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파문 미·EU 동맹 균열, FTA에까지 불똥

2013-07-02 10:05

아주경제 송지영 특파원·이광효 기자=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미국 내 유럽연합(EU) 사무실과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EU 본부를 대상으로 도청과 사이버 공격 같은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을 계기로 미국과 EU 동맹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달에 공식적으로 시작될 미·EU 자유무역협정(FTA)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최신호에서 “NSA가 워싱턴 DC에 있는 EU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하고 컴퓨터 시스템에 침투해 정보를 빼왔다”고 주장했다.

NSA는 뉴욕 유엔에 있는 EU 대표부 사무실은 물론이고 벨기에 브뤼셀의 EU 본부도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이 보도는 NSA가 지난 2010년 작성한 일급비밀 문서를 근거로 이뤄진 것으로 이 문서는 미국 정보당국의 비밀 감시프로그램 활동을 폭로하고 도피 중인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30)으로부터 입수된 것이다.

또한 슈피겔은 후속보도로 NSA가 EU 국가를 대상으로 전화통화와 인터넷 이용 기록을 대규모로 수집했는데 그 중 독일이 주요 표적이라고 전했다.

슈피겔은 EU 국가를 대상으로 수집한 전화 통화·이메일·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온라인 채팅 같은 통신기록 통계가 있는 NSA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NSA는 매달 독일에서 5억건 정도의 통신정보를 수집·저장했다. NSA가 프랑스에서 수집한 정보는 하루 평균 200만건에 불과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NSA가 한국, 일본을 포함한 38개국 대사관을 표적으로 도청과 사이버 해킹을 했다”고 보도해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이 에드워드 스노든으로부터 입수한 NSA 일급비밀 문건에 따르면 이 38개국에는 중동국가들 외에도 한국과 일본 같은 미국 우방국들도 많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EU는 즉각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만약 주장이 사실이면 미·EU 관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독일 연방검찰은 이날 자국 전화와 인터넷을 감시하고 EU 사무실을 도청한 혐의에 대해 영국과 미국 정보기관을 기소할 것임을 밝혔다.

연방검찰은 독일 시민이 개별적으로 미국의 감시 행위를 형사 고발할 수도 있음을 전했다.

EU 집행위원회는 관련 의혹에 대한 미국 정부의 답변을 요구했다.

이날 비비안 레딩 EU 법무집행위원은 “협력국 사이에는 스파이 행위가 있으면 안 된다”며 “우리의 파트너들이 유럽 협상가들의 사무실을 도청했다고 의심할 여지가 있으면 우리는 대서양 양안 간 시장 확대에 대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의회에서는 미·EU FTA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미국은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정보국(DNI)은 이날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미국 정부는 외교채널 및 양측 정보전문가들 간 대화를 통해 이번 문제를 EU측에 적절히 설명할 것”이라며 “정책적인 측면에서 미국은 다른 모든 나라가 수집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외국 정보를 수집하고 있음을 확실히 밝혀 왔다”고 말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유럽 국가들은 우리와 매우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과 긴밀한 정보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