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상의원' 궁중 의복의 아름다움, 스크린에 펼쳐지다

2014-12-17 10:00

[사진제공=호호호비치]


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흔히들 "옷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말을 한다. 옷은 사람의 신분과 지위뿐 아니라 개성과 성격까지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일차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의상은 어떤 의미일까.

조선 궁중 의복의 아름다움이 스크린 속에서 펼쳐졌다. 궁궐에서 입는 아름다운 옷과 궁중 의상이 만들어지는 과정, 옷에 대한 삶의 미학과 궁중의 권력투쟁이 영화 '상의원'(감독 이원석·제작 영화사 비단길)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상의원은 임금과 왕족을 비롯한 왕실의 의복과 재물을 제작, 공급, 관리하는 일을 맡던 관청이다. 스크린 최초로 집중 조명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미 관객들의 마음을 이끈다.

'상의원'은 왕실의 옷을 지어온 상의원의 어침장 조돌석(한석규)과 천재 디자이너 이공진(고수), 삶 자체가 전쟁터인 왕비(박신혜)와 형의 그림자에 허덕이는 왕(유연석)의 이야기를 '옷'이라는 매개체로 그려낸다.

영화는 왕의 면복을 손보던 왕비의 시종이 실수로 면복을 태우고, 궐 밖에서 옷을 잘 만들기로 소문난 공진이 하루 만에 완벽한 왕의 옷을 지어 올리면서 시작된다. 30년 동안 상의원에서 착실하게 옷을 만들어온 돌석은 공진의 천재성에 묘한 질투심을 느끼며 비극으로 치닫는다. 옷이라는 소재로 시작된 아름다운 대결은 사람과 사랑, 권력으로 연결되고 제각각의 치열한 삶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옷을 만드는 상의원이라는 공간은 그동안 영화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은 곳이었다. 곤룡포와 사냥복, 왕비의 진연복 등의 의상은 모두 까다로운 왕실 규율 속에서 만들어진다. 의상 제작비에만 10억원, 한복 제작에 동원된 전문가는 총 50여명에 달하니 눈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한복이 저렇게 아름다웠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화려한 색감과 유럽의 드레스 못지 않은 고혹한 라인을 드러낸다.

왕실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상의원은 유행을 타고 서민들의 의복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지켜온 돌석은 천재 공진의 디자인, 자유로운 영혼을 조금씩 탐하기 시작했다. 돌석은 공진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불안해했고, 제 생각이나 의식을 믿지 못하기에 이른다.
 

[사진제공=호호호비치]


볼거리는 또 있다.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 역시 '상의원'에 큰 힘을 보탠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한석규는 어침장 조돌석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천재의 등장을 경계하는 복합적인 캐릭터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사극에 처음 도전하는 고수 역시 선한 눈빛과 신뢰감 가는 말투로 자유분방한 천재 디자이너 이공진의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를 포함해 발랄한 역할을 주로 맡은 박신혜의 우울한 표정은 낯설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애잔하고,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 끝없이 외로움과 싸우는 중전의 모습은 24세 박신혜가 앞으로 펼쳐낼 연기를 기대케 했다. 형의 그늘에서 발버둥 치는 왕을 연기한 유연석 역시 중전을 향한 애틋함과 날 선 눈빛이 교차하는 모습에서 자격지심 가득한 왕의 모습보다는 안쓰러운 한 남자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

흔히 관객들이 영화를 고를 때 제작비나 동원된 배우의 수 등 크기와 숫자를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아름다운 한복과 배우들의 좋은 연기만으로도 '상의원'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오는 24일 개봉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