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적인 정부의 물가대책

2011-01-11 18:12
시장기능 무시·직접적 통제 위주, 소비자 권리 침해 논란도 자초

(아주경제 이광효 기자) 11일 정부가 '설 민생안정 대책(이하 설 대책)'을 발표한 가운데 정부의 물가대책이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부가 시장기능을 무시하고 직접적인 통제를 위주로 하는 물가대책을 시행해 싼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담합이나 불공정거래를 차단해 시장의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행정지도 중심으로 물가 잡기에 나서면서 '시장주의'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도를 넘어선 시장 개입
 
정부 물가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장에 대한 개입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금리정책과 같은 거시정책은 사실상 거의 쓰지 않고 직접적으로 물가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려 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설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대책기간인 1월 12일부터 2월 1일까지 설 성수품과 주요 개인서비스 요금 등 22개 품목을 특별점검 품목으로 선정해 중점 관리하기로 했다.
 
특별점검 품목은 농축수산물 16개 품목(무, 배추, 마늘, 사과, 배,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달걀, 밤, 대추, 명태, 고등어, 갈치, 오징어, 조기)과 개인서비스 6개 품목(찜질방이용료, 목욕료, 이·미용료, 삼겹살(외식), 외식용 돼지갈비)이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0일 밀가루, 두유·컵커피 등 음료, 치즈, 김치, 단무지 등에 대한 담합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대규모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서민생활과 직결된 품목들 중 최근 가격이 인상됐거나 인상이 예상되는 품목을 대상으로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이런 물가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는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론 오히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는 "물가안정을 위해선 금리정책·환율정책 등의 일반적 거시정책 수단을 기본으로 하되, 선별적 미시정책 수단으로 보완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정부는 5% 성장을 위해 금리·환율정책은 묶어놓은 상태에서 공정위를 동원해 직접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정책기조는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인플레이션 압력을 잠복시켜 나중에 더 큰 가격상승으로 폭발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통큰치킨은 "NO" 저가 피자는 "OK"?
 
더 큰 문제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이 싼 물건을 살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개인 트위터에 비판하는 글을 올린 후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가 중단됐다.
 
'통큰치킨'의 판매 중단은 영세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치킨을 싼 값으로 사먹을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한 측면도 없지 않다.

반면에 이마트가 판매하고 있는 저가 피자는 정부 차원의 행정지도를 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허용해 대형마트의 저가판매 상품에 대한 대응 잣대가 이중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민들이 주로 사먹는 치킨은 소상공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면서 조금 형편이 나은 소비자들이 애용하는 피자는 눈감아주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피자 사업자들이 대부분 대기업이거나 외국 자본이 운영한다는 점에서 공정위 등 정부가 대형마트에서의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면 정책의 형평성이나 일관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