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통화 단일화, 축복인가 재앙인가?
2011-01-11 17:40
유로화 가치 하락..."우려가 현실로"
유로화는 2002년 6월 1일 출범했다. 이후 이 단일통화는 미국 달러화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준비통화로서의 위상을 굳히는 듯했다.
EU 최강통화였던 독일 마르크화(貨)를 대체한 유로화는 출범 초기 달러화보다 강세를 보였고 일부지역에서는 오히려 달러화보다 더 대접을 받았다. 이런 까닭에 일부 성급한 경제전문가들은 "달러의 시대는 가고 유로의 시대가 온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물론 유로화는 지금도 여전히 세계 주요통화로서 유통된다. 하지만 근년 들어 그리스를 위시해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문제가 줄줄이 불거지면서 유로화의 옛 선호도가 많이 희석되었다. 특히 유로화 통용 이전 독일 마르크화(貨)가 누렸던 선호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국제 통화시장에서 ‘존경심’을 상실했음이 날로 뚜렷해지고 있다. 그러자 일부 독일인들 사이에서“유로를 버리고 다시 마르크화로 되돌아가자”는 과격한 주장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유로존은 물론 EU를 통틀어 가장 경제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인구도 가장 많은 독일은 통일 이후는 물론 이전에도 오랜 기간에 걸쳐 자국 화폐인 마르크화로 유럽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다시피 해 왔다. 서유럽은 물론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중․동부 유럽국가들은 전후(戰後) 수십년간 마르크화를 달러화보다 더 유력한 경화(硬貨)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해 왔으며, 유럽지역의 경우 무역대금 결제 등에도 마르크화가 광범하게 쓰여 왔다. 이에 따라 독일인들에게는 마르크화의 옛 영화(榮華)에 대한 향수가 짙게 남아 있다.
이런 판에 유로존의 소위 주변 국가들이 속속 재정위기에 빠지는 바람에 유로화 표시 국채의 가치가 날로 떨어지는 등‘유로화 비상상황’이 발생하자 유로존 경제력 1, 2위 국가들인 독일과 프랑스가 ‘유로존 공멸(共滅) 위기’를 느껴 유로존 회원국 구제, 구체적으로 유로화 구하기에 나서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단일통화, 단일운명’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영세중립국 스위스는 EU 회원국도 유로존 회원국도 아니다. 그래서 스위스는 자국 통화인 스위스 프랑을 쓴다. 유로존 통화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강세를 보이는 스위스 프랑을 가리켜 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스위스 프랑이 독일 마르크화의 옛 영화를 계승한 화폐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위스 경제는 독일과의 교역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므로 스위스 프랑을 ‘현대판 마르크화’로 부른다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스위스는 요즘의 여타 서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공공 재정상황도 상당히 건실할 뿐만 아니라, 독일과 달리 허약한 유로존 회원국들을 구제해야 할 부담도 없다. 그러다 보니 스위스 프랑이 어부지리로 독일 마르크화가 과거 통화 시장에서 누렸던 위세를 즐기고 있다. 스위스의 UBS은행은 스위스 프랑의 이런 위상을 가리켜 아예 “신종 마르크화”라고 부를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스위스 프랑의 강세가 하도 심하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이 “물가가 비싸 매력이 없다”며 스위스를 외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스위스 프랑은 유로화에 대해 기록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유로화는 스위스 프랑에 대해 기록적인 약세를 보여 최근 1유로 당 1.2701 스위스 프랑까지 가치가 내려갔다.
유로화 출범을 앞두고 EU 자체는 물론 서방세계는 “경제 형편이 제각각인 회원국들이 단일화폐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다. 그 걱정이 지금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