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美국채를 내다 팔면
2011-01-20 10:53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별다른 마찰 없이 끝났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 두 나라 관계가 갑작스레 악화되어 중국이 미국 재무부증권(TB, 즉 미국채)을 투매하고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은 공식적으로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다. 중국이 보유한 TB는 대략 9000억 달러다. 여기에 홍콩 보유분을 합치면 1조 달러가 넘는다.
이런 중국이 갑자기 TB를 대량으로 매각하기 시작하면 미국 부채시장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만약 그런 조짐이 보이면 먼저 미국정부는 2차대전 때 ‘애국국채’를 팔았던 것처럼 자국민들에게 TB를 사라고 권하는 한편 우호적인 국가들을 상대로 TB 추가구매를 요청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미국 정부가 은행들에 TB 보유를 늘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정 안 되면 미국연방은행(준비제도이사회)에다 대고 국채를 떠안으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달러가치 폭락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최후 수단이다.
한국의 감사원 격인 미국 의회 회계검사원의 원장을 지낸 데이비드 워커는 “미국 정부는 미국민들에게 TB에 투자하라고 촉구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중국이 자국 보유 TB를 갑자기 매각한다는 것은 사실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렇게 되면 달러가치가 폭락해 중국 또한 경제적으로 심각한 손실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산적자와 정부채무가 불어나는 것을 미국정부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달러가치가 폭락하면 중국으로서는 당당하게 TB에서 발을 뺄 수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에스와르 프라사드 연구위원은 “우리가 티핑 포인트(작은 변화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쌓여,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갑자기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단계)에 놓일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며 “만약 중국이 ‘더 이상 TB를 사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이는 시장 전체의 심리에 불을 댕기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미국이 어떻게 빚을 감당하려나 하고 의아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경제학자 브래드 세처는 중국 같은 나라가 미국 부채시장에 등을 돌릴 경우에 대비에 미국의 정치적 우방들로 통화스왑 협력체계를 구축하자고 2009년 제안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제안은 유럽 국가들이 부채 위기에 빠져들면서 현실성이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세처의 제안이 있은 이후 독일은 유로존을 살리느라 수십 억 유로를 쏟아 부어야만 했다. 미국연방은행이 다른 유럽 국가들을 스왑체계에 끌어들인다 하더라고 이들 나라는 미국을 지원할 만한 힘이 없다.
일본이 미국을 도우려 TB를 더 구매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일본 자체가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고수준의 자국 국채를 등에 진 채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이 현실적으로 TB를 추가 구매하기 어렵다고 미국이 판단하면 이번에는 자국 통화가치의 상승을 막기 위해 TB를 대거 사들이는 태국과 인도, 그리고 대규모 국부펀드를 운영 중인 싱가포르에 TB 추가구매를 부탁할 수 있다. 여기에다 미국의 전통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이 미국의 구원투수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 중동 산유국들은 모두 2100억 달러 상당의 TB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몇몇 주요 국가가 나서서 TB 매입계획을 천명한다면 TB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가들은 전망한다. 이 경우 미국은 “TB 가치가 갑자기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미국 달러화를 주요국 통화 바스켓(여러 가지 통화를 조합해서 새로운 합성 통화 단위를 만드는 방식)에 연동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런 방식들 외에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수단은 미국 연방은행이 개입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연방은행이 발표한 제 2차 양적완화 프로그램의 규모는 6000억 달러다. 이는 중국이 2010년 내내 사들인 TB 액수보다 크다. 지난해 1~11월 중국은 장기TB 2600억 달러 어치를 샀다.
연방은행의 TB매입은 인플레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경제회복세가 미약한 경우에만 그나마 먹혀들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연방은행이 돈을 찍어 달러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 달러에 엄청난 타격을 가할 수 있으며 TB를 포함한 다른 미국 자산가치도 끌어내릴 수 있다.
미국 재무부는 이미 국내 예금자들을 상대로 TB매입을 강력히 권장하고 있다. 워커는 미국 정부가 이 정책을 더욱 조직화하여 TB의 대외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권고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결국 최종적으로 의존할 곳은 자신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쌓여가는 TB는 일깨워주고 있다.
(아주경제 송철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