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지원해라" 당국 압박에 은행권 '전전긍긍'
2011-04-18 17:10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차단을 위한 은행들의 지원을 요구하고 나섬에 따라 PF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PF 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배드뱅크(Bad Bank) 설립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일부 은행이 반발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PF 대출에 대한 리스크 관리 기준이 강화된 상황에서 건설사에 대한 추가 지원과 그에 따른 대손충당금 적립액 증가 등으로 은행권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금융당국, PF 부실 차단 총력전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18일 5대 금융지주사 회장들과 조찬 간담회를 갖고 PF 대출 문제에 대한 지원을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삼부토건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PF에 대해 금융권의 지원이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만기가 도래한 PF 대출 회수를 자제하고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사를 궁지로 몰지 말라는 메시지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올해 은행권 15조원과 제2금융권 10조원 등 25조원 규모의 PF 대출 만기가 도래한다.
특히 2분기 중 8조원 가량의 대출 만기가 도래해 이미 법정관리를 신청한 한솔건설과 LIG건설, 삼부토건, 동양건설 외에 추가로 도산하는 건설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건전성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PF 악재까지 돌출될 경우 금융시장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의 지원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금융회사로부터 출자를 받아 부실 PF 채권을 인수하는 민간 배드뱅크 설립 방안도 검토 중이다.
주재성 금감원 은행담당 부원장보는 이날 기자실을 찾아 “배드뱅크를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은 사실”이라며 “아직 금융회사별 출자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국 말바꾸기 당혹”, 은행권, 경영지표 악화 우려
이날 조찬 간담회에 참석한 KB·신한·우리·하나·산은금융지주 등 5대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당국의 요청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건설사 PF 대출 만기 연장이나 PF 사업장 정상화 추진 등 예상 가능한 지원 방안들이 고스란히 은행의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많은 PF 대출을 보유한 곳은 우리은행으로 6조1000억원 수준이다. 이어 국민은행(5조6000억원), 하나은행(2조5000억원), 기업은행(1조7000억원) 등이다. 신한은행은 대출 잔액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올해 대출 회수 및 채권 상각 등을 통해 PF 대출의 상당 부분을 털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국의 추가 지원 요청으로 이 같은 경영방침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저축은행은 생존을 위해 죽기 살기로 PF 대출 회수에 나서고 있는데 추가 지원을 원하는 것은 은행 혼자만 부담을 지라는 것”이라며 “대기업의 부실 계열사 ‘꼬리 자르기’ 등 나쁜 관행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이 PF 대출에 대한 리스크 관리 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에 추가 대출이 이뤄질 경우 자칫 대손충당금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이 은행의 PF 대출 회수에 제동을 걸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은행에 무조건 손해를 보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특히 지난해 기업 구조조정 등을 위한 대규모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올해 본격적인 수익성 개선에 나설 예정이었던 KB금융지주 등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만 금융권과 건설업계의 공멸을 막기 위해 은행들의 부분적인 희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량 건설사의 경우에도 PF 대출이 많다는 이유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재무 건전성이나 자금 흐름에 이상이 없으면 무리하게 대출을 회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부동산 경기가 워낙 위축돼 있다보니 은행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출 회수 및 추가 담보 요구를 할 수 있다”면서도 “손해를 전혀 보지 않겠다는 식의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