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철강업 노조 14년 만에 춘투 예고, 영향은?

2013-11-25 04:30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일본 철강업계 노동조합이 14년 만인 내년 봄 노사 집단 교섭인 ‘춘투(春鬪)’에서 임금 인상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아베 총리를 주축으로 한 일본 정부는 집권 후부터 자국 국민들의 소비 확대를 위해 업계에 직원들의 임금을 인상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이미 토요타 자동차 등 자동차 업계가 내년 춘투에 전향적인 임금인상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엔저를 무기로 올 한해 거침없는 실적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철강업계는 요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철강업계의 실적 회복은 한국과 중국 철강업계의 실적 부진을 불러 일으켜왔다. 그 배후는 역시 엔저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에서 비롯된 만큼 양국 철강업체들도 일본의 이번 움직임이 자사에 이득을 줄지, 손해를 입힐지를 놓고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와 일본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세계 2위 철강업체이자 일본 1위 업체인 신일철주금 노조는 지난주 2014년 봄 노사교섭에서 임금 개선을 요구하기로 하고 인상 방향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노조는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부문 투자 증가로 건설용 철강재, 엔저 등의 영향을 받아 주 거래처인 자동차용 강판 등에서의 수요가 회복되면서 실적이 호전되고 있어 올린 수익을 직원 임금에 환원하라고 요구했다. 신일철주금의 소식에 업계 2위인 JFE홀딩스(세계 9위) 노조도 임금인상 방침을 굳혔으며, 다른 철강사 노조들도 이를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신일철주금 노조가 임금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스미토모제철 인수 전 구 신일본제철이었던 2008년 이후 6년만이다. 특히 일본 철강업계 전체로 놓고 봤을 때에는 JFE홀딩스 출범을 위해 가와사키스틸과 합병한 NKK가 2001년 임금협상을 진행한 것을 제외하면 지난 2000년 춘투 이후 14년 만이다.

신일철주금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 개선안의 핵심은 임금 커브를 일률적으로 올리는 ‘베이스업’으로, 임금 자체 인상에 더해 각종 수당 등을 포함한다. 그동안 임금의 지속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아왔던 젊은층에 인상분을 중점 배분토록 하는 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핵심이 될 인상 폭은 개선안 작성을 위한 조사가 이뤄진 후 결정하기로 했는데, 일본 노동조합연합회는 내년도 춘투에서 1~2%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방안에 합의한 만큼 이를 기준으로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노조 연합회는 지난 4년간 평균임금 인상을 요구해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본 철강업체들은 자국내 수요 산업의 침체로 2000년대 초반 이후 세계 철강업체들의 인수·합병(M&A)을 통한 몸짓 불리기, 중국 철강업체의 급성장, 포스코 등 한국 철강업체들의 품질 경쟁력 향상에 밀려왔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노사가 협조해 인건비 억제에 노력하며 임금 인상에 신중한 자세를 취해왔다.

고전하던 일본 철강업체들은 지난해 말 취임한 아베총리의 강력한 엔저 정책의 수혜를 받으며, 매출과 수익성이 회복세로 돌아섰으며,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을 통해 신일철주금에 이어 JFE까지 2013년 회계연도에 부채비율을 100% 아래로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되는 등 재무구조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여기에 일본 경제산업성은 자국 철강업체들의 올 4분기 조강생산량은 6년 만의 최고 수준인 2848만t(전년 동기 대비 9.9% 증가)으로 전망했으며, 특히 내수향 생산은 건설관련 수요 증가에 따라 전년 동기 대비 14.6% 늘어난 1617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해 향후 업황도 밝을 전망이다.

임금 인상 자제를 설득할 명분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일본 철강업계는 그래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아직 완벽한 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임금 인상을 수용할 경우 제품의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다시 한국과 중국에게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수용을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압박이 워낙 거세게 나오다 보니 재계 대표단체 게이단련도 정부와 노조간 협의에서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도요타 자동차 등도 긍정적으로 검토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 주도라고 하지만 일본 국민들도 그동안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임금 인상은 쉽게 다룰만한 사안은 아닐 것으로 본다”며 “특히 전 산업에 걸쳐 공동으로 처한 문제라 철강업체만 살겠다고만 할 수 없다는 고민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