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멘터리] 김수현은 '될성부른 나무'였다

2014-12-30 08:18

김수현[사진=아주경제DB]

아주경제 이예지 기자 = 잘될 사람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장래성이 엿보인다는 속담,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연예인에 대입하자면, 떡잎은 타고 났든 스스로 단련했든 대중 앞에 나서기 전에 이미 갖춘 기본기의 훌륭함을 말할 터이다.

떡잎은 자칫 스타 운명론처럼 읽혀 일부 연예인 지망상에게는 좌절을 부를 수 있고, 기자에게는 사람의 변화 가능성을 믿지 말고 선입견을 갖고 될성부른 나무를 보는 선구안을 가지라는 조언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스타가 되기를 희망하는 거대한 모집단을 생각할 때, 종종 전문가들의 예측을 보기 좋게 빗나가게 하는 신성들의 등장을 보면서 기자들이 '될성부른 나무'에 대한 선입견을 경계하는 이유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스타와 만나 이야기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때로 성공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공통적 '이유'가 보이곤 한다. 특히나 분명한 건, 될성부른 스타의 떡잎은 이미 신인시절부터 남달리 싱싱한 녹색을 띤다는 거다.

지금은 아시아 전역을 호령하는 한류스타지만 막 첫 작품을 마쳤을 때는 여느 신인처럼 풋풋하기 그지없었던 배우 김수현. 하지만 그때부터 그는 이미 '될성부른 나무'가 될 떡잎이었다. 7년이라는,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분명히 보였다는 얘기다.

바야흐로 2008년 봄, 김수현의 데뷔작인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 스태프 중 한 명이 사적으로 기자의 대학 선배였다. 만날 때마다 '김수현, 김수현'을 입에 달았다. '잘생긴 남자애가 연기도 잘한다'라든지 '연기 잘하는 잘생긴 젊은 배우가 예의까지 바르다'고 칭찬을 쏟아냈다. 그때만 해도 TV와 친하지 않았던 나는 '대체 김수현이 누구길래?'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김수현을 제대로 본 건 2010년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였다. 고수와 한예슬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는데 따뜻한 분위기의 드라마였다. 김수현은 고수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살짝 찢어진 눈매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와 도톰한 입술에서 나오는 똑부러지는 말투, 외모부터 연기까지 모든 게 고수와 비견될 만했다. 그때 '저 남자가 김수현이야?'라며 선배의 칭찬을 되새겼다. 그리고 감히 예단했다. 김수현의 오늘을.

'자이언트'와 '드림하이'를 통해 다듬어진 연기력은 '해를 품은 달'을 거치며 '내공'이 됐다. 최고 시청률 42.2%(닐슨코리아 기준). 여섯 살이라는 나이차가 무색할 정도로 완벽했던 한가인과의 케미(chemistry·화학적 호흡)에 시청자는 열광했고, '김수현 앓이'라는 새로운 병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해를 품은 달'을 통해 대한민국의 여심을 제 것으로 품었다.

김수현의 도약은 이때부터였다. '해를 품은 달' 출연 전에 찍었두었던, 그러니까 뜨기 전에 찍었던 영화 '도둑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연예 관계자들의 일명 '김수현 모시기'가 시작됐다. 출연 광고만 17편,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개봉 당시 만난 김수현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인기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말과 행동에 있어서 조심스러워졌고, 사람들을 대하기가 어려워졌으며,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고도 했다. 심지어는 '그릇'에 대한 고민까지 했다. 이렇게 큰 인기를 먹고 살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 정도라고. 대중이 만들어낸 비밀스러운 김수현의 모습에 스스로 적응되지 않는다고 털어놨었다.

"어깨가 무거워졌어요. 부담스럽기도 했고요.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랑을 받게 되니까 저 스스로는 위축되더라고요. 새로이 친해지는 사람이 거의 드물어요. 자연스럽게 겁을 집어 먹은 거죠."

그럼에도 도전은 멈출 줄 몰랐다. 300년 째 조선에서 살고 있는 외계인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해 비밀스러운 눈빛을 연기했고, '도둑들'에서 만났던 선배 전지현과 다시 호흡했다. 기존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그리고 그는 이 작품으로 한국을 넘어 중국, 아시아를 호령하는 스타가 됐다.

파릇파릇 푸른 색을 띄었던 김수현의 재능 떡잎이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싱싱한 가지가 된 오늘. '별에서 온 그대'로 맺은 꽃송이가 만개하기 전에 시들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랜 세월 나이테를 불리며 사랑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언한다.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듯하지만 김수현이라는 나무는 더욱 아름드리로 준비됐음을 잊지 말라고, 누구나 말하겠지만 초심을 지켜야 한다고, 예측 가능한 모습이 아니라 끝을 모르고 솟은 인기만큼이나 한없이 커져버린 대중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신선한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이 말에 부담을 느낀다면, 그 긴장과 위기감이 제2의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