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있는 미술작품 가격지수 개발돼야

2011-10-14 18:04
김윤섭(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굵직한 사건에 심심치 않게 미술품이 연루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경우는 있었겠지만, 이처럼 많은 이의 눈길을 끌진 못했다. 기껏해야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기호가 남다른 몇몇의 취미활동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했기 때문이다. 이젠 그만큼 미술이 일상생활에서 익숙해졌다는 얘기일까.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이슈 포인트는 미술품이 아니다. 미술품의 가격이 꼭 문제가 된다.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던 미술품 사건은 사회부 기자의 단골 취재대상이고, 기사 말미에는 반드시 작품의 내용이나 가치보다는 경제적 가치와 가격이 장식했다. 청탁성 뇌물이든 비자금 축적용이든 간에 과연 주고받거나 구매한 사람들도 똑같이 가격에만 혈안이었을까 궁금하다.

사실 미술품의 매력은 소장했다는 기쁨보다는 소장한 작품을 보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작품이 지닌 진정한 매력을 외면한다면, 마치 좋은 향수를 사서 뿌려보지도 않고 평생 향수병만 쳐다보고 있는 격이다. 미술작품의 100% 활용법은 그 작품이 뿜어내는 내면적 에너지와 경제적 부가가치를 동시에 이해하는 것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작품의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 보통 가격은 작가의 인지도와 작품이 지닌 절대적 가치인 작품성, 보존상태, 희귀성, 대표성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요소로 소비자의 선호도를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이 동시대적인 트렌드가 반영된 인지도로 연결된다. 시장에서의 인기 척도이기도 하다.


시장은 유행에 민감하다. 작품의 인지도 역시 유행을 타게 마련이다. 시장 경기가 좋을 때는 더욱 예민하게 기승을 부린다. 가령 시장이 활황일 때 인기작가의 작품 가격은 파도처럼 치솟고, 불황일 때는 거품처럼 꺼진다. 그런데 정작 관망하고만 있던 대다수의 수요자들은 이런 기복을 체감하지 못한다. 늘 한 템포 늦다보니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경제적 손실을 자초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장 현황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가격지수이다. 일명 개미투자자들은 그 지수를 바탕으로 관심종목을 정하고, 투자시기를 가늠한다. 만약 이 지수가 현실성이 떨어지고 시기성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무용지물의 천덕꾸러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미술시장에는 제대로 된 가격지수가 없다.

물론 우리나라 미술시장에도 가격지수라고 알려진 예는 몇 건이 있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수준이다. 왜냐하면 가격지수의 기본 소스가 경매의 낙찰 가격에만 국한됐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경매에 자주 등장하는 극소수의 작가만을 위한 지수가 돼버렸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에 공식 등록된 작가 2만8000여명을 기준으로 최소 99%의 작가는 외면된 것이다.

제 역할을 다하는 가격지수를 만들려고 한다면 미술시장의 보다 다양한 부대조건들을 수용한 것이어야 한다. 가령 미술품이 가장 많이 유통되는 곳은 경매시장보다 아트페어나 일반 화랑임을 감안할 때 보다 다양한 경로로 판매된 가격 데이터를 참고로 해서 지수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때마침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달 30일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국내 실정에 맞는 미술작품 가격지수 모형 개발'에 관한 세미나를 가졌다.
 
4명의 경제학자가 전문팀을 이뤄 "경매시장 거래의 제약성을 보완하여 화랑과 아트페어에서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까지 반영하고, 합리적인 시장 가격을 추정할 수 있는 가격지수 모형을 연말까지 개발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 자리에선 '한국 미술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미술품의 보다 원활한 유통기반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한국미술협회와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두 사단법인이 업무제휴 협약(MOU) 조인식을 가졌다. 이로써 창작 일선의 작가들은 물론 미술품을 부담 없이 즐기고 싶은 보다 많은 일반 애호가들까지 객관적인 기준으로 마음 놓고 미술작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