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톡]'소나무 작가' 배병우 "소나무가 '윈드스케이프' 열어줬죠"

2013-09-26 09:32

소나무 작가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가 제주의 바람을 담은 새 시리즈 '윈드 스케이프'를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인다./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여섯살때부터 여수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렸던 소년은 '소나무 작가'가 됐다. 사진작가 배병우(64)다.

늦바람을 탔다. 2005년 세계적인 팝가수 엘튼존이 '경주 소나무'작품을 2800만원에 구입하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나이 56세였다.

'소나무'는 기적을 일으켰다. 국내에 미미했던 사진시장의 문을 열었고 배병우는 사진작가에서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급부상했다. 또 소나무는 '한국의 소나무'로 특별해졌다.

2006년 동양의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스위스 마드리드 티센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이후 스페인 정부의 의뢰를 받아 세계문화유산인 알함브람 궁전의 정원을 2년간 촬영하고 사진집을 발간했다.
2009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배병우의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선물해 유명세를 더욱 탔다.

'소나무 사진'으로 세계와 통한 그는 자신 스스로도 "사진작가로서 이렇게 살줄은 몰랐다"고 했다.

23일 밤 이태원 한 레스트랑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직장에서 은퇴한 친구들이 할일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계속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좋네요."

하얗게 센 머리와 달리 청바지에 운동화, 알록달록 반팔셔츠를 입은 그는 기개가 넘쳤다. 좀 서늘해진 날씨에 아직도 반팔이냐고 묻자 "겨울에도 더워서 긴팔은 못입는다. 반팔위에 파커만 걸친다"며 검게 그을린 굵은 팔뚝을 한번 움직였다.

최근에 제주도와 흑산도 선암사를 다녀왔다는 그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스마트폰에는 제주의 바다와 오름, 경주의 장항사진 석탑이 그림처럼 담겨있었다.

"이게 (아날로그 필름보다) 훨씬 잘찍혀요. 정말 화질이 최고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날로그 필름을 고집하고 있다. 전통 흑백 인화 제작방식인 빈티지 프린트 기법,독일에서 건너온 '은염사진'을 고수한다.

“디지털은 너무 선명해 뭔가 튀는 느낌이 든다. 너무 선명하게 잘 나오는 게 문제다”

그는 "내 사진에서 느껴지는 동양화 같은 느낌을 표현하는 데 적합지 않다”면서 지금도 2년치 아날로그 필름을 한꺼번에 사놓는다고 했다. 제조사가 문을 닫거나 공급이 중단될 것을 염려해서다.

스마트폰에는 소나무보다는 나무들이 흔들리는 '나무풍경'과 푸른 바다가 담긴 '바다 풍경'이 눈에 띄었다.


◆풍경은 '윈드스케이프’죠.

“풍경은‘랜드스케이프’(Landscape)가 아니라 ‘윈드스케이프’(Windscape)죠. 풍경(風景)은 바람 ‘풍’으로 시작하는 단어 아닙니까?”

말장난 같은 말 같았지만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기도 했다.

지난 2012년 파리 취리히, 베를린등 유럽에서 소개되어 극찬을 받았던 배병우의 새 시리즈 '윈드 스케이프’에 대한 이야기였다. '윈드 스케이프’라는 시리즈 명칭은 ‘풍경’을 뜻하는 영어단어 ‘랜드스케이프(Landscape)’를 바람 풍(風)으로 시작되는 우리 단어처럼 ‘랜드’ 대신 바람을 뜻하는 ‘윈드(Wind)’로 바꿔 만들어낸 것이다.

소나무사진에 이어 새롭게 선보인 '윈드 스케이프'는 제주도 한라산 주변의 기생화산이 만들어낸 여성스러운 굴곡을 담은 ‘오름 시리즈’와 사면을 둘러싼 바다를 담은 ‘바다 시리즈’, 오름 속 풀의 움직임을 표현한 ‘식물 시리즈’등 세 시리즈로 완성한 작품이다.

세 시리즈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다.

“어릴 때부터 바람을 좋아했어요. 사라호 태풍일 몰렸왔을대 집들이 날려갈 정도로 무시무시했는데도 저 혼자 신이 났었지요."

여수출신으로 바닷가에서 성장한 그는 "무엇이든 가만히 있는 것보다 바람에 흔들려 움직일 때 더 아름다운 것 같다"며 바람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 “제주 해녀들은 태풍이 몰려올 때마다 오히려 좋아합디다. 오염된 바다가 뒤집히면 깨끗해지면서 고기들의 먹이가 풍부해진다고 하더군요.하하~.”

작가는 “바람은 생명”이라고 했다. "바람은 영원한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원초적 에너지죠. 내 작업도 바람 부는 한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다에 대한 관심은 섬으로 이어져 대학 시절부터 전국 곳곳의 섬을 찾아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제주도가 결정판이죠." 그는 "그동안 전국의 섬을 다니다 제주도에 다다랐을 때 다른 섬에서의 작업은 연습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섬을 찾아다니다 제주도에 이른 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째 제주도의 다양한 모습을 작품에 담고있다.

제주의 바다, 오름은 그의 새로운 동력이다. 소나무 사진에 한계가 오기도 했지만 1984년부터 경주의 소나무를 찍기 시작한 이유와 같다.

"한국의 이미지는 무엇인가?'라는 고민이었다.
바닷가에 살며 어릴적부터 바람이 좋았다는 배병우는 제주의 바람을 담아 바람이 든 제주 풍경 '윈드 스케이프'시리즈를 완성했다./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소나무가 세상의 문을 열어줬죠"

경주의 소나무를 찍기 위해 1년에 10만km를 달렸고, 정이품·정경부인 소나무등 소나무란 소나무는 모두 찍은 것 처럼, 제주에서 살았다. 오름과 바다를 아우르기위해 선택한 바람. 바람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바다의 표면을 끊임없이 반복 촬영하며 바다의 원천을 드러내는데 성공했다.

"융통성이 없어요. 한번 정하면 끝장을 내는 스타일이죠,"

국내에서 그저 '소나무 작가'로 떴지만 그는 해외에서 반응에 놀랐고 기뻤다. 그의 사진은 한국적 정서와 함께 고요함의 정중동. 자연의 흑백의 조화가 담긴 장엄한 아름다움이 무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흑백의 소나무 사진'은 유럽에선‘Sacred Tree(성스러운 나무)’로 통한다. 독일 유명 출판사 하체 칸츠(Hatje Cantz)에서 작가의 소나무 사진작품을 모아 ‘Sacred Tree(성스러운 나무)’라는 제목을 붙여 출간했기때문이다.

"소나무 사진을 통해 왕들과 친해졌어요." 소나무는 공교롭게도 왕의 무덤에만 있다. 옛 장례풍속중에 무덤을 쓰면 소나무를 썼다. 인내천(人乃天) 동양의 이민위천 사상으로 나뭇가지를 타고 영혼이 하늘로 가라는 뜻에서다.

"소나무가 내게 세상의 문을 열어준 셈이죠."

소나무 사진을 찍은 이후 이상하게도 궁의 초대를 잇따라 받았다. 우리나라 덕수궁 창덕궁에 이어 알브라함궁까지 촬영했다.

"아, 내년 여름부터는 프랑스 샹보르(Chambord) 성에 초청돼 1년간 작업할 예정입니다." 상보르성은 느와르강변에 있는 루이 14세가 머물던 성이다.

“취미생활인 탁구를 계속하고 있어요.몸집를 줄여야 사진찍는데 방해가 되지않으니까요. 이곳저곳에서 전시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 제 작업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회도 70세 전에 열고 싶네요. 아마 유럽에서 먼저 선보일 것 같습니다.”

사진을 붓 대신 '카메라로 그린 그림'이라는 그는 사진을 '광화'라고 했다. '빛 그림'이라는 말이다. "사진이란 빛에 의해 그려지는 회화이며 따라서 당연히 빛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작가는 뭐니뭐니해도 작업량이 많아야 합니다. 발품을 팔고 많이 찍어야 하죠. 그래야 기회도 오죠. 제 경험이기도 하고요."

그는 유럽에서 먼저 소개한 ‘윈드 스케이프’를 오는 10월 1일부터 27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인다. 전시에는 소나무 사진이 없으면 서운다는 관객도 있어 몇 점 나온다. 찰나의 순간에 잡아낸 풍부한 흑백톤과 바람에 흩날리는 고요한 선율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다. (02)720-1020
제주의 바다를 담은 윈드 스케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