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메이드인재팬' 포기하나

2011-05-12 15:04
"대지진보다 '엔고'가 더 무서워"…3년간 엔고 따른 손실만 1조3700억엔<br/>도요다 사장, "일본 내 생산 고수하기 어려워"…中·유럽 투자 늘릴 듯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대지진 여파로 생산 차질을 빚고 있는 일본 자동차업체 도요타가 급기야 일본 내 생산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 내 생산시설이 지진에 취약한 것은 물론이고 '엔고'의 위력이 워낙 막강한 탓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도요타가 세계 1위 자동차업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2일 도요타가 대지진과 엔고로 인해 해외 생산 비중을 크게 늘릴 수밖에 없어 '메이드인재팬(made in Japan)' 전략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분위기는 도요타 내부에서도 읽히고 있다. 전날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자와 사토시 도요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우리가 얼마나 더 일본 내 생산을 고집할 수 있겠느냐"고 자문한 뒤 "엔고의 충격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일개 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며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필요성을 내비쳤다.

도요타는 엔·달러 환율이 90 엔 이하로 떨어지면 중소형차 수출로 이익을 낼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1년 전 91 엔 선이었던 환율은 최근 수분기 동안 평균 82엔 대를 맴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요타는 일본 경쟁업체들에 비해 국내 생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도요타에 이어 일본 내에서 업계 2위를 달리고 있는 닛산과 3위 혼다는 지난 3월 끝난 2010회계연도 각각 25%, 26%를 일본에서 생산했지만 도요타의 국내 생산 비중은 45%(370만대)에 달했다. 도요타는 매년 최소한 일본에서 300만대는 생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도 전날 결국 "일본 내 생산시설과 일자리를 계속 보호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밝혔다.

엔고의 충격은 이미 도요타의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 지난 회계연도에 엔고로 인해 순익에서 2900억 엔이 증발한 것이다. 이는 대지진에 따른 손실액(1100억 엔)을 훌쩍 웃도는 것이다. 지난 4분기 도요타의 순이익은 254억 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 급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는 2007년 이후 오름세를 탔지만, 일본 기업들의 환율방어 능력은 지난 3월 발생한 대지진으로 급격히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2007년 이후 최근까지 5년간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30% 이상 올랐다. 이 여파로 도요타는 지난 3년간 1조3700억 엔의 손실을 봤다.

FT는 엔고로 인한 원화 약세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한국의 경쟁사들에게 이득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도요타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도요타가 해외 생산 비중을 늘릴 경우, 유력한 투자처는 중국과 유럽이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전문 컨설팅업체 2953어낼러틱스의 짐 홀 대표는 "도요타는 현지에 협력업체가 있는 동남아시아와 중국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이라며 "동유럽시장 확장을 위해 대유럽 투자비중을 늘릴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