 저물가 상황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는 위축된 소비 및 투자 심리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핑크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디플레이션 예방효과도 기대해 볼만하다.
우선 소비의 경우 기준금리 인하로 부동산 시장이 활발해져 주택가격이 올라 자산효과가 커지면 소비가 진작될 수 있다.
가계부채 감소 효과가 나타나 소비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지금 가계부채의 총량 규모를 보면 81% 정도가 생계형 대출과 사업자금 대출, 만기대출금을 갚기위한 대출로 구성돼 있다"면서 "금리 인하로 원리금과 이자 상환 부담을 줄어들어 가계부채가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 여력이 없는 기업의 경우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기 투자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와 함께 구조개혁에서 성과를 내야 투자를 실질적으로 유인할 수 있다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덜어내야 기업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 교수는 "각종 규제와 최저임금 인상론 등으로 기업 투자가 위축돼 있는 상황"이라며 "구조개혁이 동반돼야 실질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하로 환율이 오르게 되면 수출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지속되는 엔저 현상과 유로존의 양적완화(QE)에 따른 유로화의 약세로 일본 및 유럽 제품들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환율 인상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이달 양적완화를 실시하면서 올해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을 1%에서 1.5%로 높이고, 2016년도에는 1.5%에서 1.9%로 높이는 등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 한국경제 뇌관, 가계부채 어쩌나
기준금리인하와 같이 등장하는 키워드는 가계부채다.
기준금리가 내려 시중금리까지 함께 하락하면 가뜩이나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는 가계부채를 더 늘릴 수 있다.
지난 2월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566조원으로, 한 달 전보다 3조7000억원 늘어나 2월 기준으로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같은 달 주택담보 대출은 4조2000억원이 늘어나 예년 2월의 3배가 넘는 규모로 증가했다.
당국은 가계부채에 대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가계부채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면 한국 경제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데 이견은 없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부문장은 "가계부채는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 금리 인하로 '부채의 덫'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며 "가계부채 때문에 구매력이 제한되는데,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환 부총리는 금리 인하에 따른 가계부채 심화 우려에 대해 "가계부채는 전반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면서도 "취약계층 중심으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관계 기관이 참석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 "돈이 없어 못 쓰는게 아니다"…유동성 함정에 빠질수도
금리인하로 소비와 투자가 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동성이 부족해서 소비나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게 아니라 소비자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돈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소비나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노후 대비 등을 위해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고 있다. 지난해 전국 가구의 평균소비성향은 72.9%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업 역시 막대한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고 있지만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다. 통계청의 1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7.1%나 감소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기준금리로 득과 실이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면서 "기업의 투자와 국민의 소비가 미약한 원인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금리 인하로 풀린 돈은 실물이 아니라 부동산으로 가고 가계부채만 심각해지고 원리금 상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