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포르투갈, 구제금융 놓고 氣싸움

2011-01-11 17:42
"이제는 구제금융 신청할 때" VS "우리 힘으로 재정위기 해결"

“남부유럽 국가들의 경제와 공공재정을 정비하는 데 드는 비용을 언제까지 우리가 물어야 하는가?”

재정위기로 이미 구제금융을 받은 발칸반도의 그리스에 이어 최근 이베리아반도의 포르투갈 재정마저 위태로워져 구제금융 투입이 거론되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맏형인 독일의 시민들 사이에서 이런 푸념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독일의 경우 거쳐 경제를 정비하는 데 10년 넘게 고통스러운 개혁과정을 거쳤다”며 독일, 프랑스 등 북부유럽이 주도적으로 마련한 구제기금으로 남부유럽을 집중 지원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튀어나오고 있다.

그리스, 아일랜드에 이어 포르투갈이 유로존의 세 번째 구제금융 대상국이 될지 모른다는 관측은 지난 주말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일간지 《벨트 암 존탁》에 의해 제기됐다. 이들 매체는 독일이 포르투갈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이에 포르투갈은 “어떻게든 우리 힘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해 볼테니 그런 소리 말라”며 버티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독일 재무부 관리들은 이런 보도를 부인했다.

포르투갈이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공동으로 마련해 놓은 유럽금융안정기금(EFSF)을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은 이 기금을 받을 경우 경제적 주권이 심하게 훼손되어 국제사회에서 체면을 구기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어 국내 정치적으로 집권당이 궁지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EU는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에 1100억 유로(약 160조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했다. 당시에는 EU 자체 판단에 따라 이 돈의 제공을 결정했지만, 이후 EU 규정이 바뀌어 EFSF의 경우에는 반드시 이를 필요로 하는 회원국에서 구제금융을 신청해야만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바뀐 규정에 따라 지난해 11월 아일랜드가 처음 지원을 요청해 675억 유로(약 98조원)를 받게 됐다. EU는 12일 첫 지원금 50억 유로를 아일랜드에 전달할 계획이다. 만약 이번에 포르투갈이 신청하면 아일랜드에 이어 두 번째 EFSF 수혜국이 된다.

주제 소크라테스 포르투갈 총리는 외부에서 보는 위태위태한 포르투갈 재정상황과 관련해 “우리나라 재정이 어렵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상황은 소크라테스 총리의 장담과는 다르다.

포르투갈은 12일 12억 5000만유로 규모의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 국채발행을 며칠 앞두고 지난 주말 포르투갈 10년물 국채의 수익률은 7% 이상으로 치솟았다. 이러한 국채 수익률은 유로존 창설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7%대 국채수익률은 투자자들이 포르투갈을 불안해 한다는 단적인 징표이다. 이를 계기로 유로존 경제서열 1~3위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포르투갈에다 대고 “구제금융을 받아 일단 급한 불을 꺼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포르투갈이 이러한 권고를 묵살하고 계속 자력회생만을 고집할 경우 포르투갈에 대한 투자자 신뢰는 더 낮아질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경제서열 4위인 이웃나라 스페인의 신용도마저 의심받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독일 등 유로존 핵심국들의 우려이다. 스페인에 이어 벨기에도 현재 잠정적인 “위험국가”로 분류돼 있다.

“자존심을 접고 구제금융을 신청하라”는 유로존 주도세력과 “못 하겠다”는 주변세력 포르투갈의 기싸움은 오는 17일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 이전에는 어느 쪽으로든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포르투갈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9.3%(2009년)에서 지난해 7.3%로 개선됐다. 하지만 유로존의 재정건전성 기준인 3%와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아주경제 송철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